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 ...그녀는 가만히 이불을 위로 끌어올렸다. “출근 안 해?”입을 열자 유현진은 그제야 자신의 목소리가 잔뜩 쉬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현진은 얼른 마른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유현진의 행동을 힐끗 쳐다본 강한서의 눈에 웃음기가 서렸다. “오늘 주말이야.”유현진은 “그래”라고 대답하고 어깨를 이불 속에 움츠렸다. “몇 시야?”강한서가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십 분 전 11시.”유현진은 일어나고 싶었지만, 강한서가 그럴 생각이 없으니 부끄러워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옷을 입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를 가질 땐 부끄러움이 사라졌지만, 잠자리가 끝난 뒤엔 다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어색함은 여전했다. 강한서가 움직이지 않자 유현진도 어쩔 수 없이 할 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유상수 쪽은 어떻게 됐을까?”“어젯밤 백혜주가 유현아에게 유서훈을 숨기라고 시켰다가, 한성우에게 들켰어...”강한서는 어젯밤 한성우가 한 일을 숨김없이 유현진에게 알려주었다. “지금 유서훈이랑 친자확인 검사 하느라 바쁠 거야.”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놀라더니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한평생 아들, 아들 하더니, 이제껏 다른 사람 아들을 키운 거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유현진은 강한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강한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들은 유상수 자식이 아니지만, 와이프는 맞잖아. 와이프를 얻었는데 아이도 따라왔으니, 괜찮지 뭐.”유현진: ...유현진은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 “위로를 정말 기가 막히게 하네.”강한서는 고개를 숙여 유현진을 쳐다보았다. “일어날 수 있어?”유현진이 이불을 꽉 움켜쥐고 최대한 침착하게 보이려고 했다. “너 먼저 일어나. 난 좀 더 누워있을게.”일어나려던 강한서는 유현진의 말에 다시 누워버렸다. “그럼 나도 같이 잠깐 누워있자.”유현진: ...“네가 지금 안 일어나고 나중에 같이 일어나면 내가 너
“진짜야. 맹세해.”강한서는 그제야 더는 그녀의 전남친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전부 점수에 쏠렸기 때문이다.유현진은 휴대폰을 들고 메모에 점수를 기록하는 강한서의 모습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얼마나 된 거야?”강한서는 휴대폰을 슬쩍 돌리며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넌 변덕이 심해서 안 보여줄 거야. 괜히 보여줬다가 또 내 점수를 깎으려 할지도 모르잖아.”“...”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흥, 안 보여줘도 점수 깎을 건데!'강한서가 열심히 휴대폰 메모 앱에 기록하고 있던 와중에 유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발신인은 송민준이었다.그녀는 강한서에게 검지를 올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인 뒤 전화를 받았다.“현진아, 점심에 시간 돼? 같이 식사나 하고 싶은데.”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를 응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유현진은 시선을 떨군 채 나직하게 물었다.“전부 오시는 거예요?”송민준은 멈칫하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아직 부담스러우면 내가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할게.”유현진은 한참 침묵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만나러 오기 위해 직접 그녀가 있는 도시까지 찾아온 어르신과 백발이 듬성듬성 있는 송병천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곤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그래요, 오빠. 장소 정하고 알려주세요. 가족들과 한번 만나 뵙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송민준은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이었다. 그리곤 바로 입꼬리를 올리며 기쁜 듯 말했다.“그래, 이따 오빠가 데리러 갈게.”유현진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오면 사람들이 또 오빠가 내 스폰서라고 오해할 거예요. 게다가 파파라치한테 사진까지 찍히면 더 일이 귀찮아질 거예요.”송민준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흥, 스폰서라고 해. 그 사람들이 뭘 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우리 집안, 내 동생도 못 챙겨줘?”유현진은 한참을 웃었다.“그럼 저 연기 그만 포기하고 바로 사업을 물려받아도 돼요?
유현진이 한세 한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강한서는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마침 신우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출장비 줘.」강한서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더니 바로 감사패 사진 한 장을 신우에게 보내면서 말했다.「만드는 중이야. 이따 저녁쯤에 고여정 씨 회사로 도착할 거야.」그러자 신우가 빠르게 답장했다.「? 출장비가 고작 3만 원짜리 감사패라고? 그때 축의금도 3만 원보다 훨씬 더 많이 넣었어.」강한서는 그의 답장을 바로 캡처하여 고여정에게 보내면서 물었다.「얼마였어요? 모자라는 돈은 제가 보충해 드릴게요.」고여정이 답장했다.「그이 말은 믿지 마세요. 저흰 축의금 안 냈어요.」강한서는 이내 고여정과 나눈 대화를 캡처하여 신우에게 보냈다.그러자 신우는 더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신우는 강한서에게 중지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보냈다.강한서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물었다.「지난번에 알아보라고 한 건, 알아봤어?」신우의 표정이 싸악 바뀌었다.「그게 어디 알아보라고 한 거냐? 훔치라고 한 거지?!」강한서는 담담하게 말했다.「심심하면 남의 시스템 보안을 뚫고 몰래 해킹하는 게 네 취미가 아니었나?」그러자 신우는 진지하게 말했다.「그건 재능 기부야. 그냥 허술한 시스템 보안을 다시 강화하게 해주려고 그런 거라고.」신우의 해킹 실력으로 뚫지 못하는 시스템은 없었다. 게다가 그가 몰래 코딩을 살짝 바꾸어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았다.고여정은 비록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신우의 부모님은 고여정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고여정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여정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기에 결혼하자마자 신우를 끌고 재산조회를 했었다. 재산조회를 함으로써 그녀는 이혼을 해도 절대 신우의 돈 한 푼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매번 재산조회에 실패했다. 두 사람이 조회하러 갔을 때마다 컴퓨터가 항상 고장이 나서 조회가
신우가 답장했다.「여정이가 그러는데, 그 주삿바늘의 방향과 각도가 안에서 밖으로 찌른 것 같대. 보통의 상황이라면 스스로 주사를 놓을 때 방향이 밖에서 안이거든? 근데 방이진 몸에 있는 주삿바늘 흔적을 보니 어깨 바깥쪽에 있었어. 아무리 방이진이 안에서 바깥으로 주사를 놓는다고 해도 각도가 틀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확실히 수상하네. 경찰한테는 말해봤어?」「사건 현장에 다른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모나 지문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았거든. 그리고 방이진의 가족도 나 몰라라 하고 있어서 아마 다시 수사하기는 어려울 거야. 그리고 이 사건에 별다른 용의자도 나오지 않아서 아무리 재수사를 신청한다고 해도 경찰 측에서 들어주지 않을 거야.」강한서는 입술을 틀어 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범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아참, 지난번에 현진 씨 메이크업 정말 짱이더라. 네 앞에 그렇게 대놓고 있었는데, 너 현진 씨 전혀 몰라봤잖아. 여정이가 대신 물어봐달라고 하던데, 대체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한 건지 말이야. 우리 팀원들도 제대로 배우게 하려고. 나중에 분장 잠입할 때 아주 유용할 것 같거든.」“...”강한서는 더는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한세 한식당의 문턱을 넘자마자 캐주얼한 옷을 입은 송민준이 입구 근처에서 누군가와 전화하는 것을 발견했다.그의 차림새는 정식적인 차림새가 아니었고 집에서 바로 온 듯한 캐주얼한 모습이었으며 분위기도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유현진은 그런 송민준의 모습을 빤히 보았다. 확실히…. 어딘가 그녀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차미주가 왜 줄곧 송민준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선해 보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송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로 전화를 끊고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유현진은 가방 줄을 꽈악 잡았다.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송민준은 아
유현진은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걸었다. 긴장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족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도 있었다.룸은 아주 컸고 정중앙에 있던 테이블에 4명이 앉아 있었다.테이블 중앙 자리엔 당연히 인자해 보이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유현진이 이미 전에 영상통화로 만나 뵌 적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될 분들이었다.외할머니 옆엔 송병천이 앉아 있었다. 그는 살짝 살이 오른 모습이었지만 풍기는 아우라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에 그의 안색이 살짝 변하기도 했다.그리고 외할아버지 옆엔 이목구비가 선명한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얼굴이 다소 낯익었고 아주 훤칠하여 대충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게다가 몸도 아주 건장하여 머리 스타일만 조금 바꾼다면 강한서와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유현진은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불렀다.“우리 아가.”공영선의 눈시울도 많이 붉어졌다. 그녀는 한태진의 팔을 잡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애가 놀라겠어요.”송병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를 뒤로 빼주며 말했다.“현진아, 얼른, 얼른 여기 앉아.”송민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소개했다.“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전에 영상통화로 한번 뵀을 거야. 아버지도 뵀었고. 그리고 이분은 우리 외삼촌, 이름은 한준웅이셔. 이번에 특별히 널 보러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함께 오셨어. 외숙모는 오늘 부영시에 세미나가 있어서 오지 못하셨고, 나중에 다시 시간 내서 널 보러 오겠다고 하셨어.”긴장한 유현진은 손만 꼼지락거렸다. 줄곧 긴장감이라는 것 없이 얘기를 잘하던 그녀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순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송민준은 손에 든 선물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이건 현진이가 두 분을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래요.”두 사람의 얼굴엔 바로 기쁜 웃음꽃이 피었다. 공영선이 말했
공영선은 유현진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 딸의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유현진도 마음이 울컥해지는 기분이었지만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그녀는 이 사람들과 달랐다. 어릴 때부터 하현주의 보호 속에 잘 컸기에 그녀는 20여 년간 자신이 하현주의 친딸이 아닐 거라는 의심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고통과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한씨 가문과 송씨 가문에서는 눈앞에서 딸이자, 아내인 한아람을 잃었다.그래서 그들은 한아람의 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이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유현진은 그저 가슴이 아프다는 감정만 들뿐 한순간에 비어 있던 마음에 그간의 감정을 가득 채워 넣을 수 없었다.공영선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물었다.“현진아, 그동안 힘든 일은 없었어?”유현진은 시선을 떨군 채 나직하게 말했다.“엄마가- 아니, 그러니까 저를 키워주신 엄마가 저한테 아주 잘해줬어요. 그래서 고생 같은 건 별로 해본 적이 없이 자랐어요.”공영선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그 아이도 참 인생이 고달프구나. 그래도 이젠 더는 고달피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틀 뒤에 우리를 산소로 데려가 주렴. 직접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나.”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임자, 좀 비켜보세요. 나도 우리 아가랑 말 좀 해봅시다.”한태진은 둘 사이에 끼어들며 두둑한 돈 봉투를 유현진의 가방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현진아, 이건 내가 너를 위해 매년 준비했던 세뱃돈이다. 그간 계속 모아두고 있었단다.”그리고 이내 작은 목소리로 유현진에게 말했다.“다른 애들은 이만큼 받지도 못했어.”한중웅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 왜 제가 할 말을 먼저 하세요?”한준웅도 두둑한 돈 봉투를 꺼냈다.“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송병천은 입술을 틀어 문 채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냈다.“민준이 이 자식, 너 설마 내가
서해금은 말을 마쳤다. 유현진은 빠르게 현장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다.조금 전까지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녀를 대하던 한태진의 표정도 다소 차가워졌다. 그리고 공영선의 얼굴엔 표정이 사라졌다.술잔을 들고 있던 한준웅은 그저 입술을 틀어 물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민준도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줌마.”송병천은 어색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서해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혈압약을 깜박하고 안 가져가셨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제가 가져왔죠.”송민준은 입술을 틀어 문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혈압약은 심장질병에 먹는 약처럼 긴급상황에 먹는 약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굳이 매일, 매 순간 몸에 약을 지닐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송병천은 별다른 생각 없이 약을 받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사람을 시켜서 보내도 되는데, 왜 직접 온 거야?”서해금이 답했다.“아저씨랑 아주머니께서 한주시에 이렇게 오래 머물고 계신 건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한 번쯤은 뵈러 올까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현진이, 현진이는 당신이 그동안 그렇게 집에 데리고 오고 싶어 했던 당신 딸이잖아요. 저도 당신이랑 친딸을 만난 기쁨을 같이 느끼고 싶었어요.”송병천은 다소 난감해졌다.한씨 집안의 두 노부부는 그의 재혼에 비록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불쾌한 심정 정도는 송병천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게다가 이번은 현진이와 가족 사이임을 밝히는 자리였기에 서해금이 이 자리에 나타나는 건 확실히 부적절했다.송병천이 나직하게 말했다.“당신 먼저 돌아가게. 나중에 현진이가 다시 어느 때에 시간이 난다면 그때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어르신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게.”서해금은 다소 실망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집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께 몇 마디 하게 해줘요. 그
유현진은 목이 메어오는 것 같았다.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미묘해졌다.결국, 송병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현진아, 받아. 그냥 어른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유현진은 하는 수 없이 받으며 예의상 감사 인사도 했다.공영선은 한참이나 서해금을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돌려 한준웅에게 말했다.“준웅아. 가서 수저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해라.”서해금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전 괜찮아요, 아주머니. 어차피 지금 가려고 했어요. 그럼 얘기들 나누세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송병천을 보며 말했다.“집에 있는 방은 제가 얼른 치워볼게요. 나중에 현진 씨가 들어와 살아야 하니까요. 가람이 방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가람이한테 바꾸라고도 말해볼게요. 얼른 아이를 집에 데려와야죠.”송병천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지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그래, 수고 좀 하게.”서해금은 웃으면서 나직하게 말했다.“뭘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들에게 인사를 한 후 바로 떠나버렸다,비록 서해금이 갔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다소 서해금이 등장하기 전보다 무거워졌다.그녀는 한태진과 공영선의 기분이 살짝 불쾌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녀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위가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니 속으로 어느 정도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사실 그녀도 다소 신경 쓰였다. 특히 서해금이 방금 선심을 쓰는 듯한 그 어투는 마치 그녀가 애초에 그녀의 것이 아닌 낯선 가정에 끼어든 침입자 같게 들려 기분이 불쾌했다.그녀는 송씨 가문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식사 계속하죠.”한준웅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그리곤 웃는 얼굴로 유현진에게 물었다.“현진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많이 많이 먹어. 우리 집안엔 그렇게 복잡한 규칙 같은 거 없으니까 눈치 볼 필요도 없어.”유현진도 많이 누그러진 모습으로 답했다.“알았어요, 삼촌.”한준웅은 멈칫하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 한태진에게 말했다.“아버지, 들으셨죠? 얼른 카
[부정행위 같은 건 내부 조사로 진행해봤자 무슨 결과가 있겠어요? 학교 입장에선 당연히 부정하겠죠. 창피하잖아요.][부정행위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여기로 모이세요!]...댓글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던 그때, 그 대학원생은 좋아요가 제일 많이 눌린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았다. [진윤 학생의 루머가 퍼진 그날, 전 바로 해명 글을 올렸었어요.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피드는 계속 비공개로 전환이 되었어요. 서버 문제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피드를 업로드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며칠 사이 계정을 바꿔가며 계속 피드를 작성했지만 결과는 똑같았어요. 계속 업로드가 되지 않더라고요. 실체가 없는 압박 때문에 전 진윤 학생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어요. 그더라 오늘 점심이 되어서야 계정이 정상적으로 활성화되었고요.][전 대학원 2학년생이에요. 솔직히 얘기하면 적지 않은 학생에게 과외를 해줬어요. 하지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진윤 학생은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 유일한 대학생이었어요.][과외비도 많이 챙겨줬고 사교성도 좋아서 다른 과외는 전부 거절하고 진윤 학생 한 명만 했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공대의 많은 수업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진윤 학생은 기초도 좋은 편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새벽 2, 3시까지 공부하는 것도 기본이었어요. 그러니 그 정도 난이도의 시험은 통과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죠.][인터넷에선 다들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진윤 학생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던데 솔직히 얘기하면 만약 진윤 학생이 부정행위로 그 정도 성적을 받은 거라면 정말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제가 하고 싶은 말을 여기까지예요. 앞으로 악플에 더는 대응하지 않을 거예요.]그는 설명과 함께 캡처 여러 장을 함께 공개했다. 그 중에는 업로드에 실패했던 여러 개의 피드와 늦은 새벽 진윤과 문제집을 토론하던 대화기록 그리고 진윤이 그에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