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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作者: 루루
다음 날, 한도희는 권유찬이 보낸 문자 때문에 잠에서 깼다.

권유찬이 문자 수십 개를 연달아 보내며 언제 올 거냐고 한도희를 재촉했다.

한도희는 씁쓸함을 느꼈다.

‘권유찬, 너 진짜 잔인하다.’

한도희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오늘 몸이 좀 아파서 못 가.]

그런데 잠시 뒤 부모님이 방문을 두드렸다.

“도희야, 유찬이랑 싸운 거니? 우리 곧 있으면 이민 가는데 그만 화 풀어. 얼른 옷 갈아입고 유찬이 집에 가봐. 유찬이가 이번 맞선을 엄청 기대하고 있어. 얘기를 들어보니까 맞선 상대인 정채윤을 아주 오랫동안 짝사랑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정채윤이 귀국하자마자 바로 너희 아빠한테 맞선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대.”

“맞아. 채윤이가 예전에 나한테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거든. 내가 직접 찾아가서 부탁해서 성사한 자리야. 유찬이가 이번에 선물부터 시작해서 식사 자리까지 아주 정성 들여 준비했어. 너를 부른 이유는 분위기를 좀 띄워줬으면 해서야. 또래 여자가 있으면 채윤이도 덜 어색할 테니까. 유찬이 이번에 진심인 것 같더라. 너희 둘 사이도 좋은데 네가 좀 도와주도록 해.”

권유찬은 한도희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한도희의 부모님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부모님의 설득에 한도희는 어쩔 수 없이 애써 눈물을 삼키며 세수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도희의 집과 권유찬의 집은 아주 가까웠다. 10분 뒤 한도희는 권유찬의 집 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신발장을 열었다.

그러나 안에 늘 있던 토끼 슬리퍼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 몇 번이나 살핀 끝에 한도희는 마침내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그 슬리퍼를 발견했다.

쓰레기통 안에는 슬리퍼뿐만이 아니라 한도희가 쓰던 컵, 칫솔, 수건, 파자마 등이 들어 있었다.

“아가씨, 그것들은 도련님께서 버리신 거예요. 오늘은 다른 슬리퍼를 신으세요.”

한도희는 쓰레기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침묵했다.

한씨 가문과 권씨 가문은 대대로 친분이 두터웠고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한도희는 매일 권유찬의 집에 들렀고 가끔은 자고 가기도 했다.

권유찬은 한도희를 위해 따로 방을 마련해 주고 생활용품도 잔뜩 사 놓았다. 심지어 한도희의 취향에 맞춰 한도희가 가장 좋아하는 토끼 캐릭터가 있는 것들로 구매했다.

권유찬은 한도희에게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했다.

두 사람은 부모님들 몰래 현관 앞에서 포옹하고 키스했고, 식탁 아래에서 손깍지를 꼈으며, 서재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채윤이 오자마자 권유찬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정채윤이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한도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내다 버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른 한도희는 다른 슬리퍼를 신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채윤을 위해 과일을 깎는 권유찬이 보였다. 권유찬과 정채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맞춤 정장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는 권유찬은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한 데다가 향수까지 뿌려서 금욕적이면서도 섹시해 보였다.

학창 시절 때 한도희는 수많은 여학생이 권유찬을 두고 잘생겼다고 하는 걸 들었었다. 그들은 권유찬이라면 뭘 입어도 멋있을 거라고, 조금만 꾸미면 웬만한 아이돌 못지않을 거라고 했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격의 권유찬은 평소에 캐주얼한 스타일의 티셔츠나 셔츠만 입고 다녔고 외모를 꾸미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권유찬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껏 꾸몄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도희와 함께 침대 위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권유찬은 오늘은 마치 남처럼 아주 잠깐 한도희를 바라보고는 다시 정채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취미부터 시작해 날씨, 직업, 주얼리 브랜드, 어린 시절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학창 시절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화제를 꺼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권유찬의 모습에 한도희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권유찬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저렇게 적극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해. 오빠가 나보다 한 학년 위였고 건물도 달랐는데 학교에서 꽤 자주 마주쳤었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인연인 것 같아.”

정채윤이 웃으면서 예전 이야기를 꺼내자 권유찬은 귀 끝이 빨개지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인연?’

사실 그건 전부 권유찬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우연이었다.

그때 한도희는 권유찬을 따라다니면서 권유찬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지켜보며 혼자 가슴앓이를 했다.

나중에 정채윤이 유학을 떠난 이후 한도희는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권유찬의 소망이 이루어질 듯했다.

한도희가 넋을 놓고 있을 때 정채윤이 갑자기 한도희를 언급했다.

“고등학교 때 굉장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다면서? 그 친구가 도희 언니인 거지?”

한도희는 살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채윤과 눈이 마주쳤다.

한도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권유찬의 부모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둘이 소꿉친구라서 친해. 어렸을 때부터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었어. 사실 애들이 어렸을 때 둘을 결혼시킬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 얘기가 나오자 권유찬은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말을 끊었다.

“아빠, 엄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제가 한도희랑 사귈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요.”

한도희는 실망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내려뜨린 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남자가 권유찬 한 사람만 남는다고 해도 권유찬이랑 사귈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 말에 권유찬은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곧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권유찬은 동성 친구들을 대할 때처럼 한도희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우리는 진짜 그냥 친구야.”

그 말에 거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한도희도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때 권유찬이 마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잘했어. 나한테 맞춰줘서 고마워.”

한도희는 대꾸하지 않고 티 나지 않게 옆으로 몸을 살짝 움직여 권유찬과의 거리를 벌렸다.

‘맞춰줬다고?’

한도희는 맞춰준 게 아니라 그저 진심을 얘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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