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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1화

Author: 임공
아마도 너무 아파서, 순간 착각을 한 걸지도 모른다.

유건은 시연의 눈동자 밑에서 물기 어린 빛을 보았다.

은은하게 흔들리는 빛, 매혹적인 눈망울.

‘혹시... 나 때문에 너무 긴장해서... 울고 있는 건가?’

“후후.”

유건은 저도 모르게 낮게 웃음을 흘렸다.

시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했길래, 웃는 거지?’

“아니야.”

유건은 웃음을 머금은 채, 덧붙였다.

“네가 그러면... 사실은 날 사랑하면서도 괜히 입으로만 부정하는 것 같잖아.”

시연이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유건은 고개를 저으며 자기 말을 부정했다.

“알아, 그건 아니겠지.”

시연은 눈을 깜박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

‘이건... 너무 위험해.’

시연은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 봉합 세트 처리하고 올게요.”

의료 폐기물은 아무 데나 버릴 수 없다.

마수경은 모를 테니, 결국 시연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

“시연아.”

유건이 그녀를 붙잡았다.

“말해 줘.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거야? 내가... 노은범처럼 너를 위해 죽으면, 그때는 다시 날 선택할 수 있겠어?”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시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떨리는 고개를 겨우 내저었다.

“가정은 의미 없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로는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없어요.”

그 말을 끝내고 시연은 유건을 밀어내고 나갔다.

“그렇지.”

뒤에서, 유건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가정 따위, 아무 의미 없지...”

...

다음 날.

시연은 퇴근 후 곧장 은법의 집으로 향해야 했다.

강수희에게서 전화가 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외과 건물을 나서자, 누군가 시연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시연이 고개를 들어 보니, 지난번에 봤던 레오의 딸, 루시였다.

‘또야?’

“하...”

시연은 설명하려 했다.

“아버지도 분명 설명했을 텐데? 그분은 나랑...”

하지만 루시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휘두른 건 아니었다.

루시는 울먹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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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075화

    시연은 하고 싶은 말을 반쯤 내뱉은 채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유건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시연이 하지 않은 나머지 말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올 게 온 거지.’“허.”유건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좋아졌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벌써 깨어난 거야?”그럴 리 없었다.만약 은범이 눈을 떴다면, 그 소식이 자기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었다.“아니에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아마... 깨어날 확률이 크대요.”“치...”시연이 말을 잇기도 전에, 유건은 듣기 싫다는 듯 냉소로 끊어냈다.“뭐야, 아직 깨어난 것도 아닌데 벌써 설레발이야? 날 버리고, 노은범과의 해피엔딩이라도 꿈꾸는 거야?”“유건 씨...”“좀 이르지 않아?”유건의 말투는 이미 까칠하게 날을 세웠다. 시연이 변명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노은범이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깰지 안 깰지도 모르는 거잖아.”그 말은 사실이었다.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그래도... 미리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하.”유건은 씁쓸하게 웃었다.“걱정해 준 거야? 내가 충격받을까 봐? 참, 착하기도 하지. 정말 고맙네.”그 말투엔 가시가 박혀 있었다.이마 위엔 ‘기분 더럽다’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는 듯했다.유건의 그런 태도에, 시연은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게 가라앉았다.‘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지금은... 어떤 말도.’시연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유건은 오히려 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왜 말이 없어?”시연은 멍한 눈길로 유건을 올려다봤다.‘무슨 말을 해야 하지? 무슨 말을 해도... 기분만 상할 텐데.’그녀가 입을 열면, 유건은 열 마디라도 쏘아붙일 기세였다.유건은 울컥하는 심장을 억누르지 못했다.노은범 얘기, 이별 얘기 말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는 게 서운했다.‘좋다, 아주 좋아!’“가자!”유건은 시연의 손목을 덥석 붙잡고 차 쪽으로 끌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074화

    “아...”조이는 곧장 떠올렸다. 엄마 앞에서는 ‘아빠’라 부르면 안 된다는 걸.“아저씨가 내 손 잡고, 하나하나 가르쳐 줬어요!”“그래? 그럼 아저씨한테 고맙다는 말 했어?”“했어요! 아저씨 너무 좋아요!”순간, 시연의 마음은 복잡해졌다.여기서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보였다.유건이 조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얼마나 진심을 다하는지...‘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지.’‘고유건은... ‘아빠’라는 자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그때, 마수경이 다가와 물었다.“대표님, 지 선생님, 저녁 준비됐는데 드시겠어요?”“네.”“밥 먹어요!”조이는 공책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유건에게 달려갔다.“아저씨, 손 씻으러 같이 가요!”아저씨가 상처 때문에 안아줄 수 없다는 걸 아는 조이는, 얌전히 손만 꼭 잡고 끌었다.“가요.”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연의 가슴엔 근심이 더 짙게 내려앉았다.‘언젠가 헤어지게 되면... 조이가 울겠지?’ ‘울 거라는 건 분명한데... 내가 과연 달래줄 수 있을까?’...며칠 후, 시연은 지동성이 남겨둔 지씨 저택을 찾았다.집을 물려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두 채는 이미 세를 놓았고, 오래된 저택만 남겨 두었다. 지씨 저택은 얼마 전에 보수까지 마쳐 두었으니, 들어가 사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강수희가 그렇게까지 분명히 말했으니, 시연도 준비해야 했다.하지만 은범이 깨어난다 해도, 바로 은범의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조이랑 나는...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는 게 맞아.’집 구조나 살림에는 문제 될 게 없었지만, 한 가지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조이의 방.그동안 이 집에 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린이 방은 마련해 두지 않았다.다행히 그건 꽤 간단했다. 가구만 들이면 됐으니까.시연은 SKY 전원주택단지 집에서 조이가 쓰던 침대를 떠올렸다.‘그 침대랑 똑같은 걸 주문해야겠어.’집안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꽤 늦어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073화

    SKY 전원주택단지.“흥!”조이는 토라진 듯 통통한 손을 홱 들어 올리더니, 들고 있던 연필을 던져 버렸다.“안 쓸래요!”도경미가 깜짝 놀라 급히 연필을 주워 들고 달래듯 말했다.“왜 안 쓰니? 이거 봐, 우리 조이가 쓴 거...”그러다 말을 멈췄다. 솔직히 글씨가 영 아니기 때문이었다.‘어떻게 달래야 하지...’도경미가 난감해하던 순간, 2층에서 유건이 내려왔다.조이는 화가 난 탓에 평소처럼 먼저 유건 품에 뛰어들지도 않았다.“왜 그래?”유건은 조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상처가 벌어진 탓에 안아줄 순 없었다.“우리 공주님이 화났네?”“흥!”조이는 볼을 불룩하게 내밀더니, 말도 하기 전에 금세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내 입술을 떨며 입을 열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글씨 못 써요... 난 진짜 바보예요! 으아앙...”점점 울음은 커지고, 조이는 목 놓아 울었다.“울지 마.”유건은 조이가 우는 걸 도무지 못 보았다.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자기 아이가 아닌데도, 조이가 울기만 하면 심장이 쥐어짜듯 아팠다.유건은 두 팔을 벌렸다.“이리 와. 아빠 품으로 와야지.”“아빠!”시연이 없을 땐, 이들 부녀는 더 대담해졌다.포근하게 안긴 조이를 품에 안고, 유건은 조이의 공책을 펼쳐 보았다.요즘 조이는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F를 쓰는 날이었다.“어디 보자... 어떤 글자가 우리 아가 말을 안 듣는 거야?”조이가 힘들어한 건 대문자와 소문자 F였다.“음, 아기 탓이 아니야. 이건 원래 어려운 글자거든.”곡선도 있고, 길게 내려가다 마지막엔 또 위로 살짝 치켜올려야 했다. 스물여섯 개 알파벳 중에서도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자.”유건은 공책을 다시 펴고, 조이의 통통한 손에 연필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감싸 쥐며 함께 움직였다.“아빠랑 같이 써 보자.”유건이 쓰는 글씨는 자연스럽게 흘려 쓰는 꽃체 느낌이 살짝 묻어 있었다. 가볍게 긋는 선이 매끄럽게 이어졌다.“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072화

    곧 레오가 도착했다.“아빠!”루시는 손을 놓고, 달려가 레오에게 안겼다.“루시?”레오는 즉시 얼굴을 찌푸렸다.“왜 또 시연이를 찾아왔어?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 믿겠어? 나랑 시연이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 아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아빠...”루시는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아빠 눈엔 이제 그 사람밖에 안 보여요? 그럼 엄마는요? 엄마는 아프셔서 그냥 아빠가 한 번만 와주길 바라는 거라고요!”“루시.”레오는 난처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나랑 네 엄마 문제는 어른들끼리 해결할 일이야. 넌 끼어들지 마.”“아빠...?”루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엄마랑 부부였잖아요. 정말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구실 거예요?”“루시.”레오는 고개를 저었다.“나랑 네 엄마 일은... 너무 복잡해.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싫어요, 안 돼요!”루시는 얼굴을 감싸 쥐고, 무너져 내리듯 오열했다.“아빠, 왜 이러는 거예요?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엄마랑... 나한테까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루시...”레오는 딸을 끌어안으며 달랬다.“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 딸이야. 그건 변하지 않아.”“아빠...”그렇게 부녀가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시연은 그 장면을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조용히, 소리 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은범의 집에 도착하자, 강수희가 반갑게 시연을 붙잡았다.“시연아, 오늘 부른 건... 앞으로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야.”‘앞으로의 일?’시연은 순간 멍해지며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설마...’ “사모님, 말씀하세요.”“그게 말이야.”강수희는 위층 침실을 가리켰다.“은범이 요즘 상태가 훨씬 좋아졌어. 깨어나는 건, 시간문제 같아.”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녀가 누구보다 기다린 소식이었다.“휴...”강수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서 요 며칠 집안 정리도 하고, 방도 새로 꾸미려고 사람을 알아보고 있어. 네 방이랑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071화

    아마도 너무 아파서, 순간 착각을 한 걸지도 모른다.유건은 시연의 눈동자 밑에서 물기 어린 빛을 보았다. 은은하게 흔들리는 빛, 매혹적인 눈망울.‘혹시... 나 때문에 너무 긴장해서... 울고 있는 건가?’“후후.”유건은 저도 모르게 낮게 웃음을 흘렸다.시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했길래, 웃는 거지?’“아니야.”유건은 웃음을 머금은 채, 덧붙였다.“네가 그러면... 사실은 날 사랑하면서도 괜히 입으로만 부정하는 것 같잖아.”시연이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유건은 고개를 저으며 자기 말을 부정했다.“알아, 그건 아니겠지.”시연은 눈을 깜박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이건... 너무 위험해.’시연은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나... 봉합 세트 처리하고 올게요.”의료 폐기물은 아무 데나 버릴 수 없다. 마수경은 모를 테니, 결국 시연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시연아.”유건이 그녀를 붙잡았다.“말해 줘.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거야? 내가... 노은범처럼 너를 위해 죽으면, 그때는 다시 날 선택할 수 있겠어?”‘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지?’시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떨리는 고개를 겨우 내저었다. “가정은 의미 없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로는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없어요.”그 말을 끝내고 시연은 유건을 밀어내고 나갔다.“그렇지.”뒤에서, 유건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가정 따위, 아무 의미 없지...”...다음 날.시연은 퇴근 후 곧장 은법의 집으로 향해야 했다. 강수희에게서 전화가 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외과 건물을 나서자, 누군가 시연을 불러 세웠다.“저기요!”시연이 고개를 들어 보니, 지난번에 봤던 레오의 딸, 루시였다.‘또야?’“하...”시연은 설명하려 했다.“아버지도 분명 설명했을 텐데? 그분은 나랑...”하지만 루시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그렇다고 손을 휘두른 건 아니었다.루시는 울먹이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070화

    “아니에요!”시연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진심이에요. 당신이 다치길 원하지 않는다고요!” “그래?” 유건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왜 내가 다치길 원하지 않는데?” 순간,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아직 안 끝났어?’ 남자는 멈추지 않고 걸음마다 그녀를 이끌며 말했다.“몰라서 그래? 아니면, 말을 못 하겠어? 그럼 하나만 묻자. 나를 아껴서 그런 거지, 응?” 시연은 답답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 입으로 말해, 내가 걱정된다고!” 유건은 고개를 숙이고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읍...”시연의 동공이 흔들렸다.그 순간, 유건이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이내 표정이 굳더니, 손을 번쩍 들어 가슴을 움켜쥐었다.“왜 그래요?”시연은 가슴이 내려앉았다.‘불길해.’ “허.” 유건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뭐?’‘괜찮긴, 뭐가? 뭔데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봐요!”그의 가슴에 손을 대자, 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함부로 힘주지 말랬죠?! 몇 살인데 말을 안 들어요? 조이는 세 살이지만, 당신은 서른이잖아요!” 가슴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괜찮아.” 유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안 죽어.” 시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런 말만 할 거면, 입 다물어요!” “치.” 유건이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화를 내? 터지면 터지는 거고, 피 나면 피 나는 거지. 어차피 넌 걱정도 안 하잖아.” ‘이 사람이 진짜...’순간,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 갓 아문 상처가 터진 거라 두 바늘은 꿰매야 할 터였다. 마침 그녀도 상처를 꿰맬 줄 알고, 집에 봉합 도구도 있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취약이 없었다.“병원에 가요.”시연은 허리를 굽혀 유건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유건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의사가 왜 이렇게 됐냐고 하면, 뭐라고 말하게?” ‘못 참고 그 일을 했다고 할 순 없잖아?’시연의 얼굴이 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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