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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7초 만에 이혼당했다

혼인신고 7초 만에 이혼당했다

Por:  산깨Completo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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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진은 사람들로 붐비는 로비 한가운데 서서 서류 봉투 두 개를 움켜쥐고 있었다. 한쪽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였고, 다른 한쪽은 이혼합의서였다. 3시간 전, 병원 접수 시스템에 표시된 혼인 상태가 ‘이혼’으로 떠 있는 걸 보고 연서진은 일부러 확인 차 구청 민원실까지 다녀왔다. 담당 직원이 모니터에 뜬 결과를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연서진 님과 양예준 님은 3년 전에 이미 이혼 처리 되셨습니다.” 연서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리 없어요. 3년 전이면 저희가 막 혼인신고를 한 때예요.” 직원은 다시 몇 번이나 확인하더니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록상으로는 맞습니다. 이혼 일자는 3년 전, 혼인신고가 접수된 지... 정확히 7초 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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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직원이 다시 말했다.“더구나 양예준 님은 그로부터 1년 뒤 재혼하셨습니다. 배우자 란에는 소시연 님 성함으로 등록되어 있고요.”연서진은 정신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고, 가느다란 팔만 아주 작게 떨렸다.울서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연서진과 양예준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서로의 앳된 모습이 어른으로 바뀌는 시간을 곁에서 서로 지켜본 사이였다.양예준은 늘 연서진을 지켰고, 연서진에게만 다정했다. 연서진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주님으로 자랐다.반면 소시연은 양예준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소정그룹 쪽에서 홀로 남은 딸이었다.“혹시... 괜찮으세요?”연서진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손을 저었다.그 뒤로도 연서진은 발 닿는 대로 울서시 거리를 헤맸다. 울서시 시내에 있는 제일 큰 광장 전광판에서는 양예준의 인터뷰가 생중계되고 있었다.화면 속 남자는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긴 다리를 느긋하게 꼬고 앉아 있었다.진행자가 다음 질문을 던지려던 때, 양예준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죄송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해야겠습니다. 아내와 저녁을 먹기로 해서요.”그가 카메라를 향해 옅게 웃자 방송은 그대로 끝났다.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다들 양예준의 아내 사랑을 부러워했고, ‘아내 바라기’라고 칭찬했다.연서진은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문질렀다. 웃음이 나올 만큼 우스웠다.남편이 말한 아내가 대체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생각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매일 아침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연서진을 데리러 오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양예준은 어떻게든 연서진 곁에 설 기회를 만들었다. 학교 축제 사회, 피아노 연탄곡 연주, 체육대회 계주. 어느 자리에서든 그는 세상에 알리듯 행동했다. 연서진은 자기 사람이라고.졸업하자마자 양예준은 연서진에게 청혼했다. 그는 늘 말했다.“다른 남자가 자기한테 눈길만 줘도 난 돌아버릴 것 같아.”같은 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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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연서진은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침대 머리맡에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2주 뒤, 울서항에서 만나요.]술기운에 눌려 있던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다.지난밤 연서진이 만난 사람은 심이한이었다. 울서시에서 양예준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이자, 연서진이 멀리 떠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핸드폰에는 양예준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100개 가까이 쌓여 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양예준은 진행 중이던 화상 회의를 바로 끊고 그녀에게 다가왔다.“여보, 어디 갔었어? 어젯밤 나간 뒤로 안 들어와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사람 풀어서 온 시내를 뒤졌을 거야.”남자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잠을 하나도 못 잔 사람 같았다.탁자 위 노트북 화면에는 결혼식 날의 연서진 사진이 떠 있었다.처음 웨딩드레스를 입은 연서진을 보았을 때, 양예준은 아이처럼 울었다.연서진은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의 눈에는 여전히 사랑이 넘쳤다.다만 그 사랑의 대상이 연서진 이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연서진은 시선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친구를 만났어. 이야기하다 보니 연락하는 걸 잊었어.”양예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는 연서진을 식탁으로 데려가 앉히고 소매를 걷어 새우를 까기 시작했다.“요즘 안색이 안 좋아. 병원 한번 가 볼래?”연서진은 젓가락을 멈췄다.그녀는 외출할 때마다 양예준에게 미리 알렸다. 병원에 간 날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양예준은 소시연 일에 바빠 그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연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날이 더워서 입맛이 없어.”양예준은 곧장 주방 쪽을 보았다.“이모님, 앞으로는 담백한 걸로 준비해 주세요. 서진이 좋아하는 과일도 시원한 디저트로 만들어 주시고, 매일 다르게요.”주영자는 대답했지만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연서진이 주영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현관장 위에 보온 도시락이 하나 놓여 있었다.잠시 뒤 연서진의 접시 위에는 가시를 발라낸 생선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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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깨진 유리 아래에서도 핸드폰 화면은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양예준은 소시연을 소파에 눕히며 낮게 웃었다.“나만 있으면 된다며? 그럼 이건 어때?”남자의 손끝에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연서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 목걸이는 양예준이 예전에 연서진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았다.그는 분명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이라고 했다.연서진은 곧장 사진을 찍어 보석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보냈다.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짝퉁이야.”그 한 마디를 보고 연서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손에 쥔 목걸이도, 양예준의 아내라는 자리도 모두 가짜였다.한 사람이 진심으로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그녀는 핸드폰을 꽉 쥔 채 화면 속 소시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았다.“나도 소원이 하나 더 있는데...”그때 양예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여보, 갑자기 이틀 정도 출장을 다녀와야 해. 나 없다고 밥 거르지 말고.]전화를 끊은 뒤, 연서진은 홀린 듯 양예준의 회사 앞으로 차를 몰았다. 마침 양예준의 차가 빠져나오고 있었다.차는 한참을 달리더니 산길로 들어섰고, 마침내 산 초입에 멈췄다.비가 부슬부슬 내려 길은 젖어 있었다.양예준은 허리를 숙여 소시연을 업고 산 위로 올라갔다.연서진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가파른 계단 끝자락에는 세월의 흔적이 깃든 오래된 절이 있었다.결혼 뒤 아이가 생기지 않자 시어머니가 연서진을 데려온 곳이었다.“한 계단 오를 때마다 한 번씩 절해야 한다. 정성이 있어야 아이가 온다.”그날도 비가 내렸다. 연서진의 무릎은 이끼와 진흙으로 더러워졌고, 나중에는 살이 까져 피가 배어 나왔다.마지막 계단에 다다랐을 때 양예준이 달려와 함께 절을 했다.그는 어머니가 이런 미신을 믿는 것을 못마땅해했고, 반년 가까이 본가에 발길을 끊었다.그날 둘은 절 안에서 함께 ‘사랑 자물쇠’도 걸었다.연서진은 자신이 이곳에 다시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양예준과 다른 여자의 뒤를 밟아 따라오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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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프로그램 녹화 당일.연서진과 양예준은 비슷한 색감의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았다. 양예준은 계속 연서진의 손을 잡고 있었다.진행자가 연애 시절 이야기를 묻자 그는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답했다. 중간중간 연서진의 등받이 쿠션까지 살펴 주었다.“두 분은 어린 시절부터 연인, 부부가 되기까지 늘 변함없이 사랑해 오셨죠. 정말 사랑의 모범 같은 커플입니다. 앞으로도 더 행복하시길...”쿵!큰 소리가 진행자의 말을 끊었다. 모두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소시연이 무너진 화분 선반 옆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상사는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지만 손가락질은 분명했다.양예준은 연서진의 손을 거의 바로 놓고 성큼성큼 그쪽으로 갔다.“당신이야말로 오늘부로 해고입니다.”그리고 시선은 소시연의 붉게 부은 팔에 머물렀지만 말은 그 상사에게 향해 있었다.“직원이 실수를 했다면 그 상사에게 관리 책임도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직원을 몰아붙이는 건 회사 이미지에도 좋지 않습니다.”연서진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과 소시연 사이를 오가는 것이 느껴졌다.그럼에도 그녀는 품위 있는 미소를 유지했다.녹화가 다시 시작한 된 뒤, 양예준은 확실히 집중하지 못했다.진행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결혼기념일은 틀리셨네요, 양 대표님.”양예준과 연서진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양예준은 본능적으로 연서진을 보았다가 곧바로 설명했다.“제 아내가 그랬거든요. 우리는 너무 행복해서 매일이 신혼 같다고요.”현장에서 부러운 웃음과 환호가 터졌다.하지만 연서진은 알았다. 양예준은 틀린 게 아니었다.그가 무심코 말한 날짜는 소시연과의 결혼기념일이었다.사랑이라는 선택지에서 연서진은 이미 지워진 답이었다.연서진은 물을 마시는 척하며 양예준의 손에서 조용히 제 손을 빼냈고, 다시 잡지 않았다.마지막 순서는 양예준이 연서진을 업고 꽃벽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었다.그런데 연서진이 양예준의 목을 감싸기도 전에,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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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저녁 무렵, 소시연의 SNS가 다시 올라왔다.[원하는 건 반드시 손에 넣는다.]사진 속에는 연서진이 3년 동안 먹어 온 집밥이 차려져 있었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새우 껍질을 까는 손이 살짝 보였다.맞춤 셔츠 커프스에는 연서진의 영문 이름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핸드폰이 켜졌다. 양예준의 메시지였다.[여보, 나 오늘도 야근이야. 먼저 저녁 먹어.]연서진은 냉장고를 열었다.양예준은 건강을 챙긴다는 이유로 주영자에게 식재료를 한꺼번에 많이 쌓아 두지 말라고 늘 당부했다. 재료는 그날그날 장을 봐 쓰게 했다.그래서 냉동실에는 주영자가 미리 빚어 둔 만두 한 팩만 남아 있었다.이 사실을 양예준은 분명 잊고 있었다.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연서진은 이불 속에 웅크렸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익숙하고 두려운 숨 막히는 증상이 서서히 밀려왔다. 그녀가 소매를 걷자 양팔에 붉은 발진이 번져 있었다.알레르기 반응이었다.그리고 머릿속에 몇 장면이 스쳤다.며칠 전 소시연에게 줄 땅콩죽을 끓였던 냄비. 연서진은 방금 그 냄비에 만두를 삶았다.의식이 흐려졌고, 시야가 까맣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그대로 떨어졌다.끝없는 어둠 속에서 연서진은 꿈꾸었다.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그때 양예준은 중요한 협상을 위해 타지에 나가 있었다.[바로 갈게.]전화기 속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안 와도 돼... 그쪽 일이 더 중요하잖아.”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연서진은 아버지의 서재를 지키고 있었다.[기다려.]그는 그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지 않았다.새벽, 연서진은 갑자기 눈을 뜨며 전화기에 대고 중얼거렸다.“아직 안 자고 있어?”[응, 있어.]양예준의 대답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곧 방문이 열리고 그가 큰 걸음으로 들어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울지 마. 앞으로는 내가 아버님 몫까지 널 지킬게.”그때 양예준의 눈에는 연서진밖에 없었다. 세상 전부의 무게가 그녀의 눈물 한 방울보다 가볍다고 여기는 듯했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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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퇴원한 날, 양예준은 집에서 연서진을 위한 작은 파티를 열었다.여러 명의 영양사가 솜씨를 선보였고, 긴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가득했다.양예준은 뒤에서 다가와 연서진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오늘 나온 음식은 네가 먼저 맛보기 전에는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했어.”“마음에 드는 사람을 하나 골라. 그 사람이 앞으로 네 식사를 맡을 거야.”그런 다정함 앞에서도 연서진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양예준의 손에 이끌려 안쪽으로 들어갔다.연서진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소시연은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눈은 연서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한때 이렇게 화려한 자리는 내 것이기도 했잖아!’‘왜 나는 연서진이 남긴 것만 주워 먹어야 해?’그 눈에 차가운 감정이 차올랐다.그때 영양사가 새로운 디저트 한 접시를 들고나와 소시연의 옆에 놓았다.접시와 포크가 부딪히는 맑은소리가 연회의 분위기를 갈랐다. 사람들이 돌아보니 소시연 앞에 있던 크레이프 케이크 한 조각이 이미 잘려 있었다.“저기요...” 누군가가 지적했다. “아직 사모님이 드셔 보시기 전입니다.”소시연은 태연하게 포크를 내려놓았다.“죄송해요. 배가 고파서요.”그러더니 천천히 두 번째 조각을 집어 들었다.주변에서 낮은 수군거림이 퍼졌다.“어디서 굴러온 애야?”“너무 무례한데....”“대체 누가 들여보낸 거야?”“...”분위기가 얼어붙자 연서진은 피로감이 밀려왔다.‘양예준까지 소시연의 것이 된 마당에... 케이크 한 조각이 무슨 대수라고...’연서진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갔다.“다들 편하게 즐기세요. 격식은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꺄악!”그녀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소시연과 함께 케이크 위로 넘어졌다.연서진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드레스와 머리카락에는 끈적한 크림이 잔뜩 묻었다.“무슨 일이야?”양예준이 달려와 손수건을 꺼내 그녀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너무 세게 문지른 탓에 손등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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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다음 날, 연서진은 점심이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킬 힘이 생겼다.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양예준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식탁 위에는 점심이 차려져 있었고, 옆에는 손도 대지 않은 아침 식사까지 놓여 있었다.연서진은 그가 언제 돌아왔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영양사들은 왜 다 보냈어?”양예준은 연서진의 손을 잡으러 다가왔다. 목소리는 예전처럼 다정했다. 마치 어제 그녀에게 화낸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마음에 드는 사람 못 고르겠으면 전부 남겨도 돼. 나는 그 정도 감당할 수 있어.”연서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은 담담했다.“소시연이 데려간 사람까지 포함해서?”잡힌 손이 거칠게 놓였다. 양예준은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 눈 안쪽에 분노가 차올랐다.“여보! 아직도 끝이 아니야?”연서진은 놀랐다.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처음 만난 날을 빼면 양예준이 연서진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부른 적은 없었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연서진은 문득 자전거를 배우던 날을 떠올렸다.그때 그녀는 여러 번 넘어져 양예준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는 웃으며 연서진을 놀리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하지만 이제 소시연과 관련된 말 한마디에 그는 쉽게 화냈다.양예준은 소시연의 제멋대로인 행동은 받아들이면서도, 연서진의 차분한 질문은 견디지 못했다.연서진은 더는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가방에 짐을 챙겨 나갔다.차 문을 닫은 뒤로 집 안에서 접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늦은 밤, 연서진이 돌아왔을 때 집 거실 소파에는 소시연이 앉아 있었다.소시연은 먼저 설명했다.“대... 대표님이 출장을 가셔서요. 저는 업무 때문에 왔어요.”연서진은 대꾸하지 않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시연이 문을 두드렸다.“대표님이 짐을 챙겨 달라고 하셨어요.”연서진은 잡지를 넘기다가 손끝으로 드레스룸을 가리켰다. 소시연은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손은 양예준의 옷들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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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출장 셋째 날부터 소시연은 SNS를 자주 올렸다.가벼운 옷차림으로 찍은 갑판 사진, 풍경 좋은 산책로 사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사진. 사진마다 배경에는 양예준의 모습이 어김없이 들어가 있었다.새로 올라온 글에서는 소시연이 대놓고 그의 팔을 끼고 있었고, 양예준의 옆얼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치 신혼여행 사진 같았다.문구는 이랬다.[상사와 유급 휴가 중. 방해 금지.]연서진의 엄지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잠깐 멈췄는데, 실수로 ‘좋아요’가 눌렸다.3초도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양예준의 이름이 떠 있었다.[예보 보니까 오늘 밤 폭풍우가 온대.]수화기 너머에는 바닷소리가 섞여 있었다.[창문 잘 닫아. 천둥 쳐도 무서워하지 말고.]연서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굵은 비가 유리창을 계속 때리고 있었다.예전에는 그녀가 가장 무서워한 것이 천둥 치는 밤이었다. 양예준은 그런 날이면 약속을 미루거나 모임을 일찍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얼음처럼 차가워진 연서진의 발을 품 안에 넣어 녹여 주었다.이 남자의 품에 기대 있으면 연서진은 세상 모든 소리가 잦아드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한밤의 폭풍우를 혼자 견디고 있었다.양예준은 계속 무언가를 말했지만 연서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곧 맑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빨리 와! 불꽃놀이 시작해!][세상에, 내 이름이잖아!][이거 나한테 주려고 준비한 거야? 너무 좋아!]그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연서진은 바닷가에서 뛰어다니는 소시연의 모습을 떠올렸다.수화기 너머에서 잠깐 소란이 일었고, 양예준은 급히 말했다.[일찍 자.]전화가 끊겼다.연서진은 핸드폰을 든 채 통화 종료음과 천둥소리가 섞이는 것을 들었다. 번개가 밤하늘 절반을 하얗게 밝힌 뒤에야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렸다.사실 연서진의 마음은 이미 무뎌졌다. 눈이 슬픔을 다 담아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아침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연서진이 창문을 열자 마당은 엉망이었다.결혼할 때 양예준과 함께 심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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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양예준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에 발이 걸렸다. 어젯밤 세찬 비바람에 문 앞에 작은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쓰러진 화초들을 넘어 현관문을 열었다.“여보, 나 왔어!”대답은 없었다.그는 몇 번 더 부르며 선물로 가득 찬 캐리어를 들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지난번에 자기가 예쁘다고 했던 목걸이 사 왔어!”안방 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옷장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양예준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벽에 걸려 있던 결혼 사진도 사라지고 없었다.며칠 동안 연서진이 그의 메시지에 한 번도 답하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덮쳤다.그때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렸다.양예준은 급히 내려갔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은 소시연이었다.“왜 네가 여기 있어?”소시연의 웃음이 굳었다가 곧 그에게 몸을 붙였다.“자기 외투가 우리 집에 있어서...”소시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서진 언니는 없어?”양예준은 그녀의 손을 피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없는 정도가 아니야. 서진이 물건들도 다 사라졌어.”소시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조심스럽게 떠보듯 말했다.“그날 내가 짐을 챙길 때, 서진 언니가 여기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한 것 같긴 해.”“말도 안 돼!” 양예준이 잘라 말했다. “서진이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아.”그는 예전에도 잘못을 저질렀다. 차를 따라 뛰었고, 무릎도 꿇었다. 그때마다 연서진은 용서했다. 양예준은 연서진이 떠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늘 마음이 약했고, 무엇보다 남편을 사랑했다.“잠깐 머리 식히러 나간 거겠지. 며칠 지나면 돌아올 거야.”소시연은 양예준을 밖으로 끌었다. “영자 이모님이 밥 다 해 놨어요.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자.”양예준은 거절하지 않았다.문을 닫기 전, 소시연의 시선이 거실 쓰레기통에 닿았다.방금 테이블에 있는 반지와 핸드폰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때 꽤, 큰 소리가 났다. 양예준이 뛰어 내려왔을 때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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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쓰레기통이라고요?”양예준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네, 대표님. 반지랑 핸드폰이 모두 쓰레기통 안에 있었습니다.”주영자는 그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양예준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이 켜지자 잠금화면 사진이 그의 눈을 찔렀다.신혼여행 때 바닷가에서 찍은 두 사람의 사진이었다.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공포가 심장을 움켜쥐었다.양예준의 손끝이 반지를 더듬었다.연서진이 결혼반지를 뺀 것은 딱 한 번이었다.결혼 첫해 겨울이었다.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다 반지가 빠져 눈 속에 묻혔다. 양예준은 회사에서 회의 중이었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연서진은 눈밭에 무릎을 꿇은 채 빨갛게 언 손으로 눈을 헤집고 있었다.“그만 찾아. 눈이 녹으면 나오겠지.”하지만 연서진은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눈더미 끝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찾아냈다.그날 밤, 연서진은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반지를 손안에 꼭 쥐고 중얼거렸다.“찾았어...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게....”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스스로 반지를 빼서 쓰레기통에 버렸다.양예준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약지는 텅 비어 있었다. 소시연을 달래느라 결혼반지를 진작 빼 두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그는 서랍을 열어 두 반지를 나란히 넣었다. 이어 연서진의 핸드폰을 붙잡고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생일을 입력했다. 잠금이 풀렸다.갤러리에는 최근 저장된 영상 두 개가 있었다.첫 번째 영상에는 사무실 안의 양예준과 소시연이 찍혀 있었다. 소시연은 몸을 숙여 양예준의 넥타이를 만졌고, 양예준은 그녀를 소파에 눌렀다. 그리고 손끝에는 그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분명 그날 내가 직접 CCTV를 껐는데...’두 번째 영상은 연회장 영상이었다. 소시연이 연서진의 손목을 붙잡은 뒤 스스로 뒤로 넘어졌다. 비명을 지르기 전 소시연의 입가에 떠오른 얄궂은 미소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이것이 진실이었다.소시연은 양예준이 생각하던 것처럼 얌전한 여자가 아니었다.양예준은 그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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