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백민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승재는 통화 버튼을 2번 더 눌렀지만 연결음만 길어졌다. 그 소리를 듣던 사람들마저 조용해지는 사이 경찰관이 도착했다. 화면부터 찍고 싶었던 채린은 휴대폰을 꺼내는 대신 자신이 직접 들은 말을 설명했다.
“그분이 직접 보여 준 통화 화면에 그 이름이 있었습니다. 메시지는 못 봤어요.” 설명을 들으며 끄덕인 경찰관은 빌린 출입증과 승재 본인의 임시증을 각각 다른 봉투에 넣었다. 수상한 봉투의 내용물은 별도로 확인하겠다고 했다.
복도로 나오자 벽 너머로 이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전 인터뷰는 예정대로 시작된 모양이었다.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신가 봐요?” 진행자의 질문에 그가 잠깐 뜸을 들였다.
“준비 안 했다는 걸 들키는 게 싫은 편이죠.” 방송을 들으며 채린은 대기실 쪽으로 걸었다. 오늘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모퉁이에서 손을 든 장태경 대표 옆으로 짙은 회색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정미디어 한정우 대표. 에이펙스 이사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사람 이름을 틀리는 법이 없었다.
“은 본부장, 고생 많네요.” 정우가 먼저 인사했다.
“배우 들어오기 전에 막았다면서요. 대응 잘했어요.”
“아직 확인 중입니다.”
“그럼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죠. 은 본부장은 배우를 봐야 하고.” 틀린 말은 아니지. 정우는 태경에게 현장 대행사 대표 연락처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해 대신 투입할 진행 인력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태경의 표정이 풀리는 동안 채린의 무전기에서 호출음이 났다. 정우는 자기 말을 멈추고 먼저 대답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무슨 일이든 제 얘기부터 끝내려는 임원들과는 달라서, 채린도 대기실의 확인 요청에 답한 뒤에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침 이사님이 계셔서 다행이야. 저 업체는 오늘부로 정리하면 되겠지?” 채린은 목에 걸린 무전기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교체 인력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업체 자료부터 받아야 해요. 오늘 인원표랑 반입 요청 주고받은 내용요.”
“잘라 버리면 주겠지.”
“지금 담당자들이 나가면 누가 뭘 받았는지도 못 물어요.” 말을 꺼내고 보니 지나치게 빨랐나 싶었다. 정우의 시선이 잠깐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 말도 맞네요. 담당자 연락은 남겨 두고 교대할 수 있게 하죠.” 기분 나쁜 내색 없이 비서에게 덧붙이는 모습을 보고서야 굳혔던 어깨를 조금 내렸다.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따지기만 하는 꼴인가 싶어도, 담당자 연락처만큼은 빈칸으로 남겨 둘 수 없었다.
“통화기록은 경찰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보존 요청해 주세요. 저한테 전부 보내 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정우는 손에 든 초대장을 펴며 웃었다.
“은 본부장은 여전히 말이 짧아서 좋아요. 회의도 이렇게 끝나면 좋겠는데.” 평소 같았으면 농담 하나를 돌려줬을 것이다. 채린은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대기실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채원의 매니저가 나왔다.
“지금 인터넷에 이상한 게 올라왔어요.”
내민 화면에는 보안 요원들이 반입대를 둘러싼 흐릿한 사진이 떠 있었다. 서채원 대기실에서 수상한 물품이 나와 출연이 취소됐다는 설명까지 붙어서.
물건은 대기실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진을 확대하려던 손을 멈췄다. 어디를 잘라 냈는지는 수정이 확인할 수 있지만, 지금 문 안의 채원에게 갈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때 인터뷰를 마친 이헌이 뒤에서 불렀다.
“은 본부장.”
“5분 넘기셨어요?”
“7분. 나중에 갚아요.”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혼났어요?”
“아니요. 칭찬받았어요.”
“그런 얼굴로?”
“어떤 얼굴인데요.”
“당장 할 말이 세 개는 있는데 하나도 안 한 얼굴.”
“두 개였습니다.”
“나머지 하나는요?”
“배우님이 세고 계셨다는 말이요.”
이헌의 입가가 움직이는 걸 보며 정말 3개였나 세어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복도 상황까지 먼저 살피고 온 사람이 자기 얼굴에서도 그걸 읽었다는 게, 조금 얄미워서.
문고리를 쥐자 땀이 밴 손바닥이 미끄러졌다. 이헌은 그 손을 보고도 대신 열어 주지는 않았다.
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채원의 광고주 담당자.
“본부장님, 출연 취소가 맞는지 확인하려고요. 대체 모델 제안도 같이 왔거든요.”
“취소한 적 없습니다. 누가 보냈습니까?”
“JS 쪽이요. 백민우 본부장님이 오늘 참석 어렵다고…….”
채린은 시계를 봤다. 오후 5시 39분.
“그 연락, 언제 받으셨어요?” 담당자가 메일을 확인하는 동안 채린은 대기실 문에서 손을 뗐다.
“3시 40분이요. 아직 행사 전이었는데, 내부 사정이라더라고요.” 반입대에서 물건을 찾아내기 훨씬 전이었다.
사무실 유리문에 자기 얼굴이 두 개 비쳤다.밖은 어둡고 안은 밝았다. 채린은 모니터와 유리문을 번갈아 보다가 커튼을 닫았고, 반성하는 얼굴까지 옆에서 일하는 기분은 별로였다.감사 예고를 받은 다음 날 밤이었고, 라운에 보낼 수정안은 4번째 파일이 됐다. 기존 촬영분에서 만들 영상, 새로 찍어야 할 영상, 취소할 영상. 셋으로 나누면 될 일이 비용을 넣을 때마다 하나로 엉켰다.채린은 추가 인건비를 회사 부담 칸으로 옮겼고, 그만큼 본부 실적이 줄었다. 지우의 계약 연장을 설명할 때 또 이 숫자가 돌아올 터였다.“밑줄 친다고 돈이 생겨?” 수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코트 단추를 채운 채로 채린의 책상부터 봤고,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남아 있는 자료의 양을 훑었다.“왜 아직 있어요?”“네가 보낸 파일 기다리느라.” 채린은 낮에 검토본을 공유하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완성하고 보내려고 미뤘다. 미완성인 채로 부탁하면 남의 일까지 늘리는 것 같았다.“거의 됐어요.” 수정이 노트북 시계를 봤다.“그 말 듣고 3시간 지났어.” 채린은 반박하려다 파일 목록을 돌려 보여 줬다. 수정은 의자를 끌어 앉지 않고 선 채로 첫 장을 읽었다.“이 안이면 지우 씨가 내일 뭘 말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어?”“걔는 아직 거래처 앞에 세우기 어려워요.”“네가 쓴 초안 때문에 겁먹었는데, 그걸 네가
채린은 메일을 닫지 않은 채 가방을 들었다.“밥은 먹고 올게요.” 이헌이 대본에서 고개를 드는 표정을 보니 지금이라도 식사를 취소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고, 채린은 감사 대상 명단이 떠 있는 모니터를 끄고 문을 열었다. 굶으면 억울한 말부터 더 쉽게 나왔다.식당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표 비서가 로비에서 두 사람을 불렀고, 장태경이 잠깐 보자고 한다는 말에 채린은 이헌에게 먼저 내려가 달라고 했다.“잠깐이 몇 분인데요?”“이번 건 저도 모릅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채린은 빈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식사 약속 하나를 지키는 데도 회사 전체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대표실 탁자에는 라운 광고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감사 예고 메일은 출력되지 않았다.“분쟁부터 끝내자. 그러면 민석 이사한테도 내가 말할 수 있어.” 태경이 빈 의자를 가리켰다. 채린은 앉기 전에 물었다.“재무팀 접속 경위는 확인됐어요?”“그건 별도로 보겠지.”“저희 관리 실패는 지금 감사하고, 그쪽은 별도로요?” 태경은 펜을 내려놓았다. 부드럽던 목소리에서 온도가 빠졌다.“광고주가 손실 처리해 달라고 들어오면 이쪽에서도 책임을 정해야 해. 네가 합의해 오면 정보 관리 건은 개선 조치로 끝내도록 막아 줄 수 있다고.” 채린은 계약서를 펼쳤고, 추가 촬영 조건은 여전히 빈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전에 얼마
“재무팀에서 쓴 적이 있어요.” 서진의 목소리는 수화기 안에서 작았다.“임원 보고에 넣을 파일을 바로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요. 권한 신청하면 늦는다고, 잠깐만 제 계정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채린은 책상 모서리를 손으로 짚었고, 누가 시켰느냐고 묻는 말이 너무 빨리 튀어나올 것 같았다. 먼저 지금도 접속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물었다.“비밀번호를 바꿔 놓지는 않았어요.”“알겠어요. 기록 지우지 말고, 주고받은 연락은 그대로 두세요. 접속 차단은 담당자에게 요청할게요.”그날 밤 채린은 정보 담당자에게 계정 보호 조치를 맡기고 집으로 갔다. 의자에 더 앉아 있으면 밝혀질 일이 아니었는데, 잠들기 전까지 서진이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다음 날 아침, 서진은 평소보다 일찍 와 있었고, 채린은 문 앞에서 서류를 받지 않고 면담실로 함께 갔다. 수정도 자리했다.“그 파일을 밖으로 보냈어요?”“아니요. 전 보고자료 출력 요청인 줄 알았어요. 열어 볼 수 있는 계정이 제 것밖에 없다고 해서…….”서진은 메시지를 보여 줬다. 재무팀 직원이 임원 보고 시각을 적어 보냈고, 접근 권한 처리를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채린의 초안을 특정해 달라는 문장은 없었다. 보고용 폴더 안에서 어떤 파일을 열었는지는 추가로 확인해야 했다.“전달받은 사람이 그 글을 올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정의 말에 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이름 대
“그거 초안이에요.” 채린은 지우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말했다.회의실 문 앞에 선 지우는 휴대폰을 내리지 않았다. 화면에는 보고서가 떠 있었고, 채린이 직접 쓴 문장, 직접 정한 제목, 아직 남겨 둔 이름이었다.“수정하려고 했어요. 배포할 문서가 아니고요.”“본부장님이 쓰신 건 맞죠?” 채린은 입을 다물었고, 유출됐다는 사실을 설명하면 문장의 잘못까지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지우가 묻는 것은 경로가 아니었다.“맞아요.” 대답하자 그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안도한 모양은 아니었다. 더 확인할 것이 없어졌을 때의 움직임이었다.채린은 옆에 놓인 의자를 당겼다. 지우는 앉지 않았다.“지금 이야기하는 게 괜찮아요? 내일 해도 됩니다.”“지금 듣고 싶어요.” 그가 문을 닫았고, 채린은 노트북 덮개를 내렸다. 정정문도, 이 일에 대한 결론도 아직 쓰지 않은 상태로 마주 앉았다.“제가 승인 없이 답해서 일이 시작된 건 맞습니다. 그건 아니라고 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지우가 말했다.“그런데 이번에 못한 사람으로 정리되면, 다음번에도 현장에 나갈 수 있습니까?”채린은 당연하다고 답하려다 멈췄다. 인사 결정은 아직 하지 않았다. 지우가 원하는 말을 알았다. 그러나 여기서 섣불리 보장했다가는 또 자기가 모든 결과를 떠안게 될 터였다.“잘못한 범위를 확인하고 필요한
다경의 계정은 비공개로 바뀌어 있었다.이미 저장된 사진은 그대로 돌아다녔다. 예전 행사장에서 지우와 찍은 단체 사진, 회사 이름이 보이는 출입증,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정까지 화살표로 이어져 있었다.채린은 화면을 끄고 다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은 받지 않았고, 두 번째에는 숨소리만 들렸다.“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제가 사진 찍은 건 맞다고 말하면 끝나요?” 채린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끝난다고 말하면 쉬웠다. 그 말을 믿고 얼굴을 내놓은 뒤에는 주워 담을 수 없었다.“끝난다고 약속은 못 하겠어요. 지금은 공개 답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원하시면 이름과 가족 사진 내려 달라는 요청부터 도울게요.”다경은 자기 사진보다 옆에 찍힌 친구들의 얼굴을 먼저 가려 달라고 했다. 채린은 링크를 보내 달라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이미 자신이 보고 있었다.“저희가 목록 만들고, 다경 씨는 빠진 것만 확인해 주세요.” 수정은 화면을 두 개 열고 삭제 요청을 나눴다. 지우가 아는 계정들에게 직접 따지러 가겠다고 하자 채린은 댓글부터 달지 말고 게시 주소를 모아 달라고 했다. 지우는 손을 쥐었다가 풀었다.“저랑 같이 찍힌 사진 때문에 더 찾기 쉬웠을 거예요.”“찍힌 사람들한테 연락은 하되, 지우 씨가 전부 해명하겠다고 약속하지는 마요.”그 말은 자신에게도 필요했다. 채린은 다경에게 법률 상담을 연결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지만 당장 공개 대응을 맡기라고
견적서에는 ‘집중 대응’이라는 항목이 세 번 나왔다.채린은 세 번째 줄까지 읽고 금액보다 기간을 먼저 봤다. 사흘. 그 안에 검색 결과와 기사 분위기를 정리하겠다는 제안이었다.“지우는 데 돈이 드는 겁니까, 새로 쓰는 데 드는 겁니까?” 세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둘 다 필요할 수 있죠. 지금은 사실 하나를 바로잡는다고 관심이 없어지지 않으니까요.”그 말은 맞았다. 채린은 영화 사건 뒤 며칠 동안 같은 삭제 요청을 반복했고, 사실이 전달되는 속도와 잘못된 설명이 사라지는 속도는 달랐다.광고주 담당자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배우 이미지도 캠페인에 중요하니까, 회사 쪽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채린은 사진 전달 대화를 그 앞에 놓았다.“그 전에 직원분이 사진을 받은 뒤 어디로 보냈는지 답해 주세요.” 세라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곧 부드럽게 웃었다.“제작사에서 상황 확인을 부탁했어요. 대외 대응 담당자에게 온 자료를 받는 건 이상하지 않죠.”“받은 다음이요.”“내부 확인 중입니다. 최초 게시 계정까지 저희가 관리하는 건 아니고요.” 답을 줄 수 없는 일은 짧았고, 돈을 받으면 해 주겠다는 일은 견적서 몇 장을 채웠다. 채린은 금액이 적힌 쪽을 넘기지 않았다.채린은 더 밀어붙이고 싶었다. 시상식, 사진 배포, 이번 광고. 같은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