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아...”임재욱은 하얀색 타일 위에 떨어진 핏물을 보았다.서로 다른 두 가지 색상이 눈에 거슬렸다. 그는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욕조 안에서 유시아를 꺼내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별장에서 사람이 묵는 아주 드물었기에 구급상자조차 없었다. 임재욱은 급한 마음에 침대 시트를 찢어 유시아의 손목을 단단히 묶었다. 동시에 그는 침착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의사에게 연락해 얼른 오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뒤 몸을 돌린 그는 정신을 차린 유시아를 보게 되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절망이 어려있었다.“임재욱 씨, 대체 왜죠? 네?”유시아는 자기 잘못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3년 전 순순히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그와 이혼했다. 그녀는 그를 찾아갈 생각 따위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생 그를 멀리하고 싶었다.그런데 왜 임재욱은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걸까?신서현은 이미 죽었고 유시아에게는 신서현을 되살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시아는 자신의 죽음으로 그 빚을 갚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본인의 목숨까지 다 바치겠다는데도 임재욱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왜? 왜 죽음마저 내게 사치가 되어버린 거지? 대체 왜?’임재욱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시아야, 내가 했던 말 잊었어?”‘내가 먼저 그만이라고 하기 전까지 넌 네 스스로 끝낼 자격이 없어.’‘죽는 걸로 이 게임을 멋대로 끝내려고 해? 꿈 깨.’“걱정하지 마.”남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흰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질릴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정말 질리게 되면 그때 죽여줄게...”유시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섬찟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목적을 달성하면 더는 상대를 모욕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임재욱은 그녀를 철저히 짓밟을 생각이었다.유시아는 과거 그를 사랑했을 때, 자신이 대체 그의 어떤 점을 보고 그를 사랑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내고 있는 이 침실은 유일하게 프리지어가 없는 방이었다. 그래서 유시아는 그곳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임재욱은 2, 3일 동안 사라졌다가 그날 저녁에야 다시 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들고 있던 종이백을 유시아의 침대맡에 내려놓았다.“잠시 뒤에 옷 갈아입어. 나랑 같이 놀러 가자.”그는 풀이 죽어 있는 유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1층에서 기다릴게.”말을 마친 뒤 그는 자리를 떴다.30분 뒤, 임재욱은 등 뒤 계단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유시아가 계단 손잡이를 잡고 내려오고 있었다.그녀는 입고 있는 옷은 그가 골라준 드레스였다. 상의는 레오파드 무늬의 튜브톱이었고 하의는 앞이 짧고 뒤가 긴 검은색 스커트였다.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풍만한 상체와 길고 쭉 뻗은 다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뒤에서 끌리는 치맛자락은 그녀를 관능적이고 요염해 보이게 했다.그러나 유시아의 앳된 얼굴은 그 드레스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어렸을 때부터 쾌활하고 명랑하며 순진무구한 착한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녀를 애지중지 키웠고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때까지 그녀는 줄곧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만약 임재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유시아는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지금까지도 인간의 추악함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임재욱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이제 가자.”차는 번화한 시내를 지나 마침내 불빛이 요란한 클럽 앞에 멈춰 섰다.차가 멈추자마자 벨보이들이 다가와서 차 문을 열었고 유시아는 임재욱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시선을 들어 클럽 외관을 보았다. 어쩐지 익숙한 곳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듯했다. 아마도 3년 전 임재욱이 그녀를 데리고 한 번 와봤던 곳일 것이다.3년 전, 그녀는 임재욱의 약혼녀 신분으로 이곳을 찾았다. 당시 그녀는 아름다운 긴 드레스를 입고 공작새처럼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임재욱의 장난감에 불과했다.저번과 신분이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었다
3년 뒤, 유시아는 다시 그곳에 나타났다. 익숙한 얼굴들 앞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 그녀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유시아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반대로 임재욱은 태연한 얼굴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그녀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유시아의 출현에 잠깐이지만 룸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3년 전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다 보니 정운시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유시아는 예전보다 수척했고 머리도 짧게 잘랐으며 공들여 화장하지도 않았지만 다들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소현우의 시선이 유시아의 얼굴에 잠깐 멈췄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이때 룸 안의 분위기는 혼탁했다.소파에 앉아있는 남녀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도 멀지 않은 곳에서 짙은 화장을 한 여자 두 명이 무대 위에서 폴댄스를 추고 있어서기도 했다. 두 여자는 이따금 사람들을 향해 손 키스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한 뚱뚱한 남자가 폴댄스 때문에 흥이 났는지 무대 위로 올라가 여자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동시에 그는 유시아를 바라보며 특이한 억양으로 말했다.“임 대표, 임 대표 파트너는 뭐 할 줄 알아? 폴댄스 출 줄 알아?”클럽 안의 사람들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그리고 안타깝게도 후자에 속하는 유시아는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그녀는 몰래 임재욱을 살피며 그가 무슨 말이라고 해주길 바랐지만 그는 덤덤히 유시아를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춤출 줄 몰라요.”“참나.”뚱뚱한 남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음흉한 눈빛은 마치 찬바람처럼 싸늘하게 유시아의 피부를 쭉 훑고 지나갔다.“몸매가 저렇게 좋은데 아쉽네...”임재욱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미안해요, 주 회장님. 감옥에서는 그런 걸 안 가르쳐서...”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룸 안이 고요해졌다.그래도 전처인데 저렇게나 인정사정없다니, 참 보기 드문 일이었다.이 때문에 사
“참, 그랬었지...”그 일을 떠올린 주 회장은 잠깐이지만 유시아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현우, 임재욱, 그리고 정운시 재벌가 자제들도 잠깐 그녀를 잊었다.권세 드높은 남자들에게 잊힌 유시아는 천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재욱 곁에 놓인 의자에 앉은 그녀는 자신이 차라리 투명 인간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임재욱은 오늘 운이 좋아서 계속 이겼다.반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은 주 회장은 계속 지다 보니 기분이 언짢아진 듯했다. 그는 게임을 하다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옆으로 던지며 말했다.“에이, 안 해요, 안 해. 자꾸 지네. 이제 더 지면 빈털터리가 되겠어...”그 말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임재욱은 그를 향해 손을 들었다.“주 회장님, 왜 가려고 그러세요? 이번에는 크게 한 판 하시죠.”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이거 하실래요?”주 회장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의자에 걸어두었던 겉옷을 챙겨서 떠나려 했다.“하나 더 걸까요?”임재욱은 유시아의 손을 끌어당겨 칩 더미 위에 놓으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주 회장님이 잃으셨던 거 다 걸고, 미인까지 걸겠어요. 주 회장님, 하실래요?”유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자신을 향한 임재욱의 복수가 더 잔인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는 그녀의 예상을 깨고 그녀를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었다.그리고 매번 참고 견디면서 이젠 끝났겠지 싶을 때마다 더욱 큰 굴욕이 그녀를 덮쳤다.유시아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물건처럼 여겨지는 곳에서, 태연한 얼굴로 그들과 함께 앉아있을 수 없었다.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재욱의 손을 뿌리쳤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임재욱은 그녀가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는지 본능적으로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옷자락을 스쳤고 그렇게 유시아는 떠나갔다. 그러나 문밖에 경호원들이 있다는 걸 아는 임재욱은 유시아가 도망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유시아의 반응이 오히려 주 회장
소현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밑장을 다 들켰으니 진 것과 다름없네요.”말을 마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집어 들었다.“그럼, 오늘 밤 유시아 씨는 내 것이에요. 그 돈은 모두에게 밥 한 끼 산 거로 칠게요.”이 말을 한 뒤 소현우는 돌아서서 떠났다.임재욱은 멋지게 걸어가는 소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참았던 말을 뱉어냈다.“소 대표님, 하룻밤 즐기고 잊지 말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내 앞에 데려와요.”소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그건 오늘 밤이 지나 봐야 알겠죠.”그 말을 끝으로 소현우는 문을 열고 나갔다.룸안에는 주 대표가 아직도 미인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그들과 카드 게임을 하던 부잣집 도련님들은 이미 여자들에게 가서 즐기고 있었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진 임재욱의 모습은 룸안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소씨 집안은 정운시에서 수년 동안 활동해 왔으며 밑바닥부터 성장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겸손한 것으로 유명했다.특히 소현우의 경력들이 전설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미디어 카메라로 포착하기 가장 어려운 부자였다.평소 주목 받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이 한 여자를 위해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임재욱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 카드 게임으로 인해 임재욱은 소현우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적의를 느끼게 되었다.프레지던트룸 안,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소현우는 침실의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여자의 피부는 눈꽃처럼 하얗고 귀밑까지 오는 단발머리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이미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입고 있던 튜브톱 드레스는 경호원들과의 치열한 몸싸움으로 인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그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녀의 순진하고 연약해 보이는 모습이 남자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녀의 주위로 풍겨 나오는 묘한 분위기에 소현우는 한동안 진정이 되지 않았다.이 여자는 유병철의 딸이다..
옆집은 새로 이사를 왔는지 낯선 사람이었다. 상대는 유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흔쾌히 보조배터리를 빌려주었다.전원을 연결하자 도어락 전원이 켜졌고 유시아는 비밀번호 4자리 0416을 눌렀다.예전에 유시아가 직접 설정했던 비밀번호였다. 아는 점쟁이가 잡아준 결혼식 날짜였고 그녀도 이 숫자들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고 항상 마음속에 새겼다.문이 빠르게 열렸고 유시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지가 날리며 부패한 냄새가 나는 것이 마치 천년도 더 된 폐가에 들어온 것 같았다.집안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천장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붉은 장미와 바람 빠진 풍선들이 매달려 있었고, 커피 테이블 위에는 과일과 케이크가 완전히 썩어 벌레가 들끓었다. 바닥에는 사탕 포장지와 과일 껍질이 널려 있었다. 침실의 침대에는 그녀가 결혼했을 때 장만한 시트가 여전히 깔려 있었다.3년 전 4월 16일, 그녀가 3년 동안 좋아한 임재욱이 드디어 장미꽃을 손에 든 채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아야, 나랑 결혼해 줘.”“나랑 함께 가자. 평생 죽을 때까지 널 사랑할게.”프러포즈하는 임재욱은 달콤하고 멋있었다. 그녀를 속여 구름 위로 둥둥 떠다니게 하고서는 지옥으로 끌어 내렸다.그날은 유시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또 가장 슬픈 하루였다.임재욱은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과거의 모든 달콤함과 사랑은 단지 그녀를 속이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했다.유시아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흰 침대 시트를 보고 입가에 슬픈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침대 시트를 끌어당겨 구겨 부엌 쓰레기통에 던졌다.심하게 몰려오는 피곤함에 유시아는 더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 빠르게 잠에 들었다.자기 집이니 조금 더럽고 지저분해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누군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임재욱은 약간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집은 더럽고 지저분했으며
자기 집 침대에 누워 자니 역시나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유시아가 일어났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침실은 암막 커튼에 의해 빛이 전혀 들어오지 못했다.손을 뻗어도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에 유시아는 순간 감옥에서 독방에 갇혔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임재욱이 그녀를 감옥에 넣었을 때 미리 감옥 안에 있는 죄수들에게 그녀를 잘 ‘보살피’ 라고 손을 써 두었다.그의 한마디 때문에 그녀가 겪은 고생들은 어마어마했다. 죄수들은 밥 먹을 때 그녀의 식판을 엎고, 손으로 종이봉투를 만들 때면 그녀가 잘라낸 종이들을 망가뜨려 놓고 모두 그녀의 잘못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여전히 감옥에 들어오기 전 삶을 잊지 못하고 일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욕했다.여러 명의 공세에 그녀는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결국 돌아오는 것은 교도관의 구타였다. 그녀는 공복 상태로 24시간 동안 습하고 차갑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었다. 밖으로 나오면 또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러나 더 비참한 것은 3년을 겨우 버티고 버텨 감옥을 나왔지만, 임재욱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이다.유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을 뻗어 침대 옆의 전등 스위치를 켜고 음식을 준비해 먹으려고 했다.하지만 등은 켜지지 않았다. 3년 동안 집을 버려두었으니, 관리비를 내지 못했고 물과 전기도 오래전에 끊어진 상태였다. 물조차 끓일 수 없었다.유시아는 어쩔 수 없이 어둠 속에서 더듬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을 이용해서 옷장의 문을 열었다. 그녀가 입던 오래된 옷들 중에서 긴치마를 꺼내 입고 클럽 스타일의 치마를 벗었다.집에 현금이 조금 남아 있던 것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사 오려고 했다. 옷을 입고 있는데 거실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순간 유시아는 소름이 끼쳤다. 집은 크지 않았고 침실과 거실 사이에 벽만 있었다. 가죽구두로 바닥을 밟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는 것이 또렷하게 들려와 그녀는 문 앞에 잠시 멈췄다.
어젯밤 일부러 그녀를 다른 남자 침대로 보내 놓고서는 지금은 그녀에게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을 작정일까?임재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 플래시로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가 턱을 잡아 자신을 올려다보게 했다.두 사람 사이는 서로의 숨결이 얽힐 정도로 가까워졌고 긴 속눈썹으로 뒤덮인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임재욱이 부드럽게 말했다.“아침에 소현우를 떠나 왜 날 찾아오지 않은 거야? 누가 여기로 몰래 돌아와도 된다고 허락했어?”그녀는 분명 형을 마치고 풀려났지만, 임재욱이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비추면 그녀는 여전히 죄수처럼 느껴졌고 그런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사실 그녀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임재욱을 이해한 적이 없었다.특히 감옥에서 풀려난 후 지난 며칠간 계속해서 선을 넘는 임재욱의 행동으로 인해 그에 대한 두려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난... 집이 그리워서 와 보고 싶었어요... 읍...”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임재욱이 고개를 숙이고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에 강하게 키스했다.큰 덩치의 임재욱은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 뒤를 잡고 강제로 키스했고 다른 한 손은 이미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그와 그녀가 첫 키스를 한 것도 처음 잠자리를 갖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임재욱의 몸짓과 숨결에서 그녀에 대한 애정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단순히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로 여기는 듯했다.임재욱의 핸드폰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방 안에 있던 유일한 불빛이 사라졌다.어둠 속에서 주위는 그의 냄새로 가득 찼고 유시아는 머리가 울렸다. 유시아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어둠이 그녀에게 용기를 준 것인지 그녀는 홀린 듯 끊임없이 손을 뻗어 그를 밀어냈고 자기를 만지는 것을 거부했다.“만지지 마요, 임재욱 씨...”심지어 유시아는 어젯밤처럼 다른 남자 침대에 올라가더라도 이 침대에서 거친 그를 상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