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4화

Author: 임공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

‘시간이 생명이야!’

‘3분이라는 골든 타임을 놓치거나, 1초라도 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한 회장님은 여기서 돌아가시고 말 거야!’

시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겠어요? 저한테 2분만 주세요! 한 회장님께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게요!”

1초, 그리고 2초...

시연이 다급해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어서요! 시간이 없다고요!”

일촉즉발의 순간, 유건은 시연을 믿기로 결정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는 그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유건이 손을 놓았다.

시연이 기뻐하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칼이요! 책상 위에 있어요!”

“알겠어.”

유건은 즉각적으로 시연의 조수가 되어 테이블 위의 과일 쟁반에 있던 칼을 챙겨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고 대표님, 제 정신입니까?”

두려움을 느낀 학운의 얼굴빛이 변하기 시작했고, 유건을 붙잡으며 말했다.

“한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고작 이런 여자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요! 혹시라도 한 회장님께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생기면...”

“비켜요!”

유건은 학운의 쓸데없는 말을 들을 겨를이 없어서 팔을 뿌리치며 그를 따돌렸고, 바로 시연에게 칼을 건넸다.

“자.”

“만년필도 주세요!”

시연은 유건이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건은 두말없이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비록 시연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만년필을 받아 든 시연은 신속하게 그것을 분해했고, 펜 뚜껑을 꺼내어 다른 한쪽을 막고 있던 부분도 제거했다. 그래서 만년필은 이내 양쪽이 뚫린 튜브가 되었다.

시연은 한강우의 목덜미를 만지며 빠르게 위치를 잡았고, 손에 들고 있던 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베인 상처에 만년필을 꽂아 넣었다.

학운과 이 자리에 있던 고용인들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등을 돌릴 뿐이었다.

“구급차는요? 왜 아직 안 오는 겁니까?”

학운이 가정부에게 소리쳤다.

한 가정부가 웅얼거렸다.

“전화는 이미 했는데, 왜 이렇게 늦는 걸까요...”

“이런 식이면 곤란하죠!”

학운이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한 회장님을 병원으로 모셔야 해요. 얼른 차를 대기시키세요! 얼른!”

“아이고, 네.”

가정부가 이 차를 대기시키러 가기도 전에 시연의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

“한 회장님은 괜찮으세요!”

한강우는 바닥에 누운 채 말을 잇지 못했지만, 얼굴은 한결 좋아진 상황이었다.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시연을 바라보며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시연은 입 모양만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한강우는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숨을 돌린 후 다시 시연을 바라본 유건은 깜짝 놀랐는데, 놀랍게도 미소를 짓는 그녀의 입가에 두 개의 보조개가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약혼녀를 외모로만 판단한다면, 손꼽힐 정도로 예쁜 건 사실이란 말이지...’

바로 그때, 도착한 구급차가 한강우를 황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시연의 재빠르고 적절한 응급조치와 방법 덕분에 입원한 한강우의 상태는 이미 안정되어 있었고, 일부의 후속 처치만 진행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고유건, 지시연, 그리고 심학운은 모두 병실 밖을 지키고 서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시연은 무릎을 지탱하고 서 있기 어려워졌다.

“왜 그래?”

유건이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자, 시연이 겸연쩍다는 듯 말했다.

“다리가 좀 아파서요.”

“왜 진작 말하지 않은 거야?”

유건은 그녀를 끌고 의자에 앉혔다.

“의자도 있는데 앉으면 되잖아?”

“아.”

시연은 홀로 앉기가 쑥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의자에 앉자, 위로 올라간 치마 밑으로 두 개의 검푸른 멍이 드러났다.

눈썹을 찌푸린 유건이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왜 이렇게 심해?”

“괜찮아요.”

시연이 치마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며칠 지나면 나을 거예요.”

“억지로 버티겠다는 거야?”

유건은 그녀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너도 의사잖아! 장난해?”

몸을 일으킨 그가 지한에게 손짓했다.

“연고 좀 가져와...”

지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 형님.”

시연은 조금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낯설고 신기해. 고유건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게다가 이전처럼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와서 물었다.

“고유건 씨와 지시연 씨가 누구세요?”

“저입니다.”

“저예요!”

“환자분께서 두 분을 만나고 싶어 하세요. 하지만 아직 환자분의 몸이 완전히 안정되지는 않았으니, 오랜 대화는 삼가주세요.”

“알겠습니다.”

시연을 힐끗 바라본 유건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옆에 있던 학운이 냉소하며 말했다.

“고 대표님, 이번에는 운이 좋으시군요. 한 회장님께서 저를 찾지는 않으시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훌쩍 병원을 떠나버렸다.

학운도 시연이 한강우의 생명을 구한 은혜에 비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인상을 찌푸린 유건이 병실로 들어섰고, 시연이 그의 뒤를 따랐다.

“왔구나.”

한강우가 약한 숨결을 내뱉으며 작은 목소리로 시연에게 말했다.

“아가씨, 고마워, 이 늙은이가 아가씨에게 목숨을 빚졌어.”

시연이 바삐 고개를 저었다.

“과찬이세요. 저는 의사이고,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그녀가 공을 내세우지 않자, 한강우는 더욱 감격했다.

그가 유건을 보며 말했다.

“녀석아, 이 아가씨의 공을 봐서라도 은수 프로젝트는 너에게 맡기도록 하마.”

“!”

유건은 비록 이미 예상했었지만, 한강우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들으니 크게 동요될 수밖에 없었다.

“한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한강우가 고개를 저으며 지시연을 바라보았다.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면, 너 자신에게 해야지. 좋은 안목으로 아주 훌륭한 아가씨를 선택했으니까.”

한강우의 몸은 아직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유건과 시연은 간단히 몇 마디만 더 하고 병실을 나와야만 했다.

유건이 몸을 돌리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의 말투는 아주 정중했다.

이 말을 들은 시연은 단번에 은수 프로젝트가 유건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연은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 기회야!’

그녀가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고유건 씨, 정말 제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제가 다시 실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유건을 바라보는 시연의 두 눈에는 불안감과 떨림이 서려 있었다.

‘내 제안을 받아주려나? 하긴, 내가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받아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1초, 그리고 2초가 흘렀음에도 유건은 긍정과 부정 중에 그 무엇도 나타내지 않았다.

“가자.”

“어디로요?”

“밥 먹어야지!”

한바탕 바빴던 일을 떠올린 유건은 자기들이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

그가 길쭉한 다리를 내딛자, 시연은 그를 따라가지 못해 종종걸음으로 뛰어야 했다.

“고유건 씨, 조금만 천천히...”

‘그래서 내가 다시 실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갑자기 시연이 유건을 붙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지시연!”

정신이 멍해진 유건은 반사적으로 가로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장지영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6화

    병원을 나서자 유건은 시연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원래라면 오늘 회사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여보, 오늘 뭐 하고 싶어?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내가 다 같이할게. 어때?”“좋아.”시연은 유건의 뜻을 알아차렸고,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외래 진료동 로비를 지나 출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그때, 시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시선은 한 방향에 고정돼 있었다.“여보?”유건은 혹시 또 어디가 불편해진 건 아닌지 순간 긴장했다.“왜 그래? 어디 아파?”“아니...”시연은 슬쩍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아는 사람을 봤어. 당신도 아는 사람이야.”“그래?”그녀의 시선을 따라 유건도 고개를 돌렸다.앞쪽 무인 접수기 줄 맨 끝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누군데?”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곰곰이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지었다.“응?”시연은 웃음을 참으며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못 알아보겠어? 연기 꽤 그럴듯한데.”“아니, 진짜로 모르겠어. 누군데?”“그만 좀 해.”시연은 가볍게 그를 흘겨봤다.“아무리 그래도, 당신이랑 한때는 엮였던 사람이잖아. 게다가 다 옛날 일이야. 내가 언제까지 그걸로 뭐라고 할 사람처럼 보여?”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장소미였다.“아... 그 사람이구나.”유건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나 진짜로 연기한 거 아니야. 당신이 말 안 했으면 진짜로 기억 못 했을걸? 그리고 말이야, 내가 장소미랑 뭐, 제대로 사귀었다고 하기도 애매하지 않나?”“흥!”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잘 사귀었는지 아닌지는... 당신이 제일 잘 알겠지.”“제발 좀 그만하고, 살려줘.”유건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몇백 년 전 일 같아. 그땐 내가 참... 멍청했잖아.”본인이 스스로 멍청했다고 인정해 버리니, 시연도 더는 파고들 생각이 없어졌다.애초에 그녀도 크게 마음에 담아둔 일은 아니었으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5화

    두 달 뒤.이른 아침, 유건은 눈을 떴다.그는 시연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발소리도 거의 내지 않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시연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한 달 전부터, 시연에게 입덧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먹는 족족 토했고, 어떤 날은 물 한 모금만 마셔도 바로 울렁거렸다.식욕은 눈에 띄게 떨어져서 언제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배 안 고파.”집에는 양식 요리사도 있고 한식 요리사도 있었고, 게다가 왕성애까지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시연이 혹시라도 ‘이게 먹고 싶다’라고 말만 하면, 바로 앞에 차려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그런데도 시연은 까다로워서 유독 유건이 직접 만든 것만 먹었다.그래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유건은 직접 주방에 섰다.특히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아침 전담이었다. 주방에 들어서자 왕성애가 유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재료는 다 준비해 놨어요.”“네, 감사합니다.”왕성애는 앞치마를 가져와 그의 허리에 둘러주며 말했다.“이건 말이죠. 아기가 엄마 대신 대표님한테 기회 주는 거예요. 조이 가졌을 때는 제대로 못 챙겨줬잖아요. 이번엔 다 보상하라는 거죠.”“알아요, 이모님.”유건은 자연스럽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동작은 익숙했고 불평 같은 건 전혀 없었다.오히려 아내가 자기 음식만 찾는다는 사실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내가 해 준 걸 좋아한다는 거잖아.’잠시 뒤, 시연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상이 완성돼 있었다.식탁에는 시연과 조이가 나란히 앉았다.유건은 접시를 가져와, 모녀 앞에 각각 한 접시씩 놓아 주었다.아내가 임신했다고 해서 조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됐다.오히려 더 신경 써야 했다. ‘동생이 생기면 부모의 사랑이 줄어든다’라는 느낌을 아이에게 주면 안 됐다.물론, 유건과 시연은 그 점을 아주 잘 지켜왔고, 조이는 전혀 그런 불안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조이는 밥을 먹다가 슬쩍 시연을 올려다봤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4화

    이번 D시 여행은 말 그대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그로부터 8개월 뒤, 진아는 병원에서 아들을 낳았다.몸무게 3.5kg가 넘는, 아주 건강한 아이였다.임씨 집안의 첫 손주이자 부씨 가문의 막내 증손.태어나는 순간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온 아이였다.진아는 몸 상태 때문에 자연분만을 선택하지 못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지하는 수술실 밖 준비실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가 태어난 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보호복으로 갈아입고, 장갑을 낀 채 의사에게서 가위를 건네받았다.그리고 아이와 엄마를 잇고 있던 탯줄을 직접 잘랐다.이후, 아이를 품에 안고 진아 곁으로 가서 엄마와 아들을 함께 끌어안았다.“여보, 고생했어.”진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응.”수술실을 나와 진아는 병실로 옮겨졌고, 지하는 그날 밤 내내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곁을 지켰다.그 사이, 양가 어른들은 의료진에게 떡과 감사 선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인사를 마친 뒤에는 백일잔치와 돌잔치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아이 하나 태어났을 뿐인데... 해야 할 일은 끝도 없이 많았다....진아를 보고 나온 뒤, 시연과 유건은 손을 맞잡은 채 병실을 나섰다.“참 좋다.”시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소 지었다.진심으로 진아가 행복해 보여서였다.몇 년 전, 진아가 뇌종양 수술로 아이를 포기하고 사랑마저 포기했던 그 시절에는 아무도 그녀가 이렇게 잘살게 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그러게.”유건은 손목시계를 흘끗 보았다.“아직 시간도 괜찮은데, 조이 데리고 오늘은 밖에서 저녁 먹을까?”“좋... 아!”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발을 헛디뎌 앞으로 휘청였다.“여보!”다행히 유건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아 품으로 끌어안았다.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유건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시연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유건은 곧바로 시연을 안아 들고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선생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3화

    “무슨 말씀이세요?”진아는 순간 멍해졌다.부명주는 답답한 듯 재촉했다.“묻는 말에 그냥 대답해!”“그게... 지난달... 지난달쯤이요?”진아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더듬어 계산해 보며 말했다.“어휴!”부명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너 말이야, 너희 둘이 그런 관계인데 생리가 이렇게 오래 안 왔으면, 조금은 눈치를 챘어야지!”“저는...”진아는 아직도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아프고 나서부터는 그게 계속 좀 불규칙했어요.”“불규칙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부명주는 지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말했다.“너, 믿어도 돼. 쟤 저렇게 토하는 거, 다 너 때문이야.”“네?”진아는 눈을 크게 떴다.“설마요?”“‘설마’는 무슨 ‘설마’?”부명주는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애들은 참... 경험이 없어. 사이 좋은 커플에서 여자가 임신하면, 남자가 대신 입덧하는 경우도 있어!”그러면서 손을 내저었다.“뭐 하고 있어? 당장 병원 가서 검사부터 해!”“아... 네.”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왔을 때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내가 뭐랬어?”부명주는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활짝 웃었다.“딱 봐도 임신이잖아.”그리고 진아와 지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두 사람, 이렇게 오래 질질 끌었으면 됐다. 아이까지 생겼는데, 이제 빨리 살림 합쳐. 애도 태어나는데 부모가 따로 살 순 없잖아.”“아...?”진아는 입을 벌린 채 자기 배를 내려다봤다.“진짜... 생긴 건가?”지하 역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는 진아의 손을 꽉 잡고, 어쩐지 얌전한 새색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진아, 그럼 우리... 우웁...”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는 다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그 모습을 본 시연은 번쩍 고개를 들어 유건을 바라봤다.“방금 봤어?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아?” “내가 왜?”유건은 억울한 표정이었다.“왜냐고?”시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난 조이 가졌을 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2화

    우주는 키가 커서 조이를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려놓을 수 있었다.어디를 가든 조이는 한 발짝도 걷지 않아도 됐다.그게 너무 좋은 조이는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나 여기 소속이야! 여긴 진짜 천국이야!”그 말이 퍼지자 어른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시간이 흐르면서 하객들도 하나둘씩 도착했다.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오래된 저택 안에는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렸고, 우주는 다시 한번 시연의 손을 잡고,신부를 신랑에게 데려다주었다.그는 유건 앞에 서서 또박또박 말했다.“매형, 누나... 잘 부탁해.”이제는 말도 예전보다 훨씬 또렷해진 소년이었다.“걱정하지 마.”유건은 자기 신부의 손을 맞잡았다. 그 뒤를 조이와 케빈, 두 화동이 따라오며 하늘 가득 꽃잎을 흩뿌렸다.이어서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되자 시연이 크게 외쳤다.“던질게! 하나, 둘, 셋!”두 팔을 뒤로 크게 휘두르자 부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그 꽃다발은 정확히 지하의 손에 떨어졌다.“결혼! 결혼! 결혼!”모두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지하는 꽃다발을 들고 미소 지으며 진아를 바라봤다.진아는 웃으며 입술을 삐죽였다.“나를 왜 봐? 축하해.”지하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을 뿐, 억지로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그날 밤의 피로연은 한밤중을 훌쩍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주인과 손님들은 그제야 하나둘 자리를 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진아는 정말로 녹초가 되어 침대에 눕자마자 깊이 잠들었다.그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깼다.어렴풋이... 욕실 쪽에서 지하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야...”진아는 비몽사몽인 채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그곳에서 지하는 변기를 끌어안고 토하고 있었다.“왜 그래?”진아의 잠은 단번에 달아났다.그녀는 급히 쪼그려 앉아 지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왜 이렇게 심하게 토해?”“모, 모르겠어...”지하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사실 그는 이미 몇 번이나 토했고, 그동안 진아는 깨지 못했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71화

    원래 시연의 생각은 다시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하지마 그 일은 이미 부명주의 손에 넘어갔고, 거기에 레오까지 합세하니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부명주와 레오는 오래도록 딸을 향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왔다.이런 기회가 왔는데, 어떻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덧붙이자면, 레오는 반년 전 예희주와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마쳤고, 그다음 날 바로 부명주와 혼인신고 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법적으로도 부부가 되었다.레오와 예희주 사이에 이어졌던 20년이 넘는 질긴 인연은 마침내 하나의 결말에 도달했다.적어도 레오와 예희주는 두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레오와 부명주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CA국의 이름난 인사 중, 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참석했다.레오는 마침내 오랜 한을 풀었다. 젊은 시절부터 사랑해 온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고, 부명주 역시 당당하게 레오의 곁에 설 수 있게 되었다.그 결혼식에 시연과 유건도 휴가를 내고 참석했다.두 사람이 마침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시연과 유건 역시 진심으로 기뻐했다.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면, 부명주와 레오는 ‘딸에게 보상한다’라는 명목 아래, 원래는 소규모로 하려던 친척 중심의 피로연을 결국 정식 결혼식으로 바꿔 버렸다.앤더슨 가문에 가장 넘쳐나는 건 돈이었다.돈이 있는데,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레오는 하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숙소를 준비했고, 결혼식장은 전문가를 불러 따로 연출했다.연회는 말할 것도 없고, 시연의 웨딩드레스만 해도 여덟 벌이었다.거기에 유건의 예복, 들러리 진아의 드레스, 화동 조이와 케빈의 의상까지...준비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부명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조금도 힘들거나 짜증스럽지 않았다.부명주에게 이 모든 분주함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다.하객들보다 먼저 시연네 가족이 도착했다.신랑 신부가 직접 준비해야 할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함께 도착한 사람은 진아와 지하였다.“와...”진아는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말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219화

    유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급히 시연을 놓아주었다.두 사람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다행히도 어둠이 그것을 가려주고 있었다.“꼴좋다.”유건이 낮게 욕처럼 내뱉었지만, 목소리에는 나무람보다 걱정과 애틋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오후에 데였으면서, 지금까지 참고 있다가 약 사러 나온 거야?”이 늦은 시간에 시연이 나선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그만큼 화상을 심하게 입은 것이다.시연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억울함이 묻어난다.“계속 바빠서... 생각이 안 났어요.”“어디 보자.”시연의 젖은 눈망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259화

    “아저씨, 조이 배고파요.”“그래?”레오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아저씨가 지금 맛있는 거 만들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네!”옆에서 지켜보던 부명주는 견디기 힘들 만큼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손을 내밀며 말했다.“아저씨는 요리해야 하니까, 조이는 이리 오면 안 될까?”조이는 아직 부명주가 익숙하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부명주가 체념하려는 순간, 두 팔을 쭉 내밀었다.“안아줘요!”“어머...”부명주의 눈가가 순간 젖어 들었다. 조이를 품에 안는 그녀는 마치 유리로 된 보물을 안듯 조심스러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195화

    시연보다도, 진아는 그 여자와 한 번 더 마주친 적이 있었다.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이미 희미했지만, 한 장면만은 또렷했다.그날 지하는 여자친구의 짐을 가득 들어주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다정하게 챙기는 모습은, 분명 사랑스럽고 따뜻했다.“진아야.”진아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자, 시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마저 차갑게 식어 있었다.“진아? 왜 그래?”정신을 차린 진아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괜찮아.”스스로 말에 힘을 실어 보려 억지웃음을 지어 보았지만, 그 웃음은 울음보다도 더 서글펐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212화

    시연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 결국 욕설이 터져 나왔다.“개자식!”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남자는, 누군가를 대체품으로 여기는 자였다.‘진짜 사랑은 좇을 용기도 없으면서, 애꿎은 여자를 붙잡아 옭아매다니.’‘뭐가 잘났다고? 결국 진짜 사랑 앞에서도, 대역 앞에서도 똑같이 비겁할 뿐이야.’“그럼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어떻게 하긴.”진아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냉소했다.“헤어지는 건 당연하지.”“부 대표가 동의 안 한다고 했잖아?”“오늘 안 한다고, 내일도 안 한다고, 그게 영원히 안 한다는 뜻은 아니잖아.”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