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다음 날, 회사 게시판에는 공지문 두 장이 붙었다.첫 번째는 회사가 서가희와의 근로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었다.두 번째는 법원이 회사가 서가희를 상대로 제기한 2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정식으로 접수했다는 내용이었다.이연아는 이번 일에서 가장 먼저 살아남은 사람이 됐지만, 그렇다고 삶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더 이상 아무도 이연아와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고, 모두가 그녀를 피했다.이연아는 일자리는 지켰지만,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존엄과 신뢰를 잃고 말았다.일주일 후, 강성호가 직접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강성호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대신 투자 규모가 기존의 두 배로 늘어난 새로운 협력 계약서를 내게 건넸다.“축하합니다.”강성호는 나를 바라보며, 눈빛에 인정한다는 느낌을 담아서 말했다.“당신은 그저 호의만 베푸는 ‘모두의 보호자’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규칙을 다를 줄 아는 자격 있는 ‘선장’이라는 걸 증명했어요.”나는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마음속에 큰 기쁨은 없었다.이번 사태는 내게도 가장 깊은 교훈을 남겼다.밑도 끝도 없는 선의는 감사함을 키우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아이만 키워낼 뿐이다.진정한 선의에는 반드시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야 한다.한 달 후, 나는 회사의 복지 개혁을 다시 시작했다.무료 어린이집은 다시 열지 않았다.대신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에 엄격하게 연동되는 새로운 포인트 교환 제도를 도입했다.업무 성과, 혁신, 그리고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포인트로 쌓였다.직원들은 포인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꿀 수 있었다.육아수당일 수도 있고, 추가 유급휴가가 될 수도 있었다.해외 연수 기회로 바꿀 수도 있었고, 심지어 회사 지분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그날 저녁, 나는 사무실의 통유리창 앞에 서서 창밖의 수많은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모르는 번호였고, 발신지는 한참 떨어진 작은 도시로 표시되어 있었다.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에서 지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차 한 잔을 타놓고, 조용히 기다렸다.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뜻밖에도 이연아였다.이연아는 손에 USB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대표님!”문을 열고 들어온 이연아는 그대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이연아는 울먹이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그러면서 손에 쥔 USB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여기에는 서가희가 처음부터 어떻게 일을 하나씩 키우고, 대표님을 몰아붙여서 결국 굴복시키려고 했는지 전부 기록돼 있어요!”“외부 홍보 대행사에도 연락했고요!”“그러고는 자기가 직접 어린이집을 차린 뒤, 우리 회사 워킹맘 직원들을 전부 자기 쪽으로 빼돌리려고 했어요!”“이 모든 일은 서가희가 주도한 거예요! 저희는 전부 그 인간한테 이용당한 것뿐이에요!”“제가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온 것만 봐서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나는 이연아가 내민 USB를 받지 않았다.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증거는 비서에게 넘겨. 진위는 확인해 볼 테니까.”“나가봐.”이연아가 나간 뒤, 내 사무실 문은 다시는 닫히지 않았다.한 명 또 한 명, 피고인들이 앞다퉈 사무실로 몰려들었다.“대표님! 남선희예요! 그 사람이 단톡방에서 제일 먼저 어린이집 급식을 먹고 아이가 배탈 났다고 거짓말한 사람이에요!”“임경진이 유명 인플루언서한테 연락했어요. 여기 캡처도 있습니다!”“황서진이 회사를 망하게 만든 다음 우리 전부 다 자기가 만든 새 회사로 데려가겠다고 했어요!”오후 4시 50분, 마감까지는 이제 단 10분 만이 남아 있었다.아직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서가희였다.서가희는 다른 사람들처럼 울며불며 나에게 빌거나, 남을 팔아넘기러 오지 않았다.그저 복도 끝에 꼿꼿이 서서 내 사무실 쪽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그리고 오후 5시 정각에 비서가 최종 집계 보고서 한 장을 내 책
나는 웃었다.“표현의 자유?”나는 서가희를 바라보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남을 비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자유에도 경계가 있어요. 그 경계는 바로 법입니다.”“여러분이 키보드를 두드려 거짓말을 퍼뜨리며, 일자리를 주고 월급을 지급하던 회사를 공격할 때는 그 행동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쯤 생각했어야죠.”나는 새하얗게 질린 이연아의 얼굴을 바라봤다.“당신들이 회사의 호의와 도움을 받으면서 뒤에서는 칼을 꽂았다면, 이미 용서받을 자격은 없어요.”이연아의 몸이 심하게 떨렸고, 의자에서 미끄러질 듯했다.“그리고 권력 남용이라고?”나는 다시 서가희에게 시선을 돌리며, 비웃음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아니요. 난 그저 내 합법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마치 당신들이 그동안 여론을 이용해서 당신들이 말하는 소위 권리를 지키려 했던 것처럼요.”“공평하잖아요.”“아니에요!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한 젊은 워킹맘이 갑자기 무너지듯 울음을 터뜨렸다.“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자리에서 뛰쳐나와서 단상 앞으로 달려가려던 그 워킹맘은, 옆 사람에게 붙잡혔다.“제발 소송만은 취하해 주세요! 저는 1억을 배상할 수 없어요! 집을 팔아도 감당 못 할 돈이에요!”그 사람의 울부짖음이 회의실 전체의 감정을 폭발시켰다.“저희는 다 서가희한테 속은 거예요! 전부 서가희가 우리를 부추긴 거라고요!”“맞아요! 주범은 서가희예요! 저희는 상관이 없어요!”“이연아도 있어요! 그 사람도 단톡방에서 계속 사람들을 선동했잖아요!”순식간에 서가희와 이연아는 모두의 표적이 되었다.“이 배신자들!”서가희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태도를 바꾼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끝까지 함께하겠다더니! 이제 와서 나를 물어뜯어?”얼굴이 사색이 된 이연아는 의자에 축 늘어진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사람들이 어느 정도 떠들어댄 뒤에야
다음 날 아침 8시 50분, 회의실은 사람들로 빼곡했다.서가희와 이연아는 20명이 넘는 워킹맘 직원들과 함께, 모두 검은 옷을 맞춰 입은 채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다른 직원들은 한참 뒤쪽의 줄에 떨어져 앉은 채 서로 수군거렸다.그 직원들은 그저 구경이나 하겠다는 심정이었다.서가희는 자신의 ‘검은 옷 군단’을 향해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다독이며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잘 들어. 조금 있다가 정서연이 들어오면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마.”“그냥 말없이 정서연만 똑바로 쳐다봐.”“정서연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우리 요구를 전부 들어주지 않으면 단체로 퇴장해서 바로 언론을 찾아갈 거야.”“오늘은 절대 물러설 수 없어. 끝장을 봐야 해.”이연아는 옆에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가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시간은 1분 1분 흘러갔다.오전 8시 59분, 거의 모든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진동했다.새 메일이 도착한 것이었다.서가희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메일을 열었다.또 회사에서 보낸 달래기용 공지겠거니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메일 내용을 확인한 순간, 서가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메일 본문에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공동 소장이 첨부되어 있었다.문서에는 법무팀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피고인 명단은 길게 이어져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첫 번째 이름은 서가희였다.그 바로 다음은 이연아였다.그 아래로 익명 계정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했던 직원들의 이름이 하나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고소장 마지막에는 두툼한 증거 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모든 익명 댓글의 캡처본 뒤에는 IP 주소와 함께, 실명 인증된 직원의 이름과 사번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회의실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검은 옷을 입은 20명이 넘는 워킹맘들은, 마치 단체로 굳어 버린 사람들처럼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사라지고, 충격과 혼란을 거쳐 결국 완전한
나는 그 전 직원에게 보낼 이메일을 곧바로 발송하지 않았다.나는 비서에게 문밖에서 거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직원들에게 한마디를 전하라고 했다.“대표님께서 모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내일 오전 9시, 다시 회의실에서 여러분의 최종 요구를 듣겠다고 하셨습니다.”문밖을 뒤흔들던 울음과 고성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받던 ‘주범’ 서가희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서가희는 곧바로 워킹맘 단톡방에서 다시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다들 봤지? 정서연이 겁먹었어!][진짜로 정리해고를 할 배짱은 없어. 그냥 우리를 겁주려는 거야!][내일은 무조건 똘똘 뭉쳐야 해. 절대 먼저 물러서면 안 돼!][어린이집도 다시 열게 만들고, 현금 수당까지 더 받아내야 해!][우린 쪽수가 많아. 대표도 끝까지 버티진 못할 거야!]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가희를 욕하던 사람들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정말? 대표기 진짜 물러설까?][만약에 내일도 거절하면 어떡하지?]가장 먼저 서가희의 말에 맞장구를 친 건 이연아였다.[가희 언니 말이 맞아! 우리가 먼저 흔들리면 안 돼!][오늘 대표님이 일부러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한 거야! 절대 넘어가면 안 돼!][내일은 다 검은 옷을 입고 회의에 들어가. 대표님한테 제대로 압박을 줘야 해!]비서가 단톡방에서 캡처해 온 대화 내용을 보며 나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나는 서가희 한 사람만을 상대로 준비했던 고소장을 파쇄기에 넣었다.나는 갈기갈기 찢긴 종잇조각이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법무팀장 정기범에게 전화를 걸었다.“정 변호사, 계획이 바뀌었어.”“고소장을 새로 작성해.”“피고는 이제 서가희 한 명이 아니야.”나는 잠시 멈췄다가, 정기범을 깜짝 놀라게 할 결정을 말했다.“인터넷에 회사를 공격하거나 허위 사실을 퍼뜨린 글을 올린 사람들 중, IP 주소가 우리 회사에서 접속된 것으로 확인된 계정은 전부 공동 피고로 넣어.”“
나는 절망과 공포가 뒤섞인 비명 속에서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왔다.뒤에서는 누군가 울부짖었다.“안 돼요! 대표님!”또 누군가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서가희! 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밥줄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덮쳐오자, 마침내 직원들 사이의 균열은 폭발했다.회의실 안에서는 순식간에 내분이 벌어졌다.나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문을 잠갔다.문밖에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울음과 욕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발 어린이집만은 없애지 마세요!”“저는 부양할 가족이 있어요! 이 일자리까지 잃을 순 없어요!”“서가희! 내 직장 돌려내! 너랑 끝장을 보겠어!”문밖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몸싸움까지 벌이고 있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쳤던 동료들이, 이제는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이 모든 건 내 예상대로였다.나는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아래에 대기 중인 취재 차들을 바라봤다.기자들은 여전히 내가 초라한 모습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찍으려 하고 있었다.나는 휴대폰을 들었다.화면에는 전략적 협력 파트너인 강성호와의 통화 기록이 떠 있었다.통화 시간은 불과 30분 전이었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강성호의 목소리에는 온기가 조금도 없었다.[정 대표, 내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내가 투자한 곳은 건전한 가치관과 안정적인 경영 시스템을 갖춘 첨단기술 기업입니다.][매일 사회면 헤드라인이나 장식하는 가십 공장이 아니고요.]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강 대표님, 믿어주세요. 이건 일부 직원들이 악의적으로 선동하면서 벌어진 오해일 뿐입니다.”[오해라고요?]강성호가 차갑게 비웃었다.[그 게시글도 봤고, 그 아래 달린 댓글도 전부 봤습니다.][당신 회사 직원들이 자기 회사를 감옥이라고 부르더군요.][그 몇 마디가 출시를 앞둔 우리의 콜라보 제품에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내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