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날 갖고 싶다며? 그럼 내 놀잇감이 되면 돼.” 천지그룹 후계자 천 지안. 그의 앞에 아버지가 부도난 회사를 살려주며 데려온 '담보' 한 별이 나타난다. 지안은 별이를 아버지가 새로 들인 여자라 오해하며 혐오하지만 그녀가 2년 전 자신을 구원한 첫사랑인 줄은 꿈에도 모른다. 한편, 부모님을 위해 스스로 담보가 된 별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안의 서늘한 모욕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하는데. 지키고 싶은 첫사랑을 증오하며 소유하려는 포식자. 잔혹한 오해 속에 갇혀버린 비운의 담보물. 시작: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작하여 전개: 대학생 신분을 거쳐 결말: 직장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View More잠들지 않는 거리, 청담동의 가장 깊숙한 이면.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식지 않는 열기로 뜨거운 이 골목은 화려한 불빛들이 수많은 사람을 붉고 푸른 네온사인으로 적셔 내렸다. 그 무질서한 욕망의 거리 중심부. 대한민국 상위 0.1%의 후계자들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이들만이 발을 들일 수 있다는 시크릿 라운지 블랙 드래곤이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업소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인테리어와 삼엄한 보안. 그곳은 법보다 돈이, 상식보다 권력이 우선시되는 그들만의 은밀한 낙원이었다. 그리고 그 낙원의 정점에는 '밤의 황제'라 불리는 천지안이 있었다.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혹은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시선의 끝에 닿길 갈망하는 지고지섹(至高至色)의 표본. 유명 연예인부터 재벌집 딸들까지 지안의 나른한 눈빛에 중독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기묘한 파괴력이 있었다. 지안은 낮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블랙 드래곤의 대리석 복도를 여유롭게 거닐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맞춤 슈트는 그의 탄탄한 몸매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풀어헤친 셔츠 단추 사이로는 매끄러운 목선이 도드라졌다. 흑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차가운 눈매와 굳게 다물린 붉은 입술은 마치 정교하게 깎아 만든 조각상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가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며 복도를 지나자 지안을 기다리고 있던 율이 초조한 듯 다가와 그의 어깨를 낚아챘다. “야, 천지안! 넌 발에 브레이크라도 달았냐? 왜 이제야 나타나!” “어, 그렇게 됐다. 바깥 공기가 좀 좋길래.” “공기 타령할 때냐? 지금 7번, 11번 룸 애들 너 안 온다고 난리 났어. 특히 유하나, 그 계집애는 오늘 작정하고 온 모양인데 수습 좀 해라.” 지안은 피식, 비릿한 실소를 흘렸다. 지안에게 이곳은 유일한 낙원이었다. 아버지가 돈과 권력으로 여자들을 지배하듯, 자신도 아버지가 물려준 그 잘난 조건들로 여자들을 발밑에 두며 아버지를 비웃는 유희의 장일 뿐이었다. “걱정 마. 유하나 다루는 건 내 전문이니까.” 저벅, 저벅. 7번 룸 문을 거세게 열어젖힌 지안은 언제 차갑게 굴었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선으로 유하나를 바라보았다. “누나, 나 기다렸다면서?” “야! 너 뭐야! 왜 이렇게 늦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나의 옆자리에 앉은 지안은 그녀의 시선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거세게 포개었다. 놀란 하나의 귓가에 낮은 중저음이 감돌았다. “너는 말이야. 화낼 때가 미치게 예뻐.” 그의 가식적인 유혹임을 알면서도 하나는 그의 미세한 떨림에 모른 척 넘어가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지안은 그녀를 감싸안으며 등 뒤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재계의 거물 천지그룹의 저택. 천 회장이 들어서자 비서 실장인 김 실장의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천 회장은 정갈하게 매여 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물었다. “지안이는.” “도련님께서는 아직 귀가 전입니다.” “이 자식,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건가?” 천 회장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본인 역시 수많은 스캔들을 몰고 다녔지만 후계자인 지안이 밤마다 블랙 드래곤에서 에이스 소리를 들으며 노는 꼴은 참기 힘들었다. 그때 김 실장이 조심스럽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회장님, 천지 계열사인 별푸드가 최종 부도 위기입니다. 10년 전 계약하셨던 조항을 검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별푸드? 10년 전, 내가 직접 투자 계약을 체결했던 그곳인가?” “네, 맞습니다. 한 대표의 경영 실책으로 자금줄이 막혔습니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조항에 명시된 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천 회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 그는 별푸드에 거액을 투자하는 대가로 특별한 조항 하나를 넣었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부도 위기 시 채무 이행의 담보로서 외동딸 한별을 천지그룹에 귀속시킨다.‘ “그럼… 이제 데려와야겠군. 한 대표 딸내미 말이야. 열여덟이었나?” “네. 한별 양입니다. 그런데 별푸드 쪽에서 한 별양을 순순히 내어줄까요?” “난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움직일 뿐이야. 부도를 막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쪽에서도 감행하겠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네. 알겠습니다. 별푸드 쪽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김 실장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천 회장이었고 그의 표정은 마치 얼음처럼 냉철하고도 차가웠다. 다음 날 오후, 부모님의 사업 성공으로 항상 넉넉하게 살아온 18살 한 별은 지성과 미모는 물론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일까. 이성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았고 항상 자신감이 넘치며 당당했다. 오늘도 그녀는 친오빠나 다름없는 초롬과 함께 한적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별아, 진짜 나랑 사귀면 안 돼? 내가 우리 학교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어, 안 돼.” 초롬이와 별이의 인연은 어릴 적부터였다. 별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성당을 옮기게 되었는데 초롬이는 그때부터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왜!” “오빠는… 글쎄… 음… 너무~~ 오빠 같아.” 만날 때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쉬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익숙해져서일까. 그녀의 칼 같은 대답에도 초롬이는 수없이 자신을 어필했다.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 남자인데!! 이렇게 수시로 철벽 쳐도 되는 거야?” “오빠가 인기가 많으면 뭐 해. 오빠는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난 나쁜 남자가 좋더라. 차갑고 냉철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남.자.” 별은 장난처럼 말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2년 전 그 여름날의 잔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를 맞으며 성당 벤치에 앉아 있던 그 소년. 그 매서운 눈동자를 떠올릴 때마다 별은 이상한 통증을 느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초롬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애가 타기 시작했다. “나쁜남자가 좋다면 내가 나빠져 볼게.” “오빠가 나빠져 봤자지!!” “어? 너 나 무시하냐? 나 너한테만 착한 거거든.” “거짓말~ 오빠 얼마 전에 사랑 보육원에 봉사활동 간 거 다 알거든? 수시로 가잖아!! 그거 말고도 말해줘? 오빠는 절대 나빠질 수 없어. 천성이 그런걸?” “아니, 도대체 그런 건 어디에서 듣는 거야? 강보롬이 말해 준거야?” “오빠, 자꾸 잊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나 보롬이랑 둘도 없는 베프야. 그리고 오빠랑 나랑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다. 그런 오빠가 남자로 보이겠냐? 2년 전 그때 그 녀석이 딱 나쁜남자 같던데…” “어? 누구?” “눈빛도 매섭고 말투도 차갑던…”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오빤 몰라도 되거든요? 그리고 정확하게 얼굴도 생각 안 난다고.” 초롬의 물음에 별이는 딱 잘라 대답했고 이내 아이스 커피잔을 천천히 저의 입술에 갖다 대었다. *** 집으로 돌아온 별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 숨을 멈췄다. 거실에서는 부모님의 억눌린 울음 섞인 대화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보, 천 회장님이 사람을 보낸대. 천 회장 성격이라면 분명 그 계약을 이행하려 들 거야.” 한 대표의 말에 눈치챈 윤정아의 표정은 금세 근심 어린 표정으로 가득 찼다. “우리 별이를 담보로 잡겠다는 게 말이 돼요? 유흥업소 같은 곳에 팔려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나도 알아! 하지만 별푸드가 무너지면 우린 다 끝이야." 별은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아빠!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담보라니! 계약이라니!”“그 손 치워, 천준휘.” 지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3805호실 전체를 짓눌렀다.준휘는 뻗으려던 손을 멈추고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문턱에 선 지안의 처참한 몰골을 확인한 준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뭐가 궁금해서? 뭘 막고 싶어서 온 건데?” 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아니,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그는 준휘를 지나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별이에게로 달려갔다. “별아, 한별…!” 지안이 떨리는 손으로 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3년 전 차가운 수영장에서 그녀를 안았을 때처럼 지안의 온몸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별이는 멍한 눈으로 자신을 안고 있는 지안을 바라보았다.기억 속에서 처절하게 자신을 부르던 그 남자와 지금 제 앞에 땀에 젖어 서 있는 남자가 겹쳐졌다. “…지안 선배.” 별이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지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기억을 잃은 별이가 줄곧 자신을 불러왔던 그 담백한 호칭.하지만 지금 별이의 음성에는 이전에는 없던 깊은 슬픔과 원망,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리움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지안은 그 짧은 부름만으로도 단번에 깨달았다.별이가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는 것을.자신이 그토록 처절하게 가려왔던 3년 전의 진실이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났음을.지안은 별이를 품에 더 세게 끌어안으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과 그럼에도 그녀를 다시 품에
별이는 홀린 듯 다가가 서류를 꺼냈다. [환자명: 한 별][특이사항: 특정 인물(천지안)에 대한 선택적 장기 기억상실 및 인지 결여] “…이게 뭐야?” 별이의 목소리가 처참하게 떨렸다.3년 전, 7개월이라는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별이는 그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만 생각했다.비록 의식이 없던 그 긴 시간 동안 흑발의 남자가 나타나는 기이한 꿈을 반복해서 꾸긴 했지만 그저 깊은 잠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라 여겼다.그래서였다.보롬의 소개로 지안을 처음 만났을 때 심장이 내려앉을 듯한 익숙함을 느꼈던 것도.별이는 그저 꿈속의 남자가 현실에 나타난 것 같은 기묘한 우연에 홀린 것이라 믿었다.그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강제로 도려내진 연인이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단 한 번도 자신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의심 따윈 해본 적 없었다.그런데 준휘가 던진 서류는 별이가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이 사실은 거대한 구멍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특이사항: 특정 인물(천지안)에 대한 선택적 장기 기억상실 및 인지 결여] 서류에 박힌 자신의 이름과 기억상실이라는 단어가 끔찍하게 엉겨 붙었다.3년 전 깨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온전하다고 믿었던 그 모든 시간이 지안에 의해 정교하게 편집된 연극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지독한 락스 냄새가 역류해 올라왔다.방금 전까지 보롬과 웃으며 지안의 넥타이를 고르던 백화점 쇼핑몰의 쾌적한 공기는 일순간에 증발했다.혀끝에는 갑자기 비릿하고 짠 기운이 감돌았고 귓가에는 둔탁한 수중음이 울리며
평일 오후의 백화점은 화사한 조명과 은은한 향수 냄새, 그리고 쇼핑객들의 여유로운 소음으로 가득했다.그 평화로운 풍경을 깨뜨린 건 명품관 한복판에 나타난 검은 무리였다.칼같이 각 잡힌 검은 정장 차림에 험악한 인상을 풍기는 사내 셋, 그리고 그 중심에서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살기를 내뿜는 율.그들의 등장은 마치 순백의 캔버스 위에 튄 새카만 먹물 같았다.주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길을 터주며 수군거렸고 그 살벌한 시선 끝에는 잔뜩 뿔이 난 보롬이 서 있었다. “오빠,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오빠만 오라고 했지, 누가 이렇게 요란하게 오라고 했어?” 보롬의 날카로운 타박에 율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방금 전까지 조직 업무를 처리하느라 잔뜩 날 서 있던 안광은 간데없고 율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제 뒤에 버티고 선 부하들을 힐끗 보더니 보롬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근처에서 일이 좀 늦게 끝나서 바로 오느라. 얘네도 금방 보낼 거야.” “보내긴 뭘 보내, 이미 다 쳐다보는데!” 보롬의 핀잔에 율은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덩치 큰 사내들에게 눈짓을 보냈다.율의 손가락 하나에 사람을 묻을 것 같던 남자들이 고분고분 보롬의 핑크색 쇼핑백들을 양손 가득 들었다.그 기괴하고도 웃픈 광경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은 카페 안쪽 구석진 자리로 옮겨 앉았다.보롬은 얼음 띄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그제야 율도 조금 전의 어색한 웃음을 지우고 보롬의 표정을 살폈다. “근데 오빠, 별이가 좀 이상해.”
같은 시각, 별이는 보롬과 함께 백화점 명품관에서 지안의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최상급 대리석 바닥이 아찔하게 빛나는 명품관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건조하고도 압도적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계와 보석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서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눈부시게 번뜩였다.별이는 그 압도적인 풍경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채, 오직 지안에게 가장 완벽하게 어울릴 만한 것을 찾는 설렘으로 가득했다.세련된 실크 넥타이를 매만지는 별이의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고, 지안의 냉철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을 떠올리는 그녀의 입가엔 내내 옅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세상의 그 어떤 화려한 보석도, 지금 지안을 생각하며 빛나는 별이의 눈동자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별아, 이 패턴 어때? 지안 선배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지?” 보롬이 즐겁게 넥타이를 흔들어 보였지만, 별이의 시선은 매끄러운 유리 매대 위에서 요란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에 멈췄다.저장되지 않은 번호. 별이는 왠지 모를 서늘한 예감에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한 비서, 천지호텔 총지배인 천준휘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준휘의 낮고 묵직한 음성은 마치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돌덩이 같았다.별이는 반사적으로 주위의 시선과 보롬의 눈치를 살피며,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매장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 총지배인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 “3년 전 사고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줄 게 있습니다.” 별이는 순간 자신의 귀를
reviews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