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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조십일
유현진과 마주치고 얘기할 기분이 사라진 강한서는 얼마 있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로비로 돌아오자마자 내려오는 박정문을 본 한성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선셋 스타는? 왜 같이 안 내려왔어?”

“한참 전에 갔는데? 아래층에 있으면서 못 봤어?”

‘현진 씨?’

그가 프런트 데스크 여직원을 쳐다보자 여직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신 그분요, 얼굴도 예쁘시고 사장님한테 고개 끄덕이며 인사하던 그분 있잖아요.”

‘현진 씨? 현진 씨가 선셋 스타라고?’

그는 순간 이 세상이 너무 판타지 소설 같았다. 강한서의 트로피 와이프가, 게다가 인스타그램에 자주 자랑질만 늘어놓던 졸부가 더빙 계의 최고 성우라니!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강한서가 돈으로 자기 와이프의 일자리를 빼앗아서 송민영에게 넘겨준 셈이 돼버렸다.

‘이 스토리... 살아있네!’

그의 모습을 본 박정문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눈이 게슴츠레한 게 또 무슨 꿍꿍이야?”

한성우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두 글자를 내뱉었다.

“비밀.”

...

‘빌어먹을 개자식 강한서! 그딴 선물 누가 좋아한대? 그 돈으로 가서 네 병이야 고쳐! 난 그딴 거 필요 없어!’

그의 말을 곱씹을수록 유현진은 분노가 치밀었다. 휴대폰을 만지던 그때 앱 화면에 뜬 생식 병원 광고 문구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예약 버튼을 눌렀다.

개인 정보를 입력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받기 싫은 듯 느릿느릿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빠.”

“너 어디야?”

유상수가 전화한 이유를 가늠할 수 없었던 유현진은 거짓말했다.

“수업 중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별일은 아니고. 수업 끝나면 한서랑 같이 집에 좀 와. 아빠 친구가 트러플 선물해줬는데 안사돈이 트러플 좋아한다고 했지? 와서 가져가.”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유상수는 정작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참으로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알았어요.”

그녀가 알겠다고 하자 유상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안부를 대충 두어 마디 물은 뒤 전화를 끊었다.

유현진은 자동차 대리점으로 가서 포르쉐 카이엔을 찾아갔다. 이 자동차는 그녀가 결혼할 때 가져온 혼수였는데 2억이 좀 넘었다. 범퍼를 새로 바꾸니 전에 심하게 부딪힌 자국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때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플 따름이었다.

만약 이혼하게 될 경우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재산은 아마 이 자동차밖에 없을 것이다. 그 생각에 유현진은 조금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강한서의 부가티를 운전하는 건데. 그의 급소를 찌를 순 없으니 돈이라도 왕창 쓰게 했어야 했다.

혹시라도 조금 전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그녀는 일부러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수업을 추가했다. 그렇게 늑장 부리다가 저녁 여섯 시가 돼서야 직접 운전하여 유씨 저택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옷매무시를 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연 사람은 유씨 가문의 양녀 유현아였다. 그녀는 기쁨에 겨운 얼굴로 유현진을 맞이했다.

“언니, 왜 이제 와.”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뒤쪽을 쳐다보았다.

“형부는?”

“갑자기 회의가 생겨서 못 와.”

유현아의 표정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고 말투에도 원망이 살짝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진작 얘기하지.”

한껏 힘주어 꽃단장한 그녀의 모습에 유현진이 되물었다.

“이 밤에 웬 메이크업이야? 데이트라도 나가?”

유현아는 굳어진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아니, 연습 좀 하느라고.”

유현진이 먼저 안으로 발을 들였고 유현아는 이를 꽉 깨물며 뒤따라왔다.

강한서도 무조건 함께 올 줄 알고 유상수는 가정부에게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 상 가득 준비하라고 했지만 유현진이 혼자 온 걸 보자마자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는 유현진을 빤히 보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유현진의 표정은 전혀 빈틈이 없었다. 오랜 시간 굴러먹은 능구렁이 같은 유상수마저도 별다른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한참 후에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유현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유상수가 알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안 그러면 일에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유씨 저택의 이 커다란 주방에서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은 고작 셋뿐이었다.

유현진은 어릴 적부터 유상수와 사이가 그리 가깝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 하현주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서먹서먹해졌다. 말이 부녀 사이지, 그저 혈육 관계만 있는 남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양한 유현아와의 사이가 더욱 부녀 같았다.

말주변이 없고 무뚝뚝한 성격의 그녀와 달리 유현아는 말도 예쁘게 하고 활발했다. 식사할 때도 가끔 재미나는 얘기로 유상수를 기쁘게 했다. 비록 그 얘기들이 그녀가 듣기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유상수는 분위기에 맞춰 잘 웃어줬다.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느낌에 그녀는 밥맛이 뚝 떨어졌다.

“아빠, 저 요즘 새 일자리 바꿨잖아요. 평소 만나는 고객들이 대부분 귀한 신분이라 일하기 편하여지려면 아무래도 좋은 차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현아는 유상수의 기분을 좋게 한 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떤 차로 바꾸고 싶어?”

“굳이 새 차가 아니어도 돼요. 중고차라도 되니까 고급 차기만 하면 돼요.”

유현아의 시선이 유현진에게 머물렀지만 유현진은 계속 반찬만 집어 먹을 뿐 대꾸할 기색이 없었다. 유현아는 하는 수 없이 콕 집어 얘기했다.

“언니, 그 포르쉐 카이엔 내가 좀 써도 될까?”

유현진이 아무 말 없자 유현아가 계속하여 말했다.

“언니 평소에 별로 운전하지도 않잖아. 그리고 운전할 일이 있으면 형부네 집에 차도 많은데 아무거나 쓰면 되니까 나한테 좀 빌려줘. 언니 쪼잔한 사람이 아니잖아, 응?”

“그건 네가 날 잘 몰라서 그래.”

유현진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언제 통쾌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차는 남편이랑 같은데, 남편을 함부로 빌려줄 수는 없지.”

순간 말문이 막힌 유현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 모습에 유상수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남도 아니고 가족인 현아가 차 좀 빌리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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