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다만 백혜주가 최연서의 휴대폰을 몰래 빼돌려 이런 함정을 파놓을 줄은 몰랐다.다행히도 최연서는 항상 그녀와 나눴던 문자를 삭제했다. 심지어 두 사람은 각자의 연락처도 저장해 두지 않았기에 백혜주는 아마 눈치를 못 챌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결혼식 당일에 남편이 된 유상수의 내연녀를 백혜주는 왜 불러온 것일까?'‘설마 사람들 앞에서 유상수의 내연녀라고 밝힐 생각인가?'‘설마 아니겠지? 겨우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사람들 앞에서 유상수의 불륜을 밝힌다고?'‘그건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거 아닌가?'‘아니면... 설마... 아이 때문에?'그 시각 최연서는 그제야 자신의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마도 택시에 두고 내린 것으로 생각했다.유현진과 연락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다소 불안해졌다.그녀는 두리번거리며 유현진을 찾으려 했다. 그러자 귓가에 유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서?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유상수는 아주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사람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집에서 얌전히 아이만 신경 쓰라고 했잖아. 여긴 왜 온 거지?”최연서는 마침 유현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현진의 믿음직한 두 눈빛에 그녀는 바로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벌게진 눈가에, 살짝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이혼한다면서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동안 저한테 했던 말이 다 거짓이었던 거예요?”유상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줄곧 최연서 몰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백혜주와 최연서 둘 중 아무도 놓을 수 없었고, 놓을 생각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당연히 이 사실을 최연서에게 숨기고 있었다.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보안 요원에게 당부했다. 최연서를 잘 지켜보라고 하면서 절대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이 밥충이들은 하라는 건 안 하고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주위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젊은 여
유상수가 사라지자 최연서는 바로 우물쭈물하던 모습을 지우도 차갑게 그녀를 보았다.“그래요? 그럼 당신은 왜 날 여기로 부른 거죠? 대체 뭐가 무서워서?”백혜주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나이도 젊은 애가 대체 왜 저런 사람을 꼬신 거지?”최연서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사모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사모님도 그렇게 대표님을 꼬신 거 아니었나요? 전 평생을 열심히 살아도 유 대표님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였어요. 근데, 마침 제 앞에 그 기회가 떡 하니 차려졌더라고요. 그 기회를 제가 놓칠 수 있을 것 같아요?”백혜주의 안색이 파리해졌다.“너 정말로 유상수가 너랑 결혼해 줄 것 같아? 꿈 깨! 유상수는 네 배 속의 아이만 갖고 싶어 하는 거야. 네가 애 낳기만 한다면, 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거라고!”최연서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분노와 불안이 치밀어 올라왔다.그런 최연서의 모습마저 하현주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매 순간 그녀가 전에 하현주에게 했던 죄악을 떠올리게 했다.“아이가 바로 제 제일 큰 무기죠.”최연서는 그녀를 흘겨보았다.“아무리 저랑 결혼 안 해줄 거라고 해도, 이 아이만 있으면 유씨 가문의 재산을 한몫 챙길 수 있거든요. 대표님께서 아무리 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에겐 자꾸 눈길이 가겠죠. 심지어 남자아이인데 신경 안 쓰이겠어요? 당신이 앉은 사모님 자리도 남자아이를 낳아서 차지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아니에요? 이제 보니 제가 사모님께 고마워해야겠네요. 이런 꿀팁을 알려줘서 말이죠.”그녀는 이내 뜸을 들이며 자신의 배를 만졌다.“당연히 나에게 찾아온 아이한테도 고맙고요.”백혜주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분노를 꾹꾹 참고 있던 그녀는 싸늘해진 얼굴로 말했다.“돈 필요한 거 아니었어? 얘기해 봐. 얼마를 원해.”최연서는 멈칫했다.“무슨 의미이죠?”백혜주는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이따 정자 근처에서 만나.”말을 마친 그녀는 최연서가 대꾸를 하기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정자는 별로 높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곳에 어디 문제가 있겠는가?고여정은 멈칫하더니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그러나 유상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건, 최연서 배 속에 있는 그의 아들이었다.백혜주는 치밀어 오르는 화에 안색이 파리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유상수의 팔을 꽈악 잡고 붉어진 눈매로 말했다.“여보, 아이는 무사할까요? 배가 너무 아파요.”정신이 든 유상수는 바로 그녀에게 말했다.“어어, 걱정하지 마. 의사가 금방 도착할 거야. 괜찮아.”바로 이때, 사람들 무리에서 유현아가 갑자기 나와 최연서를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신우가 그녀를 막아버렸다.“유현아 씨,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유현아는 이를 갈았다.“분명 저 뻔뻔한 년이 우리 엄마를 밀어버린 거예요. 저년은 죽어도 마땅한 년이라고요! 저런 여자를 왜 살려줘요?”그녀의 말에 주위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그들은 바로 갑자기 나타난 최연서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기에 유씨 가문 사람과 아는 사이인지 말이다.신우가 여유롭게 말했다.“유현아 씨가 어떻게 사모님이 이 아가씨를 밀어버린 것이 아닌, 이 아가씨가 사모님을 밀었다고 확신하는 거죠? 아무리 봐도 이 아가씨가 더 심각하게 다친 것 같은데, 안 그래요?”“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 년은 나이도 어린 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우리 아빠를 꼬셨다고요! 우리 엄마를 찾아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말이에요!”저런...알고 보니 유상수의 두 번째 내연녀였다.그럼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유상수는 최연서의 정체가 밝혀지자,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며 소리를 질렀다.“네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헛소리라니요?”유현아는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정말 이 상황이 안 보여요? 저 여자가 우리 엄마 유산하게 하려는 거잖아요. 그리고 엄마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거라고요!”“유현아!”백혜주는 창백해진
백혜주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는 양시은에게 휙 시선을 돌렸다.‘여기에 왜 CCTV가 있어?’결혼식장을 꾸밀 당시, 그녀는 분명 이곳을 여러 번 확인했었다. 식물이 무성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은 장소였다. 물론 CCTV도 없어 손을 쓰기 제일 좋은 곳이었다.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백혜주는 일부러 정원 관리사에게 용호 공원 근처에 있는 모든 CCTV의 위치를 물었다. 이곳에 CCTV가 없다는 것을 백혜주는 확신했다. 하지만, 양시은은 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걸까?백혜주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시은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건가요?”양시은은 억울할 표정을 지었다.“혜주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용호는 저희가 제공한 장소예요. 고객님이 만약 이곳의 설비 문제로 사고를 당하면 저희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곳곳에 전부 CCTV를 설치했어요. 전 그저 두 분이 서로 다른 입장이니 CCTV를 확인하자고 제안한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혜주 씨를 의심하는 거겠어요?”최연서도 얼른 눈치를 채고 울먹거렸다. “대표님, 정말 제가 밀지 않았어요. 사모님이 절 여기로 부르셔서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갑자기 사모님께서 절 끌고 난간 밖으로...”유현아가 급히 최연서의 말을 끊었다. “닥쳐! 네까짓 게, 지금 이 상황에 아직도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려고 들어?”한성우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CCTV도 확인하지 않았는데, 현아 씨는 이분이 사모님을 밀었다고 확신하는 거예요?”유현아가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 엄마 임신했어요. 계단 올라가기도 버거워하는 임산부가, 어떻게 사람을 밀겠어요?”한성우가 여유롭게 말했다. “그러게요. 계단 올라가는 것도 버거워하는 고령 산모이신 사모님이,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곳에 왔을까요? 설마 이분이 사모님을 굳이 여기까지 안고 와서 밀어버린 건가요?”멈칫하던 유현아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뜻이요? 설마 우리 엄마가 저 계집애
유상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다행히 앰뷸런스가 도착해 얼른 백혜주와 최연서를 병원으로 옮겼다. 유현진의 계획은 이제 겨우 절반밖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그녀도 핑곗거리를 찾아 자리를 떠야 했다. 그녀는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한서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남산 병원으로 가자. 거기 의료시설이 더 좋아. 내가 준비해 두라고 할게.”그는 유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진아, 어머님 유품도 아직 그곳에 있어. 내가 정리해 두라고 할 테니까, 같이 가서 가져올래?”유현진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정리하라고 시키실 거면, 그냥 택배로 보내시지 그러세요?”강한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냥 그 핑계로 너 한 번 더 보려고 그러지.”강한서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질척거리잖아...’한 무리 사람들이 남산 병원으로 들어섰다. 유현진과 일행은 민경하가 운전한 차로 함께 이동했다. 차에서 차미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까 백여우가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걔 동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있는 거 봤어? 배 속의 애가 자기 애라도 되는 듯 말이야.”아무도 차미주의 말을 받아치지 않자 당황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어?”한성우가 차미주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너 못 알아본 거야? 지난번 백혜주가 병원에 검사하러 갔을 때, 너 내 차에서 백혜주랑 어떤 남자가 다정하게 있는 거 봤었잖아. 그 남자가 바로 그 동생이야.”“아니야. 차에 있던 그 사람은 백혜주 내연남이고, 아까 그 사람은 동생...”멈칫하던 차미주가 갑자기 욕을 지껄였다. “제길!”“백여우 동생이 바로 그 내연남이었어? 바로 눈앞에서, 간도 크네. 어쩐지 아까 또 다른 백현석이 나타났을 때 그렇게 긴장하더라니. 유상수는 정말 제대로 배신당했네.”차미주의 말에 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강한서가 유현진에게 물었다. “정자 쪽에 정말 CCTV가 있어?”유현진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원래는 없었
강한서는 최연서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유현진을 위로했다. “괜찮아. 곧 병원에 도착해. 나중에 의사에게 제대로 검사하라고 할게.”유현진은 피어오르는 걱정을 억누르며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곧 병원에 도착했고 유상수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최연서를 산부인과로 데려다 달라고 소리쳤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 아들 중,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강한서의 지시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층의 수술실로 보내졌다. 어찌 되었든 유상수는 백혜주의 남편이었고 아무리 최연서 뱃속의 “아들”이 걱정된다 해도 지금은 백혜주 수술실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상수는 대체 강한서를 얼마나 친근하게 생각한 것인지, 그에게 최연서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최연서는 병원에 도착하고부터 구토를 멈추지 않았다. 의사도 여러 검사를 해봤지만 문제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더니 곧 최연서가 하혈하는 것을 발견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현진과 강한서는 의사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임신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가 나요?”의사도 당연히 환자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의사는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건넸다. “환자분이 뭘 먹었는지 아실까요?”유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식중독이에요?”의사가 입술을 짓이겼다. “식중독은 하혈을 일으키지 않아요. 복통과 구토를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페스테론, 미소프로스톨과 같은 약물을 복용했을 것으로 의심됩니다.”유현진이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약이죠?”“유산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이에요. 지금 환자분 증상은 제가 전에 진료했던 다른 환자분의 증상과 비슷해요. 방금 채혈해 검사하러 갔어요. 구토물도요. 곧 원인을 알 수 있을 겁니다.”의사의 말에 유현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연서가 어떻게 그런 약물을 복용한 것인지 유현진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의사의 추측이
“내가 얘기 안 했나? 백혜주, 우리 엄마가 후원하던 학생이었어. 그 중 유일하게 입시에 떨어져서 산업대학에 들어갔던 학생이기도 했고.”입시에 떨어졌던 원인은 그 당시 유상수를 만나느라 학업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산업대학도 당시로는 너무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었다. “백혜주는 의학지식이 있는 사람이야. 내 기억으론, 엄마는 몸에 이상이 없었는데도 계속 임신이 되지 않았어. 시험관 시술에 한 번 성공했지만 얼마 못 가 유산했지.”강한서는 그 순간, 유현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눈치챘다. “넌 백혜주가 어머님에게 손을 썼다고 생각하는 거야?”유현진이 고개를 들었다.“네 생각은 어때?”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처방 약은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특히 낙태약 같은 건, 잘못 복용하면 의료사고가 날 수도 있어.”그러니 최연서가 복용한 약은, 백혜주가 아는 사람을 통해,불법적인 루트로 손에 넣은 것일 수 있었다. 지금도 가능한 일이라면 전에도 당연히 약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혜주가 그 약을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알아낼 수만 있으면 당시 하현주의 유산이 백혜주에 의한 것인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볼게. 만약 정말 백혜주가 한 짓이면, 그 죗값까지 치르게 하면 돼.”바로 그때, 차미주가 계단으로 내려오며 소리쳤다. “백여우 유산했대.”한성우가 그런 차미주를 뒤따르며 말했다. “인간아, 목소리 좀 낮춰.”차미주가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요리조리 눈치를 보더니 그제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여우 배 속에 있던 아이, 유산됐대. 간호사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남자아이라고 하더라고. 네 그 멍청한 아빠는 지금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 넌 모를 거야. 지금 자기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하며 울고 있다니까.”유현진과 강한서가 눈을 마주치더니, 강한서가 말했다. “가볼래?”유현진이 말했다. “내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백혜주가 의심할 거야.
흠칫 몸을 떨던 백혜주는 무의식적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유상수는 그녀를 등지고 있었던 터라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제 막 아들을 잃은 유상수는 CCTV를 볼 마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괜찮아요, 시은 씨. 괜한 걸음 하셨네요.”양시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 보시죠, 대표님. 저도 사업하는 사람이라,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피하고 싶거든요. 터놓고 얘기를 끝내야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겨 대표님께서 저를 찾아오는 일이 없죠.”모두 사업하는 사람이라 유상수도 양시은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양시은의 말에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백혜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양시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지랖을 부리는 양시은을 원망했다. 유현아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모님,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 않나요? 저희 엄마, 방금 수술 마쳤어요.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해요.”수술을 마쳤다는 말에, 양시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유현아는 양시은이 눈치껏 자리를 피할 줄 알았지만 양시은은 오히려 말했다. “그럼 더더욱 CCTV를 확인해야죠. 아이가 왜 떠나게 된 건지, 모르고 지날 수는 없잖아요.”양시은의 집요함에 유현아는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시비를 걸려고 온 건가?’그러나 유상수는 오히려 양시은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유산된 것이 남자아이라는 생각만 하면 그의 분노는 무서운 속도로 끓어올랐다. 그는 대체 누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꼭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상수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죠, 시은 씨.” 양시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저도 책임져야 하는 일은 피하고 싶기도 하고요.”그러더니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CCTV 영상을 유상수에게 보여주었다. 백혜주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