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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6화

작가: 송진
성유리는 잠시 추은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비로소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넌 원래부터 날 싫어했구나.”

그 말에 추은정의 손이 살짝 멈추었다.

그러더니 곧 비웃듯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맞아. 그걸 이제야 알았어?”

“그럼 그동안...”

“다 고의적이었어.”

추은정은 쏘아붙이듯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너한테 일부러 다가간 거고 지환 선배한테도 일부러 접근한 거야. 너한테서 그 인간을 빼앗으려고.”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추은정이 유독 다정하게 다가왔던 것도 자신이 백지환과 사귀기 시작한 그쯤부터였다.

성유리는 그동안 정말 진심으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 줄로만 믿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성유리는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사람을 보는 눈이 정말 형편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남자 친구 고를 때도, 친구 고를 때도.

“그럼 지금은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성유리가 담담히 물었다.

“이제 네가 원하는 대로 두 사람... 사귀고 있잖아?”

그 말에 추은정의 표정이 확 굳더니 성유리를 쏘아붙였다.

“성유리, 너 도대체 왜 모르는 척하는 거야? 설마 너... 지환 선배가 올린 영상 못 본 거야? 내가 먼저 유혹해서 바람피우게 만들었다고 떠벌리고 다닌 것도 몰라?”

그 말에 성유리는 눈을 깜빡거렸고 도통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서서히 입술을 꾹 다물었다.

추은정은 이를 악문 채 다시 따졌다.

“이제 좋아? 학교 애들이 전부 나만 욕하고 있어. 이제 속이 시원하냐고!”

성유리는 악을 쓰는 추은정을 보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원망할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네.”

“뭐라고?”

“너랑 백지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관심도 없어. 잘 알지도 못하고. 그게 다 걔가 한 말이라며? 그럼 그 인간한테 따져.”

추은정은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성유리는 원래 이번 주말을 기숙사에서 보낼 생각이었지만 방 안 가득 어질러진 책상 위를 바라보니 더는 그럴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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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훈이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백지환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서훈은 그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그리고 그 순간, 그의 표정에서는 미소가 싹 사라졌다.백지환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빨랐다.사과 영상은 불과 30분 만에 올라왔다.영상 속에서 그는 그동안 술자리에서 떠들어댔던 이야기는 전부 허튼소리였다고 말했다.그리고 성유리와 자신 사이 문제 역시 사실 본인이 먼저 추은정과 잠자리를 가진 게 발단이었고 그 뒤에야 성유리와 헤어지게 됐다고 밝혔다.성유리 또한 자신과 완전히 헤어진 후에야 박한빈과 만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백지환은 영상 하나로 끝내지 않았고 곧이어 약속했던 손 편지까지 써서 공개했다.그가 해명 영상을 올리자 학교 안에서 성유리를 둘러싼 여론은 단숨에 뒤집혔다.그리고 추은정 역시 백지환과 함께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성유리는 막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거의 찢어질 듯한 누군가의 비명 같은 소리를 들었다.“성유리, 죽어버려! 죽어버려!”그 소름 끼치는 분노가 가득 실린 목소리에 성유리의 발걸음이 문 앞에서 멈췄다.이때 방 안엔 현은영이 없었다.추은정은 방 안에 자기 혼자뿐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목소리를 조금도 낮추지 않고 있었다.그러다 성유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마주쳤다.순간 공기가 딱 멎은 듯 고요해졌다.추은정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방바닥은 완전 엉망진창이었다.그건 전부 성유리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물건들이었다.성유리는 놀라 동공이 조금 흔들렸지만 이내 천천히 추은정을 바라봤다.“나... 언제 왔어?”추은정은 놀라울 만큼 빨리 표정을 바꿨다.“아... 아까 내가 네 물건 실수로 건드렸어. 미안해, 성유리. 그런 뜻 아니었어.”성유리는 말없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추은정도 자기 연기가 너무 서툴러 도저히 설득력이 없다는 걸 아는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성유리, 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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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환은 멍하니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박한빈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메아리쳤다.살짝 올라간 남자의 입꼬리는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눈동자엔 웃음기라곤 조금도 없었다.거기엔 오직 끝없는 냉기와 싸늘함뿐이었다.그 순간, 백지환은 자신이 분노하거나 원망할 틈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다.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나는 이 사람 눈에선 개미만도 못한 존재구나.’박한빈이 진짜로 자신을 죽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그리고 이번 일처 박한빈이 그저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마디 한 것만으로도 그동안 형제처럼 지내던 동료들은 곧바로 자신을 팀에서 내쫓기로 결정했다.백지환은 박한빈이 방금 던진 그 말이 단순히 팀에서 잘린다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이제 그는 어디를 가든, 어떤 회사든,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게 바로 백지환을 가장 공포스럽게 만드는 부분이었다.한참이나 입을 열지 못하던 백지환이 겨우 목소리를 찾아냈고 쉰 목소리로 입을 뗐다.“대표님, 제가... 제가 어떤 부분에서 대표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모른다고요?”박한빈이 피식 웃었다.“백지환 씨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 진짜 모르십니까?”그 말이 떨어지자 백지환의 얼굴에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한 기색이 스쳤다.그래서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저... 저는 그냥 제 주변 사람들이랑 농담처럼 헛소리 좀 한 것뿐이에요. 그게 만약 대표님께 누가 됐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박한빈은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책상 위의 전화기를 눌렀다.“내보내세요.”백지환은 박한빈이 이렇게 단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그리고 그의 비서가 들어오는 걸 보자 더 다급해졌다.“저... 저 정말 사과할 수 있어요! 진심입니다. 대표님, 제가 가서 다 정리하겠습니다! 유리한테도 사과할게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53화

    박한빈은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성유리의 턱을 움켜쥐었다.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인간한테 그렇게까지 마음 약해져서 뭐 하려고요? 그 사람이 성유리 씨 명예를 더럽히려고 가장 극단적인 수를 쓸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해 본 적 없으십니까?”“백지환 씨는 성유리 씨한테 추억 따위 눈곱만큼도 안 남겨놨더라고요. 근데 당신은 왜 아직도 상대의 감정까지 챙기고 있는 겁니까?”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며칠 동안 학교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백지환이 저질렀던 짓들이 머릿속을 스치듯 떠올랐는지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박한빈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그러던 중, 성유리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미간도 서서히 좁혀졌다.박한빈은 다시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줬다.“울긴 왜 울어요? 막상 일이 터지면 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십니까? 성유리 씨가 스스로 해결하기 싫으면 적어도 저한텐 말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그의 손길은 성가신 기색이 역력했고 눈물을 닦아내는 동작에도 거칠고 힘이 실려 있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의 손길에 아파서 숨을 들이쉬었고 버티다 못해 결국 그의 손을 쳐내며 뿌리쳤다.하지만 박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오히려 반대로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성유리는 처음엔 버둥거리며 몸을 빼내려 했지만 술기운이 올라온 탓인지 손발에 힘이 풀려 버렸다.게다가 박한빈의 체온과 익숙한 향이 위험하다고 느껴지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그녀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결국 성유리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고 천천히 몸의 힘을 빼며 그에게 기대었다.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살짝 웃더니 손끝으로 성유리의 눈썹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됐어요. 성유리 씨가 마음 약해서 봐주겠다면 그건 그대로 두죠. 대신... 그 빚은 저랑 정산해야 할 겁니다.”성유리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말이 들리자 다시 눈을 떴다.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어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52화

    결국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새 술잔을 가져다주었다.얼음을 몇조각 넣은 뒤, 탄산수도 조금 부어줬다.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성유리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혀끝이 살짝 저릿하고 따끔해서 입안을 비비듯 문지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그러나 박한빈이 여전히 맞은편에서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터라 성유리는 간신히 참고 말했다.“맛없어요.”그 말을 툭 던지자마자 성유리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가려 했다.그러자 박한빈이 다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한 모금만 마시고 끝낼 겁니까?”“맛없다니까요!”성유리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박한빈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이 술이 한 병이 얼마에 낙찰됐는지 알아요?”성유리는 몰랐다.박한빈은 곧바로 구체적인 숫자를 말해줬다.성유리는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했기에 또래 중에서도 세상 물정을 좀 아는 편이었다.그런데도 박한빈이 말한 금액을 듣는 순간, 두 눈이 절로 커졌다.그리고 그를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거짓말.”“거짓말 아닙니다.”“그럼 바보네요.”술 한 병 사겠다고 그런 돈을 쓰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면 뭐냐는 듯, 성유리의 말투는 너무나 직설적이고 거칠었다.그런데도 박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다시 탄산수를 조금 부어주며 말했다.“한 번만 더 마셔보지 않을래요?”성유리는 애초에 거절하려고 했다.그런데 박한빈이 아까 말한 금액이 너무 충격적이어서인지 괜히 호기심이 동해버렸다.결국 그녀는 잔을 다시 들었다.이번에는 천천히 한 모금을 넘겼다.혀끝을 찌르는 그 알싸함은 여전했지만 그 뒤로 신경이 한 번에 탁 당겨지는 듯한 짜릿한 맛이 따라왔다.그래서 성유리는 다시 한 모금을 더 마셨다.그리고 그제야 술 안에서 뭔가 특별한 맛을 느꼈다.어딘가 과일 향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깊은 바닷속 맛 같기도 한 은은한 단맛이 있었다.그 맛은 은근히 사람을 빠져들게 했다.그렇게 한 잔, 또 한 잔.성유리는 자꾸만 술잔을 비웠고 박한빈은 말리지 않았다.그저 곁에서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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