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커튼은 끝까지 닫혀 있었다.민하윤의 희고 가느다란 팔이 자꾸만 하도진의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만해.”콧소리가 묻은 하도진의 잠긴 목소리였다.민하윤은 입술을 조금 벌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술기운이 속을 뜨겁게 태우는 듯했고,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민하윤은 본능처럼 하도진에게 매달렸다가 정신이 멍한 채로 하도진의 어깨를 두 번쯤 밀어냈다.그러자 다음 순간, 묵직한 그림자가 민하윤을 덮었다.하도진이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하도진의 눈빛은 젖어 있었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진짜... 계속 날 이렇게 건드릴 거야?”민하윤은 대답 대신 몸에 걸친 넉넉한 남성 셔츠를 답답하다는 듯 끌어당겼다. 셔츠가 풀려지자 민하윤의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민하윤의 살짝 거친 숨결에 따라 가슴이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 모습에 하도진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목울대가 한번 울렁이더니 하도진은 말없이 민하윤을 바라보다가 침대 옆에 둔 술잔을 들었다.도수가 높은 양주였다.하도진은 크게 한 모금 삼키고는 다시 민하윤과 시선을 맞췄다.민하윤은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물...”입모양은 분명히 물이라고 말했지만 민하윤의 목소리는 끝내 흘러나오지 못했다.대신 술기운에 떠밀리듯 고개를 들어 두 팔로 하도진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을 맞췄다.하도진은 예상 못 한 듯 짧게 숨을 들이켰다. 받아주면서도 억지로 무언가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민하윤은 어딘가 어색한 자세로 하도진과 입을 맞췄다. 방금 하도진의 입에 들어있던 술이 이번에는 민하윤의 입가로부터 흘러나왔다. 민하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하도진을 바라보았다.잠시 뒤, 하도진은 민하윤의 턱을 감싸 쥐더니 억지로 거리를 벌렸다.하도진은 기어이 정신을 붙들어 매려는 듯, 숨을 거칠게 고르며 말했다.“하윤아, 이건 술이야.”하도진은 손끝으로 민하윤의 입가를 조심히 훔쳐내며 한숨
“난 그렇게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 참지도 못해.”하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며 차가운 입술을 민하윤의 쇄골 근처에 조심스레 가져가 맞췄다.전화받고 집으로 돌아온 하도진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몸은 유독 차가운 민하윤은 달콤한 온기를 알아챈 아이처럼 두 손을 하도진의 옷깃 안으로 파고들어 더 따스한 체온을 찾았다.하도진은 침대 위에 무릎을 짚은 채, 거추장스러운 검은 터틀넥을 벗어 던지고 다시 민하윤을 끌어안았다. 얇은 천 너머로 두 사람의 온기가 천천히 겹쳤다.민하윤의 몸은 유독 달아올라 있었다. 매실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직접 담근 술은 도수가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측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희미하게 감도는 차가운 향과 어딘가 달큰한 꽃내음이 섞이자, 민하윤의 체온은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다. 민하윤은 술기운에 밀려 평소의 자신이 아닌 듯 용기가 튀어나왔다.민하윤은 팔을 올려 하도진의 목을 감았고, 서툰 입맞춤을 이마와 눈가, 입가에 조심스레 흩뿌렸다. 턱끝에 스친 하도진의 잔수염에도 어설프지만 진심만은 또렷한 키스가 닿았다.하도진은 잠깐 멈칫했다. 물처럼 고요하던 민하윤에게 이런 열기가 숨어 있었다는 걸, 정말 몰랐다. 하도진은 숨을 삼키며 민하윤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하윤아, 밖에서 나한테 미안한 일이라도 한 거야? 이렇게까지 애써서...”말끝이 다 닿기도 전에, 하도진의 숨이 한 번 크게 흐트러졌다. 하도진은 손을 더듬어 불을 껐다.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꺼지고 방에는 낮은 스탠드 불빛만 남았다.“민하윤... 네가 먼저 시작했어.”하도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민하윤에게로 기울였다.민하윤은 하도진의 몸을 탐냈지만 하도진은 그녀의 손을 못 움직이게 꽉 쥐었다.민하윤이 어렴풋이 눈을 뜨자, 하도진의 차가운 땀방울이 민하윤의 이마에 떨어졌다.하도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만하윤의 가늘고 얄팍한 허리를 들어 올렸다.그날 밤, 창밖에는 봄바람이 느리게 지나가
임형섭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까만 눈동자에는 물기가 얇게 감돌았다. 임형섭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한마디만 뱉었다.“추우니까... 데리고 들어가요.”하도진은 비웃듯 웃었다. 얼굴빛은 더 험악해졌고 시선을 내리깔며 경고했다.“임 팀장님, 선 넘었어요.”하도진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들더니 허리를 숙여 차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민하윤의 위에 덮여 있던 옷을 거칠게 한쪽으로 던지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체온이 남아 있는 코트로 민하윤을 빈틈없이 감쌌다.민하윤은 열이 오른 얼굴로 잠에 취해 있었다. 하도진이 늘어진 소매를 민하윤 앞에서 묶어 주자, 그녀는 마치 고치 속에 감긴 듯 꼼짝도 못 한 채 입술만 작게 달싹였다. 입가에 보조개가 순간 얕게 파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을 가로로 안아 올렸다. 품 안의 여자는 불안한 듯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볐다가 만족한 듯 자세를 고쳐 다시 잠들었다.하도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그 표정은 즉시 눌러 지워졌다. 하도진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임형섭을 차갑게 훑어본 뒤, 일부러 그 앞까지 걸어가듯이 다가갔다.“그만 돌아가시죠. 배웅은 못 합니다.”임형섭의 시선이 민하윤의 얼굴에 멈췄다.임형섭은 민하윤의 얼굴을 꿈에서 수없이 봤다.그러나 눈을 뜨면 늘 칠흑 같은 빈방뿐이었다. 책상 위 노트북, 텅 빈 메일함, 아무것도 오지 않는 화면이 전부였다.유학 시절에도 그랬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임형섭은 붉은 네모 창문 앞에 서서 동쪽에서 떠오르는 주황빛 태양을 바라보고는 했다. 교회 지붕 위로 하얀 비둘기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고, 임형섭은 그 너머 끝없이 이어진 산과 바다를 넘어 가슴속에 숨겨 둔 사람을 진짜로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다.임형섭은 웃어 보이려 했지만, 찬바람이 얼굴을 얼려 웃음 같은 건 걸리지 않았다.임형섭은 그저 하도진이 민하윤을 안고 불빛 환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대리기사가 고
임형섭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하 대표님은 다른 여자랑 약속 잡아도 되고, 우리는 오래된 친구끼리 얼굴 한번 보는 것도 안 됩니까?”하도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이없다는 듯 비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말로 저를 자극하지 마세요. 임 팀장님, 굳이 다시 말해 줘야 하나요? 민하윤은 제 아내입니다. 남의 아내한테 마음 품을 생각이라도 하는 거예요?”룸 안쪽에서는 주사위 굴리고 술을 들이붓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울려 퍼졌다.“누나, 왜 안 마셔요! 자, 원샷! 원샷!”임형섭은 술기운이 오른 듯, 뿌옇게 김 서린 유리창을 노려보며 마음이 뒤집힌 채로 내뱉었다.“하 대표님은 본인 주변의 여자부터 정리하시죠. 본인은 감정에도 결혼에도 불성실하면서... 왜 하윤이한테만 선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건가요? 하윤이가 원한하면 저는 언제든지 하윤이를 데려가겠습니다.”“데려간다고요?”하도진은 입꼬리를 비틀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는 동안, 미세한 전류음이 섞인 듯한 통화 너머로 남자의 낮은 웃음이 흘렀다.“그런 허튼 꿈부터 접어요. 제가 죽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안 떨어져요.”임형섭은 입을 열어 반박하려다, 그대로 끊겨 버린 통화음에 말끝을 삼켰다.휴대폰에 주소 메시지가 떴다. 임형섭은 그 주소를 그대로 대리기사에게 읊어 주었다.차는 서서히 도심의 흐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임형섭은 창에 기댄 채, 가로등 불빛과 붉은 테일 라이트의 흐릿한 잔상을 바라봤다.터널 안은 밝았다가 어둡기를 반복했다. 임형섭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유리에 비친 그 얼굴만 응시했다.민하윤의 살짝 올라간 눈꼬리, 요염한 선이 도는 얼굴, 가늘게 휘어진 눈썹, 오뚝한 콧날, 촉촉하게 젖은 붉은 입술이 보였다.뒷좌석에서 웅크린 민하윤은 잠든 숨결에 맞춰 살짝 들썩였다.임형섭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길고 선명한 마디가 유리 위의 잔상을 떨리는 듯 어루만졌다.임형섭의 손끝이 민하윤의 눈썹과 눈매를 따라가다 멈췄다. 임형섭은 창에 이마를 기댄 채, 터널을 빠져나오
민하윤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고 달아오른 볼은 만져 보기만 해도 뜨거울 것 같았다.임형섭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휴대폰으로 대리운전을 예약했다. 그리고 지갑에서 지폐 5만 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민하윤 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목울대가 한 번 굴렀고 임형섭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하윤아, 이제 집에 가자. 걸을 수 있어?”민하윤은 초점이 흐린 눈으로 임형섭을 올려다보다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임형섭은 몇 초 망설이다가 민하윤의 앞에 등을 내밀며 다시 쪼그려 앉았다.“그래. 그러면... 업혀. 내가 업어 줄게.”임형섭은 숨을 죽였다. 민하윤의 가늘고 긴 팔이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 너무 말라서, 등에 닿는 무게감조차 선명하지 않았다.민하윤의 몸이 임형섭의 등에 바짝 붙었다. 희고 가는 손목뼈가 그의 가슴 앞쪽으로 축 늘어졌다. 미지근한 매실주 향과 민하윤의 몸에서 은근히 스며 나오는 차가운 향기가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임형섭은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틀고, 등을 더 곧게 세우며 민하윤이 편하도록 자세를 가다듬었다.임형섭은 민하윤의 가방을 자기 목에 걸어 멘 채, 단단히 업고 골목을 걸었다. 따뜻한 숨결이 일정한 리듬으로 임형섭의 목덜미에 닿았다.임형섭은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절대 이 틈을 이용할 수 없었다. 민하윤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존중이 먼저였다.임형섭은 민하윤을 조심스럽게 차 뒷좌석에 옮겨 눕혔다. 민하윤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작게 몸을 웅크리고 잠들었다. 긴 머리칼이 흐트러져 퍼져 있었고, 눈꼬리에는 눈물에 젖은 잔머리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임형섭은 무심코 그 잔머리를 쓸어 넘기려다 손을 허공에서 멈췄다. 대신 두툼한 코트를 민하윤의 몸 위에 덮어 주고 히터를 틀었다.문을 닫고 나오자, 초봄의 찬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임형섭은 시선을 골목 안쪽 테이블로 보냈다.
잘게 박힌 다이아가 큰 별 하나, 작은 별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팔찌 끝에는 잔 다이아로 만든 작은 알파벳 하나가 달려 있었다.H.민하윤은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손끝이 저절로 그 글자를 몇 번이고 더듬었다.H는 민하윤이 예전에 쓰던 이름, 양부모가 지어 준 이름의 표식이었다.[희].희망의 ‘희’자였다.“생일 축하해, 희야.”임형섭이 직접 팔찌를 채워 줬다.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 제작이었다. 마디가 또렷한 임형섭의 길고 단단한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손끝의 얇은 굳은살이 민하윤의 손목뼈를 스치고 지나갔다.민하윤은 코끝을 세게 훌쩍였다. 울음은 죽어도 들키기 싫어서, 입술을 꾹 깨문 채 오른손을 들어 수어로 답했다.[고마워요.]대학 시절, 민하윤은 아르바이트를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하루에 두 탕을 뛰던 날도 많았고, 한때는 수제 만둣집에서 점원으로 일한 적도 있었다.가게 사장은 서른쯤의 언니였다. 이혼하고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살면서도 마음이 참 따뜻해서, 매일 밤이면 뜨끈한 만둣국 한 그릇을 따로 싸서 기숙사에 가져가라고 건네주고는 했다.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이제 민하윤은 그때처럼 쪼들리며 살지 않았다. 매일 뛰어다니며 지하철을 환승하고, 알바를 붙잡고 살지 않아도 됐다.그런데도 민하윤의 발은 익숙한 골목으로 자연스레 들어섰다. 갖가지 길거리 음식 냄새가 훅 끼쳐 왔다. 가게 앞에는 이미 네모난 테이블들이 몇 개 놓여 있었고, 근처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떠들어 댔다.간판이 눈에 들어왔다.[언니 수제 만두]민하윤은 익숙한 글자와, 바뀐 인테리어를 멍하니 바라보며 복잡한 숨을 삼켰다.열일곱 이후의 삶은 유난히 힘들었다. 남의 집에 얹혀살며, 그 집 사람이 아닌 공간에서 버텼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손을 벌려야만 하는 생활이었다.땅값도 물가도 미쳐 날뛰는 명원시에서 송해정은 민하윤에게 한 달에 10만 원만 쥐여 줬다. 그 돈으로 교통비, 통학비, 식당 밥값, 교과서까지 모든 걸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