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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조십일
곧이어 그녀는 안티카페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

“왜 넋 놓고 있어?”

이때 훤칠한 남자가 프런트 데스크를 두어 번 두드리며 팔꿈치를 괴고 있었다. 그는 턱을 살짝 들고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더러 넋 놓고 있으라고 월급 주는 줄 알아?”

그는 바로 옆 건물의 사장이자 섬블 컴퍼니의 사장인 한성우였다.

여직원은 한성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전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장님도 종일 뵙기 힘들잖아요.”

“입만 살았어!”

그가 계속 여직원과 말장난을 걸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마른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성우는 동작을 멈추고 순간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며 진지하게 말했다.

“박 감독 어디 있어? 지금 바로 내려오라고 해.”

“감독님은 녹음 테스트를 하고 계세요.”

“녹음 테스트?”

한성우는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선셋 스타가 왔어?”

여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한성우는 살짝 기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고개 돌려 굳은 표정의 강한서를 본 순간 재빨리 마음을 억누르고 정색하며 말했다.

“박 감독한테 전화해서 내가 몇 가지 물을 게 있다고 전해.”

곧이어 전화가 연결되자 한성우는 스피커폰을 눌렀다.

“박 감독, 녹음 테스트는 잘 돼가? 나한테도 목소리가 괜찮은 배우가 있긴 한데.”

“괜찮아, 테스트 다 했고 이미 계약도 마쳤어.”

박정문은 비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지만 한성우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한성우는 한숨을 돌리고는 일부러 사장 포스를 내며 말했다.

“이젠 나랑 상의도 없이 계약까지 하는 거야? 대체 누가 사장이야?”

박정문은 전화를 툭 끊었고 한성우는 계속 구시렁댔다.

“얘는 내가 점점 안중에 없는 것 같다니까!”

이어서 그는 고개 돌려 강한서에게 말했다.

“너도 들었지? 이미 계약했대. 다음에 버전 업데이트하고 알맞은 캐릭터가 있으면 그때 다시 써줄게.”

‘정상에서’는 최근 섬블 컴퍼니에서 그가 가장 만족하는 작품이라 송민영이 이 완벽함을 망치는 걸 절대 지켜볼 수 없다.

강한서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흘겨봤다.

“위약금은 내가 그 여자분 대신 두 배로 낼 테니까 그분더러 이 캐릭터 포기하라고 해. 노스 베이 프로젝트도 너에게 3% 양도할게.”

한성우는 장난기 섞인 표정을 거두고 강한서를 몇 초 동안 쳐다보다가 질문을 건넸다.

“진짜야?”

강한서는 아무 대답 없이 눈빛으로 모든 걸 말해줬다.

“네가 자꾸 이렇게 작품 활동을 밀어주니까 이젠 나도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의심하게 되잖아.”

강한서가 원하는 건 오직 결과였다.

“그래서 돼 안 돼?”

“고민 좀 해볼게.”

강한서가 뭐라 말하려 할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익숙한 그 얼굴에 강한서는 몸이 살짝 굳었다.

한편 유현진은 0.5초 뜸 들이고는 시선을 피한 채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한성우에게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걸어갔다.

한성우는 머뭇거리다가 강한서에게 물었다.

“네 와이프 지금 널 못 본 거야?”

강한서는 굳은 표정으로 한성우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쫓아갔다.

겨우 달려와 보니 유현진은 한창 도로 옆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포니테일을 아래로 묶어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했고 뒷모습은 마냥 여리여리할 따름이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강한서가 가까이 다가온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인정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차가운 질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와 마주치니 유현진도 기분이 확 잡쳐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넌 여기에 있어도 되고 난 있으면 안 돼?”

강한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을 스토킹하는 게 아직도 재미있나 봐?”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대체 이 인간은 어디에서 나온 자신감이지?’

그녀가 아무 말 없자 강한서는 자신의 추측을 더 확신하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다만 그는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내 일정이 궁금하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이렇게 빙빙 돌릴 필요 없다고.”

유현진은 끝내 참지 못했다.

“강한서, 너 왜 이렇게 뻔뻔해? 누가 널 스토킹했어?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서 널 스토킹해? 내가 너랑 말 한마디라도 섞었어? 대체 따라온 사람이 누군데.”

“풉...”

암암리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한성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강한서가 어두운 표정으로 눈빛이 싸늘해지자 그는 곧바로 모습을 감췄다.

강한서는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대체 왜 여기 있는 건데?”

유현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더 야박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너랑 뭔 상관이야?”

강한서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계속 더 얘기하면 또 싸울 게 뻔하니 그는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딱딱하게 말했다.

“민서가 돌아왔어. 엄마가 내일 우리더러 와서 밥 먹으래.”

“그래?”

유현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우리 곧 이혼이야. 더는 너희 가족들 앞에서 부부 금실이 좋은 척, 고부 사이가 화목한 척 연기할 필요 없잖아.”

“연기?”

강한서는 겨우 가라앉혔던 울화가 순간 폭발했다. 그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쏘아붙였다.

“그러고 보니 너 연기 참 잘하네. 말해봐, 이번엔 또 뭐가 갖고 싶어? 옷? 가방? 액세서리? 그것도 아니면 너희 집안을 위해 프로젝트라도 따내고 싶은 거야? 이혼서류에 가출까지 연기가 아주 제법이잖아. 너희 아빠 이번엔 큰 건 하나 건지려고 작정하셨어? 탐욕도 정도껏 해야지.”

유현진은 가슴이 움찔거렸다. 그녀는 손가락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손목에 낀 다이아몬드 팔찌는 결혼 첫해, 그녀 생일에 강한서한테 받은 선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강한서한테 사달라고 요구했다.

밸런타인데이, 결혼기념일, 그녀의 생일... 그녀는 번마다 갖은 애교를 떨며 그에게 선물을 요구했고 이를 빌미로 그가 이런 특별한 날들을 기억해주길 바랐다.

그녀에게 더없이 달콤했던 추억들이 강한서에겐 끊임없는 탐욕으로 보였던 걸까?

유현진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애써 이 마음을 감추려고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강한서가 그녀의 표정을 읽으려 할 때, 유현진은 다시 고개를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팔찌를 벗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혼하고 나면 넌 더이상 이런 곤욕을 치르지 않을 거야. 네가 우리 집안이랑 협력하든 절교를 하든 나와 아무 상관없어.”

말을 마친 그녀는 팔찌를 강한서의 정장 주머니에 넣었다.

카카오 택시가 도착하자 유현진은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더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불쑥 웃으며 저 자신을 비난하듯 말했다.

“내가 왜 너한테 기대를 걸었을까?”

곧이어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

강한서는 멀어져가는 차를 빤히 쳐다보며 두 눈에 불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다.

“현진 씨가 너랑 이혼한대?”

등 뒤에서 한성우의 오지랖 넓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

“부부싸움 하는 거 못 봤어? 말조심해!”

한성우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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