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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꽃비

사랑의 꽃비

By:  늑대 구름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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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은 씨. 개명하시겠습니까? 이름이 바뀌면, 학력, 증명서, 여권까지 모두 다시 변경해야 합니다.” 안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직원은 그녀에게 계속 충고했다. “성인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은 사실 꽤 번거로워요. 게다가 원래 이름도 매우 아름다운데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실래요?” “고민할 필요 없어요.” 안세은은 개명 동의서에 사인하며 말했다. “부탁드릴게요.” “네, 바꾸실 이름은... 안영이죠?” “맞아요.” 안영이, 꽃길만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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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모든 걸 멀리하고 날아가겠다는 의미였고 그녀가 미래를 위해 세운 계획이었다. 안세은은 여기를 완전히 떠날 예정이었다.

“그럼 지금 여권 이름도 바꿀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개명 영수증을 가지고 아래 창구에서 여권 이름을 변경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바로 여권 이름을 변경했다. 그러나 졸업증명서나 호적등본 같은 다른 것들은 바꾸지 않았다. 어차피 일주일 후면 새 여권을 들고 떠날 계획이었고 이전의 신분은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새 여권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을 때, 정면에는 H시의 랜드마크 건물이 보였다. 그 대형 스크린에서는 성세 그룹 대표, 배인혁의 인터뷰가 방송되고 있었다.

인터뷰어가 그의 작은 동작을 포착하고 웃으며 물었다.

“배 대표님, 아까부터 손에 끼신 반지를 만지고 계신데, 이 평범한 은반지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배인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제 결혼반지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도의 분이라면 결혼반지가 다이아몬드고, 캐럿 수도 꽤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이 반지는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다듬었고 안쪽에 제 아내와 제 이름을 새겼어요.”

“와, 정말 두 줄의 글자가 새겨져 있네요. ‘BIH’와...”

“‘ASE’. 제 아내의 이름이죠.”

“정말 부럽습니다. 대표님 부인께서 전생에 은하계를 구하셨나 봐요. 대표님과 결혼하다니요.”

배인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은하계를 구한 건 저였습니다. 그래서 아내랑 결혼할 수 있었죠.”

TV 속 관객석에서는 감탄과 부러움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안세은은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녀와 배인혁은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이였다. 교복을 벗고 웨딩드레스를 입기까지 15년을 함께했고 동창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가장 사랑이 깊은 한 쌍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두 달 전, 그녀는 낯선 여자에게서 사진 한 장을 받았다.

그 여자는 겨우 스물 몇 살로 보였고 도발적인 스타킹과 슬립 차림에 목부터 가슴까지는 온통 키스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진 속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고 손가락에는 다소 헐렁한 남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BIH & ASE’

나중에 안세은은 남편의 사무실에서 그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임지연, 대학교를 막 졸업한 21살로 배인혁이 새로 고용한 비서였다.

그 순간 안세은의 머릿속이 하얘졌고 당장이라도 남편의 사무실로 뛰어들어 따지고 싶었다.

“비서라니, 성생활도 거들어주는 거야?”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사진 속 임지연의 몸에 새겨진 흔적들이 이미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안세은은 스크린 속 부러움 섞인 환호를 뒤로한 채 거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근처의 금은방을 찾았다.

결혼반지를 빼는 순간, 그녀는 뼛속까지 아픈 느낌이 들었다.

“손님, 어떤 장신구를 가공하시려고요?”

“이 반지요. 녹여 주세요.”

점원이 망설였다.

“이 반지에 글씨도 새겨져 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정말로 녹이실 건가요?”

“네,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30분 후, 안세은은 정성스럽게 포장된 목걸이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배인혁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는 한 다발의 꽃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세은아, 미안해. 요즘 일이 많아서 당신이랑 시간을 못 보냈네. 당신이 좋아하는 프리지아를 사 왔어. 마음에 들어?”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그의 목젖에는 작은 이빨 자국이, 셔츠의 목덜미에는 선명한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다. 붉고 또렷한 흔적을 보며 안세은은 속으로 비웃었다.

‘일이 바쁘다더니, 비서 집에서 볼일 보느라 바빴나 보네.’

“왜 그래?”

안세은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럼 내가 안방까지 안아줄까?”

그는 다정하게 몸을 낮췄지만 안세은은 다시 그를 밀어냈다.

“당신도 피곤할 텐데 샤워하고 푹 쉬어.”

그 순간, 배인혁이 그녀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한 눈빛을 하며 배인혁이 곧 조용히 물었다.

“여보, 결혼반지는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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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모든 걸 멀리하고 날아가겠다는 의미였고 그녀가 미래를 위해 세운 계획이었다. 안세은은 여기를 완전히 떠날 예정이었다.“그럼 지금 여권 이름도 바꿀 수 있나요?”“네, 가능합니다. 개명 영수증을 가지고 아래 창구에서 여권 이름을 변경하시면 됩니다.”그녀는 바로 여권 이름을 변경했다. 그러나 졸업증명서나 호적등본 같은 다른 것들은 바꾸지 않았다. 어차피 일주일 후면 새 여권을 들고 떠날 계획이었고 이전의 신분은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새 여권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을 때, 정면에는 H시의 랜드마크 건물이 보였다. 그 대형 스크린에서는 성세 그룹 대표, 배인혁의 인터뷰가 방송되고 있었다.인터뷰어가 그의 작은 동작을 포착하고 웃으며 물었다.“배 대표님, 아까부터 손에 끼신 반지를 만지고 계신데, 이 평범한 은반지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배인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제 결혼반지입니다.”“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도의 분이라면 결혼반지가 다이아몬드고, 캐럿 수도 꽤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요.”“이 반지는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다듬었고 안쪽에 제 아내와 제 이름을 새겼어요.”“와, 정말 두 줄의 글자가 새겨져 있네요. ‘BIH’와...”“‘ASE’. 제 아내의 이름이죠.”“정말 부럽습니다. 대표님 부인께서 전생에 은하계를 구하셨나 봐요. 대표님과 결혼하다니요.”배인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사실 은하계를 구한 건 저였습니다. 그래서 아내랑 결혼할 수 있었죠.”TV 속 관객석에서는 감탄과 부러움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안세은은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그녀와 배인혁은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이였다. 교복을 벗고 웨딩드레스를 입기까지 15년을 함께했고 동창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가장 사랑이 깊은 한 쌍으로 여겨졌다.그러나 두 달 전, 그녀는 낯선 여자에게서 사진 한 장을 받았다.그 여자는 겨우 스물 몇 살로 보였고 도발적인 스타킹과 슬립 차림에 목부터 가슴까지는 온통 키스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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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잠깐 뺐어.”배인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직접 만든 반지인데...우리 사랑의 증표잖아. 왜 뺐어?”안세은은 아무렇지 않은 척 둘러댔다.“최근에 살이 좀 쪄서 사이즈가 안 맞는 것 같아서.”그제야 배인혁은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그럼 다음에 내가 주얼리 가게 가서 사이즈 조정해 올게.”“알았어. 그건 나중에 얘기해.”그때, 배인혁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그곳엔 작은 주얼리 상자가 놓여 있었다.“저기 테이블 위에 있는 거 뭐야?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안세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그 안에는 작은 은덩이가 들어 있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결혼반지였다.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배인혁은 기뻐하며 말했다.“오늘이 무슨 날이지? 당신이 먼저 선물을 준비하다니?”그 순간, 안세은의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야.”배인혁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굳어졌다. 그는 거의 비굴하게 아내를 달래듯 말했다.“미안해, 여보. 요즘 정말 일이 많아서 그랬어. 오늘 밤에 우리 밖에서 저녁 먹을까? 내가 지금 식당 예약할게...”“됐어. 나 이미 먹었어.”“그럼 야경 보러 갈까? 강변이라도 산책하면서?”“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자고 싶어.”그녀의 차가운 반응에도 배인혁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안으며 애원했다.“여보, 같이 나가자. 우리 요즘 산책도 잘 안 했잖아. 당신이 계속 이렇게 차갑게 굴면 당신 마음이 변한 게 아닌지 걱정된단 말이야.”‘내가 변심했다고? 당신이 먼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줬잖아. 당신 마음이 나를 떠났으니까, 이번엔 나도 내 마음을 완전히 거둬들일 거야.’집을 나서는 길에 배인혁은 운전하며 최근 있었던 일들을 떠들며 웃었다. 그러나 안세은은 남편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은 채조수석에서 창밖만 바라보았다.아까 그녀는 안전벨트를 매려다 좌석 틈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여자 스타킹이었다.안세은은 그것을 다시 틈에 밀어 넣고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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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세은아, 괜찮아? 어디 아파?”안세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고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던 배인혁이 왜 바람을 피웠는지.‘내가 눈치챌까 두렵지 않았던 걸까?’‘아니면 완벽하게 숨겼다고 확신한 걸까?’저녁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의 정신도 조금씩 맑아졌다.배인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 너무 불편하면 병원에 갈까?”“아니야, 그냥 저녁에 뭔가 잘못 먹은 것 같아.”“알겠어. 그럼 오늘은 집에서 쉬고 내일 회사로 와. 같이 밥 먹자.”안세은이 냉소적으로 웃었다.‘회사에 가서 당신과 비서가 사무실에서 불장난하는 모습을 구경하라고?’그녀는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좋아. 내일 아침 당신이랑 같이 출근할게. 오랜만에 당신이 일하는 것도 보고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엔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 되겠다.”예상치 못한 반응에 배인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내가 요즘 좀 바빠서 계속 같이 있을 순 없을지도 몰라.”“괜찮아. 난 당신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알겠어.”집에 도착하자 배인혁은 욕실로 가며 목욕물을 받아주겠다며 욕실로 향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그는 욕실 문을 꼭 닫았다.안세은은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 가장 먼저 뜬 것은 최신 채팅 기록이었다.배인혁이 먼저 문자를 보냈다.[내일은 사무실에서 힘들 것 같아. 아내가 회사로 오겠대.]임지연이 바로 앙탈을 부렸다.[아잇, 한껏 기대했는데...][실망하지 마. 내일 옥상으로 데려가 줄게. 더 자극적일 거야.][대표님 최고예요.]안세은이 침실로 돌아왔을 때 배인혁도 막 욕실에서 나왔다.“여보, 목욕물 다 받아놨어. 먼저 씻어.”“괜찮아. 그냥 쉬고 싶어.”“그래. 피곤하면 먼저 자. 그런데, 테이블 위에 둔 선물 지금 열어봐도 돼?”안세은이 대답했다.“일주일 뒤에 열어봐.”“왜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해? 지금 보고 싶은데...”“왜냐하면...”‘일주일 후에 나는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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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침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회사로 향했다.하지만 안세은은 조수석에 앉기가 불편해 뒷자리를 고집했다.“차멀미가 심해서 뒷자리가 편해. 바람도 쐬고 싶고.”배인혁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최대한 조심해서 운전할게.”회사에 도착하자 배인혁은 서둘러 내려 그녀의 차 문을 열어 주었다.출근 시간이라 직원들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고 몇몇 임원들은 바쁘게 다가와 아부하며 말했다.“사모님, 오셨군요! 사모님께서 밀크티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금방 사 오겠습니다.”“간식은 제가 사 올게요. 좋아하시는 케이크로 준비하겠습니다.”배인혁이 웃으며 말했다.“그만해. 아내가 요즘 살이 쪄서 결혼반지도 안 맞는다니까.”임원들이 바로 맞장구쳤다.“아닙니다, 대표님! 사모님은 여전히 날씬하세요. 반지가 줄어든 거겠죠!”“그렇죠, 요즘 은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다더라고요.”배인혁이 가볍게 웃었다.“아부도 적당히 하지, 너무 티 나잖아?”임원들은 더욱 능청스럽게 말했다.“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너무 사랑하시니까요. 사모님만 행복하시면 대표님도 행복하시고, 그러면 저희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거죠.”배인혁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당신들, 내 약점을 너무 잘 잡았어.”모두가 웃는 사이, 안세은은 묵묵히 직원들과 함께 배인혁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과일과 간식이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배인혁은 그녀를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여보, 난 이제 일하러 가야 해. 여기서 쉬면서 보고 싶은 거 있으면 직원한테 부탁해.”안세은은 일부러 물었다.“그런데 당신 비서, 임지연 씨는 오늘 안 보이네?”배인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그러게. 나중에 인사팀에 확인해 보라고 할게.”그가 떠나기 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점심때같이 먹자.”그가 떠나고 임원들도 하나둘 사라졌다.잠시 후, 안세은은 책상 위에 놓인 배인혁의 휴대폰을 발견하고 바로 따라 밖으로 나왔다.그때, 방금 떠난 임원들의 대화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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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안세은이 태연한 척 말했다.“친구가 여권을 잃어버려서 재발급받는 방법을 물어본 거야.”배인혁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깜짝 놀랐잖아. 혹시 당신이 나를 두고 혼자 외국으로 떠나는 줄 알았어.”그 순간, 안세은은 구역질이 치밀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몸에서 희미한 비린내와 달콤한 향수 냄새가 뒤섞여 풍겨왔다.배인혁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직원들이 또 도대체 뭘 먹인 거야? 당신 위가 약하니까 잘 챙기라고 분명히 당부했는데... 잠깐만 있어 봐. 쓸모없는 것들 다 내보내야지!”그러나 이번엔 안세은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냈다.“누굴 해고하든 당신 마음대로 해. 하지만 제발, 나를 핑계 삼지 마!”배인혁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폭발에 당황했다.“당신 왜 그래?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일만 하느라 같이 못 있어 줘서 화난 거야?”그는 달래듯 말을 이었다.“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일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 종일 당신이랑만 있을게. 어때?”안세은이 헛웃음을 지었다.“나랑만 있을 거라고?”“응, 오직 당신이랑 나랑.”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으며 말했다.“그 약속, 꼭 지켜.”그날 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집에 돌아온 안세은은 계속해서 구역질했다. 배인혁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부했다.“가까이 오지 마. 당신한테서 나는 냄새 때문에 더 토할 것 같아.”배인혁은 자신의 소매를 맡아보며 말했다.“당신, 이 향수 냄새가 싫은 거지? 다음번엔 다른 향으로 바꿀게.”“향수 때문이 아니야!”“알았어. 그럼 앞으로 향수 안 뿌릴게. 이제 됐지?”안세은은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나서 거울 속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욕실 밖에서 뜨거운 물을 들고 초조히 기다리는 배인혁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남편은 왜 이렇게도 태연하게 사랑하는 척 연기할 수 있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날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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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메시지가 끊임없이 들어왔다.[아 맞다, 이거 보여줄게요. 이건 제 초음파 검사 결과예요. 저 임신했어요.]안세은은 숨을 멈추고 사진을 확대해 검사 결과지의 첫 줄을 확인했다.[태아 8주, 유산 징후.]곧이어 도착한 메시지 내용에 그녀의 손이 떨려왔다.[어제 우리 옥상에서 수없이 했거든요. 다양한 자세를 다 시도해 봤어요. 아마 너무 격렬해서 그런지 아기가 유산 징후가 생겼나 봐요. 다 그 사람 탓이에요. 집에서는 언니랑 하는 게 재미없다고 하면서 저랑 있을 때는 자극적인 걸 하고 싶다잖아요.][의사가 그러는데 태아를 지키거나 낙태하려면 아이 아빠의 서명이 필요하대요. 그래서 그이를 부를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위염이랑 그의 아이 중에서는 아이가 더 중요하잖아요, 안 그래요?]안세은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병원을 나와 혼자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향했다.택시는 한 로펌 앞에 멈췄고 안세은은 차에서 내리며 결심을 굳혔다.“안녕하세요, 이혼 협의서를 작성해 주실 수 있을까요?”안세은은 재산 분할도, 위자료도 요구하지 않았고 변호사는 그녀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30분 만에 협의서 초안이 완성되었고 변호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남편의 서명이 없어도 됩니다. 단, 2년간 별거 상태가 유지되면 이 협의서는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합니다.”안세은은 협의서를 받아 들고 로펌을 나섰다. 그때, 배인혁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 어디야? 병원 구석구석을 다 찾아봤는데 당신이 안 보여.”안세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집에 갔어.”“알았어.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이야. 미안해, 회사에 정말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이번 주는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 당신 혼자 집에서 잘 지낼 수 있겠어? 다음 주에는 모든 일정을 비우고 당신이랑만 있을게.”안세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녀의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알았어. 잘 다녀와.”“역시 우리 여보는 정말 착해.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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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임지연이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이 사진 봐봐요. 나를 몰디브로 데려왔어요. 임신하느라 고생했다고 그냥 누워만 있으라네요.]안세은은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까운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이제 곧 떠나야 했기에 안세은은 그 모임에서만큼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비행기 출발까지 이틀 남았을 때, 임지연이 또다시 사진을 보냈다. 이번엔 배인혁이 책을 읽고 있었고 책의 제목은 ‘아기 조기교육 가이드’였다.[초보 아빠가 아기 교육에 정말 관심이 많아요. 우리 아기가 아직 콩알만 한 크기인데도 아빠는 매일 아기한테 말을 걸어 주고 있어요.]안세은은 여전히 답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은행에 가서 모든 돈을 유로화로 환전한 후, 계좌를 해지했다.비행기 출발 하루 전, 임지연은 이번엔 동영상을 보내왔다. 화면 속에는 아름다운 해상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임지연은 감동한 듯 눈물을 흘렸고 배인혁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으며 위로했다.“왜 울어? 앞으로 더 많은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는데.”[인혁 씨가 나를 위해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렸어요. 몰디브의 모든 불꽃놀이를 사들여 내 생일을 축하해 줬거든요.]“오늘이 그 여자의 생일이구나. 생일에 임신까지.”그들에게는 정말 겹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안세은은 동영상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지역 자선단체에 전화를 걸었다.“안녕하세요. 제가 기부할 옷 몇 벌이 있는데요.”곧, 자선단체가 집 앞에 도착했고 그녀는 미리 정리해 둔 다섯 개의 캐리어를 직원에게 넘겼다.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분증, 호적등본, 학위증 등 ‘안세은’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모든 서류와 물건을 화장터의 직원에게 돈을 주며 태워달라고 부탁했다.그렇게, 안세은이라는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다시 텅 빈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조차도 이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집 안은 말끔히 정리되었고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배낭이었고 그리고 그 안에는 오직 여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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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배인혁은 전화를 끊고도 아무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기분이 상한 것은 임지연 쪽이었다.“온전히 내 것인 시간이 이렇게 짧다니... 이제 또다시 숨어 지내야 하잖아요.”그녀의 볼멘소리에 배인혁은 약간 경고하듯 말했다.“세은이가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눈치채게 해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따를지 너도 잘 알잖아.”임지연이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당신 이 얘기 벌써 백 번은 넘게 했잖아요.”그녀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배인혁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달랬다.“임신했으니 울지 마. 애한테 안 좋아.”그러나 임지연은 여전히 서운한 얼굴이었다.“근데 대표님이 나한테 화냈잖아요.”“그럼 내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할게. 가방 하나 사줄까? 마음에 든 거 있어?”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회사로 돌아가요. 집에 가기 전에 한 번 더 해요.”배인혁이 약간 주저했다.“이미 아내한테 두 시간 후에 집에 간다고 했어. 시간이 부족해.”“길이 막힌다고 하면 되잖아요. 공항 고속도로는 늘 막히잖아요...”그는 시계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임지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입술을 맞추었다.처음에는 배인혁도 잠시 밀어내는 듯했지만 곧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키스에 응했다.키스가 점점 격렬해지자 배인혁은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며 속삭였다.“앙큼한 고양이 같으니.”임지연이 말했다.“빨리 가요. 우리 마지막으로 미쳐보는 거예요.”대답 대신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차고로 향했다.“짐은요...?”임지연이 웃으며 묻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필요 없어.”둘은 차 안에서 한 차례, 회사로 돌아와 또 두 시간 동안 격정을 나누었다.모든 것이 끝난 후, 그제야 배인혁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 생각을 했다.[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아내는 절대 전화를 꺼두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배인혁은 저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그때, 임지연이 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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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임지연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사모님 자리도, 인혁 씨의 돈도 결국 내 것이 될 텐데. 지금은 급할 필요가 없어.’그녀는 속으로 다짐하며 이번만큼은 참았다오랜만에 대낮에 집에 돌아온 배인혁은 익숙한 저택에 들어서며 이상한 낯섦과 신선함을 느꼈다.‘잠깐의 이별이 새로운 설렘을 가져오는 것일까?’“세은아. 나 왔어.”그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원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다.정원의 꽃과 나무는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실내 인테리어는 예전 그대로였다. 집안에는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했고 이 모든 것이 안세은 덕분이었다.그는 그녀를 꼭 안아주고 “고생했어, 여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거실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배인혁은 일을 하고 있던 가정부에게 물었다.“사모님은? 밖에 나가셨나?”평소라면 이 시간에 아내는 집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가정부들은 서로를 힐끔거리며 대답을 피했다.“글쎄요, 오늘 아침부터 못 뵌 것 같은데요.”배인혁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아침 식사했는지도 몰라?”아무도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모두 속으로 생각했다.‘아내의 행방을 제일 잘 알아야 할 사람은 남편 당신 아닌가요? 왜 우리한테 묻는 거죠?’미묘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그는 스스로 상황을 무마했다.“됐어, 당신들한테 물어봐야 소용없겠지. 내가 직접 찾아볼게.”배인혁은 빈둥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발소리를 낮추고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지만 침실도 텅 비어 있었다.창문과 커튼이 활짝 열려 있어 햇살이 가득 들어온 방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그러나 그곳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가 사라져 있었다.배인혁은 무의식적으로 화장대를 향해 걸어갔고 그러다 상자 밑에 깔린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편지에는 안세은이 남긴 마지막 말이 적혀 있었다.[당신과 임지연 씨 사이 이미 다 알고 있어. 난 떠날 거야, 그러니 찾지 마.]안세은은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고 그렇게 가벼운 말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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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배인혁은 막연한 공허감에 휩싸이며 점점 더 불안해졌다.아내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가출한 거라면 호텔에서 머물면서도 필요한 물건이 생길 것이고 여행 중 돈이 부족해 불편을 겪을 수도 있을 터였다.그는 그녀가 혹시나 돈이 없어서 곤란해지는 상황이 올까 봐 걱정되었다.결국, 그 자리에서 그네 옆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은행 계정에 로그인했다. 그리고 아내의 계좌로 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배인혁은 금액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저 0을 몇 번이나 눌렀다. 그녀가 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을까 봐, 생활이 힘들어질까 봐 걱정의 마음이 먼저 들었다.그러나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안세은은 이미 더 이상 그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직원의 전화가 걸려 왔다.“고객님, 방금 진행하신 모든 송금이 실패했습니다.”배인혁은 감정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물었다.“송금 한도나 횟수 때문인가요? 제가 본인 인증할게요. 인증 번호든 서명이든 뭐든 다 제공할 수 있습니다. 꼭...꼭 아내에게 송금해야 해요.”그는 마지막으로 직접 아내에게 돈을 보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결혼 초반까지만 해도 그녀의 모든 일에 신경을 쓰던 그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돈과 권력에 취해 그 많은 사소한 일들을 놓쳤다.결혼기념일 이벤트는 기획 회사가 준비했고 선물은 비서가 대신 구매했으며 생활비조차 자동이체로 처리되었다.사소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 그러나 그것들이 모여 그와 그녀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한 조각이 되었다.그는 뒤늦게 자신이 아내와의 관계를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를 깨달았다.절망감과 후회가 가슴을 짓눌렀고 그녀에게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그러나 은행 직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고객님의 계좌에는 문제가 없지만 상대 계좌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존재하지 않다니요? 왜요?”“해당 계좌는 어제 이미 해지되었습니다.”“어제요...?”그는 자신의 말을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직원이 확답을 주자 그는 전화를 끊고 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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