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우리 남편은 의대 박사였다. 사람이 바르기로 소문났고 타고나길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첫사랑이 차 사고를 내어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첫사랑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남편은 그동안 배운 의학 지식을 전부 이용해 시체를 표본으로 만들어 실험실에 놓아두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시체의 뱃속에 채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는 걸 발견했다. 늘 차분하고 냉정하던 남편도 심장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시체가 바로 나라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채 자라나지 못한 아이의 아빠는 바로 나를 표본으로 박제한 남편이었다.
View More여진수는 하루 만에 머리가 희끗해졌고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사건이 진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법정에 선처를 요구했다. 여진수는 사형을 면하고 25년 형을 받았지만 맹수지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25년 형을 받았다는 소식에 장미옥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경악스러운 건 여진수가 맹수지를 도와 내 시체를 훼손하고 여씨 가문의 핏줄을 죽였다는 것이었다.장미옥은 여진수의 어깨를 붙잡고 캐물었다.“왜 그랬어. 희연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왜 그랬냐고. 이 나쁜 놈아.”여진수는 실성한 듯 장미옥의 말은 듣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렸다.“희연아, 돌아와. 응? 우리 다시 시작하자.”[아니. 싫어.]다음 생이라는 게 있어도 싫었다.여진수는 옥살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 상태가 점점 악화했다. 의사는 그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삶의 의지를 잃어서인지 여진수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고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았다.그렇게 3년이 지나 여진수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온몸이 썩어 문드러진 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여진수가 죽자 내 영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나는 장미옥과 엄마를 따라 나를 묻은 묘지로 향했다. 두 사람은 나를 위해 기도문을 읊었다. 내가 다음 생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었다.기도문을 읊자 내 영혼도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영혼은 허공에서 사라졌다.나는 다음 생에도 여진수를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다음 생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여진수는 자기가 와이프와 아이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하루 만에 겨우 소화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경찰에게 맹수지가 한 짓임을 알려줬다.맹수지야말로 진정한 범인인데 이렇게 대신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죽은 아내와 아이를 위해 복수해야만 했다.경찰은 신속하게 맹수지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도망가기 전에 공항에서 체포했다.여진수는 이번에 드디어 맹수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푹 꺼진 채 충혈된 눈으로 맹수지를 노려봤다.유리창으로 가로막히지만 않았어도 바로 맹수지를 덮쳐 갈기갈기 찢어 죽였을 것이다.“왜. 희연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내 아이까지 가진 사람을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거야. 왜.”맹수지도 더는 발뺌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전부 털어놓았다.“왜라니. 임희연이 너의 아이를 가졌잖아. 네가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임희연이 아이를 가지면 너에게 접근할 기회가 없어지는데?”“애초에 임희연과 결혼한 것도 나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 거 아니야? 내 대용품이 내 자리를 꿰차게 할 수는 없지. 너의 진정한 와이프는 나야.”맹수지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왜 죽었는지 알 것 같았다.일요일 저녁.나는 삼계탕을 들고 여진수를 찾아가 화해하면서 임신 사실을 알려주고 앞으로 싸우지 말고 잘살아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실험실로 와보니 여진수는 맹수지를 꼭 끌어안은 채 웃고 떠들고 있었다.순간 나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맹수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5년이라는 결혼 생활을 이제 끝낼 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하지만 맹수지를 찾아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아 맹수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렇게 따라 나온 맹수지가 나를 보자마자 비아냥댔다.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나는 대용품일 뿐이니 영원히 여진수를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나는 맹수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이제 여진수 돌려줄게요.”이 말을 뒤로 나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때 임신 결과지가 바닥으로 떨
아내를 죽이고 표본으로 박제한 사건의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여진수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 결과에 놀랐다. 그래도 죽기 전에 맹수지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하지만 여진수가 뼈저리게 사랑한 맹수지는 만남을 거절했다.장미옥은 여진수가 맹수지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여진수의 귀뺨을 여러 번 후려쳤다.“정신 차려. 그 여자가 뭐가 좋다고 그리워하는 거야? 희연이 얼마나 좋은 아이야. 희연이를 놔두고 어떻게 그런 여자를…”“너 여기 갇혀있는 동안 맹수지가 한 번이라도 찾아온 적 있어?”“아마 지금쯤 너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너 출세하기 전에 네가 돈이 있든 없든 아프든 건강하든 늘 곁을 지킨 사람은 희연이야. 희연이라면 너 이렇게 된 거 알고 무조건 너 보러 왔을 거야. 아쉽게도 희연이는 지금 없어. 더는 너를 참지 못하고 떠나버렸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여진수는 장미옥의 말에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희연아, 희연아. 어디 있어… 너무 보고 싶다…”여진수가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여진수, 드디어 내가 생각난 거야?]정말 아이러니했다.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으니 여진수도 더는 나를 만날 수가 없었다.…감정 의뢰한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여진수가 표본으로 박제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여진수는 이 결과를 듣고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희연이에요. 아니, 절대 그럴 리 없어요…”경찰이 감정 보고서를 여진수 앞에 들이밀었다.“임희연 씨 맞아요. 당신이 분해한 그 시체 당신 와이프 맞다고요.”의대 박사인 여진수는 그 보고서가 얼마나 정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경찰은 결코 그를 속이지 않았다.그가 두 손으로 직접 와이프의 시신을 분해하고 표본으로 박제한 것이다. 더욱 잔인한 건 아이까지 죽였다는 것이었다.“아악.”너무나도 큰 충격에 휩싸인 여진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아니야. 다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라
여진수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경찰이 질문해도 여진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하지만 여진수는 차분할 수 있어도 맹수지는 아니었다. 여진수가 경찰에 잡힌 다음 날 맹수지도 똑같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맹수지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했다.나는 그런 맹수지가 너무 우스웠다. 법치 사회에서 억울한 척한다고 받아야 할 벌을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나는 영혼 상태라 경찰이 어떻게 두 사람을 심문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경찰은 먼저 심경이 매우 불안정한 맹수지부터 공략했다. 경찰은 맹수지에게 여진수가 모든 걸 자백했다고 말했다.맹수지는 처음에 믿지 않다가 경찰이 추궁하자 취약하던 방어선이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맹수지가 울며 말했다.“가서 여진수한테나 물어봐요. 시체가 어딨는지 아는 사람은 여진수지 내가 아니에요. 다 여진수가 한 짓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풀어주세요.”경찰은 여진수가 있는 취조실로 들어가 여진수에게 말했다.“맹수지 씨가 모든 걸 자백했습니다. 주범은 여진수 씨라고 하더군요. 지금이라도 시원하게 자백하세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맹수지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했지만 맹수지가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밀었다는 말에 여진수도 깜짝 놀랐다.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맞아요. 다 내가 한 짓이에요…”“제 실험실에 표본이 몇 개 있는데 거기에 살인 증거가 담겨 있어요…”여진수는 더는 못 참겠는지 허리를 숙이고는 헛구역질하더니 어떻게 시체를 처리하고 표본으로 만들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진술을 마친 여진수는 진이 빠진 듯 취조실 의자에 늘어졌다.“제가 훼손한 시체에 미안하네요. 죽어서도 온전치 못하니 편히 쉴 수도 없겠네요…”여진수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이제 와서 미안하다니, 너무 늦었다.경찰은 살인 및 사체 훼손으로 여진수를 감옥에 처넣었다. 맹수지는 여진수 덕분에 무죄로 석방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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