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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유시아...”

임재욱은 하얀색 타일 위에 떨어진 핏물을 보았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상이 눈에 거슬렸다. 그는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욕조 안에서 유시아를 꺼내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별장에서 사람이 묵는 아주 드물었기에 구급상자조차 없었다. 임재욱은 급한 마음에 침대 시트를 찢어 유시아의 손목을 단단히 묶었다. 동시에 그는 침착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의사에게 연락해 얼른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몸을 돌린 그는 정신을 차린 유시아를 보게 되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절망이 어려있었다.

“임재욱 씨, 대체 왜죠? 네?”

유시아는 자기 잘못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3년 전 순순히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그와 이혼했다. 그녀는 그를 찾아갈 생각 따위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생 그를 멀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임재욱은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걸까?

신서현은 이미 죽었고 유시아에게는 신서현을 되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시아는 자신의 죽음으로 그 빚을 갚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본인의 목숨까지 다 바치겠다는데도 임재욱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왜? 왜 죽음마저 내게 사치가 되어버린 거지? 대체 왜?’

임재욱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시아야, 내가 했던 말 잊었어?”

‘내가 먼저 그만이라고 하기 전까지 넌 네 스스로 끝낼 자격이 없어.’

‘죽는 걸로 이 게임을 멋대로 끝내려고 해? 꿈 깨.’

“걱정하지 마.”

남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흰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질릴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정말 질리게 되면 그때 죽여줄게...”

유시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섬찟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목적을 달성하면 더는 상대를 모욕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임재욱은 그녀를 철저히 짓밟을 생각이었다.

유시아는 과거 그를 사랑했을 때, 자신이 대체 그의 어떤 점을 보고 그를 사랑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 아니면 냉담한 성격?’

“내가 죽도록 밉지?”

임재욱은 피식 웃으며 기다란 손가락으로 침대 시트에 단단히 감긴 그녀의 손목을 살짝 스쳤다.

“내가 밉다면 잘 살아 있어. 살아있는 사람만이 날 미워할 자격이 있으니까.”

유시아의 얼굴이 분노 때문에 살짝 붉어졌다.

“임재욱 씨, 당신은 분명 천벌을 받을 거예요. 내가 장담해요...”

“난 이미 천벌 받았어.”

임재욱은 말을 마친 뒤 돌아서서 통유리 앞으로 향했다. 그는 창밖의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서현이가 죽은 게 나한테는 천벌이야.”

유병철은 그때 벌 받는 게 두려워 자살해서는 안 됐다.

지금 유시아가 겪는 이 모든 것들이 유병철의 천벌이었다.

죽음조차 제멋대로 결정할 수 없게 되면 인간은 살아갈 원동력을 잃게 된다.

유시아는 그 침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도우미가 삼시세끼 음식을 방까지 가져다주었고 의사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손목의 상처를 살폈다. 의사는 매번 신신당부했고 유시아는 그게 짜증 났다.

사실 임재욱은 그녀의 행동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별장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유시아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딜 가나 신서현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진, 그녀가 좋아하는 꽃...

예전에 감옥에 있을 때 유시아는 신서현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연예인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안타까운 건 당연했다.

그러나 출소한 후 유시아는 아버지의 목숨과 자신의 자유와 존엄으로 대가를 치렀고,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빚도 없었다

그 때문에 유시아는 더 이상 신서현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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