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데프 에도우즈가 거기 서 있었다. 그는 인터폰을 누르지도,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정지된 화면처럼 서서 안쪽의 기척을 기다리는 듯했다. 진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잠시 멈췄다. 금속의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진은 문을 열었다. "왜 안 들어와요." "부르지 않으셨잖아요." "부르고 있잖아요. 지금. 문을 열었다는 건 들어오라는 뜻 아닌가요." "그건 부르는 게 아니에요. 그냥 열어준 거지." 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데프의 젖은 셔츠 소매 너머 손목을 잡았다. "이게 부르는 거예요. 들어와요."
View More화이트 채플 23번지. 오전 7시 12분.
런던의 새벽은 언제나 불쾌한 습기를 머금고 시작된다. 낡은 벽돌 사이로 스며든 안개가 비릿한 철분 냄새를 실어왔다. 폴리스 라인 너머, 좁은 골목 끝에 놓인 시신은 기괴할 정도로 정돈된 모습이었다.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 수석 프로파일러, 진 크로스는 습관적으로 라텍스 장갑을 고쳐 끼며 시신 앞에 무릎을 굽혔다. “박사님, 상태가 좀… 안 좋습니다.” 뒤에 서 있던 형사가 헛구역질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 피해자의 왼쪽 손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살점 너머 뼈의 단면이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인 상처. 그 절개각은 정확히 47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진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본인조차 인지하기 힘든 찰나의 진동이었으나, 자신의 심박이 기형적으로 솟구치는 것으로 알아차렸다. - 진은 그 각도를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문의 깊숙한 수납장 안쪽 낡은 양피지 문서에서 보았던 각도. 1888년, 화이트채플의 어둠 속에서 기록된 ‘그’의 유산. 잭 더 리퍼의 후손이라는 낙인은 진의 혈관 속에 저주처럼 흐르고 있었다. 230년 전의 악몽이 현대의 런던 한복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보안팀이 1급 보고 현장에 왜 들어와 있죠.”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차갑게 물었다. 등 뒤로 낯선 기척이 다가와 멈춘 탓이었다. 구두굽이 젖은 아스팔트를 짓누르는 소리가 규칙적이고 단단했다. “경비 구역 설정 때문입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 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신을 등지고 선 그의 앞에는 검은색 코트를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를 끝까지 읽어 내렸다. 데프 에도우즈. 직함보다 그 너머의 눈빛이 오래 남았다. 그는 시신이 아니라 진의 손을 보았다. 처음부터, 그리고 계속해서. 장갑 너머로 숨기려 했던 그 미세한 떨림을 쫓는 시선이었다. 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차분한 어조로 관찰 결과를 내뱉었다. “현장 보존 구역이 좁네요. 보안팀 수준이 의심될 정도로.” “크로스 박사님이 왜 손을 떨고 계셨는지도, 저는 묻지 않았습니다.” 데프가 한 걸음 다가왔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나고 그의 체온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진은 더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려 현장을 벗어났다. 시선이 등 뒤에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기분이 아니라 사실임을, 진은 알고 있었다. ***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 오후 2시 40분. 연구실의 블라인드는 굳게 닫혀 있었다. 진은 개인 서버에 접속해 암호화된 두 개의 파일을 나란히 띄웠다. 왼쪽은 오늘 아침 현장에서 찍은 피해자의 손목 사진, 오른쪽은 가문의 문서에서 스캔한 1888년의 기록물이었다. 분석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소리가 적막한 방안을 채웠다. 화면 위로 붉은색 선들이 겹쳐지며 수치가 계산되었다. [일치율 67%] 단순한 모방 범죄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정교했다. 해부학적 지식 없이는 불가능한 절개였다.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잭 더 리퍼의 패턴이 다시 나타났다고. 그러나 진의 손가락은 보고서 작성 버튼이 아닌, 창 닫기 버튼으로 향했다.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보고할 수 없었다. 이 각도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자신이 누구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증명하는 꼴이었으니까. 진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차가운 금속성 냄새가 여전히 코끝을 맴도는 것 같았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발신자 미상. [ 손이 떨렸죠? ] 진은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현장에서 그 떨림을 본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한 명이 누구인지, 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먼저 묻지 않기로 했다. 거짓말을 두 번 들을 필요는 없었다.런던 범죄심리 연구소의 식당은 정오가 지나면 기계적인 활기로 가득 찬다. 백색 소음처럼 깔린 식기 부딪치는 소리와 분석관들의 낮은 담소 사이로 진은 가작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라이언 카터 검사의 인사 조정 이후, 진은 의도적으로 데프 에도우즈와의 거리를 넓히려 애쓰고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기이한 안도감을 데이터로 수용하기로 했으나, 그 데이터가 불러일으키는 자기혐오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진이 식판을 내려놓은 지 채 2분이 지나지 않아, 맞은편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게감이었다. 데프는 아무런 양해를 구하지 않고 진의 정면에 앉았다. 진은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도망치는 것은 분석가의 방식이 아니었고, 데프라는 변수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옥상에서 학습했으니까. 그로부터 30분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단 한 마디의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침묵은 지독할 정도로 견고했다. 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샐러드를 씹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그의 시선은 식판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진은 자신의 손목과 목덜미 부근에 닿아 있는 그의 무거운 존재감을 온 신경으로 감각했다. 식당의 소음이 멀게 느껴지고, 오직 두 사람 사이의 좁은 테이블 위로 흐르는 정적만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식사를 마쳐갈 때쯤, 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오늘 메뉴 별로죠? 내을은 좀 나으려나.”엠마 휘트니였다. 그녀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엠마의 그 순수한 활기가 이 건조한 공기를 잠시나마 휘저어 놓는 것 같았다. 진은 그녀의 웃음을 보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수사판에서 저렇게 투명하게 웃을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런던 검찰정(CPS)의 대회의실은 지독할 정도로 높은 천장과 차가운 대리석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템스강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실내에는 오직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예민하게 울려 퍼졌다. 다섯 번째 시신 이후의 수사 방향을 설정하는 회의는 세 시간째 공회전 중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료를 정리하던 진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신입 검사 라이언 카터였다. 그는 런던 사법계에서 촉망받는 엘리트답게 말끔한 수트 차림과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로스 박사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녁이라도 같이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사적으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어떻습니까?”카터의 제안은 정중했으나 그 이면에는 노골적인 호기심이 깔려 있었다. 그는 팔을 가볍게 타치하려다, 진이 한 걸음 물러나자 무안한 듯 손을 내렸다. 진은 그의 눈동자를 관찰했다. 야망, 그리고 분석가적인 자신을 흥미로운 피사체로 여기는 오만함. 진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분류해 냈다. “공적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진은 짧게 답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길게 뻗은 복도는 구두 굽 소리를 공허하게 반사했다. 복도 끝, 창가 옆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리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데프 에도우즈였다. 보안팀의 순찰 동선도, 대기 장소도 아닌 곳이었다. 진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무표정하게 입을 뗐다. “여기 서 계시네요.”“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보안팀 동선이 아닌데요.”“오늘은 그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대답은 짧았고 부연 설명은 없었다. 그는 방금 회의실 문턱까지 진을 따라 나왔던 라이언 카터의 방향을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진의 눈을 보았다. 그 눈빛은 시신을 볼 때와 같은 집요함을 담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오
다섯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지 사흘이 지났다. 수사팀은 범인의 다음 타깃을 예측하기 위해 화이트채플 북쪽의 낡은 창고 단지를 잠복 구역으로 설정했다. 런던의 새벽 2시 51분은 안개조차 얼어붙는 시간이다. 템스강에서 밀려오는 습한 냉기는 차량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시트 가죽을 차갑게 식혔다. 잠복 중인 차량 내부에는 히터조차 켜지 못한 채 지독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앞 유리에 맺힌 서리가 가로등 불빛을 굴절시켜 내부를 기괴한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폐건물의 실루엣은 거대한 짐승의 뼈처럼 앙상했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바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차체를 때렸다. 진은 조수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의 빈 건물을 응시했다. 무릎 위에 올린 손은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였다. 손끝의 떨림은 멈춰 있었으나, 대신 어깨가 미세하게 움츠러들었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생리적 반응이었다. 진은 자신의 호흡이 하얀 입김이 되어 흩어지는 것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찬 공기를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당겼지만, 그것을 인내하는 데 익숙했다. 분석가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 또한 관찰의 대상으로 치환해야 했으니까. 옆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렸다. 데프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야의 끝에서 데프가 자신의 검은 재킷을 벗어 내리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데프는 아무런 말도 없이, 벗어낸 재킷을 진의 무릎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무릎 위로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남자의 체온이 훅 끼쳐왔다. “안 추워요.”진이 짧게 답했다. 목소리는 차가운 공기에 부딪혀 건조하게 갈라졌다. “두세요.”데프의 대답은 그보다 더 짧았다. 그는 전방의 어둠을 주시한 채 핸들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셔츠 한 장만 걸친 그의 팔 근육은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진은 무릎 위에 놓인 재킷을 내려다보았다.
다섯 번째 살인 현장은 밤이 되자 완벽한 밀실로 변했다. 창고 외벽을 때리는 빗소리가 함석지붕을 타고 내려와 바닥의 웅덩이로 떨어졌다. 수사팀이 철수한 뒤의 현장에는 차가운 정적과, 그보다 더 차가운 두 사람의 호흡만이 남았다. 진은 손전등을 켜, 시신의 손목을 비췄다. 51도의 절개각. 그 비틀린 선 위로 빗물 섞인 습기가 맺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진은 시신 옆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의 각도를 조절했다. 빛이 데프 에도우즈의 발끝을 지나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데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진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47도의 각도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진동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진은 손전등을 끄지 않은 채 시선을 올렸다. 데프는 시선을 내리지 않고 진을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무서워요?”진의 목소리가 창고의 높은 천장에 부딪혀 낮게 돌아왔다. 데프는 시선을 시신에 고정한 채 한동안 답이 없었다. 손가락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빛 아래에서 그 진폭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무섭다는 단어가 정확한지 모르겠어요.”데프가 입술을 땠다. 평소보다 반 톤쯤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럼 어떤 단어요.”“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단어를 찾지 못했어요.”늘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하던 남자가, 시신 한 구 앞에서 이름 모를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피해자, 아는 사람이었어요?”진이 조심스럽게 본론을 건들였다. 데프의 시선이 다시 51도의 상처로 향했다. “2년 전에요.”“가까웠어요?”“가까웠죠. 적어도 제가 지켜야 할 범위 안에는 있었습니다.”진은 더 묻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은 데프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우리, 왜 이
자정의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는 거대한 콘크리트 사체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건물 전체를 감싼 보안등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거리며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야근을 마친 진이 무거운 회전문을 밀고 광장으로 나섰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런던 특유의 낮은 안개가 고여 있었다. 진은 정문 앞 계단에 멈춰 서서 습관적으로 장갑을 고쳐 꼈다. 건너편, 낡은 가스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 입구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실루엣이 있었다. 진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시선을 대로변으로 고정했다. 멀리서 다가
런던 경시청(Met) 소속 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장은 평소보다 훨씬 고요했다. 네 번째 희생자. 사우스파크 브릿지 인근의 폐창고에서 발견된 시신은 이제 ‘참혹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진은 노란색 폴리스라인 너머에서 시신의 손목을 응시했다. 47도. 범인은 진화하고 있었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주저함이 없었고, 이번 피해자의 손목 단면은 해부학 교본보다 명확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절개각은 갈수록 선명하고 정교해졌다. 진은 현장 감식 보고서 양식을 띄운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런던의 새벽 1시 12분은 모든 소음이 차갑게 식어 가라앉는 시간이다. 화이트채플의 낡은 아파트 단지는 안개에 젖어 비현실적인 고요에 잠겨 있었다. 진은 침실의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가슴 주머니에서 꺼낸 흰 봉투가 시트 위에 던져져 있었다. [ 피는 거짓말을 안 해. ] 정갈한 필체로 쓰인 그 여덟 글자가 시선이 닿을 때마다 신경을 예리하게 긁어내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다니엘 헤이즈의 찢긴 손목과, 130년 전 가문의 기록 속에 남겨진 47도의 절개각이 망막 위로 교차되어 나타났다.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의 사진 분석실은 외부의 빛이 완전히 차단된 암시과 같았다. 대형 모니터 네 대가 뿜어내는 푸르스르한 광원만이 벽면의 타일 위로 차갑게 반사되고 있었다. 진은 어제 현장에서 채집된 47장의 고해상도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피해자의 찢긴 살점과 선혈이 확대되어 나타났으나, 진의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검지 끝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19번, 20번, 21번. 사진 23번에서 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폴리스라인 너머, 구경꾼들로 가득 찬 골목의 풍경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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