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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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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25화
그의 손길은 무척 부드러웠기에 성유리는 몸을 미세하게 떨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런 접촉을 원치 않았던 성유리는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박한빈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말없이 그녀의 뒷머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고집스럽게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주었다.“당장 이거 놔요!”성유리는 다시 몸부림치기 시작했지만 애초에 두 사람 사이의 힘 차이는 너무나 컸다.박한빈이 한쪽 팔로 성유리를 단단히 감싸자 뼈가 아플 정도로 옥죄어졌다.그럴수록 성유리는 더욱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놔! 박한빈, 이 나쁜 자식아!”이성을 잃고 마구 고함을 지르는 성유리의 모습에 박한빈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그전까지 꼬박꼬박 ‘박 대표님’이라고 부르며 조심스러웠던 그녀가 지금은 이름을 입에 담으며 욕까지 내뱉고 있었으니까.이런 변화가 박한빈에게 묘한 흥미를 일으켰다.그는 깊은 눈동자로 성유리를 응시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눈시울이 붉은 채였다.울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분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터진 입술은 약간 터져 피가 맺힌 상태였다.그래서일까, 붉은빛이 선명히 번지는 입술이 박한빈의 시선을 끌었고 순간 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그러나 성유리는 박한빈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그저 몸을 빼내려고 애쓰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묘한 느낌이 닿았다.중심부를 짓누르는 단단한 무언가.이상한 느낌에 성유리는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박한빈을 쳐다보았다.박한빈은 담담히 성유리를 응시할 뿐, 부끄러움이나 망설임 따윈 전혀 없었고 오히려 한 치의 거리낌 없이 정직한 시선을 보내올 뿐이었다.그 직설적이고 숨김없는 눈빛에 성유리는 더욱 겁이 났고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놔... 이거 놔달라고요!”하지만 박한빈은 대꾸 대신 오히려 손을 내려 성유리의 허리를 감쌌다.곧 건조하고 따스한 손바닥과 서늘한 손끝의 온도 차가 성유리의 몸을 관통하듯 전해졌다.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고 급히 박한빈의 손을 밀어내려 애썼다.“놔요! 제발 저 만지지 마세요!”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24화
회의실 안, 박한빈의 뺨에 남은 손자국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성유리가 별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박한빈의 하얀 피부 위에서 붉은 자국은 더욱 선명히 도드라졌다.당연히 누구나 한눈에 여자의 손자국임을 알 수 있었지만 감히 박한빈에게 묻거나 농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비서실 안 사람들은 이미 한바탕 수군거리는 중이었다.게다가 박한빈의 사무실에 아침부터 성유리가 들어가서 한참 나오지 않았던 걸 다들 목격했으니 손자국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직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체 박한빈이 무엇을 했기에 성유리를 그렇게까지 화나게 만들었냐는 거였다.“야, 박 대표님 얼굴만 보지 마. 입술도 좀 부은 거 안 보여?”한 사람이 넌지시 이런 주제를 꺼내자 순간 주위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와, 대박.”한참 정적이 흘렀다가 겨우 터져 나온 한마디였다.“뭘 그렇게 놀라? 박 대표님도 나이가 있는데 그런 일쯤은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누군가가 분위기를 수습하듯 말했지만 박한빈의 평소 이미지 때문에 그런 말에도 다들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늘 냉철하고 일 외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박한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니 아무래도 상상이 잘 안되는 것이다.“그럼 이거... 성유리 씨가 진짜 박 대표님 아내가 되는 거 아니야?”누군가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더 물어보지 않아도 다들 아는 분위기였다.그때 서훈이 무언가를 가져오며 돌아오자 웅성대던 직원들은 단번에 흩어졌다.서훈은 주변을 한 번 훑더니 마지막으로 윤 비서에게 다가가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이거 안에 가져다드리세요.”윤 비서는 박스 위의 로고를 보고 미묘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이건...”“박 대표님이 성유리 씨에게 준비하신 드레스입니다.”“혹시 오늘 채 회장님 연회에 참석하기 위함인가요?”“맞습니다.”서훈의 대답에 주위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아차린 표정이었다.이제 성유리를 박한빈 아내라 불러야 할 날도 머지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23화
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이 자기 앞에서 이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게 너무나 싫었다.그보다도 자기를 멍청한 사람 대하듯 내려다보는 그의 오만한 눈빛이 더욱 참기 어려웠다.지금 이 순간, 성유리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박한빈이었다.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았기에 성유리는 그의 손을 힘껏 떼어낸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그렇지만 박한빈은 단번에 다시 그녀를 잡아끌었다.“당신...”성유리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미처 한마디를 끝내기도 전에 박한빈이 갑자기 고개를 숙여 입술을 덮쳤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성유리는 눈을 크게 떴고 이내 몸부림쳤다.“놔... 이거 놔요!”온몸을 떨며 밀어내려 애썼지만 박한빈은 한 손으로 성유리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고 다른 쪽 다리로 그녀의 두 다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짓눌렀다.박한빈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입맞춤이었다.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한 건지 박한빈 자신도 알 수 없었다.아마 아무리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성유리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그런 것 같았다.말로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도 몰랐다.그런데 막상 성유리의 입술에 닿는 순간, 그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보드랍고 달콤한 느낌.마치 쇼윈도 안에 고이 놓인 슈크림빵을 맛보는 것 같았다.원래 단 걸 좋아하지 않는 박한빈이었지만 묘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이 느낌에 심장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리고 본능적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처음 해보는 입맞춤이라 해도 박한빈에게 이런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더구나 이상하게 성유리의 입안에 닿는 감촉은 마치 오래전부터 수없이 겪어본 것만 같이 편안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주었다.포근한 봄바람처럼 잔잔하면서도 안에서 일렁이는 묘한 소용돌이, 그건 박한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박한빈은 한 손으로 여전히 성유리의 손목을 붙들고 다른 손은 목덜미를 감싸 쥐며 억지로 끌어당겼다.더, 더 깊이 닿고 싶었다.그 안에 무엇인가가 숨어 있는 것만 같았고 한 걸음만 다가가면 그걸 가질 수 있을 거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22화
박한빈은 성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어둡게 가라앉은 얼굴과 사냥감을 노려보듯 날카로운 눈빛에 성유리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게다가 박한빈의 눈빛에는 묘한 원망까지 서려 있었다.성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지금 화를 내야 하는 건 나 아닌가? 결혼하기 싫다고 한 게 잘못이야?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틀린 거야?’특히 성유리는 박한빈이 왜 이렇게까지 자신과 결혼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정말 아버지가 한 옛날 약속 때문일까?’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건 아닌 것 같은데.’직접 대면한 적은 없어도 박한빈이 업계에서 보이는 냉정함과 집요함은 성유리도 풍문으로 들은 바 있었다.지화 그룹의 오랜 주주들이나 심지어 자기 외가 쪽 친척들까지 가차 없이 정리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냉혹한 남자가 고작 아버지가 한 헛된 약속 하나에 평생을 걸 리가 없었다.성유리는 자신이 예뻐서 그런다고 착각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았다.박한빈 정도의 남자라면 마음만 먹으면 여자가 줄을 설 텐데 자신이 무슨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겠는가.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며칠 전 자신이 결혼을 거절하겠다고 한 행동이 박한빈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그는 버려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고작 성유리 따위가 자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들자 성유리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그날 괜히 박한빈을 찾아가 그런 말을 한 게 잘못이었다.하지만 이제 와 후회한들 소용없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에서 자신의 턱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움직임을 눈치챈 듯 오히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마치 뼈가 부러질 것처럼 조이는 통증에 성유리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아... 아파요!”박한빈은 그런 성유리를 내려다보며 웃었다.“아프다고요? 아까는 신고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이건 명백한 폭력이에요!”성유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박한빈을 쏘아붙였다.“저한테만 이렇게 하시는 게 아니죠. 지환이에게도 똑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21화
박한빈은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했다가는 아마 우스갯소리나 듣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그나마 다행히 일은 원만히 해결되었으니 이런 과정쯤이야 참을 수 있겠다고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백지환을 배웅하려 서훈이 돌아서자마자 박한빈은 들고 있던 계약서를 꼭 쥔 채 성유리를 찾아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휴게실 안은 고요하기만 했고 박한빈은 문을 열며 혹시 그녀가 잠든 건 아닌가 싶었다.하지만 고개를 내밀자 성유리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웅크린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성유리는 두 팔로 무릎을 꼭 감싼 채, 어깨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뭔가 이상한 느낌에 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지금 우는 겁니까?”성유리는 대답도 없었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계속 물었다.“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시는 겁니까? 우습지 않아요?”성유리는 여전히 침묵했지만 떨리는 어깨의 움직임에서 감정이 격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럼에도 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그저 지그시 내려다보았다.그러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마침내 박한빈도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은 협약서에 이미 서명을 했습니다. 곧 당신을 만나자고 할 겁니다. 하지만 굳이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방금 들으셨듯이 할 말은 다 끝났으니까요.”“이런 남자라면 다시 만날 가치도 없습니다.”“오늘 밤 연회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같이 참석해 주세요. 뭐... 잘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성유리 씨를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면 되겠어요.”박한빈은 그렇게 자기 뜻을 분명히 전하고 계약서를 성유리 앞에 내려놓은 뒤 돌아서려 했다.곧이어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성유리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박한빈 씨, 아직도 모르시는 건가요? 지금 중요한 건 제가 지환이와 헤어졌느냐 아니냐가 아니에요. 저는 애초에 박한빈 씨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그 말에 박한빈은 걸음을 뚝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220화
박한빈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의 시선은 곧장 백지환에게로 향했는데 눈빛엔 짙은 조롱이 서려 있었다.백지환은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박한빈을 똑바로 응시했다.그는 당장이라도 눈앞에 놓인 것들을 쓸어버리고 필요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자신의 감정을 팔아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 일 따위는 백지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방금 박한빈이 던진 말은 너무도 정확했다.반박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성씨 가문이 자신과 성유리의 결혼을 쉽게 허락할 리 없었다.예전부터 그들은 자신을 탐탁지 않아 했고 지금은 약혼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박한빈이 버티고 있었다.그와 비교하면 자신은 한낱 이름도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박한빈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모든 것을 잃는 일일 수 있었다.“방금 박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유리와 함께 있으면 다들 성씨 가문에 빌붙었다고 할 겁니다. 그럼 박 대표님은요? 유리와 결혼하시면 그런 말 안 들을 자신 있습니까?”백지환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물론 저도 들을 겁니다.”박한빈은 웃으며 대답했다.“하지만 전 이걸 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합니다.”성씨 가문은 자신의 자본을 원하고 그는 성유리를 원한다.분명한 이해관계 위에 서 있는 거래였다.백지환처럼 감정도 지키고 성공도 얻겠다는 식의 어설픈 이상주의와는 달랐다.게다가 박한빈은 알고 있었다.성씨 가문은 지금의 상황에서 백지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걸.그가 만약 성유리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먼저 등을 돌릴 사람은 바로 백지환일 것이다.심지어 성씨 가문의 유산 일부를 들고 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었다.박한빈은 그런 인간의 얼굴을 수없이 봐왔기에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이기적이고 교활한 철저히 계산적인 얼굴이었다.그래서 박한빈은 오히려 성유리가 그런 사람에게 마음을 줬다는 사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