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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불가지
강도현은 말조차 더듬었다.

자신의 방관 때문에 내가 칼에 찔렸고, 그로 인해 아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 했으나, 과다출혈 때문인지 눈앞이 다시 캄캄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모든 치료가 끝난 뒤였다.

배에는 새 붕대가 감겨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을 본 강도현이 뻔뻔하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의 충격은 이미 정리된 듯했고, 내가 기대했던 죄책감 같은 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듯 나를 흘겨볼 뿐이었다.

“엄마한테 얘기 다 들었어. 오늘 일은 내 실수가 맞아. 진수빈이 진짜 우리 아파트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어. 앞으로 당분간은 너한테 잘해줄 테니까, 그걸로 퉁치자고.”

“그리고 애 일로 너무 힘들어하지 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랑, 2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을 어떻게 비교해.”

“오늘 네 덕분에 지아 구하러 갈 수 있었으니까 지아 대신 내가 고맙다고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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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 현장에 나를 버려둔 당신에게   제8화

    강도현은 차갑게 날 노려봤다. “난 지아를 믿어! 지아는 절대로 나한테 거짓말 안 해. 네가 인터넷에 이상한 소문 퍼뜨린 것도, 내가 하도 추궁하니까 그제서야 울면서 겨우 털어놓은 거야.”나는 강도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더 이상 그 역겨운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강도현, 긴말 필요 없고 우리 당장 이혼해.”“이젠 네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니까. 내가 진짜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었지, 저딴 걸 남편이라고.”진작 이혼 서류를 건넸어야 했지만, 며칠 동안 강도현이 구치소에 있어서 연락조차 안 됐다.강도현이 뭔가 말하려던 순간, 그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은 강도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뭐라고요? 실명 제보가 들어왔다고요? 누구죠?”“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오늘 강도현이 구치소에서 풀려나는 날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그래서 일부러 이 시간에 맞춰 그가 소속된 소방 구조대 본청에 공금 횡령 및 채용 비리 혐의로 신고를 접수해 두었던 것이다.급히 자리를 뜨려는 강도현을 차갑게 불러세웠다.“강도현, 내가 말했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매섭게 노려본 강도현은 황급히 차에 올라타 떠났다.그날 오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정은서 씨 맞으시죠? 강도현이라는 남성분이 본인이 남편이라고 주장하면서 단지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계십니다. 두 분의 혼인신고 서류도 보여주셨고요.”소란이라니, 기가 막혔다.“지금 내려가겠습니다.”신발을 챙겨 신고 내려가니, 강도현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안색은 초췌했다.강도현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증오에 찬 눈빛으로 독설을 내뱉었다.“이제 좀 그만해! 고작 애 하나 유산된 거 가지고 구조대에 실명 신고까지 해?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 치고 앞으로 너한테 좀 더 신경 써줄게.”“지금 당장 카메라 켜고 네가 정신질환이 있어서 홧김에 허위 고발한 거라고 영상 찍어서 올려

  • 사고 현장에 나를 버려둔 당신에게   제7화

    윤지아는 털썩 무릎을 꿇더니, 붉어진 눈시울로 처량하게 눈물을 쏟아냈다.“은서 씨, 도대체 왜 절 이렇게 몰아세우는 거예요? 전 이미 은서 씨 피해서 멀리 도망쳤잖아요. 처음에 도현 오빠랑 거리를 두라고 해서 계약금까지 날려가며 집도 옮겼어요.”“도현 오빠가 저한테 잘해주는 게 싫다길래 일부러 거리도 뒀고 심지어 오빠를 양보까지 해줬잖아요.” “그런데 왜 인터넷에 저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신 거예요? 정말 저를 죽일 생각인가요?”윤지아가 워낙 요란하게 소란을 피운 탓에 복도에는 순식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앞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아이고, 불쌍해라. 저렇게 무릎까지 꿇고 비는데 도대체 뭘 더 원하는 거야?”“표정 보니까 진짜 우울증 심한 사람 같은데? 저 사람 말이 진짜가 보네.”“저 여자 참 지독하기도 하지. 오죽 독하게 굴었으면 저 꼴로 병원에 누워 있겠어. 벌받은 거지.”윤지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다시 고개를 들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녀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윤지아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짝-있는 힘껏 윤지아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윤지아는 몸을 휘청거리며 옆으로 쓰러졌다.“불륜녀가 본처 피해 다니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왜? 내 앞에서 당당하게 활보라도 하고 싶었어?”잠시 뜸을 들인 나는 수군거리는 구경꾼들을 향해 손뼉을 쳤다.“자, 자, 다들 이리 와서 좀 구경하세요! 제가 이 여자를 정식으로 소개해 드릴게요.”“이 인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름은 윤지아, 나이는 스물일곱 살, 아주 뼛속까지 불륜이 체질인 년이죠.”“여기 윤지아 씨는 8년 전에 외국 나가서 남의 남편 꼬셔 먹다가 본처한테 개처럼 처맞고 쫓겨나듯 귀국했어요.” “국내에 기어 들어와서도 대기업 임원 꼬시다가 대차게 까이더니, 이젠 내 남편한테 들러붙어 기생하는 중이랍니다.”“다들 구경만 하지 마시고 얼른 휴대폰 꺼내서 사진들

  • 사고 현장에 나를 버려둔 당신에게   제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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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 현장에 나를 버려둔 당신에게   제5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몇 번 밥을 먹어보니 서로 크게 나쁘지 않았다.집안 형편도 비슷했고 조건도 무난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왔다.결혼 첫해, 강도현은 내게 늘 무심했다.그때 친구가 농담처럼 물은 적도 있었다. “네 남편 혹시 게이 아니야?”“아니면 마음에 둔 여자 따로 있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두고 어떻게 아무 반응이 없을 수 있지?”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강도현이 매달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주고 딱히 속 썩이는 일도 없으니,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하지만 반년쯤 지나자, 내가 먼저 강도현을 좋아하게 됐다.그래서 조금씩 노력하기 시작했다.차가운 결혼 생활을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다.구조대 일 특성상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강도현을 위해 매일 레시피를 바꿔가며 위에 좋은 보약이며 영양탕을 끓여 댔다.집안일은 하기 싫다는 강도현의 말에 모든 가사를 도맡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자야 한다며 각방을 쓰자고 했을 때도 서운한 마음을 참으며 기꺼이 자유를 내주었다.심지어 강도현이 부부 공동 자금을 멋대로 주식에 쏟아부었다가 억대 손실을 내는 바람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도 비난 한마디 하지 않았다.그저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툴러 내 진심을 알아채지 못하는 줄만 알았다.지쳐서 포기하려던 찰나, 강도현이 먼저 말했다.“이제 각방 안 써도 될 것 같아.”그 말 하나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진심이 드디어 닿은 줄 알았다.하지만 그 행복은 딱 한 달 갔다.외국으로 떠났던 윤지아가 돌아오면서 모든 게 변했다.윤지아가 나타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강도현은 원래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걸.단지 그 다정함이 내 몫이 아니었을 뿐이다.게다가 윤지아는 보통의 ‘여우’가 아니었다.그날 밤, 강도현의 지인 모임에서 윤지아를 처음 만났다. 윤지아는 술에 취한 척하며 나한테 강도현의 과거사를 보란 듯이 쏟아냈다.“은서 씨는 좋겠다. 도

  • 사고 현장에 나를 버려둔 당신에게   제4화

    강도현은 말조차 더듬었다.자신의 방관 때문에 내가 칼에 찔렸고, 그로 인해 아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나는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 했으나, 과다출혈 때문인지 눈앞이 다시 캄캄해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모든 치료가 끝난 뒤였다.배에는 새 붕대가 감겨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내가 눈을 뜬 것을 본 강도현이 뻔뻔하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조금 전의 충격은 이미 정리된 듯했고, 내가 기대했던 죄책감 같은 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그저 귀찮다는 듯 나를 흘겨볼 뿐이었다.“엄마한테 얘기 다 들었어. 오늘 일은 내 실수가 맞아. 진수빈이 진짜 우리 아파트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어. 앞으로 당분간은 너한테 잘해줄 테니까, 그걸로 퉁치자고.”“그리고 애 일로 너무 힘들어하지 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랑, 2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을 어떻게 비교해.”“오늘 네 덕분에 지아 구하러 갈 수 있었으니까 지아 대신 내가 고맙다고 할게.”강도현은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쓴 사람처럼 날 내려다봤다. 내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강도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내가 오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기까지 잃은 일을, 고작 그따위 말 몇 마디로 때우시겠다?”이 인간의 눈에 내가 얼마나 하찮고 천해 보였으면 이럴까!진수빈에게 칼로 수십 차례 난도질당한 고통을 ‘앞으로 잘해주겠다’는 빈말 한마디로 넘어가려 들다니. 심지어 윤지아가 고마워할 거라며, 내가 감동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듯 말했다.강도현은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그럼 뭐 어쩌자는 건데?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또 난리 칠 생각이야?”나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신고 문자를 작성했다.전송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경찰 두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이미 진수빈을 취조하고 곧바로 강도현을 잡으러 온 모양이었다.경찰을 본 순간, 강도현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아무 일도 없다는 듯

  • 사고 현장에 나를 버려둔 당신에게   제3화

    [진짜 정은서 때문에 지긋지긋하다니까. 이번엔 질투난다고 엑스트라까지 섭외해서 연극을 찍었어. 다음엔 진짜 사람을 죽이거나 불을 지를지도 몰라.]잠시 뜸을 들인 강도현은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이 정도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저 이혼하면 다들 그 여자 피하고 다니세요.][그리고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주세요. 저는 석 달 안에 꼭 이혼하고 제가 사랑하는 지아랑 결혼할 겁니다.][결혼하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제대로 청첩장 돌릴게요.]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좋아요! 응원합니다!][마누라 하나 잘못 들여서 남자가 무슨 고생이에요!][이혼 찬성입니다!]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지아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내가 결혼할 때 받았던 것보다 훨씬 큰 다이아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입꼬리에 번진 미소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죽겠다며 울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몸 상태를 물어보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려 했다. 병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복도에서 이미숙이 다급하게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사진도 찍어 보냈잖니. 은서 아이는 결국 못 살렸어. 의사도 사산된 아기는 바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으니까 지금 당장 묘지를 알아보고 병원으로 와.”“지금 은서 상태가 정말 안 좋으니까 네가 옆에 있어줘야 해.”이미숙은 나이가 있어서인지 늘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전화기 너머 강도현 목소리는 짜증으로 가득했다.[왜 이젠 엄마까지 걔 연기에 장단 맞춰줘요? 하다하다 대학 병원까지 가서 쇼를 하는 거예요? 걔는 안 쪽팔린대요?][정은서도 참 대단하네. 어디서 사산된 아기까지 구했대요?][아주 병상에 드러누워 상주 노릇을 하나 본데, 진짜 죽고 싶으면 그냥 죽으라 그래요. 처가댁에 위자료 넉넉히 챙겨줄 테니까요.]이미숙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강도현! 넌 엄마 말도 못 믿겠다는 거야?”강도현은 혀를 차며 대꾸했다.[엄마,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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