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도 화가 나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도 하설윤에게 이용당한 거예요. 표절한 사람은 하설윤이니 책임을 물어도 하설윤에게 물으셔야죠.”장희진은 바로 선을 그었다. 자신은 이 일에서 발을 빼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현진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뒤에서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설윤은 감히 이런 난리를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한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설윤이 먼저 화를 냈다. “부장님, 전 부장님이 시키시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지금 절 버리시려고요?”‘저 멍청이가! 이 정도 확인 사살로도 부족한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장희진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제가 시킨 대로라뇨?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설윤 씨가 저에게 디자인 시안을 보냈을 때, 설윤 씨가 원작자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든 설윤 씨의 편에 섰던 건데, 결과적으로 따져보던 저도 설윤 씨에게 속은 거잖아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대표님께 설윤 씨 칭찬을 얼마나 많이 했다고요. 설윤 씨가 직접 대표님께 설명하세요.”장희진은 이미 충분히 눈치를 줬다고 생각했다. ‘회사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표절은 네가 인정해. 네 자리는 내가 어떻게든 지켜낼 테니.’하지만 지금의 하설윤에게 그 암시를 이해할 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설윤은 그저 자신이 버려진 아이 같았다. 그녀는 자기의 앞날까지 걸어가며 장희진을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버려진 건 자신이었다. 그 모든 죗값을 안고 앞으로 어떻게 이 업계에서 버틸 수 있을까?‘날 먼저 버린 건 당신이야.’하설윤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부장님, 이 계획은 부장님 아이디어였잖아요. 스트레인지의 발표회를 빌어 노이즈 마케팅을 기획한 것 말이에요. 계획이 무산되자 바로 이렇게 절 버리시네요?”장희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하설윤이 흥분하며 말했다. “제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 부장님이 제일 잘 아시
“허, 뭐야. 합금이잖아. 옆에 건 전부 옥 비취 자투리잖아. 저렇게 얇게 만든 걸 보니 분명 원재료도 싸구려일 거야. 그냥 가치도 얼마 안 되는 걸 파는 거면서, 뭘 이렇게 자랑한대?”“어떤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꼴을 보니 배가 너무 아픈가 봐요. 원재료만 생각하고 인건비는 생각 안 하시나 봐요? 맞아요. 확실히 비싼 건 아니죠. 누구나 살 수 있죠. 하지만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한테 무료로 준다고 하잖아요. 이걸 만드는 데에도 돈이 몇억은 들었을 거예요. 거기다 그냥 사고 싶은 사람만 사라고 하잖아요. 억지로 사라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거죠? 구매하지 않아도 무료로 목걸이 하나 받는 건데, 무료로 준다고 해도 욕을 하네요. 참 어이없지 않아요?”“그렇게 따지고 보면 카르티에도 합금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왜 그건 싸구려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죠? 스트레인지는 국내 주얼리 브랜드에요. 질량은 물론이고 해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차지하는 정도죠. 그런데 국내 브랜드를 지지하지 못할망정 욕하고 있네요?”“그러니까요. 2억이 뉘 집 개 이름으로 느껴지나 보죠. 차라리 2억을 기부하고 나서 말하면 모를까.”괜히 말을 꺼냈다가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자 그 사람은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한현진은 단단히 두어 마디를 한 뒤 무대에서 내려왔고 제품 소개는 전혜지 등 사람에게 맡겼다.송병천은 딸이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한현진은 눈웃음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왜 불렀어요?”송병천은 얼른 한현진의 손을 잡고 아주 기세등등하게 옆에 있는 몇몇 중년 남자들에게 소개했다.“내 딸이야. 어때, 나랑 닮았지? 예쁘고 대범하지.”한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그중 한 명이 웃으면서 말했다.“하하하, 너 정말 억지로 갖다 붙이지 마라. 예쁜 게 왜 널 닮아서 예쁘냐?”다른 한 명도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네가 젊었을 때는 예쁜 마누라랑 결혼했다고 매일 우리한테 와서 자랑하더니. 허
학력... 강한서의 학력은 석사까지였다. 비록 박사를 신청하진 않았지만, 해외로 가서 1년 동안 학교 다니기도 했었다.말을 예쁘게 못 하는 건... 확실히 강한서의 입은 주둥아리였다.그리고 착하다?한현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송씨 가문의 딸이라는 것을 밝히기 전에 송병천은 루나를 보겠다는 핑계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가 우연히 강한서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강한서는 종아리 근육 풀어주는 도구로 송병천은 20분 정도 세워두었다.‘흠, 확실히 착한 건 아니네.;송병천이 한 말에 한현진은 변명할 이유조차 찾을 수 없었다.그러자 송병천의 친구가 의아하게 물었다.“뭐야,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없는 녀석이잖아. 그런 애랑 어떻게 딸이랑 사귀게 허락한 거냐?”송병천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답했다.“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건 아니야. 얼굴이 반반하거든. 민준이랑 비길 수 있는 정도야. 그리고 창업한 반도체 회사에서 꽤 좋은 성과를 이루고 있거든. 비록 말은 예쁘게 하진 않지만, 머리가 좋아. 지난번에 내가 인스타에 로봇 사진 게시한 거 봤지? 그거 걔가 만들어서 나한테 선물한 거야. 뭐, 난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한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강한서가 로봇을 선물한 일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도 송병천이 인스타에 올린 게시물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송병천이 그녀의 아빠라는 것을 몰랐을 때 그녀는 루나를 송병천에게 팔 생각을 하면서 강한서의 사업을 도와주려고 했었다. 나중에 그녀는 이 일을 잊게 되었지만, 강한서는 기억하고 업그레이드 버전을 바로 송병천에게 한 대 선물했다.강한서는 최선을 다해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점수를 따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송병천은 비록 겉으로는 싫은 척하고 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싫은 기색이 아니었고 오히려 자랑하는 듯한 어투였다.물론 그의 친구들은 바로 알아듣고 직설적으로 말했다.“이 꼰대가. 딸 자랑질 이어서 이젠 사위 자랑질이냐!”“젠장,
그는 이를 뿌득 갈며 말했다.“그건 네가 한 말인 거야, 아니면 아저씨가 한 말인 거야?”한현진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당연히 우리 아빠가 하신 말씀이지.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강한서는 그녀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바로 사르르 넘어가 입술을 틀어 문 채 말했다.“아저씨가 정말로 나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셨어?”“응, 게다가 일리가 있어서 나도 옆에서 쉴드 못 쳐주겠더라니까. 아빠가 지금도 종아리가 뻐근하시대.”강한서는 순간 자신이 전에 눈치 없이 굴었던 행동을 떠올리곤 한현진의 말에 넘어간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난 그땐... 민준이랑 너를 이어주려고 찾아오신 건 줄 알고... 그래서... 그냥... 이따가 내가 전문 의사 선생님 알아봐서 아저씨를 모시고 한번 가봐야겠어.”옆에서 듣고 있던 한성우는 눈썹을 치켜세웠다.‘얘 뇌는 집에다가 두고 온 거 아니냐? 이렇게 허술한 거짓말에 바로 넘어간다고?!'‘나이가 들어서 아이큐도 내려간 거 아니야?'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한성우는 떠보듯 물었다.“강한서, 나한테 프로젝트 하나가 있는데, 네가 투자할 필요가 없어. 그냥 2억만 내가 말한 계좌로 보내면 매일매일 이자가 6000만 원씩 붙을 거야.”차미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뭐? 이자가 6000만 원이라고? 사채업자들도 그렇게 안 받지 않아?”한성우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당연하지. 안 그러면 내가 왜 얘한테만 말하겠어. 이건 다 인원수 제한 있는 거라고. 먼저 입금하는 사람이 이자를 6000만 원 받을 수 있는 거야.”그러자 차미주는 그를 째려보았다.“그럼 왜 나한테는 말 안 해준 건데!”한성우는 팩트를 말했다.“넌 돈 없잖아.”“...”차미주는 할 말을 잃었다.한성우는 다시 강한서를 공략하기 시작했다.“어때? 할래? 할 거면 내가 이따가 계좌 알려줄게.”강한서는 그를 흘겨보더니 말했다.“다단계
차미주는 침묵했다.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언제 꽁꽁 싸고 다녔다고 그래. 난 평소에도 잘 때 그렇게 입고 자.”“그래?”한성우는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그럼 왜 나랑 동거하지 않았을 땐 속옷도 안 입고 문 열어 줬던 건데? 왜 나랑 같이 살고 나서부터 속옷을 꼬박꼬박 챙겨 입는 거지? 내가 혹시 널 덮치기라도 할까 봐 그래?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되었는데, 너한테 뭘 할 수 있다고?”“내...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러냐?”차미주는 아닌 척 억지를 부리면서 작게 말했다.“내가 속옷을 입은 건...그 인터넷에서 속옷 입고 자면 가슴 모양이 예뻐진다고 그래서 입은 거야. 넌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한성우는 그녀의 가슴 쪽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그럼 나 자극한 후에 다시 입으면 안 되나?”차미주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넌 어차피 그런 야한 영화를 봐도 별 반응이 없잖아. 그런데 내가 자극한다고 해서 반응이 오겠냐?”그러자 한성우가 말했다.“하지만 네가 내 옆에 누우면 뭔가 느낌이 온단 말이야. 그리고 의사도 너한테 날 자극하라고 하지 않았나?”두 사람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하지만 두 사람과 아주 가까이에 앉아있던 한현진은 이런 야한 대화도 전부 똑똑히 듣고 있었다.‘허, 뻔뻔해! 정말 뻔뻔해!'‘한성우 이 개자식, 지금 미주를 손아귀에 넣고 아주 갖고 놀잖아!'그녀는 순간 인터넷에 한동안 유행처럼 떠돌던 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진은 바로 커다란 골든레트리버가 순진한 새끼 고양이의 머리를 입에 머금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리고 마침 그 무방비한 새끼 고양이는 그녀의 절친 차미주였고 한성우가 그 뻔뻔한 골든레레트리버로 겹쳐 보였다.‘아니, 아니지! 뻔뻔한 늑대 새끼지!'강한서에게 얼른 차미주에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성우를 닦달하라고 했지만, 한성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 차미주를 속이고 있었다.차미주가 붉게 물든 얼굴로 망설이고 있을 때 한현진이 갑자기 말했다.“미주야, 김 교수님이 이틀
그는 자신이 차미주와 사귀게 되면 제일 큰 장애물이 조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일 큰 장애물이 차미주의 절친 한현진일 줄은 몰랐다.꾀병을 부리다가 진짜 의사 앞에 끌려가게 되면 꾀병이라는 것이 들통나게 된다.한성우는 자신을 데리고 진짜 의사를 만나러 가려고 하는 여자친구를 말리고 싶어 머리를 굴렸다.“자기야, 우리 이틀 전에 이미 의사한테 다녀왔잖아. 일단은 치료받으면서 지켜보자고 했으니까 또 다른 의사한테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김 교수라고 했나? 의사마다 치료법이 다를 수 있잖아. 그렇다고 치료 도중에 자꾸만 치료법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고. 만약 두 치료법이 상극이라도 되면, 그러다가 나중에 희망도 없어지면 어떻게 해?”그의 말을 들은 차미주는 역시나 고민하기 시작했다.한현진은 아주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김 교수님 이번에 한주에 꽤 오래 머물고 가실 거래. 그러니까 며칠 조금 늦게 가서 진찰받아도 괜찮아.”한성우는 당장 한현진의 입을 꿰매고 싶은 심정이었다.전에는 선셋스타에 대해 눈에 필터가 씌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입이 강한서의 주둥아리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필터는 바로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차미주는 그런 그의 속마음을 전혀 모른 채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일단 치료하던 거마저 하고 찾아가 보자.”한성우는 억지웃음을 지어냈다.“그래, 우리 자기 말대로 할게.”말을 마친 그는 한현진을 힐끔 보았다. 한현진은 아주 태연한 얼굴로 손을 올려 입꼬리에 마치 지퍼를 잠그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비밀을 꼭 지키고 있겠다는 것처럼 말이다.한성우는 그런 그녀의 제스처에도 그녀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나쁜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러니 얼른 솔직하게 털어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정말로 김 교수라는 사람 앞에서 들키게 될 것이고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역경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신제품 발표회는 아주 성공적이었다.디자인팀이 만들어낸 신제품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고 발표회
하설윤은 디자인을 훔친 일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디자인 시안을 훔칠 수 있었는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뮤즈 주얼리의 책임자도 이곳으로 도착했다. 상대는 장희진이 한 짓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 일은 장희진의 독단적인 행동이지만 장희진은 뮤즈 주얼리의 직원이니 장희진이 스트레인지에 가져다준 손해에 대해선 그들이 보상하겠다고 했다.그리고 하설윤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겠다고 했다. 하설윤과 뮤즈 주얼리는 아직 근로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뮤즈 주얼리 소속 직원이 아니니 당연히 뮤즈 주얼리 측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이 말을 들은 하설윤은 바로 그 책임자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손을 잡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며 말이다.경찰이 두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면 한현진은 하설윤이 바로 이 책임자들과 몸싸움을 벌였을 거로 생각했다.뮤즈 주얼리에선 하설윤과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경찰은 바로 하설윤이 작품을 훔친 것으로 타깃을 고정했다.그러나 경찰이 아무리 심문해도 하설윤은 말하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같은 말만 반복했다.“다 저 혼자 한 거예요.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배상하든 사과를 하든 말만 하세요.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제가 그 디자인을 훔치고 상업적으로 아직 사용하지 않았으니 아무런 이익도 얻은 게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절 여기 가둬둘 권리 없다는 소리예요.”두 명의 경찰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으니 말이다.남의 작품을 훔치고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것이 아니라면 판결을 받기 어려웠다. 그러니 그저 절도죄로 배상하고 사과만 하면 합의 볼 수 있는 일이었다.한현진은 태연한 하설윤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경찰에게 말했다.“두 분 혹시 저랑 같이 제 회사로 가주실 수 있나요? 전 우리 회사 안에 조력자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회사 상업 기밀을 훔친 것이잖아요.”상업 기밀을 누출하는 것과 작품 절도죄는 절대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죄명이
법을 잘 아는 강한서가 매일 그녀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알려준 덕에 그녀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그녀는 예전에 강한서가 성격이 고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강한서는 고집이 셀 뿐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었다. 받은 대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말이다.그러니 정서가 안정적이고 세계관이 정상인 연인은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물론 강한서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다. 예시를 들면 사람에게 겁을 주는 어투를 말이다. 그녀는 완벽하게 강한서 어투 흉내를 내면서 평소에 일할 때 자주 써먹기도 했다.계 매니저는 당연히 그런 그녀의 모습에 겁에 질려 안색이 파리해지더니 입술을 틀어 물고 나직하게 말했다.“한 대표님 말씀이 옳으세요. 제가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했네요.”서해금은 한현진이 경찰들과 떠나는 모습에 입술을 짓이기곤 고개를 돌려 송병천에게 말했다.“병천 씨, 성 비서가 방금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이 와서 이만 처리하러 가봐야 할 것 같네요.”송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운전기사를 불러줄 테니까 타고 가.”“아니에요. 내가 알아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송병천은 더는 강요하지 않고 말했다.“그럼 조심히 가.”송민준은 서해금이 떠나가는 모습을 힐끔 보곤 바로 박해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아주머니 따라가 봐. 어디 가는지 보고해.」경찰은 그렇게 가게로 와 조사했다. 그리고 한현진도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CCTV 영상을 보았다.대체 누가 디자이너실로 들어와 전혜지의 디자인 시안을 훔친 것인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다른 CCTV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2층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하필이면 마침 직원 식사 시간이었기에 직원들 알리바이가 제각각이었다.다만 경찰은 쉽게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씩 불러 심문을 한 후 조사한 내용과 대비해 보았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직원은 바로 회사 재무보조였다.그날 그녀의 점심은 배달로 주문한 것이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