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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Author: 금소
민하윤은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하도진과 고은율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축 늘어진 풍선처럼 의자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

이때 나지혜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는 다급히 달려오면서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계속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깜짝 놀랐어요.”

나지혜는 민하윤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자 민하윤은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애써 미소를 짓더니 손을 내저었다.

“사모님이 채혈할 순서가 되었으니 얼른 가요.”

나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민하윤을 부축하고 채혈실로 향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끼어든 것을 보고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눈앞의 남녀를 노려보면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번호표를 뽑았으면 순서대로 채혈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쪽만 아픈 줄 알아요? 이럴 거면 왜 번호표를 뽑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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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79화

    민하윤은 눈을 들어 하도진을 바라봤다.그 순간,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목소리도 떨렸다.“건들지 마세요. 주세요.”하도진은 민하윤을 힐끗 보더니 일부러 상자를 한 번 흔들었다.그때마다 민하윤의 심장도 덩달아 출렁이는 것 같았다.하도진이 쥐고 있는 건 작은 상자 하나일 뿐인데 민하윤은 꼭 자기 심장이라도 붙든 것만 같았다.“왜? 뭘 그렇게 숨기고 싶어?”몇 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민하윤은 차라리 이걸 은행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돌려봐도 상관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이걸 가방에 넣지만 않았어도...’민하윤은 까치발을 들었지만 겨우 하도진의 소매 끝만 스쳤다.하도진은 키 차이를 이용하듯 상자를 민하윤의 머리 위로 더 높이 들어 올렸다.그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느긋하게 상자를 흔들며 말했다.“부탁해 봐.”민하윤은 이를 악물었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부탁드릴게요. 돌려주세요.”하도진의 눈빛은 깊고 검었다.하도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하얀 조명이 그대로 레이스 잠옷 위로 떨어졌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가락 하나로 가느다란 끈을 들어 올려 이게 뭔지 찬찬히 살펴봤다.하도진의 눈빛은 점점 짙어졌고 시선은 다시 민하윤에게로 떨어졌다.하도진이 목울대를 천천히 굴리자 민하윤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몸 앞에 올려 가렸다.그러고는 홧김에 하도진의 구두를 밟고 까치발을 들어 그 민망한 잠옷을 확 낚아챘다.“도진 씨, 진짜 제정신이에요?”민하윤은 화가 치밀어 거의 터질 뻔했다.당장 이걸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씨 가문의 본가 대문 앞에 내던질 수도 없었다.결국 민하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민하윤은 속으로 이남주가 원망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하도진은 민하윤을 품에 끌어안으며 웃음을 참았다.“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냐고...”민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얼굴은 뜨거울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하도진은 손을 들어 민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78화

    민하윤은 하도진이 아직도 자기한테 화가 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도 민하윤은 먼저 하도진을 달래고 싶지는 않았다.민하윤은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를 말했다.화려한 도시는 밤이 내리면 더욱 눈부셨다.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멀리 빌딩들은 찬란하게 빛나자 도시의 밤거리는 꿈처럼 번화했다.민하윤은 창가에 기대어 임형섭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방 연결됐다.임형섭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하윤아?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민하윤은 안부를 주고받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곧장 본론을 꺼냈다.“선배, 그 녹음은... 선배가 보낸 거예요?”임형섭은 잠시 침묵했다.“응. 너도 알게 되었구나?”“왜 그러셨어요?”민하윤은 조용히 물었다.귓가에는 한여름 밤바람 소리가 세차게 스쳤다.민하윤은 혼란스러웠다.왜 임형섭이 그런 녹음을 남겼고 또 왜 그걸 하도진에게 보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임형섭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준 채, 긴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하도진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선배, 왜 그러셨는지만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저는 그게 알고 싶어요.”“변명할 건 없어. 녹음은 내가 보낸 거야.”임형섭은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짧게 잘랐다.“네가 날 원망해도 좋고 미워해도 좋아. 그래도 난 후회 안 해.”“선배, 저는 선배를 원망하지도 않을 거고 미워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냥 왜 그러셨는지가 궁금한 거예요.”임형섭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하윤아, 넌 이해 못 해.”그 뒤로 두 사람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하윤은 직접 통화를 끊더니 창밖의 화려한 야경만 말없이 바라봤다.임형섭은 휴대폰을 조수석에 던져 놓고 핸들에 이마를 기댔다.그러더니 낮게 중얼거렸다.“난 그냥... 하도진한테 알려 주고 싶었어. 그 사람이 널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내가 널 다시 데려올 거라고.”택시는 천천히 하씨 가문의 본가 앞에 멈춰 섰다.대문 앞에는 차 두 대가 앞뒤로 서 있었다.민하윤은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77화

    이남주는 눈치가 빨랐다.민하윤의 손을 덥석 붙잡더니 이남주는 목소리까지 떨며 물었다.“이거... 설마 진짜예요?”민하윤은 이남주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봤다.약지에 낀 분홍 다이아몬드 반지는 햇빛 아래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10캐럿짜리 메인 다이아몬드는 아무래도 존재감이 너무 컸다.민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웅크렸다.그러고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맑은 두 눈으로 이남주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친구가 준 거예요. 가짜예요. 그냥 장난삼아 끼는 거죠.”“누가요?”이남주는 눈이 단번에 반짝였고 엄청난 이야깃거리라도 찾은 사람처럼 목소리까지 높아졌다.“무슨 친구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혹시 하 대표님이세요?”민하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이남주는 더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얼마 전에 지벤의 어떤 재벌이 7캐럿 핑크 다이아몬드를 경매에 내놔서 뉴스에도 났거든요. 순도는 그냥 그랬다는데 컬러 다이아몬드 자체가 워낙 희귀하잖아요. 거기다 큰 캐럿이면 거의 값도 정하기 어렵다던데 그 7캐럿짜리도 낙찰가가 수십억이었대요.”민하윤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그러니까 가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진짜였으면 제가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끼고 다녀요. 그냥 고급 모조품이에요.”이남주가 나간 뒤, 민하윤은 곧장 약지의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서 가방 안쪽 칸에 넣었다.짐을 다 챙기고 내려가려다가 책상 위의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이남주가 섹시한 잠옷을 안 가져가고 두고 갔던 것이다.민하윤은 서랍을 열어 넣으려다가 멈췄다.이런 사적인 물건을 사무실에 두었다가 혹시라도 동료들 눈에 띄면 곤란할 것 같았다.잠시 고민한 끝에 민하윤은 그 상자를 결국 가방 안에 넣었다....산부인과.민하윤은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고 휴대폰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고 아무 연락도 없었다.자기가 뭘 기대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던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다음 환자 분... 민하윤 씨.”간호사는 주위를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76화

    “임형섭은 참으로 음흉한 자식이더라.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해 놓고는 뒤로는 나한테 이런 녹음을 보내서 우리 사이를 흔들어 놓으려 하잖아.”하도진은 독하게 민하윤의 옷을 잡아당기며 목덜미를 깨물었다.그러자 저릿한 통증이 민하윤의 온몸에 번졌다.몸부림치는 순간, 민하윤의 아랫배가 갑자기 경련하듯 조여 왔다.순식간에 민하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릴 만큼 아팠다.익숙한 통증이었다.민하윤은 온몸에 경보가 울리는 것 같았다.민하윤은 그대로 손을 들어 하도진의 옆얼굴을 세게 후려쳤다.하도진은 멈췄다.조금은 정신이 돌아온 듯, 한 손으로 침대 머리를 짚은 채 충격받은 얼굴로 민하윤을 바라봤다.민하윤은 몸을 떨고 있었다.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배의 경련은 계속됐으며 목소리까지 떨렸다.“도진 씨, 취했어요.”민하윤은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저 지금 뱃속에 아이가 있어요. 무서워요. 제발 이러지 마요.’하지만 하도진의 새까만 눈을 마주치는 순간, 말은 또 목에 걸려 버렸고 아무것도 꺼낼 수 없었다.하도진이 대체 얼마나 취했는지 민하윤은 감히 내기를 걸 수 없었다....하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통째로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이 자신도 답답했다.하도진은 민하윤을 잘 알았다.민하윤은 너무 차분할 정도로 차분한 여자였다.그래서 하도진은 더 확신했다.‘어젯밤에 분명 뭔가 있었어.’뺨이 은근히 욱신거리자 하도진은 다시 숨을 고르고 몸을 숙였다.두 손으로 민하윤의 어깨를 잡은 채, 쉰 목소리로 거의 부탁하듯 말했다.“어디 가지 마. 우리 얘기 좀 하자.”“죄송한데 저 정말 출근 늦어요. 진도에서 돌아오면 그때 얘기해요.”민하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가방을 든 채 나가 버렸다.하도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숙취 때문인지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두통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하도진은 성큼성큼 창가로 걸어가 민하윤이 돌아보지도 않고 택시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봤다.삼색이는 새끼 한 마리를 입에 문 채 한참이나 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75화

    다음 날 아침, 하도진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습관처럼 침대 옆을 더듬어 민하윤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하도진은 허공만 감쌌다.민하윤은 머리를 다 말린 뒤 욕실에서 나와 하도진을 한 번 보고는 곧장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하도진은 몇 초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그러고는 기억이 끊기기 전의 장면들이 뒤늦게 떠올랐다.하도진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드레스룸 문틀에 기대섰고 목을 한 번 가다듬더니 낮게 물었다.“내 잠옷은 네가 갈아입혀 준 거야?”민하윤은 이미 흰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서면서도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하도진을 공기처럼 무시하고 지나쳐 갔다.“어디 가?”하도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민하윤을 붙잡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뻗어 앞을 막았다.“오늘 말 똑바로 하기 전까지는 어디도 못 가.”민하윤은 차갑고 잔잔한 눈빛으로 하도진을 올려다봤다.요염할 만큼 예쁜 얼굴인데도 감정의 물결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민하윤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휴가가 끝났어요. 은행에 출근하려고요.”“왜?”하도진은 민하윤을 훑어보았다.눈매는 날카로웠고 볼 한쪽은 살짝 붉게 부어 있었다.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 섰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민하윤은 입술을 눌러 다물었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이제는 출근해도 될 것 같아서요. 제가 맡고 있는 리스크관리부 S급 프로젝트도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요.”하도진은 전날 술에 취해 이후 기억이 거의 끊겨 있었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어젯밤에 너한테 너무 심한 짓이라도 했어?”“아니요.”하지만 하도진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그럼 내가 심한 말을 한 거야?”민하윤은 재빨리 하도진을 한 번 흘겨보며 대답했다.“아니요.”“너 설마 짐 싸고 집을 나가려는 거야?”하도진의 시선이 민하윤의 손에 들린 가방으로 떨어졌다.안에는 간단한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이 들어 있었다.민하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74화

    하도진은 진호영을 한 번 힐끗 보더니 말했다.“그래. 잊지 말고 꼭 보내.”그날 식사 분위기는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하도진은 얼굴이 굳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민하윤에게 새우를 까 주고 반찬을 덜어 주고 생선 가시를 발라 주는 걸 멈추지 않았다.덕분에 민하윤의 앞 접시는 금세 음식이 수북해졌다.민하윤도 은근히 심술이 났기에 하도진이 직접 깐 새우는 그대로 놔두고 먹지 않았고 덜어 준 반찬과 발라 준 생선도 끝내 입에 대지 않았다.하도진은 민하윤을 한 번 흘겨봤지만 민하윤은 하도진의 시선조차 모르는 척했다.남자들은 잔을 주고받으며 서로 술을 권했고 하도진도 기분이 상해 있던 탓에 남이 따라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다 마셨다.호텔을 나설 때쯤에 하도진은 이미 취해 있었다.일행은 차를 나눠 타고 하나둘 자리를 떴다.하도진은 뒷좌석에 기대앉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민하윤만 바라봤다.“날 좀 달래 줘.”하지만 민하윤은 일부러 못 들은 척했고 시선은 앞만 보고 있었다.운전석의 기사님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백미러로 슬쩍 뒤를 살폈다.좁은 차 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고 아무리 냉방을 세게 틀어도 하도진의 속에서 치미는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하윤아, 날 좀 달래 달라고 했잖아.”하도진은 짜증이 난 듯 손을 뻗어 민하윤의 목덜미를 감쌌다.그러더니 그대로 자기 품으로 민하윤을 끌어당겼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하도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도진 씨, 진짜 왜 그래요? 유치원생도 아니고 왜 꼭 달래 줘야 해요? 왜 제가 달래야 하는데요? 먼저 표정을 구긴 건 도진 씨잖아요.”하도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짓더니 그대로 입을 맞췄다.지금 하도진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하윤이의 입부터 막아야겠어... 듣기 싫은 말만 골라 하는 이 입을 말이야.’민하윤은 입맞춤에 힘이 풀려 손발이 맥없이 늘어졌다.하얀 얼굴에는 수상할 만큼 붉은 기운이 번졌고 숨이 가빠지면서 셔츠 단추 몇 개도 어느새 풀려 있었다.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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