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하도진은 밤새 병실에서 주주 곁을 지켰다.새벽 6시가 되자 간호사가 들어와 주주에게 주사를 연결했다.차가운 약물이 혈관으로 들어가는 순간 주주가 눈을 크게 뜨고 울음을 터뜨렸고 통통한 손도 본능적으로 휘저었다.“바늘이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손대지 못하게 해 주세요.”하도진은 곧바로 주주를 품에 안고 통통한 팔을 살짝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간호사는 체온계로 주주의 이마를 쟀다.“37.5도네요. 아직 미열이 조금 있어요. 물을 자주 먹여 주세요.”하도진은 어디서든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반듯하고 선 굵은 얼굴에 189센티미터의 큰 키,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몸에 꼭 맞는 고급 맞춤 정장, 눈에 잘 띄지 않는 커프스 하나에도 취향이 묻어났다.병실에 머문 지 고작 하루였지만 하도진의 기사도 다녀갔고 집에서는 가사 도우미가 두 번이나 식사를 가져왔다. 산후 도우미도 계속 병실을 지켰고 송지훈 역시 하루에도 두세 번씩 들렀다.하도진은 외모뿐 아니라 집안도 평범하지 않다는 걸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소아과의 젊은 간호사들은 자연스럽게 하도진에게 관심을 가졌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 엄마는 단 한 번도 병실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몇몇 간호사들은 체온을 재거나 상태를 확인한다는 핑계로 평소보다 자주 병실을 드나들며 슬쩍 하도진과 말을 붙이고는 했다.하도진은 원래 자존심이 강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몸에 밴 예의와 집안 교육 덕분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처음 주삿바늘을 제대로 잡지 못했을 때 수간호사에게 표정을 굳힌 것 말고는 의료진에게도 늘 정중하게 대했다.그날도 체온을 잰 간호사가 바로 나가지 않고 수액 속도를 조절하는 척 머뭇거리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그런데 아이의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계속 병원에 안 오시네요.”그 순간, 하도진의 눈빛이 바로 차갑게 변했고 평소의 부드러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하도진은 간호사를 천천히 훑어보며 물었다.“아이 엄마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세요?”말 자체
사진 속의 두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서로 지기 싫다는 듯 한쪽 발씩 상대 몸 위에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민하윤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민하윤은 손끝으로 화면을 가볍게 쓸어 보기도 했다.그 모습을 본 하도진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하도진은 신생아과 병동에서 오기 전에 산후 도우미에게 따로 당부해 둔 상태였다.민하윤에게 영상통화가 오면 받지 말고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아이들의 사진을 간간이 보내면서 자고 있다고 둘러대라고 했다.오늘은 어떻게든 넘어갔다.‘하지만 내일은 어떡해야 할까.’병실 안에는 다시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하도진은 민하윤을 달래 가며 묽은 죽을 조금 먹였다.그러다가 민하윤이 조용히 말했다.“다음 달이면 육아휴직이 끝나요.”잠시 뜸을 들인 뒤 단호하게 덧붙였다.“그때는 회사로 돌아갈 거예요.”하도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민하윤은 하도진이 나가려는 줄 알고 서운한 마음에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그런데 다음 순간,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함께 익숙한 향기가 가까이 덮쳐 왔다.민하윤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눈물이 차오른 채 몸을 세게 비틀었다.“건드리지 마요...”하지만 하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민하윤을 품에 끌어안았다.한 손으로 허리를 단단히 감싼 채 얼굴을 민하윤의 어깨와 목 사이에 묻었다.민하윤은 그제야 하도진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하도진의 숨소리에도 묘하게 잠긴 기색이 섞여 있었다.“무슨 일 있어요?”“아무 일도 없어.”하도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저 눈을 내리깔아 속내를 감춘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도진은 하루 종일 억지로 버티고 있던 마음이 무너진 듯했다.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약한 모습을 오직 민하윤 앞에서만 드러냈다.민하윤도 더는 하도진을 밀어내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안긴 채 가만히 있었다.“하윤아.”하도진의 목
그러자 수간호사가 물러나고 이번에는 통통한 체격의 젊은 간호사가 나섰다.모두가 숨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바늘이 들어갔다.이번에는 제대로 혈관을 잡았다.수액이 천천히 관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간호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삿바늘을 고정한 뒤 의료용 밴드로 꼼꼼히 감아 주었다.송지훈이 진료를 마치고 달려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잔뜩 굳어 있는 하도진의 얼굴이었다.송지훈은 빠르게 다가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아기들은 혈관이 가늘어서 워낙 수액을 놓기가 어려워.”그제야 하도진의 차가운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주주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너도 나중에 애 낳아 보면 알 거야.”하도진이 낮게 말했다.“내가 의료진을 이해 못 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렇게 작은 애가 주사를 세 번이나 맞았잖아. 아직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도 말 못 하는 나이인데... 그냥 마음이 아파서 그래.”검사 결과 주주는 폐렴이었다.주주는 신생아과 병동으로 옮겨졌고 산후 도우미가 곁에서 계속 돌보기로 했다.하도진 역시 병원을 떠나지 않고 아이 곁을 지켰다.퇴근한 송지훈은 병원 식당에서 도시락 두 개를 사 들고 다시 찾아왔다.그런데도 민하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윤 씨는 이 일을 알아?”하도진은 눈을 내리깔고 주주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 주며 말했다.“하윤이한테는 말하지 마. 네가 아는 척도 하지 말고...”잠시 후 낮게 덧붙였다.“하윤이도 요즘 몸이 안 좋아. 고열에 폐렴까지 와서 벌써 사흘, 나흘째 입원 중이야.”송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하윤 씨도 폐렴이라고?”순간 엄마와 아이 사이에 감염이 있었을 가능성이 떠올랐다.하도진도 이미 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윤이가 알면 분명 걱정할 거야. 괜히 자기가 애한테 옮긴 거 아니냐고 또 자책할 수도 있어.”그래서 하도진은 더더욱 숨기고 싶었다.그때 산후 도우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런데 오래 숨기기는 어려울
하도진은 다급하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산후 도우미의 품에 있던 주주부터 받아 안았다.주주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긴 양말과 무릎 보호대 위로 만져도 통통한 종아리와 발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김옥자는 옆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아직 말도 못 하는 애가 아프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어디가 아픈지도 말 못 하고 기운도 없이 눈물만 그렁그렁하잖아.”하도진도 속이 타들어 갔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걱정됐고 아이가 이렇게 아픈 걸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밀려왔다.그래도 김옥자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달랜 뒤 산후 도우미와 함께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나가기 전에는 집에 남은 가사 도우미에게도 몇 번이나 당부했다.“연이의 체온도 계속 확인해 주세요. 자주 재고 물도 조금씩 자주 먹이고요.”쌍둥이는 한 아이가 아프면 다른 아이까지 함께 앓는 경우가 가장 걱정됐다.게다가 민하윤은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이 사실까지 알게 되면 분명 걱정으로 마음을 놓지 못할 게 뻔했다.병원으로 가는 동안에는 기사가 운전했다.하도진은 주주를 품에 꼭 안고 아이의 이마에 자신의 볼을 살짝 대 보았다.닿는 순간 뜨거운 열기에 하도진은 가슴이 철렁했다.두 아들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연이는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주주는 다섯 달 된 아기답지 않게 유난히 차분하고 의젓했다.도도하고 무뚝뚝해서 누가 아무리 웃겨도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아픈 지금도 주주는 울거나 보채지도 않았다.그저 아빠의 품에 얌전히 안긴 채 차 천장에 반짝이는 작은 별빛들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주주가 커다란 눈을 천천히 깜빡일 때마다 길게 올라간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코가 막혔는지 작은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고 숨소리도 평소보다 거칠고 힘겨웠다.“주주야, 아빠 좀 봐 봐.”하도진이 주주의 얼굴을 살피며 낮게 불렀다.“자면 안 돼. 아빠 한번 봐 봐.”산후 도우미는 보온병에 담아 온 미지근한 물을 젖병에 조금 따라 주주의 입가로 가져갔
민하윤은 코를 훌쩍였지만 여전히 창밖만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같은 공간에 머물렀고 하도진에게는 그런 침묵 속의 1분 1초가 유난히 길고 답답하게 느껴졌다.입원한 지 사흘째가 되어서야 민하윤의 열은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고 안정되기 시작했다.하도진은 퇴근만 하면 곧장 병원으로 왔고 낮에는 미룰 수 없는 해외 영상회의까지 병실에서 처리했다.두 사람은 마치 예의를 차리는 남처럼 지냈다.하도진은 세심하게 민하윤을 챙겼고 민하윤은 그럴 때마다 담담하게 고맙다고만 했다.친밀한 부부라기보다는 서로 선을 긋고 대하는 사이인 것 같았다.민하윤은 여전히 하도진과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까지 피하지는 않았다.며칠 동안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민하윤은 집에 있는 산후 도우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주주와 연이는 밤이 되면 엄마를 찾았다.화면으로 민하윤의 얼굴을 보고 나면 오히려 더 서럽게 울어 대다가 결국 지칠 대로 지쳐서야 겨우 잠이 들곤 했다.그날 민하윤은 흉부 CT 촬영을 하러 갔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숄과 휴대전화를 들고 검사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산후 도우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자마자 산후 도우미가 몹시 당황해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목소리까지 떨리는 걸 보니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하도진은 불안한 기색을 억누르며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상대는 잠시 말을 멈췄다.민하윤에게 건 전화인데 하도진이 받은 게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었다.“하윤이는 검사 중이에요. 무슨 일인지 그냥 말하세요.”“주주가 열이 나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평소보다 기운이 없더라고요. 몸도 뜨거워서 체온을 재 봤더니 열이 있었어요.”산후 도우미의 목소리가 더 다급해졌다.“마침 근처에 사는 송지훈 씨가 오늘 쉬는 날이라 잠깐 봐 주셨어요. 집에 있던 해열제 먹이고 겨우 재웠는데 두 시
“병원은 싫어요! 그냥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하도진은 이를 악물었다.정말 민하윤의 머릿속을 열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39.4도까지 열이 올랐는데 잠만 자면 괜찮아진다고 우기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아프면 치료를 받아야지. 버틴다고 낫는 게 아니잖아.”하도진은 뜨겁게 달아오른 민하윤을 품에 안은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하도진은 마음이 점점 더 다급해졌다.민하윤은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는데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품 안에서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채선화가 바로 알아차렸다.“하윤이가 추운가 봐. 열 때문에 오한이 오는 것 같아.”채선화는 곧장 사람을 시켜 담요를 가져오게 한 뒤 민하윤의 몸을 감싸 주었다.하도진도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현관 앞에는 이미 기사가 차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다행히 퇴근 시간대가 지났고 길이 막히지 않았기에 차는 거의 쉬지 않고 병원까지 달렸고 민하윤은 곧바로 응급실 진료를 받은 뒤 입원해 수액을 맞았다.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폐에 가벼운 염증이 있었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심근염으로 이어질 뻔했다.민하윤은 정신없이 3시간가량 잠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병실 안은 조용했다.민하윤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도진이 보이지 않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입원한 곳은 독립된 VIP 병실이었다.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소파와 정수기, 작은 냉장고까지 필요한 건 전부 갖춰져 있었다.손등에는 아직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잠시 뒤 간호사가 들어와 체온계로 다시 열을 쟀다.“38도네요. 아직 열이 좀 있어요. 물 많이 드세요.”민하윤은 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저를 데려온 사람은 갔나요?”“아까까지 여기 있었어요. 3시간 동안 계속 옆에 있으면서 수액 맞는 것도 지켜봤는데... 잠깐 나간 것 같네요.”간호사는 차트에 무언가 적으며 말을 이었다.“그분이 환자분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