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사고 치지 마세요, 퇴근해야 하니까: Kapitel 1 – Kapitel 10

42 Kapitel

1화. 찢어진 드레스

오늘은 6시에 퇴근한다.은채린은 휴대폰에 적어 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일정이라기보다는 소원에 가까웠지만, 이렇게 써 놓으면 누군가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지 않을까. 어제 넥타이 하나로 30분을 붙잡아 둔 배우 이헌이라든지.시상식장 지하 복도에서는 무전기 6대가 한꺼번에 울렸다. 채린이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다른 채널에서 또 이름을 불렀다. 저 목소리들은 그녀의 퇴근 계획에 동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본부장님, 서채원 배우님 의상이요.”하필 의상.멀쩡한 옷 때문에 본부장을 찾을 리는 없었다. 채린은 퇴근까지 남은 시간을 세던 손으로 대기실 문을 밀었다. 예약한 택시부터 취소하지는 말자. 아직 무슨 일인지 보지도 않았으니까.거울 앞에서 서채원이 흰 드레스의 옆선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으로 가려도 허벅지부터 허리까지 벌어진 틈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봉제선이 저절로 뜯어졌다기에는 잘린 끝이 너무 반듯했다.“입다가 그런 건 아니에요.” 옷을 살피는 사이 채원의 목소리부터 굳어 버려, 채린은 곧바로 눈을 맞췄다.“알아요. 벗었을 때부터 이랬어요?”“피팅하고 걸어 뒀을 때는 멀쩡했어요. 현정 언니가 사진도 찍었고.”코디네이터가 내민 휴대폰에는 2시간 전의 온전한 드레스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꿰매기 전에 지금 상태부터 남겨야 했다. 채린은 옷으로 뻗어 오는 신입 매니저의 팔을 가볍게 막으며 일렀다.“지우 씨, 우선 지금 상태부터 찍어요. 옷은 옷걸이째로 빼고.”“바느질하면 안 될까요?” 채원의 눈이 벌어진 옆선에 붙어 있었다. 채린도 잠깐 수선할 자리를 가늠했지만, 저 위치라면 한 걸음 뗄 때마다 다시 벌어질 터였다. 무대 위에서 옷을 움켜쥐게 할 수는 없었다.“이걸로는 안 돼요. 예비 의상은요?”“차에 검정이 있는데, 협찬사가 다른 브랜드 노출은 안 된다고…….”“제가 전화할게요.” 채린은 코디에게 받은 차량 열쇠를 지우에게 건넸다. 번호판과 주차 구역, 의상 커버 색깔까지 설명하는데 신입의 눈이 열쇠에 붙어 있었다. 한꺼번에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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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카메라가 먼저 왔다

문을 닫기도 전에 틈으로 카메라 렌즈가 밀려들었다.“서채원 씨! 제보받고 왔는데 사실입니까?”채린은 렌즈로 뻗으려던 손을 멈췄다. 손바닥으로 밀어내는 몇 초만 잘라 내면 무슨 제목을 붙일지, 오래 상대해 본 만큼 뻔했다. 대신 몸을 비스듬히 틀어 문틈을 막아섰다.“여기는 출입 제한 구역입니다. 행사 담당자 통해서 질문 전달해 주세요.”“대기실에서 약물이 나왔다는데요?” 등 뒤에서 채원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약물이라니. 봉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아직 모르는데, 문밖에서는 벌써 이름을 붙여 놓았다. 파우치를 발견한 지 2분도 지나지 않았건만.앞에 선 남자의 목에서 매체명을 확인하는 사이, 그 뒤로 휴대폰을 든 팔까지 길게 뻗어 왔다. 실시간 방송 화면에 대기실 안이 잡히기 전에 채린은 문을 한 뼘 더 좁혔다.“현장 확인 중입니다. 물러나 주세요.” 겨우 문을 닫아도 질문은 나무판을 뚫을 기세로 따라붙었다. 채린은 문가에 선 채 김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하 대기실 복도 막아 줘요. 기자들이 봉투 얘기를 벌써 알아.”“나도 그거 보러 가는 중이야. 누가 홍보 단체방에 사진을 뿌렸어.”“무슨 사진?”“우리 쪽 대기실에 반입됐다는 물건.”채린의 눈이 화장대 아래로 돌아갔다. 저기에 파우치가 놓인 줄도 몰랐는데 사진부터 돌고 있었다니.그 옆에서 채원은 가운 앞섶만 꼭 쥔 채 서 있었다. 바삐 가져온 검정 드레스는 여전히 커버 속. 채린이 무슨 말이든 해 주기를 기다리던 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뭘 하면 돼요?”“일단 옷 갈아입어요. 문 앞은 제가 있을게요.”“이 상황에 옷을요?”채린은 입을 다물었다. 옷을 갈아입히면 인터뷰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아직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채원은 그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부터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었다.“미안해요. 우선 여기 앉아요.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파우치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우가 물을 건넸다. 종이컵을 쥔 손끝이 떨릴 때마다 가장자리가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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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어제가 필요해

“방송 끄세요.” 채린은 지우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엎어 놓았다. 화면을 가렸는데도 자기 이름을 모자이크한 자막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체포한 사람은 없다는 경찰관의 설명에 행사 담당자가 복도로 나가 정정을 요청했다. 그 말을 전하는 동안에도 방송을 캡처한 사진은 다른 기사로, 또 다른 기사로 옮겨 갔다.김수정에게 온 메시지 역시 그 뒤를 따라왔다.채원 광고주, 오늘 생중계 제외 요청.답장을 쓰려던 채린은 가운 위로 잔뜩 굳은 채원의 어깨를 보고 휴대폰을 내렸다.“수정 팀장님이 정정 대응하고 있어요. 지금 보이는 자막은 사실이 아니에요.”“알아요.” 너무 빠른 대답이라, 오히려 그 뒤에 붙을 말이 두려웠다.“아는데, 사람들이…….” 떨리는 입술을 다문 채원이 가운 끈을 고쳐 묶었다. 이미 단단히 묶인 매듭 위로 또 매듭을 만들려다가, 제 손이 뭘 하는지 그제야 알아챈 듯 멈췄다.“오늘 시상하러 나온 거예요. 상 받는 것도 아니고. 작품 얘기 조금 하고, 후배 축하해 주고.” 웃어 보이려는 얼굴이 채린에게 향했다.“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가운 끈을 놓을 듯하던 손이 도로 움켜쥐어졌다. 채린이 예비 드레스를 가져오라고 하는 동안, 채원은 무대에서 건넬 짧은 인사까지 잃고 있었던 거다.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면 될까. 늘 그랬듯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목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자기 입에서 숱하게 나왔던 위로가 오늘은 유난히 낯설어서.그때 문이 벌어지며 행사 홍보 책임자가 지우를 불렀다.“잠깐만 나와 봐요. 반입할 때 확인을 못 했다는 정도로 말하면 돼. 배우하고 회사는 관계없는 거잖아요.” 채린은 문 쪽으로 밀려가는 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그 친구 진술은 확인하고 합시다.”“다 본부장님 이름으로 들어왔어요. 그럼 본부장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지우가 또 한 걸음 물러서는 게 보였다. 무엇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따지기도 전에, 늘 하던 대답이 입에서 먼저 나갔다.“제가 처리할게요.”잠깐 입을 다물었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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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똑같은 보고

“듣고 있어요?” 이헌이 물었다.컴퓨터 오른쪽 아래의 날짜를 펼쳐 놓고 휴대폰 달력까지 열어 봤지만, 어느 쪽도 다르지 않았다. 두 화면이 가리키는 건 똑같이 하루 전.시상식 전날.숨을 참은 채 손등을 뒤집어 보니 복도 벽에 쓸린 붉은 자국이 사라져 있었다. 문을 버티느라 그토록 아팠던 어깨까지 멀쩡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은채린 본부장.”“……네.”“내일 검정 안 맬 거라고요.” 수화기 너머에서 옷걸이가 부딪히더니 스타일리스트의 작은 한숨이 따라왔다.그 소리까지 같았다.채린의 등줄기를 따라 차가운 것이 내려갔다.“남색 찾고 계시죠. 무늬 없는 거.”“알면서 왜 검정을 보내요?” 이헌은 여전히 넥타이 얘기뿐이었다. 그 목소리를 놓치면 안 될 것처럼 전화기를 움켜쥐었지만, 조금 전 그가 서 있던 복도를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잠깐만요.” 사진첩을 열어도 분명히 찍어 둔 파우치가 보이지 않았다. 반입 요청서를 확대해 찍은 사진까지, 방금 전의 흔적만 통째로 비어 있었다.최신 사진은 점심 도시락이었다.채린은 사진첩을 닫았다가 다시 열고, 삭제한 항목까지 뒤졌지만 돌아오는 건 빈 화면뿐이었다. 아까 본 자막을 검색하려다 손을 멈췄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방송. 아무도 찍지 않은 사진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책상에는 뜯지 않은 시상식 안내 봉투가 있었다. 행사장에서 접어 뒷주머니에 넣었던 바로 그 안내장이 안에 들어 있었다. 채린은 구겨지지 않은 모서리를 만지다가, 봉투를 열지 못하고 내려놨다.최근 통화 목록 어디에도 수정의 다급한 전화는 없었다. 메시지 속 지우도 대기실에서 울던 모습 대신, 내일 쓸 출입증을 받았다며 웃는 얼굴을 보내 놓고 있었다.채린은 그 메시지에 손가락을 대고 한참 멈췄다.“아파요?” 이헌이 물었다.“아니요.”“지금 대답이 좀 늦는데.”“……다시 전화드릴게요.” 채린은 통화를 끊고 곧바로 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채원 씨 어디 있어요?”“지금 의상 피팅 끝났지. 왜?” 아무 일도 없는 목소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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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바꿀 수 있는 동선

“지금 승인하지 마세요.” 수화기에 못을 박듯 말하며 마우스를 잡은 왼손부터 책상 밑으로 내렸다. 마음이 급해 먼저 눌러 버리는 일만은 없어야 했다.출입 담당자는 스타일팀의 추가 인력이라 들었다며 난처해했다. 그렇다면 왜 의상실이 아니라 행사 외주 진행팀에서 요청을 보냈을까.“배송 승인하고 출입증 발급은 따로 확인해 주세요. 제 이름 적혀 있다고 둘 다 된 건 아니에요.”“그럼 내일 현장에서 본부장님을 찾으면…….”“저 말고 실제 소속 담당자에게요. 제가 얼굴 모르는 분 출입증까지 보증할 순 없어요.”의상실에 직접 묻자 추가 배송을 요청한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검정 예비 드레스는 현정이 가져오기로 했고, 문제가 생기면 교체한다는 조건에도 협찬사가 동의한 상태. 별도의 배송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전화를 끊자 이헌이 젖은 서류 밑에 마른 파일을 받쳐 놓았다.“컵 좀 치워요. 또 쏟겠네.”“죄송합니다. 지금 좀 급해서.”“내 넥타이는 안 급하니까 나중에 해요.”“나중에 다시 급해지실 거잖아요.”“그때 다시 불평할게요.” 이헌이 의외로 순순히 일어서는 바람에, 채린은 돌아서는 등을 보다 한 박자 늦게 불렀다.“내일 인터뷰, 조금 길어질 수도 있어요.”“오늘부터 미리 괴롭히는 건가?”“예고제입니다.”문고리를 쥔 이헌이 한 번 웃고 나갔다. 혼자 남은 채린은 돌아오기 전과 지금의 날짜, 시각을 나란히 적어 봤다. 두 날짜 사이의 간격은 정확히 하루.그 아래에 회색 재킷을 쓰려니 남자가 나올 때 앞을 가린 현정이 떠올랐다. 그보다 먼저 문은 누가 열어 줬을까. 출입 요청에는 왜 의상실 이름을 썼을까.생각이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멈추기 어려웠다.다음 날 낮, 배우 차량보다 먼저 행사장에 도착했지만 수정에게 맡긴 명단 확인 결과는 아직이었다. 그사이 지우가 드레스 2벌을 대기실 옷장에 넣고, 열쇠를 꼭 쥔 채 채린에게 돌아왔다.“본부장님. 저 이거 잃어버리면 안 되죠?”“목에 걸어요. 삼키지만 말고.” 농담에 지우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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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증거는 오늘 만든다

“입장 보류해 주세요. 배우 대기실까지 보내지 마시고요.”반입구로 향하며 출입 담당자에게 연락하는 사이에도 무전기에서는 리허설 종료와 차량 이동 요청이 뒤엉켰다. 손목의 시계는 오후 5시 12분.그러나 오승재는 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 명의의 출입증은 쓸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갔으며, 자기 소속을 확인받아 다시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채린은 손목시계를 봤다. 기억 속에서는 아직 드레스가 멀쩡한 시간이었다.“잡으러 가요?” 뒤따라온 이헌이 물었다.“아니요. 확인 안 된 물건부터 못 들어오게 할 거예요.”“나는 뭘 하면 돼요?” 걸음부터 느려졌다. 사라진 하루에서처럼 문을 막아 달라고 할 뻔했지만, 아직 막아야 할 문은 없었다. 부탁도 하기 전에 할 일을 물어오는 이헌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까.“인터뷰요. 순서 조정은 수정 팀장이 제작진과 얘기할 거예요. 배우님은 무대 쪽에 계세요.”“지금 저기서 기다리라는 뜻이지?”“네. 제가 부르면 돌아오지 마시고.” 이헌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들고 있던 질문지를 접었다.“대신 진행자가 엉뚱한 걸 물으면 길게 대답할 겁니다.”“원래도 그러시잖아요.” 한쪽 눈썹이 올라갔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채린의 시선이 줄곧 대기실에 가 있다는 걸 그도 알아챈 듯했다.“끝나고 상황은 알려 줘요. 나도 오늘은 알아야겠으니까.”“끝나면요. 약속합니다.”이헌이 돌아간 뒤 채린은 반입대 뒤에서 확인 과정을 지켜봤다. 관리자가 인원과 물품을 하나씩 대조할수록 줄은 길어졌고, 짜증 섞인 목소리도 높아졌다. 마침내 행사 실장이 그녀를 따로 불러냈다.“본부장님 때문에 의상 팀들이 다 밀려요.”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채린을 쳐다봤다. 승인한 적 없는 물건을 막고 있는데, 시간을 빼앗는 사람은 벌써 그녀가 돼 있었다.“추가 배송 주문이 없는데 제 이름으로 들어왔어요. 그 요청은 취소하고, 실제 주문 있는 물건부터 확인하면 돼요.”“누가 서류를 잘못 썼겠죠.”“그럼 물건도 잘못 왔을 수 있죠.” 채린은 반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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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친절한 투자자

백민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승재는 통화 버튼을 2번 더 눌렀지만 연결음만 길어졌다. 그 소리를 듣던 사람들마저 조용해지는 사이 경찰관이 도착했다. 화면부터 찍고 싶었던 채린은 휴대폰을 꺼내는 대신 자신이 직접 들은 말을 설명했다.“그분이 직접 보여 준 통화 화면에 그 이름이 있었습니다. 메시지는 못 봤어요.” 설명을 들으며 끄덕인 경찰관은 빌린 출입증과 승재 본인의 임시증을 각각 다른 봉투에 넣었다. 수상한 봉투의 내용물은 별도로 확인하겠다고 했다.복도로 나오자 벽 너머로 이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전 인터뷰는 예정대로 시작된 모양이었다.“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신가 봐요?” 진행자의 질문에 그가 잠깐 뜸을 들였다.“준비 안 했다는 걸 들키는 게 싫은 편이죠.” 방송을 들으며 채린은 대기실 쪽으로 걸었다. 오늘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모퉁이에서 손을 든 장태경 대표 옆으로 짙은 회색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정미디어 한정우 대표. 에이펙스 이사회에서 마주칠 때마다 사람 이름을 틀리는 법이 없었다.“은 본부장, 고생 많네요.” 정우가 먼저 인사했다.“배우 들어오기 전에 막았다면서요. 대응 잘했어요.”“아직 확인 중입니다.”“그럼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죠. 은 본부장은 배우를 봐야 하고.” 틀린 말은 아니지. 정우는 태경에게 현장 대행사 대표 연락처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해 대신 투입할 진행 인력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태경의 표정이 풀리는 동안 채린의 무전기에서 호출음이 났다. 정우는 자기 말을 멈추고 먼저 대답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무슨 일이든 제 얘기부터 끝내려는 임원들과는 달라서, 채린도 대기실의 확인 요청에 답한 뒤에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마침 이사님이 계셔서 다행이야. 저 업체는 오늘부로 정리하면 되겠지?” 채린은 목에 걸린 무전기를 손바닥으로 덮었다.“교체 인력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업체 자료부터 받아야 해요. 오늘 인원표랑 반입 요청 주고받은 내용요.”“잘라 버리면 주겠지.”“지금 담당자들이 나가면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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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무대에 설 사람

채원은 흰 드레스 위에 가운을 입고 있었다.모니터 속 배우들은 레드카펫을 걸으며 웃고 있었지만, 채원의 눈은 그쪽을 향하지 않았다. 귀걸이 한쪽만 만지작거리는 손 아래로,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나머지 한쪽이 화장대에 놓여 있었다.“오늘 안 나갈게요.” 채린이 문을 닫기도 전에 말이 나왔다.“나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 단어만 기억하잖아요. 지금 나가서 웃는 건 더 이상하고.”“물건은 대기실 밖에서 확인됐어요. 반입 기록도 남았고요.”“본부장님은 그걸 알아서 괜찮아요?” 채린이 답을 잇지 못하자 채원은 화장대의 귀걸이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반짝이는 돌이 조명 아래에서 짧게 굴렀다.“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금 말을 잘해야 돼요. 옷도 잘 입어야 되고. 표정까지 잘해야 되잖아요.”채린은 접지 못한 일정표를 내려다봤다. 물건을 막았고 드레스도 지켰으니, 이제 무대에만 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원은 잘못한 것도 없이 표정 하나까지 검열당할 일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일정표 끝이 손안에서 접혔다.“미안해요. 제가 오늘 출연하는 것부터 생각했어요.” 현정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자 채린은 빈 의자로 내려앉아 채원과 눈높이를 맞췄다.“사전 인터뷰는 빼도 돼요. 본행사 시상은 다른 분을 구할 수 있고요. 나가겠다면 레드카펫 문답은 줄일 수 있어요. 다만 갑자기 질문하는 사람까지 없애 드릴 수는 없어요.”“안 나가면 도망갔다고 쓰겠죠.”“그럴 수도 있어요.” 차라리 아니라고 해 주지.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을 보니, 입술을 꾹 누른 채원을 마주 보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대신 안 나갔다고 제가 잘못했다고 하진 않을게요. 행사 쪽에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그럼 본부장님이 또 욕먹고요?”“오늘 하루에 이미 충분히 먹었어요. 한 접시 더 온다고 차이는 없어요.” 여전히 웃지 않는 얼굴 앞에서 다음 농담은 꺼낼 수가 없었다. 채원은 채린이 접어 둔 일정표 끝만 만지작거렸다.“제가 안 나가도 정말 괜찮아요?”“괜찮아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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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한 문장의 반박

레드카펫 끝에 선 채원이 마이크를 받았다.사진 찍는 소리가 커지는 동안 카메라 뒤의 채린은 입장문을 한 번 접었다. 채원이 직접 고쳐 놓은 문장은 종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저 짧은 말로 여기까지 나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오늘 행사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짧은 안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질문은 받지 않기로 약속한 자리였다.“문제가 된 물품은 제 대기실에 들어온 적이 없고, 제 소유도 아닙니다. 반입 경위는 관계자들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약속한 시상을 하겠습니다.” 채원은 마이크를 내려놓으려다 조금 더 붙잡았다.준비한 말은 끝났는데. 채린은 접어 둔 종이를 조금 더 세게 쥐었다.“저도 여기 서기까지 겁이 났어요. 그래도 오늘 후보인 분들께 축하드리고 싶었습니다.” 박수가 조금 늦게 시작됐다. 마지막 줄에서 채원의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그녀는 웃음을 고쳐 짓지 않고 진행자에게 마이크를 돌려줬다.객석 쪽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경찰 조사받으시는 건 맞습니까?” 채원의 발이 잠깐 멎었다. 채린은 준비한 설명을 다시 들이밀지 않고 본행사 입구를 가리켰다. 현정이 드레스 자락을 짚고 지우가 문을 열자, 채원은 질문이 날아오는 쪽에 등을 돌려 무대로 향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채원은 크게 숨을 내뱉었다.“마지막 말 빼는 게 나았어요?”“아니요.”“본부장님 표정이 무서워서.”“제가 다음 말을 몰라서 그랬어요.” 채원은 그녀를 쳐다보다 작게 웃었다.“저도 몰랐어요. 입이 먼저 나갔어요.”그제야 채린도 작게 웃었다. 준비한 문장 밖으로 나가는 사람을, 오늘은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보내야 했다.본행사가 시작된 뒤, 뒤쪽 복도에서 경찰관에게 출입증 발급 내역과 반입 요청 메일, 의상실의 배송 확인 답변을 전달했다. 채린은 자신의 권한으로 승인할 수 있는 요청이었지만 실제로 승인한 적은 없다는 점도 짚었다.“대기실에서 발견됐다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저희가 확보한 내용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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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모두에게 보이지 않게

“그럼 이름을 내야지.” 태경이 휴대폰을 탁자에 놓는 소리 위로 박수가 겹쳤다. 무대에서는 특별상 수상 소감이 한창인데, 얇은 임시 회의실 벽은 그 소리를 조금도 막아 주지 못했다.“우리 배우가 당했는데 왜 우리가 조심해? 백민우, JS, 출입증 빌려준 애까지 다 내.” 채린은 수정이 만든 자료에서 출입증 사진을 지웠다. 이름뿐 아니라 생년월일과 바코드까지 보이는 사진이었다.“출입증 빌려준 사람은 오늘 안 왔어요. 어디까지 알고 빌려줬는지 저희도 몰라요.”“그러니까 빨리 밝혀야지.”“밝히는 건 담당자가 할 겁니다. 대표님이 이 사진 올리시면 전화는 그 직원 집으로 가요.” 태경이 의자를 뒤로 밀었다.“좋게만 말하면 기사 안 나간다. 너도 알잖아.”모를 리가. 상대 회사 이름이 찍힌 자료라면 지금 쓰던 수상 기사도 멈추고 달려들 사람들인데. 채린도 백민우에게 같은 수모를 돌려주고 싶었고, 그가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다.지웠던 사진을 다시 띄우자 보조 스태프의 어색한 미소가 화면을 채웠다. 채린은 그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 창을 닫았다.“우선 장소부터 고칠게요. 대기실 밖에서 막은 일이고, 채원 씨 물건도 아니에요. 그건 지금 설명할 수 있어요.”“그걸 누가 읽어.”“읽게 전화하겠습니다. 제가.” 수정이 바로 끼어들었다.“제가 나눠서 합니다. 은 본부장은 행사 쪽 확인 받아야 해요.” 채린이 돌아봤을 때 수정은 벌써 휴대폰을 귀에 댄 뒤였다.태경은 한동안 문을 바라보다가 앉았다. 단체방에 올리려던 글을 지우는 손끝이 거칠었다.“최소한 우리도 잘못한 게 없다는 건 써.”“명의 확인 없이 접수된 요청까지 잘한 일은 아니에요. 저희도 그 부분은 확인 중이라고 하겠습니다.”입안에 쓴맛이 남았다. 전날 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이 떠올라도, 사라진 하루의 잘못까지 오늘의 발표문에 적을 수는 없었다. 대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일, 자기 이름 때문에 요청이 통과했던 부분을 남겼다.자료를 전달하러 나간 복도에서 시상을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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