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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이별

차가운 이별

에:  하얀 뭉치참여
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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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늘의 생일날, 서로에게 전부였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 부주성은 생일을 챙기지 않았고, 장모님의 장례에도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주성은 첫사랑을 데리러 공항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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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엄마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모신 뒤, 임하늘은 이모 한지윤의 전화를 받았다.

[하늘아, 네 엄마도 이제 세상을 떴잖니? 너 혼자 여기 남겨 두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차라리 이모가 있는 해외로 와서 같이 살자.]

임하늘은 한참 말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아주 큰 결정을 내린 듯,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정말? 와 준다니 정말 다행이다!]

수화기 너머 한지윤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떨렸다.

[그런데 너... 거기서 결혼했다는 말 들었어. 남편도 너랑 같이 해외로 올 수 있겠니?]

임하늘은 희미하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우리 곧 이혼해요.”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부주성이 돌아왔다.

임하늘은 눈꺼풀만 살짝 들어 현관 쪽을 봤지만 예전처럼 마중을 나가지는 않았다.

곧 부주성의 친여동생 부서라가 들어왔다.

부서라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오빠가 은아 언니 데리고 왔어. 새언니 같은 가짜는 곧 쫓겨날 거야.”

임하늘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

“가짜?”

부서라는 더 뿌듯한 표정이 됐다.

“은아 언니 보면 바로 알게 될걸.”

말이 끝나자마자 부주성이 진은아를 데리고 들어왔다.

커다란 캐리어와 가방들을 든 박 기사가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진은아의 품에는 커다란 장미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선명한 붉은 장미가 유난히 눈부셔서 임하늘의 눈가가 저절로 붉어졌다.

‘부주성에게는 진은아에게 장미를 사 줄 시간도 있었구나.’

결혼한 지 5년, 부주성은 임하늘에게 꽃 한 송이 사 준 적이 없었다.

“은아가 막 귀국해서 아직 지낼 곳을 못 구했어. 당분간 우리 집에 머물 거야.”

부주성은 임하늘을 보지도 않았고, 말하는 내내 시선은 진은아에게 붙어 있었다.

“내 방 옆 손님방 정리해 둬. 앞으로 은아가 거기 쓸 거니까.”

그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 듯했다. 임하늘이 이 집의 안주인이 아니라 가사도우미라도 되는 듯, 누군가가 들어와 머무는 일에 동의는 필요 없고 손님방 정리만 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성아, 내가 치울게. 하늘 씨 귀찮게 하지 않아도 돼.”

진은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임하늘은 진은아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임하늘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몸 전체가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서라가 말한 ‘가짜’가 무슨 뜻인지, 임하늘은 그때서야 알았다.

진은아의 얼굴은 임하늘과 정말 많이 닮았다.

다만 임하늘은 부드럽고 차분한 분위기였고, 진은아의 눈매에는 재벌가 딸에게서 나올 법한 당당한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그런 거였구나...’

임하늘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눈가의 물기를 훔쳤다.

‘그런 거였어. 이제야 알겠네.’

임하늘이 느끼기에, 자신의 삶은 늘 불운의 연속이었다.

운명은 단 한 번도 자기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서로가 의지하며 살았던 엄마마저 자신의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상했지.’

‘나 같은 불운한 사람이 우연한 만남 한 번에 재벌가 후계자의 눈에 들고...’

‘결국 재벌가 후계자와 결혼까지 한다는 게 말이 되나 했어...’

‘그런 거였구나. 이제야 모든 설명이 맞아떨어졌지.’

‘나는 ... 그저 대용품이었어.’

“왜 울어? 그게 울 일이야? 은아 언니가 며칠만 지내는 건데 그걸로 눈물까지 흘려? 새언니, 속이 너무 좁은 거 아니야?”

부서라가 비웃었다.

임하늘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진은아 씨 때문이 아니야.”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은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아, 그냥 내가 나갈게. 나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

부주성의 표정이 곧장 어두워졌다.

“나갈 필요 없어.”

부주성은 진은아를 붙잡고 누구의 반박도 허락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집에서는 내가 결정해. 박 기사, 짐 올려요.”

고개를 든 박 기사는 불안한 눈으로 임하늘을 힐끗 보면서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부주성도 고개를 돌려 임하늘을 보았다.

“불만 있어?”

내리누르는 듯한 말투 속에는 분명한 협박이 담겨 있었다.

임하늘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어 붉어진 눈으로 웃었다.

“불만 없어요. 진은아 씨가 들어오는 거, 환영해요.”

‘나도 불만이 있을 리 없지.’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인데, 무슨 불만을 품겠어?’

임하늘은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은 채 물러나려고 했다.

그리고 영원히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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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챕터
제1화
엄마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모신 뒤, 임하늘은 이모 한지윤의 전화를 받았다.[하늘아, 네 엄마도 이제 세상을 떴잖니? 너 혼자 여기 남겨 두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차라리 이모가 있는 해외로 와서 같이 살자.]임하늘은 한참 말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아주 큰 결정을 내린 듯,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네.”[정말? 와 준다니 정말 다행이다!]수화기 너머 한지윤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떨렸다.[그런데 너... 거기서 결혼했다는 말 들었어. 남편도 너랑 같이 해외로 올 수 있겠니?]임하늘은 희미하게 웃었다.“걱정 마세요. 우리 곧 이혼해요.”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부주성이 돌아왔다.임하늘은 눈꺼풀만 살짝 들어 현관 쪽을 봤지만 예전처럼 마중을 나가지는 않았다.곧 부주성의 친여동생 부서라가 들어왔다. 부서라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오빠가 은아 언니 데리고 왔어. 새언니 같은 가짜는 곧 쫓겨날 거야.”임하늘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가짜?”부서라는 더 뿌듯한 표정이 됐다.“은아 언니 보면 바로 알게 될걸.”말이 끝나자마자 부주성이 진은아를 데리고 들어왔다.커다란 캐리어와 가방들을 든 박 기사가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진은아의 품에는 커다란 장미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선명한 붉은 장미가 유난히 눈부셔서 임하늘의 눈가가 저절로 붉어졌다.‘부주성에게는 진은아에게 장미를 사 줄 시간도 있었구나.’결혼한 지 5년, 부주성은 임하늘에게 꽃 한 송이 사 준 적이 없었다.“은아가 막 귀국해서 아직 지낼 곳을 못 구했어. 당분간 우리 집에 머물 거야.” 부주성은 임하늘을 보지도 않았고, 말하는 내내 시선은 진은아에게 붙어 있었다. “내 방 옆 손님방 정리해 둬. 앞으로 은아가 거기 쓸 거니까.”그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이었다.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 듯했다. 임하늘이 이 집의 안주인이 아니라 가사도우미라도 되는 듯, 누군가가 들어와 머무는 일에 동의는 필요 없고 손님방 정리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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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부주성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임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슬쩍 비웃었다.“불만 없다면 박 기사 도와서 은아 짐도 같이 올려.”첫사랑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부주성은 일부러 임하늘을 모욕하려고 했다.임하늘의 낯이 조금 창백해졌지만, 이내 웃었다.“알았어.”말을 마친 임하늘은 돌아서서 박 기사와 함께 짐을 들었다.이렇게 얌전하고 순순히 따랐으니 부주성은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임하늘의 뒷모습을 보자, 부주성의 가슴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피어났다.손님방은 금세 정리됐다. 임하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진은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하늘 씨, 나를 받아 줘서 고마워.” 임하늘의 손을 덥석 잡은 진은아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가련하게 말했다. “하늘 씨와 주성이가 없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몰랐을 거야.”진은아의 손등이 위로 향하는 바람에 눈부신 빛이 임하늘의 눈을 찔렀다.진은아의 약지에는 임하늘의 결혼반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진은아의 반지는 다이아몬드가 더 크고 더 밝았고 더 눈부셨다.임하늘의 결혼반지가 값싼 모조품처럼 보일 만큼이었다.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었는데도, 임하늘의 심장은 다시 아렸다.‘내 결혼반지마저 값싼 모조품이었구나.’‘대용품에게 모조품이라. 참 잘 어울리네.’그때 바깥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 기사가 거대한 케이크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와! 누가 케이크 시켰어?” 부서라가 소리쳤다. “오빠, 은아 언니한테 보낸 거야?”“은아 생일은 다음 주야.” 부주성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미리 주문해 두긴 했지만, 케이크 가게에서 날짜를 착각했나?”모두가 의아해하는 사이, 배달 기사가 큰 소리로 물었다.“임하늘 님 계신가요? 받으시는 분은 임하늘 님입니다. 이모님이 보내신 케이크인데, 오늘 하루가 많이 힘들었다는 걸 안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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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목걸이는 아름다웠다. 희귀한 레드 다이아몬드가 하트 모양의 플래티넘 장식 안에 박혀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을 상징하는 디자인이었다.아쉽게도 그 유일한 사랑은 임하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괜찮아.” 임하늘은 고개를 저으며 웃는 얼굴로 거절했다. “진은아 씨에게 준 선물인데, 내가 어떻게...”임하늘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은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목걸이도 받지 않을 것이고, 목걸이를 준 남자도 더는 가지지 않을 생각이었다.“지금 비꼬는 거야?” 부주성이 갑자기 화를 냈다. “일 때문에 바빠서 당신 생일을 잊은 것뿐이잖아. 그게 그렇게 큰일이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임하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또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울지도 않았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 내내 웃었고, 말도 예의 바르게 했다. 그런데도 부주성은 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비꼰 적 없어.” 임하늘은 눈을 내리깐 채 피로가 가득한 시선을 숨겼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목걸이를 받으면 돼? 받으라고 하면 받을게.”임하늘은 정말로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진심을 담아 진은아에게 인사했다.“진은아 씨, 선물 고마워.”대용품으로서 임하늘은 자신이 충분히 얌전했고 충분히 협조했으며, 부주성의 체면도 세워주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어째서인지 목걸이를 받자 부주성의 화는 더 커졌다.“당신...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그 한마디를 남기고 부주성은 문을 세게 닫고는 나가버렸다.목걸이를 받지 않아도 화를 냈고, 받아도 화를 냈다.그래서 임하늘은 알았다. 목걸이를 받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도 부주성은 만족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사랑받는 사람은 뭘 해도 괜찮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틀린다.한지윤이 보낸 생일 케이크는 컸지만, 임하늘과 함께 먹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모의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임하늘은 혼자 케이크 하나를 억지로 다 먹었다.결국 배가 터질 듯 불편해져서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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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부주성은 진은아의 방에서 밤을 보냈다.임하늘은 사실 그 일에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았다. 이른 아침, 가사도우미 김순미가 임하늘을 뒤뜰로 데리고 가서 비밀스럽게 그 ‘중요 정보’를 알려 주었다.“사모님,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김순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진은아 씨는 딱 봐도 대표님을 흔들려고 들어온 거예요! 어젯밤 입은 옷을 사모님이 못 보셔서 그렇지... 아이고,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임하늘은 담담히 웃었다.“너무 많이 나가셨어요. 진은아 씨는 부 대표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부 대표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에요.” “앞으로는 진은아 씨 흉보지 마세요. 부 대표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 거예요.”그 말에 그대로 얼어붙은 김순미가 고개를 들고는 묘한 눈으로 임하늘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오늘 왜 이러세요?”“저 괜찮아요.” 임하늘은 웃었다. “정말 괜찮아요.”그 웃음은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과도 같았다.임하늘은 계속 웃을 것이다. 더는 울지 않을 것이다.“아니에요! 오늘 정말 이상하세요!” 김순미는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예전에는 저한테 대표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을 때, 항상 편하게 이름을 부르셨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부 대표’라고 하시잖아요!”임하늘은 긴 속눈썹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부주성과 처음 만났을 때, 임하늘은 부주성을 ‘부 대표’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계속 부주성의 친구들을 따라서 ‘주성 오빠’라고 불렀다.나중에 둘이 처음 몸을 섞던 밤, 부주성은 임하늘을 침대 위에 눕힌 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서 거칠게 몸을 움직이면서 자신을 ‘성아’라고 부르게 했다.임하늘은 ‘성아’가 둘만의 애칭이라고 믿었다. 자신만 부를 수 있는 애칭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오랫동안 몰래 달콤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어제 진은아가 부주성을 그렇게 부르는 걸 듣고서야 임하늘은 깨달았다.그날 밤에 왜 눈을 가렸는지...임하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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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임하늘의 어머니 한애남은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한애남은 뇌종양 말기였다. 부주성의 조치로 국내에서 제일 좋은 대학병원에 입원했지만 병세는 날마다 나빠졌다.심지어 정신이 또렷한 시간은 점점 줄었고, 반대로 혼미한 시간은 늘어났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임하늘을 알아보지도 못했다.담당의는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수술을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임하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부주성에게 전화해 의견을 묻고 싶었다.세 번 연속 전화가 끊어졌다. 네 번째에서야 통화가 연결됐지만, 돌아온 것은 다짜고짜 쏟아지는 질책이었다. [별일도 없는데 왜 전화해? 바쁘니까 귀찮게 하지 마.]담당의는 임하늘이 부씨 집안의 며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주성이 나서서 해외의 유명한 교수를 초청해서, 국내 의료진과 함께 협진하면 수술 성공률이 올라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임하늘은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핸드폰을 들고 병원 복도에 앉았다. 초조하게 시간을 세며 기다린 끝에 오후 6시가 되었다.부주성이 보통 퇴근하는 시간이었다.임하늘은 용기를 내 다시 부주성에게 전화했다.부주성은 받지 않았다. 임하늘은 야근 중일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조금 더 기다리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이번에는 더 오래 기다렸다. 밤 12시가 되어 다시 걸었지만, 아무리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임하늘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부주성이 자신의 번호를 차단한 것이었다.그 뒤 꼬박 일주일 동안 부주성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고,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한애남은 그렇게 시간만 지연되다가 수술의 최적 시기를 놓쳤다.‘부주성이 정말 그렇게 바빴을까?’‘그렇게 바쁜 사람이 임하늘을 차단해 둔 일주일 동안...’‘진은아의 귀국 선물을 고르고 이 여자의 생일 케이크를 예약할 시간은 어떻게 있었을까?’차마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떨리는 손에 힘을 준 뒤, 임하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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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난데없는 누명에 임하늘은 난감해졌다.“내가 하루 종일 주방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진은아 씨 음식에 뭘 넣을 기회가 있었겠어?”“주방에 안 들어갔다고 해서 주방 사람을 매수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 부서라가 싸늘하게 웃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왔을 때 새언니랑 순미 이모님이 정원에서 수상하게 속닥거리던 거 봤어.” “몰래 무슨 작당을 했는지 몰랐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때 은아 언니 음식에 뭘 넣을 상의를 한 거네?”“아이고, 아가씨!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면 안 돼요.” 김순미가 억울해했다. “제가 가사도우미일 뿐인데 어떻게 사람 음식에 독을 타요?”“그럼 아침에 새언니랑 정원에서 뭘 수상하게 얘기했는데요?” 부서라는 물러서지 않았다.“저...” 김순미는 몰래 임하늘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부주성과 진은아가 있는 자리에서 아침에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었다.“대답을 못 하시네요? 역시 둘 다 수상하잖아요!” 부서라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은아 언니, 내가 경찰 불러 줄까? 음식에 독을 탔으면, 크게 보면 살인미수잖아!”‘경찰’이라는 단어를 듣자 진은아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더 심해졌다. 진은아는 부주성의 손을 붙잡고 울먹였다.“성아, 너무 아파! 나 죽는 거 아니야? 무서워...”진은아가 그렇게 괴로워하자 부주성은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진은아를 번쩍 안고 현관으로 뛰었다.“차 대기시켜! 바로 병원으로 가게!”나가기 전에 부주성은 임하늘을 노려보았다.“돌아와서 처리할 거야.”김순미는 겁에 질렸다. 나이가 쉰 살이 넘은 사람이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사모님,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저는 진은아 씨 음식에 아무것도 안 탔어요. 정말이에요.”“저는 일하러 와서 노후자금 조금 벌려는 거지,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에요!”임하늘은 음식에 손댄 사람이 김순미일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음식을 만든 사람이 김순미인 이상, 김순미가 다른 누군가를 지목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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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임하늘이 경찰을 부르자고 하자 진은아와 부주성의 반응은 흥미로웠다.진은아는 시선을 피했고, 부주성은 분노로 폭발했다.“임하늘! 내가 당신이 아까워서 경찰을 못 부를 거라고 생각해?”‘아니, 부주성.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임하늘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다만 당신의 첫사랑이 경찰을 부르지 못하게 할 거야.’‘진은아도 알 테니까. 그런 얄팍한 수는 당신은 속여도 경찰은 못 속인다는 걸.’경찰이 땅콩가루를 뿌린 사람이 진은아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 꽤 난처해질 테니까.역시 다음 장면에서 진은아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성아, 그러지 마. 하늘 씨는 어쨌든 네 아내잖아. 나 때문에 하늘 씨를 감옥에 보내면 안 돼.”“또 나는 이렇게 괜찮아졌잖아. 백번 양보해서 하늘 씨를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부씨 집안을 생각해야지.” “부성그룹 며느리가 감옥에 갔다는 소문이 나면 주가에도 영향이 갈 거야.”진은아의 설득 끝에 부주성은 겨우 화를 참으면서 경찰은 부르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은아가 마음이 약해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고,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부주성은 임하늘의 목을 움켜쥐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독을 묻힌 듯한 목소리였다. “은아가 오늘 밤 겪은 고통을 당신도 그대로 겪어야 해.”“정 선생, 준비해 둔 약 가져와요.”부주성은 임하늘의 턱을 붙잡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을 억지로 입에 들이부었다.약효는 빠르게 퍼졌다. 임하늘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서 떨었다.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부주성은 한쪽에 서서 바닥에서 고통에 뒤틀리는 임하늘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아프지? 당신이 탄 죽을 은아가 먹었을 때도 이렇게 아팠어.” 부주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 고통을 똑똑히 기억해. 아파 봐야 고치겠지.”임하늘은 손등을 세게 물었다.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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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하루 밤낮을 보낸 뒤에야 임하늘은 겨우 기운을 조금 되찾았다.오늘은 해외로 떠나는 날이었다.저녁 7시 비행기. 비행기에 오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새벽빛이 옅게 번질 무렵, 임하늘은 일어났다. 자신의 물건을 전부 정리해서 보육원에 기부했다.기부한 물건 안에는 지난 몇 년 동안 부주성이 준 선물도 들어 있었다. 옷, 가방, 보석 액세서리... 심지어 결혼반지까지 남기지 않았다.값나가는 것은 기부해서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게 했다. 값이 나가지 않는 것은 불태웠다.다시 시작하려면 깨끗하게 떠나야 했다. 부주성의 물건은 단 하나도 가져가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오후가 되었다. 임하늘이 핸드폰을 보니 벌써 오후 3시였다.비행기 출발까지 네 시간 남았다.임하늘이 옷을 갈아입고 공항으로 가려는데, 부서라가 갑자기 앞을 막았다.“여기서 멍하니 뭐 해? 가자. 나랑 메이크업 받으러 가야지.”“메이크업?” 임하늘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왜?”“모르는 척하지 마.” 부서라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오늘 새언니랑 우리 오빠 결혼기념일이잖아. 오빠가 그러더라. 그때 새언니가 시집올 때 부모님이 반대해서 예식도 못 하고 혼인신고만 했다고, 늘 마음에 걸렸대.”“요즘 은아 언니 일 때문에 새언니를 좀 소홀히 한 것도 맞으니, 결혼 5주년에 맞춰서 결혼식을 다시 해 주고 싶대.”‘가짜야... 분명 가짜야.’임하늘은 생각했다. ‘이건 함정이야.’임하늘과 부주성은 혼인신고를 한 지 5년이 됐다. 부주성은 단 한 번도 결혼식을 다시 해 주겠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진은아가 돌아온 오늘, 갑자기 임하늘을 위해 결혼식을 준비한다고?“못 믿겠어?” 부서라는 경멸 어린 눈으로 임하늘을 훑었다. “그럼 우리 오빠한테 직접 전화해 보든가. 내가 이 귀찮은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오빠가 시키지 않았으면 나도 새언니한테 신경 안 써.”임하늘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부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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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임하늘이 무너진 채 연회장을 뛰쳐나간 뒤, 부주성은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안고 들어왔다.“서라야, 왜 너 혼자 있어? 네 새언니는?” 부주성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웨딩드레스 갈아입히라고 했잖아.”부서라는 조금 뜨끔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부주성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주둥이를 놀렸다.“갔어! 오빠가 요즘 은아 언니만 챙기고 자기한테는 관심도 없다고 삐쳐서 식장에서 도망갔다고!”그 말을 듣자 부주성이 눈살을 찌푸렸다.“도망갔다고? 말도 안 돼. 하늘이 성격으로는 절대 그런 짓 못 해.”부주성은 임하늘을 잘 안다고 믿었다. 임하늘은 작은 토끼처럼 순했고, 부주성의 어떤 말에도 반박하지 않았다. 부주성이 정한 일에 반대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부주성도 자신이 지나쳤다고 느낄 때가 있었지만, 임하늘은 여전히 조용히 감싸 주고 이해해 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이를테면 이틀 전, 부주성이 배를 견딜 수 없이 아프게 하는 약을 억지로 마시게 했을 때도 그랬다.나중에 부주성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후회했다.하지만 그는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잘못한 걸 알아도 임하늘에게 가서 사과할 수 없었다.그래서 결혼 5주년인 오늘, 임하늘에게 결혼식을 다시 올려 주려고 했다. 그게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하늘이는 착하고 순해. 이유 없이 식장을 떠날 리 없어.” 부주성의 낯이 차갑게 굳어졌다. 날 선 눈으로 부서라를 바라보며 압박하듯 물었다. “부서라, 대체 무슨 일이야? 사실대로 말해.”부서라는 바로 움츠러들었다. 도움을 구하듯 진은아를 보았다.그러자 진은아가 천천히 걸어왔다. 이어 부주성의 손을 잡고 예쁜 눈썹을 찡그리며 부드럽게 애교를 부렸다.“성아, 오늘 내 생일이잖아.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내 생일만 축하해 주면 안 돼?”진은아는 여전히 새하얗고 풍성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부주성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임하늘을 위해 맞춘 드레스였다.“이 드레스를 왜 네가 입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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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진은아는 거의 히스테리에 빠지면서 무너질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부주성은 차갑게 웃었다.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사람처럼 진은아를 경멸 섞인 눈으로 훑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그런 짓을 한 건 전부 너에게 복수하려고 한 거야.”“예전의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바칠 수 있었어.” “그런데 너는 해외의 별 볼 일 없는 예술가 때문에 망설임 없이 나를 버렸고, 내 연락처를 전부 차단했지.”“너하고 헤어진 뒤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알아? 그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지금 부주성이 진은아를 보는 눈에는 사랑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미친 듯 자라난 증오가 자리 잡고 있었다.“그때부터 맹세했어. 내가 겪은 고통을 몇 배로 되돌려주겠다고.”“네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몰라.”“당장 비행기표를 사서 네 앞으로 가서, 네 눈을 보며 말하고 싶었어. 진은아, 너는 당해도 싸다고.”“하지만 참았어. 단순히 결혼이 불행한 정도로는 내 분이 풀리지 않았거든.” “네 결혼생활이 망가진 건 내가 만든 일이 아니잖아. 네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내 복수라는 실감은 없었어.”“그래서 네가 가장 절망하고 가장 외로울 때를 파고들었어. 겉으로는 지지하고 격려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척했지...” “그래야 네가 용기를 내서 그 무능한 남편과 이혼할 테니까.”진은아는 눈을 크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부주성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이 모든 게 복수였어?”“맞아.” 부주성은 망설임 없이 인정했다. “처음에는 착각하게 만들 생각이었어. 네가 내가 너에게 완전히 빠졌다고 믿게 만든 뒤, 네 생일에 서라를 시켜 웨딩드레스를 입혀 보게 하고...”“오늘 내가 청혼할 거라고 믿게 만들 생각이었지. 하지만 실제로 오늘 결혼식은 하늘이를 위해 다시 준비한 거야. 오늘 밤의 주인공은 임하늘이야!”사실 부주성은 웨딩드레스를 두 벌 맞췄다.두 드레스는 원래 똑같았다. 그런데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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