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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Author: 임공
서재.

유건은 심란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불을 붙이려다가 그대로 멈췄다.

‘시연이는 임신 중이잖아. 담배 냄새를 맡기 싫어서...’

‘나한테 집 안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었는데...’

‘정 피우고 싶으면 베란다나 마당에 나가서 피우라고 했어.’

이렇게 생각한 유건은 괜히 더 답답해져서, 손에 든 담배를 대충 던져버렸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주지한이었다.

“무슨 일이야?”

[형님.]

지한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었다.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쯧.”

유건은 이미 짜증이 쌓인 상태였고, 질질 끄는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안 할 것 같으면 전화는 왜 했어?”

[네, 형님.]

지한은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만,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는 못했다.

[형님, 그 ‘머리핀’ 기억하세요?]

‘머리핀?’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쥔 라이터를 굴렸다.

“설마... 나비 머리핀?”

[네, 형님.]

그때, 유건은 경매에서 낙찰받아 ‘나비 공주’에게 ‘나비 머리핀’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나비 머리핀’은, ‘나비 공주’와 연락이 끊긴 뒤, 유건이 유일하게 그녀를 찾아낼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지만, ‘나비 공주’에 대한 흔적은 물론, 그 ‘나비 머리핀’조차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건은 어쩌면 두 사람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다고 체념했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 일은 언급하는 거지? 혹시...?’

“계속 말해.”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형님,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그 ‘나비 머리핀’... 흔적을 찾았어요.]

유건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어디서?”

[얼마 전에, 그 머리핀이 암시장에 나왔습니다.]

“흥!”

유건은 가볍게 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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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3화

    시연은 상황을 파악하고 왕성애에게 말했다. “제가 부를게요.” “그럼 저는 먼저 내려가서 준비할게요.” “네.” 시연은 몸을 돌려 서재 문 앞에 선 후,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문 안 잠갔어!” 낮고도 분명한 남자의 목소리... 그 안에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시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문을 밀고 들어갔다. 책상 뒤쪽, 유건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두 다리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채. 그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뭔가를 보고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바쁜 업무 중일지도 몰라서 시연은 다가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바빠요? 밥은 먹어야죠.” 그러나 유건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안 먹어.” “왜요?” 시연은 유건의 고약한 성격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밥을 거르는 건... 정말 너무 유치하지 않나?’ “밥부터 먹어요.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그 말에 유건은 예상치 못한 듯 눈을 들었다. “오, 그럼 우리 지 선생님도 내가 떼쓴다는 걸 아는 건가?” “알죠.” 시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모시러 온 거잖아요.” “그게 다야?” 유건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더 어떻게 해야 해요?” ‘이 사람,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시연의 태도에 자극받은 유건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안 먹는다니까! 나가!” 그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고함쳤다. 그 소리에 시연은 두 걸음 물러섰지만, 곧바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 먹으면 말든가! 대체 뭔데 이 난리야?’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밥 먹을 거예요, 말 거예요?” 이번에 유건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아예 무시했다.‘그래... 알아서 해라.’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단호하게 돌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 심지어 문까지 살짝 닫아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문이 닫히는 순간, 유건은 한 초 정도 멍하니 굳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4화

    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모님, 제가 한 번 더 가볼게요. 그런데 장담은 못 해요.” “당연히 효과가 있을 거예요! 유건 도련님, 지금도 사모님이 오셔서 달래주길 기다리고 계실 거라니까요!” 시연은 마지막 한 숟갈까지 국을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똑같이 문을 두드렸다. “또 무슨 일이야!!” 안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거칠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시연은 잠시 주저했지만,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안을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짧은 사이에 방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화가 난 거예요...?” 책상은 엉망이었고, 바닥엔 컴퓨터, 서류, 책, 재떨이, 장식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유건은 소파에 몸을 기댄 상태였다. 왼손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고, 오른손엔 라이터를 쥐고 있었다.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하면서. ‘담배 피우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건가...?’시연은 문득 깨달았다. ‘이 남자, 단 한 번도 내 앞에서는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것 같아.’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불편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 고유건 씨의 성질이 더러운 건 맞지만, 그만큼 세심한 면도 있는 건 인정해야 해.’ 시연은 조용히 다가가 남자 앞에 섰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밥 먹어요, 네?” “오?” 유건이 비웃듯 낮게 웃었다. “뭘 잘못했는데?” “아이고...” 시연은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말했다. “나랑 지동성,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앞으로도 그런 관계가 될 일은 절대 없을 거고요.”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유건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예요. 대체 뭘 더 묻고 싶은 건데요?” 시연은 쓰게 웃었다. “그 사람, 그냥 내 오랜 지인일 뿐이에요. 당신이 생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5화

    마치 홀린 듯, 시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손끝이 자연스레 유건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고, 천천히 그에게 응답했다.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화르르 불타올랐다.그러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시연이 나지막이 물었다. “배 안 고파요? 밥부터 먹어요, 네?” “응...” 유건 역시 더 이상 참을 자신이 없었다. 더 가면, 선을 넘어버릴 것 같았으니까.그는 그대로 시연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문을 열고 나섰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왕성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그녀는 한참이 지나도 시연이 내려오지 않길래, 혹시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올라와 본 참이었다. ‘아니, 이건 대체 뭐야?!’ 하지만 곧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유건 도련님, 사모님... 저녁 준비 다 됐어요. 어서 내려가세요.” 시연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유건의 어깨를 치며 내려가려 했다. “내려줘요!” 하지만 유건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고생 많았어요, 이모님.” 그러면서도 품 안의 시연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대로 그녀를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가만히 좀 있어. 부부가 집에서 좀 안고 있겠다는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해?” “됐어요! 난 당신처럼 뻔뻔하지 않다고요!!” 왕성애는 조용히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서재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얼어붙었다. “어머나, 세상에!”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들, 바닥에 떨어진 컴퓨터와 의자, 깨진 재떨이... ‘유건 도련님의 성질, 정말 장난 아니네...’ ‘저 난리를 치고도 꼭 껴안고 있다니...’‘젊은 부부, 참 다이내믹하네.’ 다음 날. 시연은 늦잠을 잔 뒤, 오후가 돼서야 강울대병원으로 출근했다. 오전에 쉬었던 만큼, 진료 시간이 되자 예약된 환자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손짓하며, 컴퓨터에서 환자 정보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6화

    유건에게 자신의 밉고 추한 모습을 들킬까 두려워서였을까? 소미는 결국 그렇게 떠나버렸고, 아예 포기해 버렸다. 왜냐하면 소미에게 체면이란, 자신을 낳아 기르고 스무 해 넘게 사랑해 준 아버지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태연히 내뱉을 수 있지?' 시연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자신이 지동성을 구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쳐도, 소미가 지동성을 모른 척한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소미는 진료실을 나와 두리번거렸다. 역시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정기환이 서 있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유건이 지시연한테 보디가드를 붙였다고?’ ‘그렇다면, 지금... 고유건한테 지시연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건가?’ ‘그 남자,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소중히 여긴 적이 없어!’ ...어느새 여섯 시 반이 되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시연은 마지막 환자까지 진료를 마쳤다. 다행히, 유건도 오늘은 꽤 바쁜 모양이었다. 둘은 일곱 시에 강울대 후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시연은 짐을 정리하고 나서도 시간이 아직 여유로웠다. 여기서 강울대 후문까지는 걸어서 십 분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어깨에 가방을 멘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후문 앞, 바로 옆에는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시연은 특별한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한 베이커리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유리문 너머로 갓 구운 에그타르트를 진열대에 올려놓는 직원이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익숙한 저음과 함께 따뜻한 체온이 등 뒤에 닿았다. 시연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익숙한 페퍼민트 향의 오드콜로뉴. 바로 유건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 품에 안긴 채 가리켰다. “저기, 에그타르트...” “먹고 싶어?” 시연은 한참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7화

    “뭐 잃어버렸어요?” 시연도 궁금해했다. “라이터.” 유건이 손짓으로 크기를 가늠하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쓰던 거.” “아...” 시연은 어렴풋이 기억났다. “집에 두고 온 거 아닐까요?” ‘어제저녁에 서재에서 본 것 같은데...’ “아니야.” 주머니를 뒤져보다가 결국 포기한 유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회사에서 나올 때까진 있었어.” 그 라이터를 유건이 꽤 애착을 보이는 물건이었다. “할아버지가 내 생일 선물로 주신 거거든.” 그래서 그는 더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 있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속상할 수밖에 없으니까. “차 안에 두고 내린 거 아닐까요?” 시연은 먹던 에그타르트를 잠시 내려놓고 음식 포장 용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차에서 한번 찾아보자고요.” “그래.” 둘은 차로 가서 꼼꼼히 뒤져봤지만, 없었다. 유건은 한숨을 내쉬며 아직도 라이터를 찾고 있는 시연의 손을 붙잡았다. “됐어, 그만 찾자.” 그는 이미 잃어버렸다고 확신한 후, 찾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듯했다. 시연은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냥 말없이 있었다. “뭐야, 왜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지어?” 유건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에그타르트 포장박스를 열면서 말했다. “당신이 먹는 걸 방해했네. 어서 먹어. 식으면 맛없잖아.” 그러면서 옆에 있던 에그타르트의 겉 부분을 주워 입에 넣었다. 그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시연은 알았다. 그 라이터는 유건에게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건 할아버지인 고상훈, 유건의 유일한 가족이 선물해 준 것이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생일이 언제였더라?’시연은 갑자기 아주 알고 싶어졌다.그날 밤. 본가로 돌아온 시연은 유건이 샤워하는 틈을 타 조용히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냈다. 거기에 유건의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18일...” 시연은 중얼거렸다. “곧이네?”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8화

    시연이 가장 고민되는 건 역시 생일 선물이었다. ‘뭘 주면 좋을까?’ ‘그 사람한테 부족한 게 있긴 할까?’ ‘옷? 명품 시계...?’ 이런 것들은 유건이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시연에게 살 돈조차 없을 터였다. 물론, 결혼 후 유건이 다시 시연에게 가족 카드를 넘겨주긴 했지만, 남편의 돈으로 선물을 사는 건, 시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문득 시연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 있었다. ‘맞다! 라이터!’ 마침 얼마 전에 유건이 라이터를 잃어버렸으니, 그것이 가장 적합한 선물일 터였다. 게다가 라이터라면 아무리 명품이어도 터무니없이 비싸진 않을 테니, 웬만하면 시연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썩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유건이 잃어버린 건, 고상훈이 사준 것이었으니 말이다.‘의미가 중요한 물건이었는데, 단순히 새 걸로 대체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그녀는 점심때 임진아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점심 약속을 잡고, 둘이 식당에서 만났다. 진아가 자기 카드로 계산하려 하자, 시연이 막으며 말했다. “내가 살게. 부탁할 게 있어서.” “오?” 진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고, 트레이를 들고 자리 잡은 뒤에야 물었다. “그래서 무슨 부탁인데?” “너희 집 공장에 좀 들어가게 해주면 안 될까?” 시연은 진아 입에 미트볼 하나를 쏙 집어넣으며 말했다. “응?” 진아는 볼이 빵빵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지.” 진아네 집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재벌까진 아니어도 가족끼리 넉넉하게 살고 있었다. 그녀는 궁금한 듯 물었다. “근데 거긴 왜 가려고?” 공장에는 대부분 중장비가 있는데, 시연은 지금 임산부였다. “히히.” 시연이 눈을 빛내며 웃었다. “라이터 하나 만들려고.” 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이터? 그걸 왜 직접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09화

    유건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 확인 전화? 내가 어디서 사고라도 칠까 봐?]그는 짧게 웃고는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당연히 집에 들어갈 거야.]유건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으니, 늦더라도, 밤을 새우더라도, 결국 집에 돌아가 아내 곁에서 자야만 했다. 시연은 괜히 찔리는 마음에 말했다. “그럼, 먼저 끊을게요.” [그래, 잘 자.] 전화를 끊은 후, 시연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단순히 확인차 전화한 게 아니야. 그 사람이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해서 전화한 건 더더욱 아니고...’그 순간, 그녀는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혹시 임신해서 예민해진 걸까?’ ‘그저 느낌이면 좋겠는데...’ 이태길.검은색 벤틀리가 길목에 멈춰 섰다. 이곳은 오래된 구도심이라 골목이 좁아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형님,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시면 됩니다.” 주지한이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유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고, 지한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 지한은 암시장에 ‘나비 머리핀’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드디어 정보를 얻었다. 지한은 상당한 금액을 들여 판매자의 정보를 사들였고, 거래 장소를 이곳으로 잡았다. 만남의 장소는 판매자가 지정했다. 연락도 철저히 온라인을 통해서만 이뤄졌고, 신원도 철저히 감췄다. 암시장 거래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형님, 저기입니다.” 눈앞에는 작은 찻집이 하나 있었다. 외관은 허름하고, 별 특징도 없어 보였다. 유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지한은 유건을 곁에서 지켜보며, ‘형님’의 긴장한 기색을 알아챘다. ‘형님이 긴장하는 건 당연해.’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어쩌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나비 공주’와 마주할 수도 있을 테니까.’ 지한은 유건이 소미와 시연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몰라도, ‘나비 공주’만큼은 특별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10화

    지한은 냉소를 지으며, 슬쩍 눈짓으로 출구 쪽을 가리켰다. “저희 쪽 사람들이 주 사장님을 경찰서에 넘길 겁니다. 어차피, 그 머리핀은 주 사장님의 것이 아니니까요.” 순간, 얼굴 굳은 주완식이 목이 타는 듯,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게 내 것이 아니라는 걸?”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말하시죠!” 지한이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쳤다. “말하겠습니다! 말하면 되잖아요!” 주완식은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 그는 애초에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약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지한이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훔, 훔친 겁니다!” ‘훔쳤다고?’ 유건과 지한이 눈을 마주쳤다. 그 ‘나비 머리핀’이 정말 주완식의 것이 아니라면, 그의 가족이나 친구의 것도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유건이 말하기도 전에 지한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누구한테서 훔친 거죠?” 유건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답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그, 그게...” 주완식은 난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장난합니까?” “아, 아니요! 정말, 정말 모릅니다!” 주완식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유건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누구 건지 알았으면, 애초에 훔치지도 않았을 겁니다!” “어디서 훔쳤죠?”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설마, 그것도 모르는 겁니까?” 이번엔 주완식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압니다.” 그는 기억을 더듬는 듯 말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여자였습니다. 그때 화장품 파우치랑 같이 훔쳤는데, 처음엔 지갑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최소한 핸드폰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헛소리 집어치우세요.” 지한이 유건의 표정을 살피고는 단호하게 끊었다.주완식이 제공하는 정보로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이 도시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하루에 얼마나 많겠는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대체 어

Pinakabagong kabanata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0화

    ‘생명이 장담 못 할 수도 있다니...’유건은 상상도 못 했던 진실이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유건의 눈매엔 서리가 맺힌 듯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턱선은 단단히 굳었고, 두 손은 무의식중에 꽉 쥐어져 있었다.‘결국, 내가 시연이를 제대로 못 챙겼구나...’그 순간, 오선화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사실 전에 사모님께 말씀드린 적 있어요. 일 그만두고 푹 쉬시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태아랑 본인만 생각하시라고요. 그랬으면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었어요. 근데... 사모님이 거절하셨죠.”‘왜 거절했어? 시연아.’유건은 더 이해가 안 됐다.그때, 안쪽 진료실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오선화가 바로 유건 쪽을 향해 조용히 일렀다.“고 대표님, 사모님 나오십니다.”유건은 깊은 숨을 들이쉰 뒤, 표정을 최대한 평정심 있게 정리하고는 자연스럽게 시연 앞으로 다가갔다.“다 끝났어. 오선화 교수님이 그러는데, 특별한 건 없대.”시연은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살짝 펴며 말했다.“그래서 괜찮다고 했잖아요. 굳이 병원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요.”하지만 속으론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괜찮아서...’“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유건은 조심스레 시연의 팔을 감싸며 말했다.“가자. 오선화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가자.”“교수님, 수고하셨어요.”“두 분, 안녕히 가세요.”...돌아가는 길. 차 안은 무겁도록 조용했다. 유건은 말없이 운전대를 잡은 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시연을 집으로 데려가는 중이었다.도착하자, 먼저 내린 그는 시연 쪽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주었다.시연은 남자의 얼굴을 힐끔 보았는데, 표정은 어둡고, 눈빛엔 깊은 생각이 깃들어 있었다.‘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장소미랑 문제 생긴 거야?’ ‘혹시... 또 안 좋은 소식 들은 건가?’시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나 혼자 올라가도 돼요. 오늘 밤, 내가 시간을 뺏었잖아요.”그 말에,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9화

    “시연아!”유건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시연을 그대로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눈을 떼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 눈동자에는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어디 아파? 또 불편해?”시연은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또야... 이 어지러운 느낌...’ ‘눈앞이 자꾸 흔들려...’세상이 좌우로 출렁이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어지럼증이 다시 찾아왔다. “시연아?”아무런 대답 없는 시연에 유건의 불안은 점점 커졌다.“조금만... 잠시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잠깐 기다리자고? 이 상태에서 어떻게 기다려?’유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고, 두 팔로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며 말했다.“기다릴 수 없어. 병원 가자.”시연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유건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재빨리 차로 향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그가 평소 신뢰하던 사설 산부인과였다.예약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오늘 밤 근무는 오선화 교수였다. 시연은 검진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유건 앞에 오선화가 나타났다.그녀는 양팔을 가볍게 감싸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건을 훑었다.“어머, 고 대표님. 그렇게 바쁜 분이 오늘은 웬일이세요?”그 말투에는... 분명한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유건은 바로 기억해 냈다. 며칠 전, 오선화 교수에게 전화가 온 적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시연과 냉전 중이던 그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땐 감정이 너무 엉켜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그리고 바로 표정을 차분히 가다듬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교수님, 지난번 연락하셨을 때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됐어요.”오선화는 쿡 웃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고 대표님이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고 대표님의 아내와 아이에게 해야죠.” ‘그게 무슨 뜻이지?’유건은 직감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그 말의 속뜻을 읽으려는 듯,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교수님, 돌려 말하지 마시고... 솔직히 말씀해 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8화

    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 맑고 커다란 눈엔 어딘가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맴돌았다.“여기 오자고 한 건 당신이니까, 오늘 당신이 사는 거죠?”“응...?”유건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당연하지. 근데 왜 그런 걸 물어?”“그냥 확실히 해두려고요.”시연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고는 아직 옆에 있는 직원 눈치를 보며 작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앞으로 나 혼자선 이런 데 못 올 거예요. 오늘 제대로 배 채우고 가야죠.”그 말에 유건의 손이 잠시 멈칫했고, 표정도 살짝 굳었다.‘앞으로 못 온다니, 왜 이렇게 쉽게 선을 긋는 거야?’“아냐, 네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 데려올게.”그가 조용히 말했다.“말이라도 고마워요.” 시연은 웃었지만,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근데... 굳이 다시 데려오진 마요. 혹시 장소미가 알게 되면...? 아마 속이 터져라 질투하겠죠? 그건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에요.”‘또 장소미...’미간을 살짝 떨던 유건이 입을 열었다.“시연아, 우리 일이랑 다른 사람은 아무 상관 없어.”“네?”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건을 바라봤다. 곧 이해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결국, 장소미 편을 들겠다는 거네. 우리 관계가 여기까지 온 게 그 사람 때문은 아니라는 뜻... 그래, 알아. 다 내 탓이지 뭐.’“나도 장소미를 탓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이혼하는 건... 애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잖아요. 나도 잘 알고 있어요.”유건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게... 네가 알고 있는 전부라고?’‘아니야, 사랑... 없었던 건... 너 하나뿐이었어.’그때, 직원이 음식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고 대표님, 사모님, 실례하겠습니다.”테이블 위에 따뜻한 음식이 하나둘 차려졌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시연은 코끝을 찌푸리며 군침 도는 표정으로 말했다.“먹어.”유건은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고, 곧장 시연이 접시에 반찬을 덜어줬다.직접 국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7화

    병가를 낸 김에, 시연은 아예 집에서 푹 쉬기로 마음먹었다. 임신 후반기인 만큼, 몸 상태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곤란했다. ‘지금은 무리하지 말고, 그냥 자는 게 제일 좋은 휴식이지.’그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요기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낮에도 마찬가지. 계속 잠을 자던 시연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무렵에서야 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커튼을 젖히자, 창밖엔 눈이 이미 멎어 있었다. 하지만 풍경은 오히려 더 쓸쓸하고 차가워 보였다.‘배고프다...’그 순간, 시연은 문득 컵라면이 당겼다. ‘가끔 한 번쯤은 괜찮겠지. 너무 자주만 아니면...’이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달걀도 있고 채소도 조금 남아 있었다. 적당히 끓여 먹기 딱 좋은 상태.그녀가 준비를 시작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유건이었다.“여보세요?”[집이야?]“네, 왜요?”[나 지금 네 아파트 1층이야. 올라갈게.]“알겠어요...”시연은 별다른 거절 없이 대답했다. ‘이혼 관련해서 정리하러 온 거겠지.’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벨이 울렸다.문을 열자, 카멜색 롱코트에 같은 톤의 머플러를 두른 유건이 서 있었다. 워낙 잘생긴 얼굴에 깔끔한 옷차림이라, 말 그대로 ‘탑모델’ 그 자체였다.“들어와요.”시연은 돌아서며 말했다.“슬리퍼가 큰 게 없네요. 그냥 양말 신고 들어와도 돼요. 집이 따뜻해서 안 추울 거거든요.”유건은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았고, 시연은 부엌에서 물을 따라왔다.“여기... 물이에요.”유건에게 컵을 건네며 덧붙였다.“따뜻한 물이에요. 당신 위 약하잖아요. 더군다나 요즘 추워서 찬물 마시면 안 돼요.”순간 눈빛이 흔들린 유건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말했다.“날 걱정하는 거야?”시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그 표정을 눈치챈 유건은 바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마실게.”조용한 공간에, 컵을 탁 놓는 소리가 났고 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6화

    “할아버지, 또 올게요.”시연은 조용히 인사한 뒤 고개를 숙였다.“그래, 그래. 우리 착한 아가.”고상훈은 인자한 미소로 시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시연은 단 한 번도 유건을 보지 않았다. 그저 고상훈에게 인사를 끝내고 곧장 병실 밖으로 돌아섰다.“시연아...”유건이 본능적으로 뒤따르려는 순간, 고상훈의 낮고 묵직한 한마디가 방 안을 가르며 울렸다.“멈춰라!”“넌, 무슨 자격으로 쫓아가냐?”“할아버지...”유건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혼란스러웠다. 머릿속도, 가슴도 엉망이었다.‘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왜 하필 지금... 할아버지는 이렇게까지...?’“따라가지 마.”고상훈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긴말을 내뱉은 뒤의 피로감이 얼굴에 역력했다.그는 유건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네 아이가 너처럼 자라길 바라는 거냐? 커서도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살아가길 원해?”유건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쪼여 드는 듯했다. 숨이 막혔고, 가슴 한가운데가 찢기는 기분이었다.‘나처럼...?’그 말은 유건에게 치명적이었다. 고상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반드시 해야 할 말이기에 던졌다.“한 가지만 약속해라.”고상훈은 더 이상 차가운 말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친, 마지막 당부처럼 낮고 느린 말투였다.“그 여자 연예인? 좋다, 네가 좋다면 만나라. 나도 더 이상 참견하지 않으마. 하지만 내 눈앞엔 절대 데리고 오지 마. 우리 집안엔 한 발짝도 들이지 마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엔 절대로.”‘너는 선택했고, 나는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신, 내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킬 거다.’그 말이 끝나자, 고상훈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인제 그만 가봐. 피곤하구나. 쉬어야겠다.”유건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목은 뜨겁고, 가슴은 무겁고, 머릿속은 멍했다.‘나는 지금, 모든 걸 잃은 건가?’...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시연을 따라 병실을 나섰다. 배가 많이 불러온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5화

    유건은 할아버지의 말에 눈을 크게 떴고,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흥.”고상훈은 비웃듯 콧소리를 내뱉고, 차갑게 손자를 곁눈질했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라서 묻는 거냐?”“할아버지...”“유건아, 난 아픈 거지, 죽은 게 아니야!”단호하게 떨어지는 목소리.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톤이었다.“너, 또 그 여자 연예인이랑 엮였지? 맞냐, 아니냐?”“그게 아니라... 소미 씨가 그때 다쳐서...”유건은 급히 해명하려 했지만, 고상훈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변명 같은 건 필요 없어!”고상훈은 짜증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 시연이랑 따로 산다는 것도... 내가 몰랐을 것 같냐? 결국 다 그 여자 때문이잖아. 그러고도 네 주제에 시연이가 외도했다고 몰아세워?”그 말에 유건은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나는...’고상훈의 시선이 이번엔 시연을 향했다. 그 눈빛엔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시연아, 할아버지가 정말 미안하다.”“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을 막았다. 목이 콱 멘 듯했다.‘이런 말을 들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넌 좋은 아이야.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고상훈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유건을 향해 돌아섰다.“시연이가 바람을 피웠다고? 그건 그냥 핑계야. 네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만든 말이지.”“할아버지...”유건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딱히 내놓을 말도 없었다.‘맞아, 결국 내가 잘못한 거니까.’ “제 잘못입니다.”유건도 더는 변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시연을 오해했고, 다그쳤고, 상처 줬으니 말이다.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됐어.”고상훈은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애초에 넌 시연이랑 결혼할 생각이 없었잖아. 그걸 내가 억지로 밀어붙인 거고. 결국 이 모든 잘못은 나한테 있는 거다.”그는 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4화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도착할 즈음, 시연이 눈을 떴다.“도착했어요?”“거의 다 왔어.”유건은 살짝 아쉬웠다. ‘이렇게 금방 깨다니... 좀 더 자도 되는데.’“조금만 더 누워 있어. 도착하면 깨울게.”“이젠 안 잘래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곧 임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아야, 나야... 응, 나 도착했어. 혹시 골목 입구 쪽으로 나올 수 있어? 눈이 와서 미끄러질까 봐. 고마워.”그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유건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도착도 하기 전에 이미 다 정해둔 거야.’‘결국... 나랑은 끝까지 선 긋겠다는 거네.’차가 골목을 돌자, 시연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저기 세워줘요.”시연은 고개를 돌려 유건에게 미소를 지었다.“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진아가 날 데리러 올 거라서, 이만 여기서 내릴게요.”“그래.”유건은 간신히 목을 축이며 짧게 대답했지만, 혀끝이 씁쓸했다. ‘왜 이렇게 입안이 쓰디쓴 거야...’길 건너, 빨간 롱패딩을 입은 진아가 아이처럼 방방 뛰며 이쪽으로 달려왔다.“시연아!”차에서 막 내리는 시연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거기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우리 아가 다치면 안 되잖아. 아가야, 이모가 왔어!”시연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모! 잘 들려요!” 유건은 차 안에서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연이 진아의 팔짱을 끼고,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그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그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앞자리에서 지한이 힐끔 유건을 보았다. ‘형님이 형수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누가 봐도 뻔한데...’‘왜 그렇게 혼자 아닌 척하는 건지... 참 답답하네.’ 지한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외쳤다. ‘이래서야 어찌 제대로 풀리겠냐고요...’그때, 유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한 번 보고, 곧장 받았다.“네, 할아버지.”전화기 너머로 낮고 단호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3화

    “아...”시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놀란 눈으로 유건을 올려다봤다. 이내 눈동자 깊숙이 깔린 공포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방금... 진짜로 넘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아이까지...’“놀랐지?”유건은 미안함과 자책이 가득한 표정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 사실, 유건 역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놀랐다. 턱 끝을 시연의 머리 위에 살며시 대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미안해, 내 잘못이야.”‘네가 손을 뿌리쳤어도, 내가 끝까지 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너한테 판단을 맡긴 내가 바보지.’잠시 생각을 정리한 유건은 망설임 없이 긴 팔을 뻗어 시연을 그대로 안아 올렸다.“꺅!”몸이 허공에 뜨자 시연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유건의 목을 두 팔로 감았다.따뜻하고 단단한 품속, 시연은 어느새 어리고 여린 고양이처럼 유건 품 안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왜 이렇게... 익숙하고 편하지...?’유건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물처럼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차까지 안고 갈게. 금방이야.”말을 내뱉자마자, 유건은 조금 후회했다. ‘아니, 너무 가깝잖아? 차를 더 멀리 대라고 할 걸 그랬어...’ 지한이 차 옆에 서 있다가 타이밍 맞춰 문을 열어줬다. 유건은 허리를 숙여 조심스럽게 시연을 차 안에 내려놓았다.그녀는 문득, 시트 위에 놓인 작은 쿠션 하나를 발견했다. ‘예전엔 이런 거 없었는데... 설마, 날 위해 준비한 건가?’곧 유건도 차에 올라탄 후, 운전석의 지한에게 조용히 말했다.“출발하자. 그리고 천천히 가. 시간은 충분하니까.”“네, 형님.”차는 조용히 눈길을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밖에선 여전히 눈이 퍼붓는 중이었지만, 차 안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시연이 롱패딩을 벗자, 유건은 바로 담요를 꺼내 그녀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잠깐 눈 좀 붙여.”그 순간, 시연은 남자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정돈된 이목구비, 잔잔한 눈빛. 그제야 의문이 떠올랐다.“근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92화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시연은 유건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냥... 조금 나른할 뿐이에요.”“시연아.”유건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단호하고 냉정한 톤이었다.“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협의하자는 것도 아니고.”그리고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연의 아랫배로 향했다. 그 시선 하나에, 시연은 숨을 삼켰다.“너, 너 자신은 둘째치고... 얘한테까지 무심할 거야?”아이 이야기까지 나오자, 시연의 눈빛엔 망설임이 번졌다.“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일이니까...”‘지금 상황에선 내가 나서야 해...’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데...’유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기다려.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이 문제는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유건은 바로 양석현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결하면서도 공손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양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시연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졌네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네, 감사합니다...”전화기 너머에서 양 교수는 무언가를 길게 말했다. 시연은 가만히 입술을 다문 채 기다렸다. 두 손은 자연스럽게 아랫배에 모아졌다.“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유건은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내려놨다.“양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병가를 내주셨어. 바로 다른 사람을 보내시겠대. 그러니까 너는 그냥 푹 쉬어.” 유건은 시계를 확인했다.“지금 아직 7시도 안 됐어. 대체 인원 도착해서 준비하면 충분해.”세미나는 9시 반 시작이었다. 시간상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시연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았다.“고마워요.”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한마디에 유건의 가슴이 묘하게 저릿해졌다.‘이젠... 우리 사이가 이렇게나 멀어진 건가?’ ‘‘고맙다’ 같은 말이 이렇게 남처럼 들리다니.’“고마워할 필요가 없어. 별것도 아니잖아.”표정 하나 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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