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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왜 들어오지 않았어

정유준은 하영에 관한 궁금증을 억누르고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저녁에 강 비서에게 약 좀 보내주고, 인사팀에 전화해 3일간 휴가라고 전해.”

마지막에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집에 사람 한 명 들여서 강 비서한테 하루 일과 살피고, 나한테 보고하라고 해.”

“예, 사장님!” 허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으로 옮겼다.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웃음을 머금고 음식을 주문하는 양다인을 보니, 허시원까지도 여러 감정에 사로잡혔다.

……

이날 밤, 하영은 정유준의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약을 먹고 병원 병상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몸을 뒤척일 때 그녀는 손등에 주삿바늘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하영이 깨어난 것을 본 양운희가 당부했다.

“하영아, 함부로 움직이지 마. 네가 열이 난 채로 기절한듯 자고 있어서 부진석 선생님이 링거를 놔주셨어.”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너도 참, 열이 그렇게 나면서,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왔구나.”

양운희는 참지 못하고 또 중얼거렸다. 엄마의 이런 걱정스러운 푸념을 듣고 있으니 하영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

하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려 양운희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엄마, 배고파요.”

양운희는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

“기다려 봐, 식사 시간이 다 됐구나. 좀 있으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을 갖고 올 테니 조금만 참아. 이 녀석아. 밥을 제때 안 챙겨 먹으니 이렇게 기운이 없지.”

말이 끝나자마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하영이 깨어난 것을 보곤, 턱으로 입구를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

“하영아, 입구에 잘생긴 남자 둘 있던데, 혹시 네 친구니?”

하영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친구요?”

머릿속에서 갑자기 정유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자, 깜짝 놀라 몸을 곧게 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입구에서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허시원은 문을 빼꼼 열고 얼굴만 들이밀었다.

“강 비서님, 잠깐 나와 보실 수 있으세요.”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손등의 바늘을 뽑고 병상에서 내려왔다.

양운희는 조급하게 소리쳤다.

“하영아, 뭔 일이야?”

“엄마, 이따가 와서 설명해 드릴게요!”

말이 마치고 그녀는 곧장 허시원을 따라 병실 밖에 위치한 휴게실로 갔다.

정유준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마치 누가 그의 심기라도 건드린 것 같았다.

하영은 얼떨떨한 상태로 그의 앞에 서서 낮은 소리로 유준을 불렀다.

“사장님…….”

유준은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다그쳤다.

“왜 어제 집에 안 들어왔어?”

하영은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몸이 좀 안 좋았어요.”

정유준은 차갑게 말했다.

“몸이 아프면 입도 벙어리가 되는 거야? 아프면 아프다고 한 마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라, 약 먹고 잠들어버려서……. 일부러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유준은 애써 화를 누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약을 먹고 잠들어서 얘기를 못 한 거야? 아니면 다른 남자 곁에 있고 싶어서 일부러 얘기 안 한 거야? 응?”

하영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라니? 무슨 남자요?”

정유준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짙어졌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거야!”

“하영 씨?”

오리무중,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됐는데, 뒤에서 익숙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준은 하영이 어제 전화가 끊기기 전 부진석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설마 방금 말한 남자가 여기 부 의사를 두고 한 말인가?’

하영은 고개를 들어 자기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부진석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정유준과 부진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굳이 해명할 필요 같은 건 없을 것 같았다.

부진석은 지혈하지 않아 피가 흐르기 시작한 하영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눈썹을 찡그리고는 하영을 향해 얘기했다.

“지금 손등에 피 흐르고 있네요…… 시간 봐서는 아직 링거 못다 맞았을 텐데요…….”

고개를 숙여 손등을 확인한 하영은 급히 다른 손으로 지혈했다.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제가 지혈할게요.”

부진석은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쉬며 손등으로 하영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은 좀 내렸지만 좀더 쉬어야 해요.”

유준이 오해할까 봐 하영은 급히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부진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정유준을 바라보았다.

말투엔 온화하고 예의를 잃지 않았다.

“저기요. 이 환자는 지금 휴식이 필요합니다. 대화 시간도 줄여주세요.”

유준은 고개를 돌려 부진석과 눈을 마주쳤다.

“저는 체온계도 쓰지 않고 환자의 체온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의사는 처음 봅니다.”

“다년간의 임상 치료로 얻어진 경험이죠. 오히려 환자의 편의를 봐줄 때가 많습니다.”

부진석의 짧은 두 마디 말속에는 곳곳에 '방해'라는 두 글자가 배어 있다.

강하영의 손에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부진석이 자신의 편에 서서 얘기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정유준이 어떤 사람인가?

김제 사람들 모두 정유준이 냉정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화가 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김제 전체가 벌벌 떨었다.

정유준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부진석도 언제든지 병원에서 해고될 수 있다.

하영은 얼른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나섰다.

“선생님, 이분은 제 직장 사장님이에요. 먼저 가셔서 일 보세요. 사장님과 아직 할 얘기가 남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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