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남자는 대체 누구야?”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시헌, 너 정말 끝까지 끈질기구나.’ 순식간에 술기운이 깨며 정신이 들었다. “우린 더 이상 할 말 없어.” 나는 배하민의 손을 잡고 걸어가려 했지만, 강시헌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송나은 문제는 이미 해결했어. 세윤아, 제발... 마지막 한 번만 기회를 줘.” “네가 없는 동안, 내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았어. 네가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사람인지 몰랐어, 세윤아.”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를 붙잡았다. 나는 단호하게 그를 끊어냈다. “강시헌, 이제 난 너한테 혐오감밖에 안 남았어. 그러니까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내 등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저 남자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어? 네가 이혼했다는 걸 알고도, 그 남자가 너를 온전하게 받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순간, 배하민이 내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상관없어. 나는 너를 기다렸어. 몇 년 전, 네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어.”“그런데 네가 영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네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배하민의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내 손끝까지 전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시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이혼했지만, 널 원하는 사람이 있잖아. 근데 왜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해?” 강시헌이 다시 다가오려 하자, 나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했다. 그제야 그는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나는 배하민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몇 걸음 걸은 후, 나는 조용히 배하민의 손을 놓았다. “고마워, 내 편에서 이야기해 줘서.” 나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하민이 한 말도, 그가 나를 감싸준 것도, 단지 나를 곤란하지 않게 하기 위한 행동이라
송나은은 계속해서 강시헌이 자신에게 했던 일들을 나열했다. 마치 그것이 그의 사랑이 진짜였다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강시헌은 송나은이 붙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만해, 송나은. 더 이상 나한테 집착하지 마.” 남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내가 네게 잘해줬던 이유? 그건 네가 세윤이의 젊은 시절과 닮았기 때문이야.” 나는 그 순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래서, 결국 나를 대체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네.’ 하지만 그는, 더 가관인 말을 덧붙였다. “세윤아, 처음 널 만났을 때, 넌 정말 순수하고 사랑스러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와의 관계는 익숙해졌고, 더 이상 아무 설렘도 없어졌어.” “그때 송나은이 내 삶에 들어왔고, 나는 그 감정을 멈출 수 없었어.” “하지만 세윤아, 그래도 난 너를 쉽게 놓을 수 없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몇 년인데, 제발... 나랑 다시 시작하자.” 나는 경멸스럽다는 듯 강시헌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 송나은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닦고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럼... 우리 아이는요?”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강 대표님, 정말 우리 아이는 신경 안 써요? 정말 저를 버릴 거예요? 지금 저도 여기서 뛰어내릴 수도 있어요.”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리 난간 위로 올라섰다. 아래로 격렬하게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두 사람, 이미 아이까지 가졌구나.’ 강시헌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힘겹게 내뱉었다. “미안해, 세윤아. 나은이는... 잘못이 없어. 일단 이 사람부터 안정시키고 올게.” 그렇게 그는 송나은을 따라 귀국했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네.’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 모든 게 한심해서 나는 한숨을 쉴
“세윤아, 왜 나를 차단한 거야?” 강시헌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아, 맞다. 그날, 강시헌과의 모든 대화를 삭제하면서 함께 차단했었지.’ 나는 차갑게 시선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강시헌, 나 분명히 말했어. 우린 이미 이혼했고, 나는 네 회사에서 퇴직했어. 그런데 지금 나한테 찾아와서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내 말에 강시헌은 힘겹게 목울대를 넘겼다. 남자의 표정이 흔들렸다. “우리 이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를 오해하고, 화내고, 그 감정에 휩쓸려서 충동적으로 한 거야.” “프로젝트 건도 다 조사해 봤어. 네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 내가 너를 몰아세운 거,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있어?”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혼 확정까지 한 달. 그 사이 강시헌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어.’ 그는 몰랐다. 내가 이혼을 결심한 이유가 단순히 프로젝트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건 그저 7년의 연애와 5년의 결혼을 망가뜨린 마지막 한 방울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강시헌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나에게서 떠났다는 것이었다. “너는 내가 송나은한테 프로젝트를 넘겨서, 그리고 내가 뒤에서 너를 음해했다고 생각해서 이혼한 거라고 믿고 있구나?” 강시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폐소공포증이 있는 나를 깜깜한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내버려두고, 그 시간에 송나은에게 감기약을 가져다준 순간, 나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어.” 강시헌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날 밤을 기억하는 듯했다. 나는 폐소공포증이 있었다. 과거 창고에 몇 시간 동안 갇힌 적이 있었고, 그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을 거야.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강시헌, 이게 내가 한 일인지 당신이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니야? 그리고 송나은한테도 전해. 그런 쓸데없는 짓 할 시간에 실력이나 키우라고.” 나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순간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강시헌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핸드폰에서 번호를 완전히 삭제했다. 메모리 사용량이 너무 커서 휴대폰이 느리게 작동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내던 시간부터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까지 담긴 기록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고, 서로 상처 입히고 입혔던 흔적들이 화면 위에서 하나씩 사라져 갔다. ‘기분이 참 묘하네.’ 어쩐지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나는 휴대폰을 조용히 주머니에 넣고, 외할머니와 삼촌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두 분께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 삼촌은 이미 나를 위해 깨끗하고 따뜻한 방을 준비해 두었다. “세윤아, 방 한 번 둘러봐. 삼촌이 여자들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대충 골랐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는 삼촌. 하지만 방을 둘러본 순간, 나는 삼촌이 결코 ‘대충’ 준비한 게 아님을 알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림 화이트 인테리어. 심지어 조명조차 내가 예전에 말했던 파란색 스탠드였다. ‘삼촌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너무 좋아요, 삼촌. 고마워요.” 삼촌은 그제야 안심한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짐 정리하고 나와. 곧 저녁 먹자!” 가족의 사랑이 다시 나를 감싸 안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집에서 푹 쉬었지만,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제 슬슬 일자리를 구해야겠어.’ 예전엔 강시헌과 함께 살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 실적을 채우고,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 마음
비행기 창문 너머로 도시가 점점 작아졌다. 그제야 정말 떠난다는 실감이 들었다. ‘강시헌이 내가 떠난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깜짝 놀랄까? 아니면... 드디어 날 벗어나서 속이 후련할까?’ 내 기억 속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연인이었고, 최고의 파트너였다.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며, 모두가 부러워했었다. 강시헌은 부모님을 잃고 혼자가 된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앞으로 내가 당신의 가족이 되어줄게.” 하지만 그 후, 그 말은 이렇게 바뀌었다. “부모도 없는 주제에, 가긴 어딜 가겠어?” ‘내게 주었던 위로와 동정은 어디 가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뻔뻔하게 돌아설 수 있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힘든 관계는 끝내는 게 답이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말처럼, 나는 눈을 감고 이 비행기가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길 기다렸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윤아!!”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삼촌이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삼촌의 옆에는... 외할머니. 여전히 따뜻한 눈빛, 여전히 나를 알아보실 정도로 건강한 외할머니의 모습. “우리 세윤이, 외할머니한테 와봐!” 외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주름진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우리 착한 세윤이... 얼마나 힘들었어... 이제 외할머니 곁에 있어. 다시는 아무도 널 힘들게 못 하게 할 거야.”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그 말 한마디가 너무 따뜻해서, 나는 괜히 눈물이 나올까 봐 웃어버렸다. 삼촌은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작에 돌아왔어야지! 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너 혼자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외할머니가 하루도 걱정 안 한 날이 없었어.”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었음에도, 강시헌 때문에 나는 자주 찾아가 만
내일이면 이혼숙려기간이 끝난다. 내일이 지나면, 나는 강시헌과 완전히 남남이 된다. 나는 베란다에 둔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 순간, 손가락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반지였다. 내 눈이 깜짝할 새에 반지가 베란다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숙여 반지를 찾으려 했다. 그때, 강시헌이 내 팔을 강하게 붙잡고,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한 짓 하지 마!” 남자의 눈에는 뚜렷한 걱정과 불안이 서려 있었다. 마치 아직도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반지가 떨어졌어.” 그 반지는 강시헌이가 직접 만들어 준 반지였다. 디자인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지가 떨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주우려고 몸을 숙였을 뿐이다. 강시헌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고작 반지 하나잖아. 새로 사면 돼. 그런 걸로 위험하게 굴 필요 없어.” ‘고작 반지 하나라고...’ 나는 남자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텅 빈 손가락... 강시헌은 결혼반지를 뺀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도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같이 보내자.” ‘얼마만의 결혼기념일이지?’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제대로 보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끝낼 때 끝내더라도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춰 끝내자.’ ...다음 날, 결혼기념일. 나는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갔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강시헌의 도착은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강시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솔직히 말하지? 오기 싫으면, 괜히 시간 낭비하게 만들지 말고.’ 그러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 회사 동료들이 모두 있는 업무용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