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하: ?‘그게 중요한 거야?’“민서 씨도 간민혜 씨를 알아요?”“강운 오빠 전 여자친구예요. 주변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는데 내가 왜 몰라?”중얼거리던 강민서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궁금증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일부러 닮은 여자를 만나는 거예요?”민경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민서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오빠가 왜 계속 날 강운 오빠를 가까이하지 말라며 말렸는지 알 것 같네.”주강운은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최면으로 기억을 봉인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했다. 최면효과가 사라지면 그는 또 다시 자신이 잊지 못한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마음으로는 새로운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한서가 주강운과 강민서의 만남을 반대했던 건 주강운이 언젠가 기억을 회복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든지 주씨 가문을 도와 나쁜 사람이 되길 자처해 간민혜에 관한 모든 것을 주강운에게 숨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이 진흙탕 같은 그 집안에 발을 들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강한서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주강운이 강민서를 이성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해도 언제가 간민혜를 다시 기억하게 되면 강민서의 결혼 생활은 굳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비교에 약한 동물이었다. 특히 비교의 대상이 죽은 사람이라면 그건 치명적이기도 했다. 아무도 이미 죽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생각에 잠긴 강민서의 모습에 민경하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주 변호사님 자리를 가까운 곳으로 옮길까요? 그럼 더 자세히 볼 수 있잖아요.”강민서: ?강민서는 신기한 눈빛으로 민경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바보. 설마 질투하는 거예요?”민경하가 얼른 부인했다. “아뇨. 절대요. 그럴 리가요.”강민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말투에서 질투가 뚝뚝 떨어지는데 아니긴 뭐가 아냐.’‘비서는 고용주를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강민서의 목을 보는 민경하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어디까지 했었죠?”“네?”뜬금없는 한 마디에 강민서는 어리둥절해졌다. 민경하가 나지막이 물었다. “우리 연애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고요.”그제야 민경하의 말을 이해한 강민서가 얼굴을 붉혔다. “실장님은 기억이 없어서 저한테 묻는 거예요? 전 그런 거 기억 안 해요.”민경하가 말했다. “손도 잡았고, 포옹도 했고.”강민서가 민경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포옹을 했어요? 손 다섯 번 잡은 게 전부고만.”민경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걸 헤고 있었어요?”강민서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민경하를 겨냥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제가 기억력이 좋아서 그래요. 누구처럼 포옹한 적도 없는데 했다고는 안 하거든요.”민경하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에 밤낚시 갔을 때, 잠이 든 민서 씨를 안고 제가 텐트로 돌아간 거예요.”강민서: ...강민서도 그날 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마셨던 탓에 어떻게 잠이 든 건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니 이미 텐트 안이었고 민경하는 텐트 밖의 의자에 기대 앉아 자고 있었다. ‘내가 텐트로 들어가 잠이 든 줄 알았는데.’‘그때 안아준 거였구나. 술을 마셔서 추태를 부리진 않았나 모르겠네.’후회하고 있는 강민서를 향해 민경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키스도 안 하고 약혼하는 건, 좀 그런 거 아닌가?”강민서: ?그녀는 빨갛게 물든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강민서의 턱을 어루만지던 민경하가 강민서의 의자를 돌리며 그녀가 자신과 마주볼 수 있도록 했다. 시선을 내려 강민서와 시선을 마주한 민경하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민서 씨, 키스하고 싶어요.”강민서의 귓불은 툭, 하고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피를 쏟아낼 것처럼 빨개졌다. “뭐, 뭐... 술을 잘못 마신 거... 읍...
“그래요.”대답한 강민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민경하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사진을 찍은 민경하는 휴대폰을 강민서에게 건넸다. “이 사진 어때요? 괜찮으면 이거로 보낼게요.”휴대폰을 건네받은 강민서가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을 잔뜩 찍은 민경하가 두 장만을 남긴 채 강민서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진 속 강민서의 손은 길고 가늘어 액세서리의 손모델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예쁘잖아.’민경하는 그 순간 한현진에게 사진을 찍어주던 강한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강한서가 찍은 사진은 10장에서 3장을 겨우 남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강한서와 비교하면 민경하는 완벽한 남자친구였다. 그는 한 번도 강민서를 못생기게 찍어준 적이 없었다. ‘공부만 한 줄 알았더니 이런 것도 잘 하네.’“마음에 안 들어요?”민경하가 나지막이 물었다. 생각에 잠겼던 강민서가 빨갛게 달아오른 귓불을 한 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내요.”“네.”민경하는 곧 사진을 고윤에게 전송했다. 고윤은 불안함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민서가 마음에 든대?]민경하가 문자를 작성했다. [네. 너무 마음에 든대요. 엄마 안목이 좋다고 하던데요?]고윤: [그렇다니 다행이네. 디자인이 촌스러워서 싫다고 하면 어쩌나, 했어.]민경하가 강민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금반지는 껴본 적이 없는 듯, 강민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집중한 그녀의 눈빛에는 뭔가를 탐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 어쩐지 민경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 민경하가 답장했다. [좋아해요. 금반지라 모양도 쉽게 변하고 스크래치라도 날까봐 저더러 잘 보관해두래요. 중요한 날 낄 거라고.][그럼 조금 이따 약혼식에선 반지 안 해? 약혼식인데 반지는 해야지.]민경하가 답장했다. [하죠. 저희가 준비한 반지로 할 거예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고윤이 말을 이었다. [요즘 여자애들은 결혼식엔 다이아 반지를
봉투의 두께에 보지 않아도 축의금을 넣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강민서는 한편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강한서와 한현진이 축의금과 선물을 챙겨준 건 그들은 강민서의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주의 풍습대로라면 오늘 약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축의금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친한 친구라면 가족처럼 축의금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강민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렇게 많은 축의금을 줄만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전에 놀던 무리에서 강민서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두세 명뿐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그룹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다 이미 계좌이체로 축의금을 전해주었었다. 그러니 굳이 오늘,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강민서가 민경하에게 물었다. “봉투를 전해준 사람, 어떻게 생겼어요?”기억을 더듬던 민경하가 대답했다. “옷을 봤을 땐 웨이터 같았어요. 아마 그 사람에게 시부름을 시킨 것 같아요.”강민서의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의 말투는 어색하기만 했다. 아마도 강민서를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강민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축의금을 이렇게 많이 넣으면서 이름도 남기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중에 난 어떻게 돌려주라고. 이런 건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아요.”민경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주는 사람도 마음도 있으니까 일단 받아요. 나중에 끝나고 제가 그 웨이터에게 물어보라고 할게요.”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둔 강민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요. 받죠, 뭐.”강민서의 머리를 올려주는 헤어 원장님을 보던 민경하는 말없이 손을 뻗어 강민서의 어깨에 내려온 머리카락 한 오리를 위로 올렸다. 민경하의 손가락이 어깨를 스치자 움찔한 강민서가 고개를 들어 거울로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민경하는 시선을 내린 채 헤어 원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몇 분이면 마무리할 수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사실 민경하
“오빠, 카드 비밀번호는 뭐야?”울음을 그친 강민서는 잊지 않고 강한서에게 비밀번호를 물었다. 강한서가 말했다. “비밀번호 없어. 네 이름으로 발급받은 거야.”“정말 블랙카드야?” 강민서가 눈을 반짝였다. “나 정말 막 써?”강민서가 기다렸다는 듯 봉투를 뜯어 카드를 확인하자 강한서가 말했다. “친구가 하고 있는 학원이야. 미리 1년 동안 들을 경영 수업을 결제했어. 강의는 전부 88교시고 개근상을 받으면 학비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어.”강한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민서는 카드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러더니 강한서를 문 쪽으로 밀어버리며 말했다. “나가. 오늘은 일단 남매의 연을 끊어야겠어. 오늘 난 너 같은 오빠는 없는 거야.”‘약혼식에 학원 카드를 선물하는 사람이 어딨어! 미친 거 아냐? 괜히 울었잖아.’한현진은 옆에서 구경하는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게 그걸 선물하면 쫓겨날 거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안 믿더니. 앞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무드등을 선물하고 하반신 마비가 온 사람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는 것과 뭐가 달라.’남매가 투덕거리는 동안, 밖에서 민경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들어가도 돼요?”강민서가 얼른 손을 내리며 얌전한 모습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들어와요.”다크 그레이의 턱시도를 입은 민경하가 온화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 민경하를 힐끔 쳐다본 강민서를 곧 고개를 돌리고 거울을 보며 메이크업을 하는 척 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귓불이 차분한 그녀의 모습이 연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현진의 시선이 강민서에게서 민경하에게로 옮겨갔다. 안 그래도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민경하는 한껏 꾸미니 더 단정해 보였다. ‘이러니 민서가 설레지.’“대표님, 사모님.”민경하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자 한현진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경하 씨, 저희가 무서워서 호칭도 안 고치는 거예요?”민경하는 단정한 외모와는 달리 능글맞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강한서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성숙해져? 대체 무슨 낯으로 그런 얘길 하는 거야.’강한서는 비아냥거리는 한현진의 말투를 완변하게 카피했다. 강민서는 강한서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기분이 상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 약혼식이야. 날 지우고 대체 뭘 기념하겠다는 얘기야?”강한서가 말했다. “우리가 기념을 하겠다는데, 네가 왜 끼어들어.”입가를 씰룩거린 강민서가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물었다. “오빠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우리말인데 전혀 이해를 못하겠어.”한현진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준비 다 됐어?”“거의 다 되어가. 머리핀이 고정이 안 되서 원장님이 새로 가지러 가셨어.”메이크업은 끝났지만 헤어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아 여전히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단아한 화이트 한복은 전통 혼례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일 년 동안 강민서는 살이 많이 빠지며 훨씬 더 예뻐졌다. 얼마 전까지도 있었던 젖살마저 빠져 완벽한 v라인이 되었다. 신미정의 이목구비를 닮아 화려한 외모를 가진 강민서는 조금만 꾸며도 연예인 못지않은 수려함을 뽐냈다. 아무리 신미정이 인간 같지 않은 짓을 많이 했어도 유전자가 좋은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서와 강민서는 부모님의 예쁜 부분만 골라 닮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한현진이 예쁘다고 칭찬을 하려던 그때,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사진을 찍은 강한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민서 약혼식의 첫 스타일링 기념사진.”강민서: ...‘미치겠네, 정말. 사진 찍기 전에 먼저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거야?’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한현진은 강한서에게로 걸어가 휴대폰을 뺏었다. 그리곤 곧 카메라를 켠 그녀는 강한서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박력 넘치게 그의 입술에 입 맞췄다. 한현진의 힘에 휘청한 강한서는 입술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한현진을 꼭 끌어안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강민서는 순
한현진: ...고개를 돌린 장여진이 다시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저 같은 말 두 번 안 해요. 제 남자한테서 떨어져요. 안 그러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친 장여진이 몸이 돌려 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장여진? 뭐 하는 여자야?’한현지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갑자기 화장실 문이 열리며 강한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왔다. 덜컹, 심장이 내려앉은 한현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얼른 강한서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여보, 조금 전은 돌발 상황이라 설명할 시간이 없었어. 화 내지 마.”강한서가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연기를 해야 하니까. 이해해.”이해심 가득한 강한서의 말에 한현진의 마음은 불안해졌다. “정말 화 안 나?”강한서가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나도 이젠 애 아빠야. 진작 성숙해졌지. 아직도 예전처럼 유치할 리가 없잖아.”어쩐지 비아냥거리는 듯 한 말에 한현진은 얼른 휴지를 건넸다. “조금 전 강운 씨 말에 대답하지 않은 건 또 어떻게 날 이용하려고 그러는지 떠보려고 그랬던 거야.”“알아.”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았다. “그래...”한현진이 의심 가득한 말투로 대답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쿨해진 거야?’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조금 전 여자에 대해 물었다. “방금 그 장여진이라던 여자. 너 만난 적 있어? 간민혜 씨와 엄청 닮았던데. 난 그런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넌 누군지 알아?”강한서가 말했다. “장씨 가문에 장여진이라는 양딸이 한 명 있어. 강운이네와 정력결혼을 할 거라는 얘기만 들었고 만난 적은 없어.”한현진이 놀란 눈을 떴다. “정략결혼? 하지만 강운 씨는 장준을...”‘구속시켜버렸잖아...’말을 꺼내던 곧바로 입을 꾹 닫았다.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꺼냈다간 눈치가 빠른 강한서는 그녀가 주강운을 이용했다고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한현진은 빠르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강운 씨 설마 장여진 씨가 간민혜 씨를 닮아서 좋아
주강운의 말이 떨어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서 장난하듯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던 강한서가 힘을 풀고 가만히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강한서에겐 치명적인 질문이었다. 긍정의 대답이든 부정의 대답이든, 강한서는 그녀에게 난리를 피울 것이 분명했다. 한현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주강운의 의도였다. 강한서의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숨겨준 공범인 강한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일까?주강운의 머리로는 이렇게 멍청한 복수를 선택할 리가 없었다. ‘대체 목적이 뭐지?’입가를 맴도는 대답을 한현진이 삼켜버렸다. 주강운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던 한현진이 반문했다. “저한테 그걸 물어보기 전에 본인의 진심이 뭔지는 잘 생각해 보셨어요? 절 간민혜 씨의 모습으로 메이크업을 받게 하고 강한서 앞에 데려간 건, 대체 절 뭐라고 생각하셨던 거예요?”주강운의 눈이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였다. 후회와 막연함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이 뒤틀려 마음을 어지럽혔다. “민혜를 아세요?”주강운이 나지막이 물었다. 한현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런 눈빛으로 절 쳐다봤어요. 지금까지 모르고 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겠죠.”“미안해요.”주강운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더해졌다. “전 그때는 몰랐...”주강운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그는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주강운은 늘 그랬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나약한 모습이라 저도 모르게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는 처음부터 한현진을 도와주었었고 몇 번이고 그녀를 위해 나서주었다. 만약 나중의 그런 일들이 없었다면 한현진은 주강운을 좋은 친구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하마터면 강한서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사고의 배후자가 하필이면 주강운이었다. 그가 다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어떤 살의를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한현진은 차미주의 말에 폭소를 터뜨렸다. 한현진에게 주아름과의 원한은 이미 그녀에게 복수했던 그날, 전부 청산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랬기에 한현진은 그날의 기사를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그 악연을 놓지 못한 듯 시비를 걸려고 했다. 그렇다고 그저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것은 한현진의 성격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꼬는 말투로 면전에 대고 앞담화를 하는 것이야말로 한현진에게 어울리는 처사였다.순간 얼굴이 일그러진 주아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누가 개라는 거야?”한현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누굴 개라고 욕한 적 없는데요. 주아름 씨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셨네요. 전 그저 개팔자가 하도 상팔자라 감탄한 것뿐인데요.”불분명한 주어로 한 방에 보내버리는 한현진의 말에 주아름이 이성을 잃었다. “누구더러 개 팔자라고 하는 거냐고.”움찔한 한현진이 곧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주아름 씨 강아지가 상팔자라는 얘기에요. 오해 하지 마세요.”그 한마디에 말문이 막힌 주아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어.’하지만 곧 얼마 전 도우미들이 하는 이야기를 떠올린 주아름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멸시로 가득한 눈빛으로 한현진을 훑어보았다. “근데 한서 오빠가 실종되셨을 때 저희 사촌 오빠와 잠깐 썸을 타셨다면서요. 같이 공연도 보고 스카이다이빙도 하시고. 그러다 한서 오빠가 돌아오자 바로 우리 오빠를 뻥 차버리셔서 오빠가 아직도 한현진 씨를 못 잊고 있어요.”“남자 마음을 흔드는데는 정말 대단한 능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한서 오빠도 본인이 목숨 바쳐 구한 여자가 이렇게 음흉한 속내를 가졌다는 걸 알면 아마 영원히 잊은 채로 살길 바랄 거예요.”화장실 문고리 가 움직이자 한현진이 순간 손을 뻗어 문고리를 꽉 잡았다. 그 행동에 맞은편에 있던 두 사람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한현진을 쳐다보았다.한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 헛소리를 하시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