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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Author: 임공
노은범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시연에게 말했다.

“그래, 나야.”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연회장 안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도 이 연회에 참석하려고 온 거야?”

은범의 말투에는 어딘가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시연이가 왜 이런 비즈니스 파티에 참석할까?’

“응.”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애매하게 두 마디 정도로 설명했다.

“어쩌다 보니, 이 곳의 주인을 구한 적이 있어.”

“한강우, 한 회장님 말이야?”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한 회장님은 내 환자라고 볼 수도 있지.”

“그렇구나.”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건이 전화를 걸어 그녀를 재촉하고 있었다.

시연은 받지 않고 은범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가 계속 날 재촉하네. 먼저 가볼게!”

“천천히 가!”

은범이 말하기도 전에, 시연은 재빨리 후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은범은 어딘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시연아, 나중에 보자.”

...

남쪽 문까지 달려가자 시연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겨우 주지한을 만났다.

“미안해요, 늦었죠!”

지한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형님은 손님들을 맞이하러 먼저 갔어요. 저는 시연 씨 옷 갈아입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시연과 지한은 휴게실에 도착했다. 장소미는 유건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떠나 있었다.

주지한은 탁자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가리켰다.

“이건 형님이 시연 씨를 위해 준비한 드레스예요.”

“예? 그렇군요.”

선물 상자를 열자 시연은 놀란 숨을 들이마셨다.

“엄청 화려한 드레스네요.”

“당연하죠.”

지한은 유건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떠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형님이 특별히 해외에서 주문했어요. 다 디자이너와 보조들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완성한 드레스예요. 전 세계에서도 단 한 벌밖에 없어요.”

시연은 순간 멈칫했다.

‘고유건이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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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1화

    장소미가 여기에 있는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장소미는 고유건의 여자 친구였으니,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 “네가 여기에 왜 있어?” 그러나 이것조차 소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소미를 가장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시연이 입고 있는 그 드레스였다. ‘이 드레스는 분명 내가 조금 전 고유건의 휴게실에서 본 그 드레스인데!’ 시연은 이 모든 것을 알 리 없었고, 그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 “어떤 법에 내가 여기 있지 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시연은 배가 고파 더 이상 소미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지나가는 순간 소미가 시연을 힘껏 잡아당겼다. “지시연, 너 지금 못 가!!” 시연은 당황해서 말했다. “장소미, 너 제정신이야? 당장 이 손 놓으라고!” 하지만 소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시연을 놓지 않고 더욱 악착같이 붙잡았다. “내가 말했잖아, 넌 아무 데도 못 가!” “정말 어이없네!” 시연은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미는 강하게 손아귀에 힘을 줘 시연을 놓아주지 않았다. “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아야...” 팔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내려다보니, 소미의 손톱이 시연의 피부를 깊게 파고들고 있었다. 소미는 시연에게 마치 원수라도 된 듯 턱을 치켜들고 물었다. “너 입은 이 드레스, 어디서 난 거야?” 시연은 어리둥절했다. ‘장소미가 이 일 때문에 이렇게 발광을 한 건가?’ “왜 내가 너한테 그걸 말해야 하지?” “너, 유건 씨와 무슨 관계야?” 소미의 눈빛은 분노로 불타올랐다. “이건 유건 씨가 나를 위해 산 건데, 왜 네가 입고 있는 거야?” “하!” 시연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날카로운 칼처럼. “맞아, 고유건 씨 거야. 그런데 왜 내가 입고 있는지, 네 남자 친구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시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2화

    유건과 은범 둘 다 뛰어난 수영 실력의 소유자라 금방 시연과 소미를 물에서 건져 올렸다. 유건은 소미를 안고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 “소미 씨, 소미 씨, 괜찮아?” “푸!” 소미는 물을 한가득 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유건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유건 씨! 나 정말 무서웠어! 흐흐흑...” 그러나 시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시연, 시연아?” 은범이 시연을 안고 있었지만, 시연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급히 시연을 땅에 평평하게 눕혔다. 바닥에 누워있는 시연을 보고 있는 은범의 심장은 초조하기 이를데 없이 마치 빠르게 두드리는 북소리 같았다. “시연아, 내가 너에게 무례를 범하려는 건 아니야, 미안해...” 그는 먼저 누워있는 시연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은범은 누군가가 어깨를 잡는 강한 힘을 느꼈고,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고유건이었다. “고 대표님?” “비켜!” 유건의 말은 간결했지만, 그의 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은범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 시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가슴압박을 30회 시행한 후 시연의 코와 입을 막고는 머리를 숙여 자신의 입을 그녀에게 맞대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소미는 충격으로 입을 벌리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이 두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은범은 멍해진 채,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유건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반복해서 실시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지만, 마음속으로는 조용히 다짐하고 있었다. ‘지시연! 당장 깨어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당장 이혼이다!! 무슨 이유가 됐든 상관없어!!!’ “콜록, 콜록...” 마치 그의 경고를 들은 듯, 시연은 의식이 돌아오면서 삼켰던 물을 토하며 기침을 했고,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3화

    소미는 눈짓으로 장미리에게 신호를 보냈고, 장미리는 잠시 화를 참으며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떠나기 전, 유건은 은범을 한번 쓱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은?” 둘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은범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노은범입니다. 시연이 친구예요.” 유건은 은범을 잠시 응시하더니, 문득 그를 기억해 냈다. ‘이 사람,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어!’ ‘SYD호텔에서 그날 밤, 호텔 주방에서 우리 둘이 스치듯 지나간 것 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날 밤, 만둣국을 하려고 호텔 주방을 빌렸던 남자가 바로 이 노은범이었네.’ ‘그리고 그 만둣국도 아마 지시연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가까웠어?’ 유건은 잠시 말을 멈추었지만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시연이 지금 자고 있어요. 노은범 씨도 안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아니요.” 은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연이 자고 있다면, 전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네요.” 유건은 속으로 안도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노은범 씨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유건은 소미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 옥상 테라스에서, 유건은 모든 상황을 낱낱이 소미에게 설명했다. “상황이 이래. 지시연은 내 아내야.” 소미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울부짖었다. “그럼, 지... 지 선생님이 유건 씨의 아내였단 말이에요?!” 소미의 내면은 슬픔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시연이 고유건의 아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지시연이 갑자기 돈이 생겨 지우주의 치료비를 낸 것도, 지시연이 고유건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어쩐지, 내가 계속해서 지시연과 고유건 사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도... 이제서야 이유가 분명해졌네!’유건은 휴지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왜 저에게 말하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4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 주지한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시연 씨 깨어났어요.]“그래, 알았다.” 유건이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소미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깨어났으니, 가서 봐야겠어.” “잠깐만요!!” 소미가 유건의 팔을 잡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지금 소미는 유건과 시연이 단둘이 있는 상황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유건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유건 씨, 걱정하지 마요.” 소미는 서둘러 말했다. “저 지 선생님과 싸우지 않을게요. 저도 지 선생님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같은 여자로서 더 쉽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유건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래, 같이 가자.” ... 휴게실. 은범은 침대 옆에 앉아 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시연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가득했다. “괜찮아?” 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종이로 만든 인형도 아닌데, 물에 좀 담갔다고 죽기야 하겠어?” “그런 말 하지 마.” 은범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하게 말했다. “시연아, 그때 내가 얼마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건과 소미가 들어왔다. 시연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즉시 사라졌다. “은범아, 난 괜찮으니까. 먼저 나가 있어.” 은범은 내키지 않았지만, 유건과 시연 사이에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을 알았기에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잘 쉬어.” “응.” “고 대표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은범이 고유건과 스치듯 지나칠 때, 그는 유건에게서 강한 적대감을 느꼈다. 문이 다시 닫히자, 시연이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분이 함께 오셨군요. 꽤 시끌벅적하네요.” 소미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지 선생님, 아까 일은 정말 미안해요.” 시연은 놀랍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뭐라고요?” 그러나 유건이 먼저 나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5화

    시연은 문 앞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콜택시를 불렀다. 이런 소동이 벌어진 지금 와서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장미리와 장소미가 시연을 찾아온 것이다. 장미리는 몇 걸음에 달려와 시연에게 소리쳤다. “지시연! 네가 바로 고유건을 협박해서 결혼한 그 저질 여자였구나! 도대체 뭐가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거니? 고 대표는 우리 소미가 사귀는 남자 친구야!” 시연은 잠시 놀랐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장 여사.” 시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끄럽다’는 말,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 그 말은 장 여사가 할 말은 아니지. 장 여사가 제일 ‘부끄러운’사람이니까. 장 여사가 ‘부끄럽지 않아서’딸이 생긴 거잖아.” “...”장미리는 순간 말문이 막히며 얼굴이 붉어졌다. “너랑 나랑 같니? 난 네 아빠와 진심으로 사랑했어! 넌 그럴 자격도 없어! 고 대표는 너를 원해서 결혼한 게 아니야!” 시연은 속이 울렁거렸지만 참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정말 남녀가 하는 더러운 짓을 말로 포장하긴 하네.” 소미는 치를 떨며 말했다. “지시연, 너 우리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내가 뭐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문제야?”시연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오히려 너희들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네. 너희가 나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지 않았더라면, 난 고유건의 집안을 찾지도 않았을 테니까.” 시연의 눈빛이 흥분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네가 그 사람 여자 친구라는 걸 알았을 때, 난 솔직히 기뻤어.” “...”소미는 충격을 받아 몸이 굳어버렸다. “너 일부러 그랬구나.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거였어!” “그래.” 시연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말이 안 통해!” 소미는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소용없어! 유건 씨가 날 좋아해!” “상관없어.” 시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진심으로 무관심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6화

    [그리고...] 지한이 말을 이었다. “민환이가 그러는데, 아까 장소미 씨가 휴게실에 들렀다고 합니다. 장소미 씨가 거기서 잠시 기다리다가 형님을 만나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더군요.” 그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 장소미가 거기서 미리 그 드레스를 봤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바로 그 때문에 수영장 옆에서 시연을 붙잡고 함께 물에 빠진 것이다! 유건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고, 눈에는 차가운 어둠이 스며들었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연회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소미가 유건을 향해 마주 걸어왔다. 소미는 다급히 유건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유건 씨, 방금 어디 있었어요?”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목이 유건에게 꽉 잡혔다. 소미는 그제야 유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아무 감정도 없었다. 자신의 손목은 유건의 손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 “유건 씨, 무슨 일이에요?” 유건의 표정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물어볼게. 네가 지시연을 수영장 물에 빠뜨린 거 맞아?” “어...?” 소미는 당황해서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네, 지 선생님도 인정했잖아요!” 그때, 유건의 입에서 조용히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긴 눈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그래? 그럼 이 영상을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소미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 영상에는 소미가 시연을 붙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찍혀 있었다. 소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유건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이미 사실이 드러났으니, 소미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전 너무 당황해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그냥 지 선생님과 다투다가 물에 빠진 것만 생각났어요...” 유건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면 물에 빠진 후에, 네가 지시연을 붙잡고 놓지 않은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7화

    “전화 왜 끊었어? 고 대표님이지? 그분, 너 걱정 많이 하시던데.” “걱정은 무슨...” 시연은 가볍게 눈을 들어 은범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 회장님과 마찬가지로, 고유건 씨도 내 환자야.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걱정이지.” 그 말은 은범에게 핑계처럼 들렸지만, 시연은 곧 말을 이었다. “얼마 전 BLUE 앞에서 고유건이 칼에 찔린 사건, 못 들었어? 내가 고유건의 주치의였어.” 이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은범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지만 남자는 남자를 잘 아는 법! 은범은 운전대에 힘을 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그 사람 너에게 무척 신경 쓰는 것 같아. 아마... 너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그 말에 시연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은범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사람 여자 친구 있는 거 몰라? 바로 장소미잖아, 아까 같이 봐놓고선.” 은범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래, 내가 너무 앞서갔나보다, 그렇지?”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불안과 초조함이 있었다. ‘나도 서둘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어떻게든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또 한 번 시연이를 잃을 수 없어!’ 차는 시내로 들어섰고, 시연은 길가를 가리켰다. “나 여기서 내려줘. 여기서 지하철 타면 돼.” 은범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가는데? 내가 데려다줄게. 지하철은 왜 타?” “괜찮아. 나 태산요양병원에 있는 내 동생 보러 가는 길이야. 여기서 꽤 멀어, 너 시간 낭비하게 하기 싫어. 너는 네 볼일 보러 가.” “나 바쁜 일 없어.” 은범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나도 우주를 오랫동안 못 봤어. 같이 가자.” 은범은 차를 계속 몰았고, 시연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부탁할게.” “부탁은 무슨.”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78화

    “우주, 무슨 일이야?” 시연은 방으로 뛰어들어가자, 우주가 핸드폰을 책상 위에 던져버린 것이 보였다. 은범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확인한 후, 시연에게 내밀었다. 화면에는 이미 게임의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상태가 표시되어 있었다! “...” 시연은 또다시 말을 잃었고, 마음속은 우주가 해내 보인 것들 때문에 도저히 차분할 수 없었다. 은범이 말했다.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 중 일부는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우주가 그런 경우인 것 같아.” “음...” 시연은 놀라서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붉어진 눈시울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물이 금세 쏟아질 듯했다.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생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고 난 후, 글을 읽고 쓰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더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시연은 우주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죄책감이 들었다. “정말 그렇다면, 내가 우주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었던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넌 이미 최선을 다했어.” 오랜 세월 시연과 함께해왔던 은범은 시연이 동생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장미리 같은 새어머니와 냉정한 아버지 지동성 사이에서, 시연이 아니었다면 우주는 벌써 버려졌을 것이다. 시연은 자신이 지씨 집안에서 당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우주를 위해 인내하며 살아왔다. 요양병원을 나온 은범은 시연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우주에 대한 일은 내가 전문가와 상의할 테니 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 만약 우주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게 맞다면, 시연은 정말로 은범에게 큰 빚을 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연은 우주를 위해 그 빚을 감수하기로 했다. “은범아, 고마워.” 학교 밖에는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 은범은 시연을 강울대학교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시연이 기숙사로 향하는 중, 핸드폰이 울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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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6화

    “지시연!” 유건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연의 손을 꽉 쥐었다. 그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너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요, 나도 알아요.” 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살짝 올리며 유건을 바라봤다. “내가 당신이 한 말 몇 마디에 감동해서 울컥하고, 기분 좋아서 그 말들 다 들어줄 정도로 철없는 애인 줄 알아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유건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리고 눈동자엔 씁쓸함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나, 진심으로 너한테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어. 진심으로... 너한테...”“하지 마요.” 시연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망설임 하나 없이,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마음, 난 안 받을 거예요.”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멎은 듯 조용해졌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유건은 잠시 말이 없다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거절할 줄 알았어. 하지만 시연아, 내가 널 좋아하는 감정은 네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내 의지로도 안 돼.” 유건은 이내 들고 있던 장미꽃을 시연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 막 비행기로 도착했는데, 마음에 들어?”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에서... 꽃을 보여주면 내가 감동할 줄 아나 봐?’ 시연은 꽃은 쳐다보지도 않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좋아요.” 유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아, 기분 상했나 보네. 오늘은 일단 가주는 게 딱 좋겠어.’ “장미 안 좋아해?” 유건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알았어. 다음엔 다른 꽃으로 할게.” “뭐라고요...?” 시연은 벙찐 얼굴로 유건을 쳐다봤다. ‘지금... 난 그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런데 유건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려,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진아에게 장미꽃을 건넸다. “진아 씨, 이거 좀 꽂아줘.” “네? 아, 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5화

    유건의 말에 시연은 멍해졌다. ‘뭐...?’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반응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말했잖아요. 장소미 때문에 애쓸 필요 없다고...” “장소미 때문이 아니야!” 유건이 더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급함과 답답함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장소미 얘기 좀 그만해. 지금 내가 함께 있는 사람은 너야. 근데 넌 계속 장소미 얘기만 해?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렇게 해서 날 포기하게 하려고?” ‘포기...?’ ‘무슨 포기?’ 순간 얼어붙은 시연의 가슴 한쪽이 덜컥 내려앉았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만해요. 듣기 싫어요.” 시연은 급하게 말을 끊고,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찾았다. 하지만 열쇠를 꺼내기도 전에, 손목이 따뜻한 손에 붙잡혔다. 유건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날 벌주려고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야? 내가 무슨 마음인 줄 진짜 몰라서 그래?” “내가... 뭘 알아야 하는데요?”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지...?’ ‘설마... 아니겠지.’ “좋아해.” 짧은 세 글자가 공기 속에 맴돌며 터졌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어?’ 시연은 입술을 벌린 채, 말없이 유건을 바라봤다. 눈동자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겹쳤다. 유건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시연. 나 너 좋아해.”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지시연,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내 마음을 너만을 향한다고.”27년 인생, 유건에게 고백이란 건 처음이었다. 얼굴이 빨개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볼 안쪽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은 분명했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떨릴 일이야...?’ ‘이런 게 고백이라는 건가?’ 돈 많고, 능력 있는 고유건 대표도 이 순간만큼은 그냥 연애 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4화

    그날 갑자기 셋이 자리를 뜰 때, 성빈한테는 제대로 설명도 못 하고 나왔다. ‘좀 미안하긴 했는데...’ “아냐.” 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평일이잖아. 성빈이 일하는 날이야. 우리처럼 백수들이랑은 다르지.”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시연은 더 고집하지 않았다. 진아는 시연을 위해 산모 요가 클래스에 함께 들어갔다. 영화는 그냥 그랬다. 극장을 나오자 둘 다 하품만 연발. 밖은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는 G시. “으, 춥다...” 진아는 시연의 팔짱을 끼고, 발을 구르며 입김을 불었다. “우리 샤부샤부 먹자! 얼큰한 걸로!” “평소 가던 데로 가자.” “좋아!” 마침 그 식당은 클럽 근처에 있었다. 클럽 쪽으로 들어서자, 진아가 걸음을 멈췄다. “왜?” 시연은 고개를 돌려 진아가 보는 쪽을 따라 바라봤다. 멀지 않은 곳에서, 클럽 안에서 나오는 성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곁엔 젊은 여자가 있었다. 둘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성빈은 여자의 어깨에 여성용 외투를 살포시 걸쳐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세심하고, 약간 고개를 숙인 그 눈빛은... 분명히 다정했다. “진아야.” 시연은 거의 반사적으로 진아의 손을 꼭 잡았다. “응.” 진아는 시선을 거두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봐봐, 오늘 성빈 안 부르길 잘했지. 바쁘잖아, 저렇게.” 시연은 눈썹을 찌푸렸다. ‘성빈이... 연애 안 한다더니. 그럼 저 여자는 뭐지?’ ‘이건 좀 아니잖아?’ 뭔가 기분이 상한 시연은 진아를 살짝 당겼다. “가서 인사나 할까?” “야야...” 진아는 손을 급히 잡아당기며 막았다. “지금 데이트 중이잖아. 우리가 가면 민폐지.” “진아야...” “가자니까!” 진아는 배를 가볍게 감싸며 투정을 부렸다.“나 진짜 배고파 죽겠어. 너는 안 배고파? 얼른! 밥 먹자고.” 결국 시연은 한숨을 쉬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3화

    시연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동성이 그런 걸 물어올 줄은. ‘이제 와서 이런 걸 묻는다고?’ ‘이게 걱정이라고? 참...’ 시연은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죽을 날 다 돼가니까, 양심이라도 생긴 건가? 완전 새사람 된 것처럼 굴고 있네.’ “시연아... 고 대표 좋아하니?” 시연이 침묵하자, 지동성은 조급해졌다. 장미리가 약을 가지러 갔던 참이라. 시간이 얼마 없었다. 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아니요. 안 좋아해요.” ‘예전에 좋아했던 적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냥 과거일 뿐이야.’ ‘그리고 그런 얘길 굳이 이 사람한테 할 필요도 없어.’ 그녀는 지동성이 쥐고 있는 팔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이제... 가도 될까요?” “응, 그래.” 지동성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놓았고, 시연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돌아섰다. 멀리서 장미리가 약 봉투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국 줄이 엄청 길더라고요.” 장미리는 다가와 지동성을 부축했다. “다 받아왔어요. 이만 가요.” 오늘은 집에 가기 전에, 딸 장소미에게 들를 예정이었다. “그래...” 지동성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장미리에게 이끌려 외과 건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하지만 머릿속에는 시연의 말만이 맴돌았다. ‘안 좋아해요...’ ...병실 안, 장소미는 수액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소미야, 오늘은 좀 어때?” 장소미가 약 봉투를 내려놓으며 병상 옆에 앉았다. “뭐가 어때요?” 소미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맨날 약 바르고, 주사 맞고, 치료받고 있잖아요!” 그러더니 갑자기 거즈로 감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근데 봐봐요. 그렇게 해도 맨날 이 모양이잖아요!” “어머, 얘야!” 장미리는 깜짝 놀라 급히 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다 상처 다시 터지면 어떡해? 조심 좀 해.” 지동성도 진정시키듯 말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2화

    시연은 진아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뭐, 그런 셈이지.” 그러고는 비웃듯 웃어 보였다. “고 대표는 항상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이번엔 미안하지만... 실망 좀 해야 할걸?’ ‘우주를 위해서라면, 난 절대 물러설 수 없어.’ 그날 밤, 유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G시에 아예 안 온 건지, 왔지만 시연을 피한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시연은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시연은 강울대병원에 들렀다. 갑작스러운 병가 탓에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하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었다. 서류며 자료가 다 사물함에 있어서, 후임에게 전달하려면 직접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무리하고 병원을 나서려던 때, 외래 진료 대기석에 앉아 있던 지동성이 눈에 들어왔다. 시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번 병환 이후로 지동성은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피부도 푸석했고, 눈빛도 많이 흐려진 듯했다. 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먼저 알아챈 건 지동성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시연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시연아.” 시연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오늘 퇴원이에요?” “응. 병원에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집이 그리워지더라.” 지동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더는 입원해도 큰 효과 없는 보존 치료. 그는 이제 집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동성의 시선이 시연의 배로 내려갔다. “배가 많이 나왔네.” “네.” 시연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동성은 개의치 않은 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 “고 대표랑은... 잘 지내고 있어?” ‘잘?’ 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눈빛에는 어떤 온기도 없었다. “아마도... 잘 지내는 편이겠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1화

    시연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봤다. “아니, 그냥 책 몇 권 봤을 뿐인데, 그렇게 잡아먹을 듯한 표정은 좀 아니잖아요?” “지시연.” 유건이 그녀의 이름을 낮게 불렀고, 단추를 잠그던 손이 잠시 멈췄다. “너 지금 몇 살이지? 이 상황이 장난 같아? 너 출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나 해?” 시연은 물론 알고 있었다.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내 배 속애를 걱정하는 거예요?” “그럼 안 되니?”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데?’ “하...” 시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이 나왔다. “진짜 웃기네요. 내 배 속의 아이... 당신의 아기도 아니고, 당신이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오버예요? 드라마 찍고 싶어요?” “지.시.연.” 시연의 무심하고 조롱 섞인 말투는 유건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는 시연의 어깨를 꽉 잡았다. 눈빛은 싸늘했지만, 뭔가 폭발하기엔 또 너무 절제된 감정이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결국 그는 손을 놓았다. “밥 먹자.” 시연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이래도 화를 안 낸다고?’ 아침은 유명한 맛집인 ‘가을’에서 배달 온 것이었다. 둘은 마주 앉아, 마치 조금 전 싸움은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시연이 한입에 모닝빵을 먹자, 볼이 빵빵하게 부풀렸다. “천천히 좀 먹어.” 유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입으로 나눠 먹는 게 그렇게 힘들어?” 시연은 생각도 없이 유건에게 맞받아쳤다. “두 입으로 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장소미? 혹시 그것 때문에 걔를 좋아한 거예요?” 말투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일부러 던진 말이었다. ‘찔리지? 그래, 찔려야 해.’유건은 순간 움찔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결국 가볍게 한숨만 내쉬었다. “너 체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 별걱정 다 하게 해 놓고선.” 시연은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만 숙인 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10화

    식탁 위엔 여러 가지 반찬이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종류는 많은데, 양은 조금씩. 시연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게 세심하게 준비된 상차림이었다.한 입 떠먹자마자 익숙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왕성애 이모님 손맛이다.’한동안 못 먹었던 그리운 맛. 시연은 괜히 마음마저 편안해진 듯,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유건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기분이 어떻든, 먹을 건 잘 먹는 건 참 다행이지.’‘이런 건... 늘 본받고 싶을 만큼 좋은 거야.’식사가 끝나자 시연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 순간, 유건이 물 한 잔을 건넸다.“배불러?”“네.”물컵을 받아 두어 모금 넘긴 시연은 남자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아까 말한 거, 단 한 글자도 안 믿어요.”“시연아...”“그게 장소미 때문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이제...”시연은 목소리를 낮췄지만, 말 하나하나가 단단했다.“오늘 밤부로 이 집에서 나가줘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요.”“나 씻고 잘 거니까 나갈 때 문 잘 잠가줘요.”말을 마친 시연은 테이블에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유건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시연은 매끄럽게 피했다.‘이젠... 이런 접촉도 무의미해.’유건이 설거지하고 조금 늦게 침실에 들어섰을 때, 시연은 이미 욕실에 들어가 있었다.샤워기 물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유건은 욕실 유리문 가까이 다가가 살짝 두드렸다.“시연아.”대답은 없었다.“씻고 나서 푹 쉬어. 난 할아버지 뵈러 가야 해서 먼저 간다.”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유건은 이마를 조용히 문지르며 한숨처럼 속삭였다.“잘 자, 시연아.”그리곤 조용히 돌아섰다.욕실 안.따뜻한 물줄기 아래, 시연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세게 문지르면서 속으로 중얼댔다.‘이런다고 씻기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를 지우고 싶어.’‘오늘 밤, 잠은커녕 눈이라도 붙일 수 있을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9화

    “시연아, 넌 날 신고 못 해.”유건은 느릿하게 다가와 시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괜히 흥분하지 마. 우리 아직 법적으로 부부야. 내 아내 집에 오는 게 어떻게 불법 침입이야?”시연은 벼락 맞은 듯 숨이 턱 막혔다.‘진짜... 이 인간, 제정신이야?’“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시연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유건을 노려봤다.“왜긴?”유건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조용히 손을 들어 시연의 머리를 쓸어내렸다.손끝이 스치자, 시연의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사람?’“쉬는 거 나쁘지 않잖아. 병가도 유급이고, 배도 이렇게 불러왔는데, 나는 그냥... 너랑 아이 둘 다 무사했으면 해서 그래.”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러섰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강하게 말해도 안 되니까, 이제 부드럽게 회유하는 거예요?”“너, 내가 진짜 그렇게밖에 안 보여?”“그럼 뭔데요?”시연은 조용히 웃었다. 비웃음 섞인 미소.“고 대표님, 기억력이 정말 안 좋으시네요. 며칠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었죠? 남을 위해 나한테 아주 ‘좋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시연의 입에서 나온 건, 장미리가 시연이 있는 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던 그날의 일이었다.그날, 유건은 시연에게 몇 마디 조심스럽게 충고를 건넸었다.그 일이 떠오르자, 유건의 턱선이 살짝 굳었다.‘그래... 그땐 확실히 선을 넘었지.’‘그때부터 지금의 이 상황은 이미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였어.’“넌 말이야...”유건은 이를 앙다물고 한숨을 꾹 눌렀다. 갑작스러운 무력감이 밀려왔다.찰나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다시 물었다.“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로 할래?”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고 대표님 뜻대로 하세요. 제 의견 따윈 애초에 안 중요하잖아요.”유건은 시연을 조용히 바라봤다.그 말에는, 섣불리 반박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그럼 내가 정할게. 밖에 나가기 싫어 보이니까, 집에서 먹자.”그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608화

    ‘정말일까?’시연은 조용히 유건을 바라봤다. 유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럽기만 했다.‘일 못 하게 한 것도, 우주 데리고 간 것도... 다 이 사람의 수단 아니었어?’‘이제 와서, 일 안 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고, 우주가 수단이라는 식으로 말하다니.’‘이 사람... 이제 와서 물러서는 척하면서 방심시키려고?’하지만 시연은 알고 있었다. 고유건이라는 남자는, 자신을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걸.‘힘의 격차가 너무 커. 내가 이 사람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유건 씨.”시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남자의 셔츠 앞자락을 살짝 쥐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제발... 우리 우주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마요.”“우주는... ‘그분’이 자기 아빠란 걸 몰라요. 아빠도, 우리 엄마처럼...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연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곧 조용히 울음이 터져 나왔다.“흑... 부탁이에요... 제발...”시연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유건은 먼저 그녀를 품에 안았다.한 손으로는 등을 감싸 안고, 다른 손으로는 조용히 지시했다.“시연이 집으로 가자.”“네, 형님.”차는 곧장 시연의 집 방향으로 움직였다....시연의 집 앞. 차가 멈췄지만, 유건은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고, 그도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시연의 외투를 여며주며 말했다.“올라가서 좀 쉬어. 이런 날, 혼자 생각만 하면 기분만 더 안 좋아져.”시연은 말없이 유건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을, 유건은 바로 읽었다.“우주는 잘 있어. 별산장에 데려다줬거든. 오늘은 많이 피곤하니까... 다음에 같이 보러 가자. 못 믿겠으면... 최 선생님께 연락해서 영상 통화해 봐.”‘그래도... 그 아이를 걱정하는 네 마음, 나도 알아.’시연은 길게 떨리는 속눈썹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겠어요.”유건은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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