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율혜가 친히 입력해준 율혜의 전화번호.
휘안은 제 핸드폰을 건네받고 나서야 제 목적을 이뤄 안도했다는 건지 다시금 해맑은 미소로서 애교 섞인 말꼬리를 늘여보였다.
“고마워, 율혜야~ 그리고 전화번호 교환한 김에 하나 더 말하자면 오늘은 나랑 같이 밥 먹었으면 좋겠어. 우린 짝꿍이니까 점심도 같이 먹는 거지. 짝꿍끼리 더 친해지면 좋잖아.”
“음... 근데 말이야. 오늘도 난 예린이랑 먹어야할 걸? 예린이랑 그렇게 하기로 어제 약속했거든. 친구랑 한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글쎄. 꼭 그래야하는 건 아닐걸.”
율혜와 휘안의 대화를 언제부터 엿듣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도 합류한 도준.
이건 휘안을 도와주겠다는 마음 반, 재미 좀 보겠다는 마음 반이 어우러진 오지랖이었다.
“난 우리 반 반장으로서 전학생인 널 잘 챙겨줘야 할 의무가 있어.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나랑 휘안이, 이렇게 셋이서 먹는 거야. 나예린이 부반장 노릇 하게 도와줬으면 나도 반장 노릇 하게 도와줘야지. 안 그래, 지율혜?”
어제와는 전혀 딴판으로 반장으로서의 역할을 운운하며 저에게 다가오는 도준이라니.
혹시 담임선생님께 한 소리라도 들었던 건가.
그렇게 의무감에 리짱을 억지로 챙겨주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리짱 쪽에서 사양이라는 건데.
리짱은 도준이보다 예린이가 더 중요하니까.
“근데 휘안아. 원래 휘안이는 도준이랑 소연이랑 셋이서만 밥 먹는 거 아니었어? 그니까 괜히 나까지 껴주지 않아도 돼. 나 말고 친한 친구들이랑 먹는 게 더 편할 거잖아.”
“아니야! 일부로 율혜를 껴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율혜랑 같이 밥 먹고 싶어서 그래. 율혜랑 먹는 거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나 어제도 순서 뺏겼는데… 오늘도 안 돼? 오늘은 율혜한테 내가 제일 먼저 물어본 거잖아.”
“자, 자. 내가 상황 더 정리해줄게. 우선 성소연 걔랑은 같이 먹고 싶어도 못 먹어. 어제부터 학교 축제 관련해서 대책 회의가 시작됐거든. 성소연 걘 연극부 회장이라 동아리 회장들끼리 일찍 먹어야해. 그니까 지율혜 너만 동의하면 된다고. 그럼 문제되는 거 없잖아.”
도준의 말만 들으면 문제랄 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제 목적은 최소 일주일 정도는 예린과 붙어 다니며 예린과 친해지는 거였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계획이 어긋나도 되나.
“반장. 문제되는 거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우선 율혜가 불편해하잖아. 그리고 우리 쪽이 선약이야.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같이 먹기로.”
“예린이다! 예린이도 오늘 엄청 일찍 왔네?”
“응. 근데 오자마자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을 마주하게 될 줄 몰랐어. 율혜야. 싫으면 싫다고 해. 어차피 나랑 한 약속이 먼저였잖아.”
“그건 맞아. 난 예린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고 예린이가 어제 소개해준 친구들이랑도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 그래서 밥을 같이 먹는 거고.”
역시 재이의 짝사랑 상대는 아주 특별해.
리짱이 곤란할 때 구세주처럼 등장하다니.
이러다 리짱까지 꼬시는 건 시간문제겠어.
“그래? 근데 그 소개해준 친구들이라는 게 거의 다 다른 반 아닌가. 우리 반 전학생이면 우리 반 애들부터 친해지는 게 맞는 순서잖아.”
저희 친구들과 흘러가듯 잡은 어제의 약속을 핑계 대서라도 율혜를 난처하게 만든 도준의 억지 주장을 무마시키려 한 예린.
근데 웬걸. 도준에게 한 방 먹은 눈치였다.
휘안은 여러모로 억울하다는 눈치였고.
“뭐야... 난 그냥 율혜랑 밥 한 번 먹고 싶었을 뿐인데... 담임도 내가 율혜 짝꿍이니까 친하게 지내라고 했잖아. 근데 다들 왜 그래? 내가 율혜랑 밥 한 번 먹으면 막 큰일 나?”
“아니, 큰일 나는 게 아니라 이도준이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잖아. 그리고 율혜는 마음 다 정한 눈치인데 왜 자꾸 물고 늘어지냐는 거지.”
“물고 늘어지기는 누구 물고 늘어져. 나예린 네가 끼어든 게 맞지. 지율혜 네가 대답해봐.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누구랑 먹을 거야?”
안 그래도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예린과 도준이 말로서 삐거덕대니 교실에 들어서기 시작한 다른 친구들도 저희를 흘끗거린다.
조금 전 율혜와 단 둘이서 귓속말 비슷한 대화를 주고받았을 때는 해도 엄청 달달했는데.
어떻게 한 명이 끼어들고 또 다른 한 명까지 끼어드니 그 좋았던 분위기가 뒤틀려버렸다.
제발 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누군가 없나.
되도록 저에게 유리한 상황 쪽으로 말이다.
“얘들아. 그럼 오늘은 우리 넷이서 먹는 게 좋겠어. 도준이 말대로 우리 반 애들인 너희 셋과 친해지는 게 먼저인 거 같아. 그리고 예린이만 괜찮다면 어제 친구들이랑 한 점심 약속은 내가 따로 양해를 구해보도록 할게.”
“진짜? 나 율혜랑 밥 먹을 수 있는 거야?”
“응! 예린이랑 도준이도 다 같이 동의한다면.”
“난 좋아! 원래대로라면 율혜랑 단 둘이 먹을 계획이었지만 넷이어도 좋아. 난 무조건 찬성~ 반장이랑 부반장도 무조건 동의하겠지. 우리 짝꿍끼리 친하게 지내겠다는데 왜 반대를 해. 학급임원으로서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얼굴도 예쁜데 말솜씨도 똑 부러지는 율혜.
휘안이 찾던 그 누군가는 율혜였다는 거다.
그러니 이렇게 열띤 찬사를 보내기 바쁘지.
물론 남은 두 사람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할 말을 잃었다지만.
그래도 뭘 어쩌겠는가.
끝내 반기를 들기에는 저희 앞의 두 사람이 너무 해맑아서는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는데.
제 선택에 의해 입영일자가 결정됐다는 통보가 떨어졌을 때는 오래도록 앓던 이를 빼낸 것 마냥 홀가분한 기분이었다.하지만 막상 하루하루가 지나가니 시작하니 이거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거지.제가 민간인의 신분을 반납해야 한다고요?아니, 신청한 사람이 제가 맞기는 한데 전산 시스템 내 착오가 생겼을 가능성은 없을까요?현실 수긍과 부정, 그 한가운데의 줄다리기.이래서 사람은 뭐든 겪어봐야 한다고 주변 선배들의 조언을 허투루 들을 게 아니었다.너희가 입학한 올해는 금방이고 떠나갈 거다.그러니 새내기로서 많은 추억을 쌓아두는 게 앞으로의 미래에 대비해 큰 자산이 될 거다.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올해 남들보다 뭘 좀 해봤다고 내세울만한 경력은 짜장 라면 냄새 숱하게 맡아본 게 전부였다.이 이상 더 다이내믹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솔직히 군대 말고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지.그렇게 올해가 다 가기 전 반신반의하며 3차 접수를 진행했다는 건데, 저도 그렇고 휘안도 그렇고 저희 운명이 한 큐에 확정될 줄이야.덕분에 내년부터 내후년 상반기까지는 아예 나 죽었다고 생각하고 몸소 시련과 고난을 받아낼 현역병으로 지내게 생겼다니 말이다.“소안 언니~ 나는 화이트 밀크에 레인보우 스프링클로 했다. 이것 봐! 진짜 예쁘지?”“우와~ 진짜 예쁜데? 근데 민트 초코가 아니라 화이트 밀크? 율혜 민트 초코 먹을 거라고 엄청 기대했잖아. 설마 품절이었어?”“응. 민트 초코가 다 떨어졌어. 그래서 엄청 고민하면서 화이트 밀크를 골랐는데 사장님이 오늘의 추천 토핑을 무료로 주시겠다는 거야. 덕분에 아주 이득이었다는 거지.”“거기 사장님 장사 잘하시네. 안 그래도 요즘 민트 초코가 대세잖아. 민트 초코에 민트 초코 볼 추가하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지만 이것도 꽤나 맛있어 보여. 그나저나 초코는 떨어지지 않았겠지? 율혜랑 한 입씩 바꿔먹기로 했는데.”요즘 하도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다는 휘안과 도준의 마음을 위로해줄 달콤한 주전부리 시간.율혜와 휘안은 소안에
흐르는 물에 흙과 같은 이물질을 뽀득뽀득 씻어낸 뒤 유기농 당근을 베어 물자면 단 한 번도 부정적인 감정 따위 느껴본 적 없다는 이.그런 율혜가 길쭉한 당근 스틱을 오도오독 베어 물며 제 분함을 떨쳐내려 안간힘이었다.올해 성인이 된 휘안인 만큼 어디를 가도 계속해서 말이 나왔던 휘안의 복무 계획.그렇게 율혜는 아빠에게 그 시절 군대 이야기를 들려 달라 하는 둥 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지만 그럼에도 착잡한 마음을 다 떨쳐내기에는 많이 모자란 준비였다는 거다.휘안의 입영일자가 확정 났던 시기에는 각종 과제 제출일과 기말고사 준비 기간도 맞물려 있던 때라 괜한 걱정은 나중에 미뤄두었지.하지만 막상 종강을 맞이해서 여유로워진 이 시점에서는 그저 복무라는 두 글자에도 분한 감정이 쉽게 밀려오게 된 율혜였다.그리고 휘안은 벌써부터 그런 율혜가 눈에 밟혀서는 제 입대일 전까지 부디 그 여린 마음 한 조각이라도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는 거고.“아이고, 내가 혹시라도 군대에서 가서 다쳐 올까봐~ 우리 율혜는 그게 걱정인 거구나. 그래서 분하다는 거고. 그게 납득이 안 됐어?”“응... 휘안이 다치는 거 싫어... 손가락에 조그만 가시가 박혀도 반창고를 붙여줘야 안심이라는 말이야. 근데 휘안이가 군대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잖아. 그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올 거라는 말이야.”가정에 가정을 더하다 눈망울부터 울망울망.이내 코끝마저 찡해진 느낌을 감지했는지 율혜는 그제야 휘안이 너른 가슴팍에 기대 제 호흡을 바로 가다듬기 시작했다.“에구구...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율혜 당근 스틱 흔들다 눈물이 다 나게 생겼네. 그니까 우리 율혜는 혼자서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 돌려보다 말도 못하게 속상해졌다는 거잖아.”제 스스로 휘안의 품에 찾아들었어도 제 당근 스틱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고사리 손.휘안은 그 고사리 손 위에 제 손을 덧대고 율혜의 잔머리를 살살 매만져 나갔다.그리고 겨우내 고개를 든 율혜를 확인하고는 율혜의 이마 위로 작은 입맞춤
“헤헤. 율혜가 만들어주고 먹여주기까지 해서 그런지 너무 맛있다. 이리도 나를 챙겨준다면 급속 충전이 되는 건 시간문제지. 역시 우리 율혜는 보조배터리도 저리 가라 한다니까.”“당연하지. 누구라도 우리 휘안이를 지치게 만들었다가는 가만두지 않아. 리짱은 언제든지 휘안이에게 빛을 쏘아주는 등대가 될 테니까.”어깨 위로 날다람쥐의 날개나 다름없는 핑크빛 망토를 두른 채 모두의 이목을 한데 집중시키는 손 허리 자세.과연 퍼포먼스의 장인답게 바깥 창 너머의 노을빛도 오직 율혜에게만 빛을 내어주더라.덕분에 휘안의 시야에 닿은 율혜는 오직 저 하나만의 히로인이 확실해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도 팔불출로서 자리하게 됐다니 말이다.“귀여워, 우리 율혜~ 우리 율혜는 언제까지 빛이 나려나 몰라. 정식 출시까지 반 년 넘게 남았다는 이 망토는 너무 좋겠다. 자기 입지가 결정되기도 전에 좋은 주인을 만난 셈이잖아.”“응. 미래 이모 찬스로 리짱만 미리 받아본 룹아웃 굿즈. 리짱이 일주일 넘게 써본 결과, 이 망토는 촉감부터 너무 남달라. 두르고만 있어도 좋고, 모자까지 쓰면 더 좋고. 마법 소녀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굿즈라는 거거든.”“그러게. 율혜가 착용하고 있는 거 보니까 굿즈 진짜 잘 뽑아낸 거 같아. 솔직히 모르는 사람 눈에는 굿즈보다는 예쁜 망토로만 보일걸. 이건 테스트 상품이라 로고도 없는 거니까.”내년 여름 데뷔를 목표로 매일같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신인 여자 아이돌 그룹, 룹아웃.율혜는 룹아웃의 데뷔 앨범 굿즈 중 하나인 마법 소녀 망토를 받아내 여러 기준으로서 굿즈 평가를 도맡기로 했단다.아무래도 담요 하나에도 일가견이 있는 만큼 그와 비슷한 망토에도 일가견이 있을 율혜가 눈에 선했다는 미래의 판단이었다나 뭐라나.“진짜? 그렇다면 휘안이도 하나 갖고 싶어?”“뭐, 나도 하나 가질 수 있으면 사양하지는 않겠지? 이 망토 주인들은 내년 여름에나 데뷔한다며. 그럼 그 전까지는 율혜랑 커플 망토로 사용하게. 나도 로고 없는 걸로다가.”휘안의 말이
청명한 가을을 뒤로 하고 어느덧 초겨울.래빗트래픽에도 새로운 식구가 자리했다.현재 담당하고 있는 일이 손에도 익었겠다, 만화방 사장님께 잘리지 않는 한 래빗트래픽 쪽으로는 발 디딜 일 전혀 없을 거라던 도준.그는 결국 종강과 동시에 오랜 친구의 혈육을 누님이 아닌 한 기업의 대표님으로 모시겠다며 제 스스로 토끼 굴에 들어섰다.계속해서 짜장 라면 냄새에 허덕이며 제 할 일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람찬 일이겠지만 당분간은 만화방 아르바이트 수익에 더해 재정적으로 보다 더 풍족해지고 싶다는 뜻.그렇게 도준은 아기 토끼와 관련된 인물들이 속속들이 오고 갈 사무실일 걸 알면서도 그 대세를 바로 따르겠노라 선언했다니 말이다.“이야~ 제가 또 뭘 발견한 줄 아십니까? 유부초밥이라고 다 같은 유부초밥이 아니었고 계란김밥이라고 다 같은 계란김밥이 아니었다 이 말씀입니다. 여기 휘안이 거 좀 보십시오!”“도준아. 왜 이렇게 호들갑이니. 너랑 나는 엄연히 얻어먹는 입장이야. 그저 유부초밥 위에 연어가 올려가 있고 계란김밥에 계란 한 줄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게 먼저 아닐까? 난 그저 우리 율혜한테 너무 고맙다니까~”“하하.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저 역시 수긍 가능하죠. 이게 바로 래빗트래픽만의 직원 복지 아니겠습니까? 아니, 어느 회사에서 부대표 여자 친구 표 도시락을 나눔 받겠어요. 여기 이곳, 래빗트래픽에서나 가능하지.”“역시 우리 건 바이 건 에이스답게 이해도도 남달라. 도준이 네 말대로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사랑의 도시락을 맛보겠냐고~ 안 그래?”당장에 저희가 해치워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불어난 때지만 식사 시간도 바로 찾아온 때.솔직히 어디 배달 음식이나 시켜먹을 줄 알았지, 율혜 표 사랑의 수제 도시락 나눔은 전혀 예상 밖의 선택지였다.그러니 기대감 하나 없이 제 몫의 도시락을 건네받게 된 도준은 그새 또 이 모든 상황을 쭉 관찰해나가기 시작했다지.다른 이들의 몫과 크기부터 남다른 휘안 몫의 도시락 통과 아기자기한 수저 세트
“맞아. 율혜 앞에서는 뭐가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어. 그래도 우리 율혜만 웃어준다면야. 그니까 부담 갖지 말고 요청해버려. 알았지?”“좋아! 근데 말이야. 앞서 말한 효과음들로 모든 걸 단정 짓지 못하는 건 알지? 휘안이 효과음에는 예외도 존재하는 법이거든.”“진짜? 그 예외라는 건 또 어떤 건데?”조금 전까지는 모두에게 널리널리 펴져도 그만이라는 영역을 짚어냈다면 이번에는 킬러 문항 꼬집듯 미지의 영역 또한 짚어낼 차례.그새 또 위풍당당한 손 허리 자세인 걸 보니 이번에는 훨씬 더 대단한 건수이겠거니 싶었다.“아~ 음~ 이야~ 똑~”“우와... 그건 뭐야? 내가 그렇게나 효과음이 많았다고? 율혜가 방금 막 지어낸 게 아니라?”“응! 휘안이는 말이지. 아로 깨닫고, 음으로 공감하고, 이야로 감탄하고, 똑으로 집중시켜. 리짱이 오래도록 봐왔어. 그니까 믿어도 돼.”“어… 좀 많이 놀랐는데 또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 율혜 덕분에 속속들이 이해는 되거든. 이야~ 우리 율혜는 이제 하다하다 내 효과음 쪽에서도 족집게 선생님이 다 됐구나, 응?”말이란 걸 시작하던 아기 리짱 시절부터 응용력 하나만큼은 뒤질 일 없었다는 율혜.그러니 남들보다 평수가 잘 빠진 기억 창고를 갖고 있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덕분에 휘안은 또 한 번 결심했단다.저로 말할 거 같다면 최근 기준으로 율혜의 기억 창고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 중인 자.따라서 우리 율혜 앞에서만큼은 더욱 더 예쁜 말과 예쁜 모습으로 제 행동거지를 바로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니 말이다.“치잇~ 근데 휘안이도 전문가인 분야가 많잖아. 모르는 사람들이랑 전화도 잘하고 지인들과는 다정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줄 아니까. 그건 리짱도 배워야 하는 분야야.”“에이, 후자라면 율혜도 전문가고 전자라면 굳이 안 배워도 되지 싶은데? 스팸 전화야 차단하면 그만이잖아. 굳이 마음 쓸 거 없이.”“이것 봐. 지금도 여러 갈래로 다정한 휘안이. 스팸 전화는 차단하는 거라고 알려주면서 리짱 모자
“아, 제조일자? 그건 또 나름의 스토리가 존재해. 글쎄, 휘안이가 코 하고 잠들어 있던 사이 신선 배송으로 도착해있었대. 다시 말해 결제된 건 어제 오후. 배송된 건 오늘 아침. 그니까 제조일자 스티커도 오늘 붙여진 거고.”“음... 그렇다면 괜한 착각이었나. 리짱은 말이지. 또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봤거든. 우선 어제 샀다고 거짓말한 다음, 오늘 아침 열시가 되자마자 백화점으로 막 달려가서는 과일 바구니 하나를 사오는 쪽으로 말이야.”“에이, 주말 아침부터 뭐 하러 분주하게 움직여. 나는야 진실만을 말하는 아기 토끼. 우리 율혜의 하나뿐인 아기 토끼인데 괜한 의심일랑 거둬주라. 의심 받으면 속상하다고~”과연 상상력의 귀재답게 추리도 남다르다.타율로 따지자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황.한때는 백화점 신선 배송 서비스 하나만을 믿고 제 거짓말을 바로 수습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기도 했다.다만 그 희망이란 율혜와 전화할 때 입 한 번 잘못 턴 죄로 한줌의 재가 되어버렸다지.하필이면 과일 바구니의 예시로 든 특정 과일의 재고가 다 떨어져서는 오늘 아침부터 백화점으로 직접 행차할 수밖에 없었다니까.따라서 이 과일 바구니로 말하자면 온전히 한 남자의 노력이 담긴, 어제와는 전혀 인연이 닿지 못한, 최상급 과일들로만 구성된 거다.유기농 인증을 거친 건 기본이었고 말이다.“치잇~ 휘안이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는 의심하지 않겠어. 어쨌든 휘안이가 산 과일 바구니는 진짜로 존재했다는 거고, 리짱은 휘안이가 미리 알려준 덕분에 과일 바구니랑 겹치지 않는 선물을 구해올 수 있었던 거니까.”“헤헤. 그럼 전부 다 해피엔딩이네? 우리 이 분위기를 기념해서 멜론 하몽이나 해먹을까? 내가 또 우리 율혜를 위해서 하몽도 사놨거든.”“진짜? 근데 맛있는 걸 먹을 때는 흐름이 쭉 이어져야해. 그니까 말이야. 이렇게 예쁘게 썰어서 이렇게 예쁘게 얹어달라는 거지. 휘안이 무슨 말이지 이해했어? 리짱이 원하는 거~”혹시라도 우리 율혜에게 크게 혼쭐날 일을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