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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봉소안
“아이 아빠는 어디 계시는 거예요? 제가 전화해볼게요. 와서 환자분 돌봐주셔야죠.”

윤서진은 두 눈을 깜빡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빠 없어요.”

“네?”

의사가 그녀의 기록을 뒤적였다.

“결혼하신 거로 나오는데 남편분 있으면서 왜 같이 안 오셨대요? 산부인과 검진 때도 한 번도 안 오시더니 어쩌면 오늘도...”

윤서진은 그제야 알아챘다. 그동안 산부인과 검진은 전부 홀로 다녔었지.

3개월 전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배도현은 처음에 무척 기뻐하며 첫 초음파 검사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날 최지영이 돌아왔다.

이 여자가 돌아온 후, 배도현의 마음은 윤서진한테서 거의 떠나버린 셈이었다.

산부인과 검진 때마다 바쁘다고 핑계를 둘러대는 인간!

사실 윤서진도 남편이 최지영과 여러 번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이를 봐서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제 소중한 아기마저 잃었으니 더 이상 이 남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배도현과 이혼할 때가 되었다.

7년 동안 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그녀도 지칠 대로 지쳤다.

“가족분 없으시면 환자분께서 직접 수납하셔야 합니다.”

의사가 입원 기록을 떼주었다. 윤서진은 이불을 걷어내고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만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복도에서 마주 걸어오는 배도현과 최지영을 보게 됐다.

배도현은 조심스럽게 최지영을 부축하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재빨리 본인 뒤로 감쌌다.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와? 지영이 손 다친 거 안 보여? 뭘 더 어쩌자는 건데?”

경계 가득한 이 남자의 눈빛을 보면서 윤서진은 가슴이 차갑게 식어갔다.

“도현아, 서진이한테 너무 심하게 그러지 마. 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아마 나한테 사과하러 온 거겠지.”

최지영은 배도현에게 거의 몸을 기대다시피 하고 말했다.

“괜찮아, 서진아. 네 탓 아니야.”

“사과하러 온 거면 나가서 지영이 먹을 거라도 좀 사 와. 애가 손을 다쳐서 입원해야 한대잖아!”

윤서진은 최지영의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겨우 손등에 조금 빨갛게 부어오른 정도로 입원까지 해야 한다고?

그러는 윤서진은? 아이마저 잃은 그녀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확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윤서진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배도현이 눈썹을 치키며 말투가 살짝 누그러졌다.

“뭘 또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지영이한테 사과하고 먹을 거 좀 사 오라는 게 그렇게 서러워?”

“아니.”

윤서진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서러울 거 없어.”

아이까지 잃은 마당에 뭐가 더 서러울까?

“됐어, 그냥 집에 가서 기다려. 지영이 손 회복되는 대로 돌아갈게.”

너무나도 익숙한 말, 여태껏 수없이 들어온 말. 윤서진은 이제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최지영이 돌아온 날,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이 남자는 바쁘다며 먼저 병원에 가 있으라고, 곧 찾으러 오겠다고 했었다.

그날 윤서진이 병원에서 종일 기다렸지만 배도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TV에서 최지영의 귀국 소식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인파들 속에서 노란 장미를 든 배도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첫사랑, 그의 여신님이 돌아왔으니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던 것이다.

최지영이 돌아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윤서진은 고열에 시달렸다. 아이 때문에 약도 먹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버틸 때, 배도현은 촬영장까지 따라가 최지영이 촬영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전화를 걸어 몸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을 때, 배도현은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금방 돌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러나 다음 날 오후가 되어 열이 다 내리고 나서야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왔다.

셀 수 없이 많았던 순간들, 이제는 다 기억해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몇 번이고 실망한 끝에 윤서진은 그와 대판 싸웠다.

배도현도 다시는 최지영 때문에 그녀를 내버려 두는 일은 없다고 맹세했었다.

그때 윤서진이 내뱉은 말, 남편인 너에게 다섯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드디어 이번이 다섯 번째 기회였다.

윤서진이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이 남자가 말을 꺼냈다.

“지영이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어. 네가 먹을 것도 안 사 오겠다니 별 수 없지 뭐. 나랑 지영이는 편의점 다녀올 테니 넌 먼저 집에 가 있어.”

“그래.”

윤서진도 더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별안간 그녀의 손에 들린 서류를 보자 배도현이 멈칫했다.

“손에 든 거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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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온 뒤 맑음   제27화

    윤서진은 바다를 실컷 구경했으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그녀는 서둘러 짐을 챙겨 호텔 프런트로 향했다.“손님, 체크아웃하시겠어요?”“네.”배도현이 있는 이곳에 단 1초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체크아웃 다 되었습니다.”체크아웃을 마친 호텔 직원이 그녀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이것은 배도현 씨께서 오늘 아침 호텔을 떠나시면서 프런트에 맡기고 가신 겁니다. 윤서진 씨 체크아웃하실 때 꼭 좀 전해드리라고 부탁하셨거든요.”윤서진은 손에 쥔 서류를 바라보았다. 순간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이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윤서진 씨가 자신을 안 보고 싶어 할 거라면서 가장 빠른 비행기로 귀국하셨답니다.”“알려줘서 고마워요.”윤서진은 한쪽으로 물러나 손에 든 서류를 열었다.이혼 합의서를 본 순간,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서류의 마지막 장을 넘겨 배도현의 서명을 보았을 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슬픔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눈물이었다.배도현이 마침내 자신을 놓아주고 자유를 돌려주었으니까. 이제 드디어 깔끔하게 과거를 끝낼 수 있게 됐으니까.“아, 그리고 또 다른 남자분께서도 명함 한 장 남기고 가셨습니다.”프런트 직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윤서진은 곧장 차기준의 명함을 받아 들었다.예상대로 그는 대기업 오너이자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필요하실 때 언제든 연락하라고, 곧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그분은 그럼 어디 가셨죠?”“집에 일이 생겨 밤에 헬기 타고 떠났습니다.”“그러시구나.”윤서진은 눈썹을 치키고는 수중의 명함을 옆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닌지라 여행지에서의 낭만적인 만남을 기대할 나이가 아니었다.스쳐 지나간 인연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이상의 관계는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을 해칠 뿐이었다.명함을 버리고 이혼 합의서를 챙긴 윤서진은 호텔을 나섰다.화연국으로 돌아와 곧장 집으로 향했다.차는 산 중턱을 달려서 마침내

  • 비 온 뒤 맑음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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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온 뒤 맑음   제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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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온 뒤 맑음   제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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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온 뒤 맑음   제23화

    “대표님, 지금은 회사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먼저 생각하셔야 해요.”“집에 좀 다녀와야겠어.”배도현은 탁자를 짚고 힘겹게 일어서서 비서에게 본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의 대소사는 거의 어머니가 도맡아 처리했다.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온 아들을 보자 김애라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게 무슨 꼴이냐! 술을 그렇게 퍼마시고 여길 왜 왔어? 서진이는 왜 안 보여? 같이 온 거 아니니?”김애라는 한창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실은 내일 윤서진에게 가져다줄 영양제와 건강 보조 식품을 잔뜩 사놓았던 것이다.며느리인 윤서진이 줄곧 탐탁지 않았지만,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 나름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엄마, 드릴 말씀이 있어요.”“얘기해.”김애라는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아기한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우리 가문의 귀한 존재인데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 서진이 가만 안 둬! 그땐 너도 당장 이혼이야! 애초에 몸이 약해 임신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면 너랑 결혼시키지도 않았어.”김애라는 쉴 새 없이 잔소리해대느라 아들의 창백한 얼굴을 알아채지도 못했다.긴 침묵 끝에 배도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서진이 유산했어요. 아이 없어요, 이제.”“뭐라고?”김애라는 화들짝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너 지금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거지? 멀쩡하던 아이가 왜 유산이 돼? 서진이 그 계집애가 일부러 나한테 손주 안 보여주려고 이러는 거니?”“아니요. 제가 서진이를 계단에서 밀치는 바람에 아이를 잃었어요.”김애라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 아이를 품은 서진인데 계단에서 밀치다니? 아무리 크게 싸웠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지영이 위한답시고 계단에서 밀쳤어요. 서진이가 계단을 구르고 피 흘리면서 전화 왔을 때도 거짓말하는 줄 알고 무시했어요. 결국 제가 외면해버린 탓에 서진이가 유산하게 된 겁니다.”배도현의 말

  • 비 온 뒤 맑음   제22화

    “어쩐 일이세요, 장 비서님?”윤서진의 말투가 약간 누그러졌지만 냉랭한 건 여전했다.“대표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죄송하지만 국내로 돌아와 주실 수 있을까요?”“그 사람 상태가 좋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이죠? 저희 지금 이혼 절차 밟는 중이거든요. 앞으로 그 사람 일로 연락하지 마세요.”“제발 부탁드립니다. 대표님도 이번엔 정말 잘못을 뉘우치고 계세요.”비서가 간절히 애원했다.“회사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어요. 곧 파산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대표님께서 회사를 위해 도움 청하러 가셨다가 강제로 위스키 두 병을 마시고 머리까지 깨져서 피가 멈추질 않아요. 그런데 기어코 병원은 안 가겠다고 고집하면서 사모님만 찾고 계세요. 그래도 한때 부부인 걸 봐서 돌아와 주십사 연락 드렸습니다.”이 말을 들으면서도 윤서진은 일말의 동요가 없었다.배도현이 겪는 고통은 모두 그가 자초한 것이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게다가 아이를 잃은 고통에 비하면 이까짓 일들쯤이야 뭐가 대수일까?“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그 사람 일로 연락하지 마세요. 우린 이제 남남이에요.”윤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도현이 비서의 휴대폰을 확 낚아챘다.“서진아, 너 맞지? 너무 보고 싶어. 제발 돌아와 줘. 전에도 술 마시면 네가 항상 데리러 왔잖아. 보고 싶다, 윤서진. 우리 아기도 너무 보고 싶어... 돌아와, 제발. 꼭 잘할게. 내가...”다만 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윤서진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서 단 1초도 더 듣고 싶지 않았다.이번에는 비서의 전화번호까지 모조리 차단해 버렸다.다만 이대로는 안 될 터, 배도현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그녀가 번호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윤서진은 유심 카드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하지만 여분의 유심 카드가 없으면 안 되니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근처에서 휴대폰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호텔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다.“죄송해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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