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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무대에 설 사람

Penulis: 6jay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1 22:35:31

채원은 흰 드레스 위에 가운을 입고 있었다.

모니터 속 배우들은 레드카펫을 걸으며 웃고 있었지만, 채원의 눈은 그쪽을 향하지 않았다. 귀걸이 한쪽만 만지작거리는 손 아래로,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나머지 한쪽이 화장대에 놓여 있었다.

“오늘 안 나갈게요.” 채린이 문을 닫기도 전에 말이 나왔다.

“나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 단어만 기억하잖아요. 지금 나가서 웃는 건 더 이상하고.”

“물건은 대기실 밖에서 확인됐어요. 반입 기록도 남았고요.”

“본부장님은 그걸 알아서 괜찮아요?” 채린이 답을 잇지 못하자 채원은 화장대의 귀걸이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반짝이는 돌이 조명 아래에서 짧게 굴렀다.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금 말을 잘해야 돼요. 옷도 잘 입어야 되고. 표정까지 잘해야 되잖아요.”

채린은 접지 못한 일정표를 내려다봤다. 물건을 막았고 드레스도 지켰으니, 이제 무대에만 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원은 잘못한 것도 없이 표정 하나까지 검열당할 일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일정표 끝이 손안에서 접혔다.

“미안해요. 제가 오늘 출연하는 것부터 생각했어요.” 현정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자 채린은 빈 의자로 내려앉아 채원과 눈높이를 맞췄다.

“사전 인터뷰는 빼도 돼요. 본행사 시상은 다른 분을 구할 수 있고요. 나가겠다면 레드카펫 문답은 줄일 수 있어요. 다만 갑자기 질문하는 사람까지 없애 드릴 수는 없어요.”

“안 나가면 도망갔다고 쓰겠죠.”

“그럴 수도 있어요.” 차라리 아니라고 해 주지.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을 보니, 입술을 꾹 누른 채원을 마주 보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대신 안 나갔다고 제가 잘못했다고 하진 않을게요. 행사 쪽에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본부장님이 또 욕먹고요?”

“오늘 하루에 이미 충분히 먹었어요. 한 접시 더 온다고 차이는 없어요.” 여전히 웃지 않는 얼굴 앞에서 다음 농담은 꺼낼 수가 없었다. 채원은 채린이 접어 둔 일정표 끝만 만지작거렸다.

“제가 안 나가도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지도록 제가 전화할게요. 다만 오늘 속상한 것까지 없애진 못해요.” 일정표에서 손을 뗀 채원이 모니터가 보이도록 의자를 조금 비켜 줬다.

익숙한 여배우가 화면 속에서 손을 흔들자 채원은 가운을 여미던 손으로 리모컨을 찾았다. 대신 꺼 주려는 채린에게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소리만 줄일게요. 남들 나오는 것까지 보기 싫은 건 아니에요.” 소리만 낮아졌을 뿐, 화면 속 행사는 계속 이어졌다.

문밖에서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헌에게 채원과 함께 서서 입장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중이었다.

“이헌 씨가 한마디만 하면 분위기가 바뀝니다.”

“무슨 말을요?”

“같은 소속사 동료로 믿는다는…….”

“그 얘기는 채원 씨한테 먼저 물어요.”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헌은 거기서 더 말하지 않았고, 진행자의 발소리만 멀어졌다.

닫힌 문을 잠깐 바라보던 채원은 화장대에 남은 귀걸이를 제 쪽으로 조금 더 당겼다.

“저 사람도 곤란하겠네요. 자기 인터뷰 다 망쳐 놓고.”

“7분 더 해서 저한테 빚 달았어요. 잘 적어 두는 분이라 손해는 안 봅니다.”

이번에는 입가에 작은 움직임이 생겼다. 채원은 화장대 아래 두었던 시상용 봉투를 무릎 위로 올려놓았다. 아직 봉하지 않은 연습용 봉투였다.

“작년에 신인상 받던 애, 오늘 후보예요. 저랑 촬영할 때 밤마다 대본 들고 찾아왔는데.”

“알아요.”

“아까 대기실 들렀다가 못 들어오고 갔대요. 저 만나면 자기도 찍힐까 봐 그랬을 수도 있죠.” 채원은 봉투 모서리를 만지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싫어요. 걔는 그냥 바빴을 수 있는데.” 벽시계가 5시 50분을 가리키자 채린은 무심코 오른팔을 움켜잡았다. 무전기에서는 다음 차량의 도착을 알리고, 문밖에서는 누군가 웃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채원도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제가 나가면 어디까지 말해야 해요?” 채린은 잡았던 팔을 놓았다.

“채원 씨가 말할 수 있는 데까지요. 물건 종류나 누가 시켰는지는 아직 저도 몰라요.” 채원이 메모장을 열기에 받아 적어 주려던 손을 거뒀다. 몇 글자를 쓰고 지우는 동안, 채린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제 대기실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건 말할 수 있죠?”

“네.”

“그 말만 할게요. 해명하느라 시상까지 빼앗기긴 싫어요.” 귀걸이 잠금장치가 자꾸 미끄러졌다. 채원은 손을 내리지 않고 다시 맞물려 눌렀다. 작게 잠기는 소리가 나자,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자기 얼굴을 똑바로 봤다.

“나갈게요. 대신 입장문 읽는 기계처럼 써 주지 마세요.” 채린은 접었던 일정표를 폈다.

“제가 쓰면 첫 줄이 또 ‘당사는’일걸요. 채원 씨가 직접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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