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자꾸 그런 거 캐물어보지 마."
사사건건 곤란하기 짝이 없는 질문만 해대니 난감했다.
이런 질문은 어떻게 답해도 분위기가 이상해질 말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도윤의 눈빛이 묘해서 기분이 더럽기 그지없었다.
'사내새끼가 뭐 저런 눈으로 쳐다보고 난리야...'
누가 봐도 로맨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멜로눈깔이었다.
여자애들은 좋다고 꺅꺅거렸을 테지만 그게 자신은 아니니 문제였다.
"얼른 대답하기나 해. 안 그러면 안 보내준다?"
조금 사이가 좋아지나 싶었더니, 이제는 또 협박이었다.
"으음, 그게 있지..."
솔직히 말해서, 도윤은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꽤나 잘난 편에 속했다.
'내 눈이 많이 높은데도 말이지...'
허나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지 잘난 맛에 사는데, 콧대 높아진 꼴을 또 볼 수는 없지.'
결정한 지안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충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냥 그래.”
그렇게 대강 답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지안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말을 덧붙였다.
“아, 아니다. 너 완전 개또라이같아. 그러니까 더 이상 묻지를 마.”
“거짓말. 그건 성격이잖아. 외모는 어떤데? 제대로 말해야지.”
“썅, 그럼 물어보지를 말든가.”
"너도 나 예쁘다고 생각하잖아."
지안이 다시 고개를 훽 돌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거 절대 아니거든.”
괜한 오기였지만 도윤이 알아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뻥 치지 마. 나 처음 봤을 때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으면서.”
“그런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다 보이지, 그냥 얼굴에 전부 드러나던데 뭘. 게다가 나보고 재수 없다고도 생각했지?”
"...!"
그 말에 뜨끔한 지안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아니거든?!”
지안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이런, 시발. 망했다.'
지안은 자신의 얼굴이 홧홧해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괜찮아, 하나도 기분 안 나빠. 나도 내가 잘생긴 거 아주 잘 알거든. 아주 어릴 때부터.”
도윤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괜히 속마음이 들킨 지안은 더 화를 냈다.
“어쩌라고, 씨발.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흐음, 상관있을 텐데. 어쨌든 너랑 나랑 붙어 다니니까.”
지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너랑은 그만 좀 붙어 다니고 싶다.”
“그래? 난 전혀 아닌데. 늘 너한테 껌딱지처럼 달라붙고 싶거든.”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건 대화라기보다는 그냥...'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신명나게 놀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다가는 도저히 대화가 끝날 것 같지가 않아...'
지안이 인상을 또 한 번 더 찌푸리자, 도윤이 지안의 미간을 지그시 누르면서 말했다.
“됐고 인상 좀 그만 써. 이쁜 얼굴에 주름 생기겠다.”
그러더니 지안의 손끝을 슬며시 잡았다.
지안이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떼려고 하자, 그가 곧 아이를 달래듯 손을 살살 흔들며 말했다.
"왜에, 잘생긴 거 보면 기분 좋잖아. 이제 그만 나 보고 그만 화 풀어."
"이상하다, 기분이 더 나빠지기만 하는데 이건 어떡할 건데?"
"그래? 이상하다. 나 재수 없다고 싫어하는 놈들은 봤어도 내 얼굴은 다들 별로 안 싫어하던데."
도윤은 눈동자를 살짝 위로 올리고는 팔짱을 꼈다.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생각을 다 마쳤는지 그가 말했다.
“역시 네가 좀 특이취향인가 보다.”
“그런 거 아니거든.”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독특한 사람 좋아하거든.”
도윤이 지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위로라도 건네듯이 말했다.
“잘생긴 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대신 넌 예쁘게 생겼잖아.”
“그걸 지금 위로라고. 내가 뭐가 예쁘다고.”
“예쁜데? 넌 네가 예쁜 거 몰라? “
”응, 몰라. 그러니까 이제 그만 꺼져. “
그러자 도윤의 입에서 상상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그럼 더 좋은데. 이제 내가 알려줄 수 있잖아, 너 예쁜 거."
도윤이 하얗고 말랑거리는 뺨을 꾸욱꾸욱 누리면서 계속 그를 건드리더니 물었다.
"그것보다 지안아, 지금 너 볼 엄청 빨간 거 알아?"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지안이 잘 벼려진 칼처럼 단답했다. "싫은데? 내가 왜." "아, 좀 그러지 말고." "진짜 안돼." "왜 안되는데." 지안이 말을 더듬거리면서 할 말을 똑똑히 전했다. "나, 나 바빠." "안 바쁜 거 다 알고 있어." "...너도 참 너다." "응, 그래. 나도 알아." 도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하는 대답에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친 지안이 말했다. "너는 내가 그렇게 싫어해도 자꾸 또 다가오고 싶냐? 내가 뭐가 좋다고..." "그야 처음으로 사귄 친구니까." "이제 이 말도 질린다. 근데 너 친구 많잖아." "그건 그냥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고." 그 말에 지안은 문득 궁금증이 확 일었다. 그래서 도윤에게 툭 하고 물었다. "그럼 나는 뭔데?" "으음... 글쎄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사람?" 갑작스런 질문에도 도윤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런 오글거리는 대답을
도윤의 말에 지안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얘가 이제는 별 미친 소리를 다 하네, 진짜.”“...치, 진짠데.” 도윤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모르겠네.' 그러자 끝내 그가 실토했다. “사실 왁스 바르다가 잘못 발라서 너 오기 전에 샤워 한 번 더 했어.”“아니 야, 근데 우리 오늘 집에서 공부만 하는 거 아니었냐.”“맞는데.”“그럼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아, 그런 거였어?”“그래.” 이게 도대체 무슨 대화인지 모르겠다. '...슬슬 뇌가 망가질 것 같아.' 어쩌면 줄줄 녹아서 사라질지도 모른다.상상이 또 과한 망상이 되어 괴상한 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기 전에 지안은 일단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 잠깐 화장실 좀.”“화장실 저쪽이야.” 지안이 손을 씻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저 놈이 보인 행적으로 따지면 꼭 날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 따먹히는 거 아니냐.’ 살면서 게이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지안은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금이
“뭐, 나름.“ 이번에는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뭐, 사실이었으니까.' 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고, 야자에 학원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도 수업은 물론 학원도 개인 과외도 받지 않는 듯한 저 놈이 자신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불공평했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하다지만, 이제라도 그 비결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언제 알려줄 건데?”“우리 주말에 만날까?” 그 제안에 떨떠름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주말까지 너를 봐야 하냐.”“싫어? 아니면 말고. 이번 시험에 또 나한테 지겠네.” 이번에도 또 발리기는 죽어도 싫었다. 지안은 석차 1등이라는 숫자에 눈이 멀어 도윤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같이 공부할게.” 그게 자신에게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꿈에도 모르고. 그러자 도윤이 말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와.”“뭐? 그냥 독서실 가면 되지.”“독서실은 조용해서 가르쳐줄 수가 없잖아.” 조용히 납득한 지안은 다음 대안을 떠올렸다. “카페 가자.”“시끄러워.”“그럼 도서관은?”“슬슬 시험기간이라 자리 없을 걸.” 하여간 그의 말재간에는 당해낼 턱이 없었다. “알았다, 알았어.”“그럼 나
지안은 제 손등에 닿는 말캉거리는 촉감이 소름돋았다. “아, 좀!”“아하하-!” 그러자 도윤의 낮은 웃음소리가 퍼졌다.어째 이상하게 자신이 싫어하면 할수록 도윤은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제 이놈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이골이 날 정도야.' 지안이 골머리를 앓으면서 말했다. “제발 좀 부탁인데 좀 닥쳐주면 안 되냐.”“와아- 나한테 육성으로 그런 부탁하는 애 처음 봐.” ‘그야 그렇겠지. 지금까지 너한테 그렇게 말하는 애는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이어진 도윤의 부탁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한테 입 맞춰봐. 그럼 조용히 해줄게.” 만약에 도윤을 맨 처음에 만났을 때 그런 요청을 들었다면 당황했을 터였다.하지만 변덕이 심한 그의 행동에도 이제는 질릴 대로 익숙해진 상황이었다.지안은 전에 도윤이 했던 대로 그의 하얗고 혈관이 도드라진 손등에 입을 맞췄다. 쪽- ‘이 정도면 됐겠지 뭐.’ 별 감흥도 없었다. 생각보다 그의 손이 차가웠다는 것만 빼면? 그리고 이제 슬슬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조금 건조했달까. “우리 벌써 서로 입 맞추는 사이가 된 거야?”“말은 똑바로 해라. 네가 협박만 안 했어도 난 안 했어.”“그럼 앞으로도 협박만 하면 해주겠다는 의미?”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치 머리에 빠직 마크가 달리는 것 같았다.도윤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참다 못한 지안이 그만 버럭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아, 좀! 하지 말라고!""하여간 쪼끄만 게 성질은." 도윤이 그리 말하는 통에, 지안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지안의 표정이 썩어들어가자 그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랑 가기 싫으면 지금 말해, 물론 안 들어줄 거지만.""알겠어, 알겠다고..." 지안이 도윤의 손을 잡을 기색이 영 없어보였다.그러자 도윤은 곧바로 지안의 팔을 지그시 끌어당겼다. '결국 모든 게 제멋대로라니까.' 지안은 그에게 질질 끌려가듯 급식실로 갔다. ‘누가 보면 어떡하지.’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연신 주위를 힐끗거렸다.다행히 그들이 늦게 출발한 터라 복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사람이 거의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지안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너는 남자애들끼리 손도 잡아?”“아니. 너한테만 그러는 건데 싫어?”“당연히 싫지.”“그럼 좀 익숙해져봐. 원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래. 너도 할 수 있어.” ‘유캔두잇 같은 대답이 듣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눈치 없는 거야, 아님 눈치 없는 척 하는 거야?’ 그게 끝이었다.도윤은 더 이상 이런 대화
지안은 앙칼지게 그의 말을 비비 꼬았다. “지랄, 네가 깨물면 나는 사망이다.”“너 그렇게 개복치였어? 이거 몰랐는데. 일단 알았어, 염두에는 둘게.“ 일부러 배알 꼴리라고 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어보였다.결국 지안이 자신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많이 쉬면 복이 날아간다고 하던데.""어, 너 때문에 이미 내 복 다 없어졌어.""괜찮아. 그럼 네가 채워주면 되지, 뭐." 도윤은 쓸데없이 이럴 때에만 긍정적이기 그지없었다.지안은 도윤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게 전부 다 이 새끼 때문에…!' 지안이 계속 쳐다보자, 도윤의 볼이 살짝 발그레해더니 그가 말했다. “...그렇게 열렬하게 쳐다보면 아무리 나라도 좀 부끄러운데.” 그 모습에 질린 지안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한 마디 한 마디 짓씹듯이 말했다. “그냥 그런 말 따위를 애초에 하지 말라고, 같은 남자끼리 진짜 징그럽게.”“다시 한 번 말해봐.”“뭐?”“내가 징그러워?” 도윤이 그렇게 물으면서 지안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지안은 그제서야 그에게 위압감을 느끼며 한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야, 야아. 거기서 딱 멈춰라.”“내가 왜?“”니 덩치 존나게 커서 무서우니까 더 다가오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