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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 붉은 고삐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2 22:47:06

붉은 고삐의 말들은 해 뜨기 전에 길을 나섰다.

선우현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으나 아침 죽을 반 그릇 남겼다. 운설이 무릎에 붙일 약포를 데우는 동안에는 벌써 말안장을 두 번 고쳤다.

"축하하러 가는 사람이 너무 급하네요."

"좋은 자리는 먼저 가야 잡소."

"혼례상 바로 앞이요?"

"신랑과 마주 보는 자리."

운설은 약포를 조금 세게 눌렀다. 선우현이 눈썹을 찌푸렸으나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벌금이 또 붙을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정오 무렵 붉은 행렬을 따라잡았다.

검은 말 스무 필은 북관의 흑마장에서 난 말들이었다. 가슴이 넓고 발목이 짧아 눈과 진흙에 강했다. 고삐마다 은방울 대신 마른 약초 다발이 달려 있었다.

행렬 맨 앞에는 여자가 타고 있었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낯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뺨과 왼손 약지 한 마디가 없었다. 매듭을 지을 때는 끈 한쪽을 이로 물었고, 말에게 명령할 때 사람보다 낮은 목소리를 썼다.

그녀가 두 사람을 보더니 말을 멈췄다.

"백로진 설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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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46화 — 한 호흡

    연도하는 흑마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잠들었다.운설은 수레 안에서 그의 관자놀이 상처를 씻고 열을 쟀다. 머리를 세게 부딪힌 흔적은 없었으나 사흘 가까이 물과 잠을 제대로 얻지 못한 몸이었다.회색 목도리는 아이에게서 풀어 운설의 무릎 위에 놓였다.붉은 실 한 올에 마른 피가 엉겨 있었다.선우현은 수레 맞은편에서 다친 무릎을 뻗고 앉았다. 운설이 연도하의 목을 받칠 때마다 그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왔다."아프면 말해요.""누구에게 하는 말이오?"두 남자가 동시에 물었다.운설은 눈을 감았다."둘 다 내려서 걸어가게 할까요?"그 뒤로는 조용했다.흑마장에 도착하자 하란주는 연도하를 가장 따뜻한 말 장부방에 눕혔다. 사람이 드나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환자를 혼자 두지 않을 수 있는 곳이었다."혼례 전에 신부 방에 들이면 소문이 더 빨라지니까.""이미 백로진까지 갔소."연도하가 눈을 뜨지 않은 채 답했다.하란주는 물그릇을 내려놓았다."그러게 제때 답했어야지."운설은 연도하의 윗옷을 풀어 등에 든 멍을 살폈다. 돌이 스친 자리는 길게 부었으나 뼈는 성했다.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누르자 그의 등이 단단해졌다."아파요?""뒤에 남편이 보고 있어서 더 아프군.""보지 않아도 아프게 눌러 줄 수 있어요.""그건 아깝소."선우현이 문간에서 지팡이를 세웠다."환자에게 말 적게 하는 침은 없소?""그대가 먼저 맞으면 생각해 보지."연도하는 웃다가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운설은 웃음을 멈추게 하고 맥을 짚었다.열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오른손의 떨림은 오래 굶은 탓만이 아니었다. 혼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맥이 미세하게 빨라졌다."혼인하고 싶어요?"운설이 물었다.방 안이 조용해졌다.하란주는 나가지 않았다. 선우현도 문을 닫지 않았다. 누구도 남의 등을 빌려 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연도하는 천장을 보았다."좋은 거래라 생각했소.""거래 말고요.""하란주는 믿을 만한 사람이고, 흑마장에는 내 길에 필요한 말이 있소. 내 이름 하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45화 — 눈 녹은 골짜기

    선우현은 물까지 떨어지지 않았다.허리에 감아 둔 보조 밧줄이 바위 모서리에 걸렸다. 몸이 절벽에 세게 부딪히며 숨이 빠졌고, 왼쪽 무릎이 돌에 찧였다."줄을 놓지 마요!"운설이 엎드려 밧줄을 잡았다. 손바닥이 거친 삼실에 벗겨졌으나 힘을 풀지 않았다.하란주는 가까운 말의 안장을 뜯어 줄을 감았다."먹구름, 뒤로!"검은 말이 네 발로 진흙을 밀었다. 밧줄이 팽팽해지며 선우현의 어깨가 다시 절벽 위로 나타났다.그는 오른손으로 바위틈을 짚고 스스로 몸을 올렸다. 하란주와 마부 둘이 팔을 잡아당겼다.땅에 올라온 뒤에도 선우현은 밧줄부터 보았다."말뚝은 버텼소?"운설이 그의 뺨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저를 봐요."동공은 같았고 머리에서 피도 나지 않았다. 숨은 거칠었으나 가슴 통증은 없었다. 운설이 무릎을 만지자 그가 짧게 이를 물었다."부었어요. 오늘은 못 걸어요.""건너편에 환자가 스물이오.""그래서 여기서 줄을 잡으세요."선우현은 반박하려다 손바닥의 피를 보았다. 운설의 손이었다.그는 입을 다물고 자기 소매를 찢어 그녀의 손에 감았다."명 받았소."매달린 판자가 골짜기를 건너기 시작했다.초아가 가는 줄의 방향을 보고, 선우현은 아래 굵은 줄의 장력을 셌다. 하란주는 말 두 필을 번갈아 물려 사람 무게를 당겼다.운설이 첫 번째로 건넜다.발아래 흙탕물이 거칠게 뒤집혔다. 판자가 가운데에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운설은 줄을 움켜쥐지 않고 몸을 낮췄다. 손에 힘을 몰면 판자가 더 기운다는 선우현의 말을 믿었다.건너편에서 연도하가 줄을 받았다.회색 목도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왼쪽 관자놀이에는 피가 말라붙었고 오른손 떨림은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늦었소."첫말은 그것이었다."환자부터요."운설은 그를 지나쳤다.열병 난 사람들은 수레 천막 아래 누워 있었다. 물이 떨어져 입술이 갈라졌고 두 아이는 설사를 오래 해 눈이 움푹 꺼졌다. 운설은 술을 물에 타 손을 씻고, 가장 작은 아이의 입에 소금과 곡물을 달인 물을 한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44화 — 신랑 없는 밤

    하란주는 붉은 혼례 천부터 내렸다.매듭을 칼로 끊어 긴 천을 바닥에 펴고 그 위에 밧줄, 약, 말뚝을 차례로 올렸다. 조금 전까지 잔치를 알리던 비단이 구조 짐을 싸는 보자기가 되었다."길을 아는 사람은?""저입니다."팔이 부러진 기수가 대답했다.운설이 즉시 잘랐다."당신은 못 갑니다. 뼈가 어긋났어요. 길은 입으로 알려 주세요."기수는 이를 악물고 해빙골 지도를 그렸다. 숯으로 그은 골짜기는 좁고 길었다. 겨울에는 얼음 위로 수레가 다녔으나 봄이면 물이 바닥을 파먹었다.선우현이 지도 곁에 앉았다."무너진 곳의 양쪽 높이는.""서쪽이 두 길쯤 높습니다.""나무는.""동쪽에 늙은 소나무 셋. 서쪽은 바위뿐입니다.""물살은 어디로 휘지?"기수가 손가락으로 굽은 선을 그었다.선우현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약 수레 수, 건널 수 있는 사람, 누워 있는 사람, 마지막 불빛이 보인 자리. 검을 쥐었을 때 적의 발과 호흡을 묻던 버릇이 이제는 골짜기의 무게를 쟀다.하란주가 붉은 보자기를 묶으며 말했다."말 여덟을 데려가겠소. 줄을 매고 건너면 돼.""말이 먼저 다가가면 둑이 더 무너지오.""그럼 사람이 줄을 어떻게 걸지?"선우현은 지도의 소나무를 짚었다."화살에 가는 줄을 매달아 건넌 뒤 굵은 줄을 끌어오시오. 두 줄을 위아래로 걸고, 수레 판자를 매달아 사람을 옮기면 되오.""활을 쏠 사람이 없소.""흑마장에 말 탄 사람만 있지는 않을 텐데."하란주는 마당을 돌아보았다.열여섯쯤 된 소녀 하나가 손을 들었다. 오른쪽 눈이 흐렸으나 왼눈은 매가 먹이를 보듯 곧았다. 새를 쫓는 활을 쏘는 아이라고 했다."이름은?""초아입니다.""골짜기 건너 소나무를 맞힐 수 있겠나?""새보다 크면요."선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싸움은 끝났군."출발은 한 시진 뒤였다.운설은 해독약보다 마른 천과 나무 부목을 더 챙겼다. 열병 환자 스물에 물을 건너지 못한 밤이 더해졌다면 약보다 체온을 먼저 살펴야 했다.하란주는 망설이지 않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43화 — 신부가 고른 값

    흑마장은 북관 밖 돌등마을에 있었다.낮은 구릉마다 검은 말이 풀을 뜯었다. 봄인데도 골짜기 그늘에는 눈이 남았고, 녹은 물이 돌담 아래로 쉼 없이 흘렀다.장문 위에는 붉은 천이 걸려 있었다.혼례를 알리는 빛이었다. 그러나 마당에서는 잔칫국보다 말죽을 먼저 끓였다. 아이들은 비단 매듭을 묶다가도 새끼 말 울음이 나면 외양간으로 달려갔다.하란주는 도착하자마자 치마를 걷어 올리고 난산한 암말 곁에 앉았다."새끼 발이 하나만 보여."운설이 팔을 씻었다."앞다리가 접혔어요. 어미를 눕히지 말고 잡아 주세요."선우현과 마부 셋이 암말의 몸을 받쳤다. 하란주는 말 머리를 품에 안고 사람 달래듯 귓속말을 했다. 왼손 약지가 없어도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운설이 접힌 다리를 바로잡자 젖은 망아지가 짚 위로 미끄러져 나왔다.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하란주가 망아지의 코를 거칠게 문질렀다. 작은 몸이 떨리더니 첫 숨을 토했다.마당 사람들이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이 아이도 장부에 이름부터 올리겠군."선우현이 말했다.하란주는 새끼의 이마를 보았다. 눈처럼 흰 점이 하나 있었다."첫눈이라 하지."그녀는 이름을 마부에게 적게 한 뒤에야 손의 피를 씻었다.운설은 그 모습을 보고 혼례를 묻기가 더 어려워졌다.저녁, 하란주는 두 사람을 말 장부방으로 불렀다. 벽에는 죽은 말의 편자와 죽은 사람의 이름패가 같은 높이로 걸려 있었다.그녀는 가장 오래된 이름패 아래 등잔을 놓았다."내 남편이오. 세 해 전 눈사태로 죽었지. 아이는 없소."북관 밖 말장은 남편이 죽고 삼 년 안에 새 가장을 세우지 않으면 시가의 큰집으로 돌아가는 관습이 있었다. 하란주가 열여섯부터 말을 받았고 남편보다 오래 장을 지켰어도 관문 장부에는 여전히 마씨 집안의 과부로 적혔다."다음 보름이면 삼 년이 끝나오. 큰집 숙부는 말을 남쪽 군영에 팔 생각이오.""관습 하나로 사람과 말을 전부 가져갑니까?"운설이 물었다."관습은 대개 가져갈 것이 있는 사람 입에서 법이 되지."하란주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42화 — 붉은 고삐

    붉은 고삐의 말들은 해 뜨기 전에 길을 나섰다.선우현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으나 아침 죽을 반 그릇 남겼다. 운설이 무릎에 붙일 약포를 데우는 동안에는 벌써 말안장을 두 번 고쳤다."축하하러 가는 사람이 너무 급하네요.""좋은 자리는 먼저 가야 잡소.""혼례상 바로 앞이요?""신랑과 마주 보는 자리."운설은 약포를 조금 세게 눌렀다. 선우현이 눈썹을 찌푸렸으나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벌금이 또 붙을까 두려운 얼굴이었다.정오 무렵 붉은 행렬을 따라잡았다.검은 말 스무 필은 북관의 흑마장에서 난 말들이었다. 가슴이 넓고 발목이 짧아 눈과 진흙에 강했다. 고삐마다 은방울 대신 마른 약초 다발이 달려 있었다.행렬 맨 앞에는 여자가 타고 있었다.서른을 조금 넘긴 낯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뺨과 왼손 약지 한 마디가 없었다. 매듭을 지을 때는 끈 한쪽을 이로 물었고, 말에게 명령할 때 사람보다 낮은 목소리를 썼다.그녀가 두 사람을 보더니 말을 멈췄다."백로진 설야 의원?"운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의 시선이 선우현의 빈 허리와 굳은 왼쪽 무릎을 차례로 훑었다."그러면 이쪽이 죽었다 살아난 검신이겠군.""죽은 쪽은 검신뿐이오.""말은 소문보다 성하네."여자는 말에서 내려 오른손을 내밀었다."흑마장주 하란주요."손바닥에는 고삐가 쓸고 간 굳은살이 겹겹이었다. 운설이 손을 잡자 하란주는 맥을 내주듯 손목을 뒤집었다.잘린 약지는 열아홉 겨울에 망아지를 눈구덩이에서 꺼내다 얼어 떨어졌다고 했다. 하란주는 그 일을 자랑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살린 말이 붉은 행렬 맨 앞에서 걷는다고 턱으로 가리켰다."연도하가 의원 이야기를 많이 했소. 눈보다 찬 손으로 사람을 살린다고.""제 이야기를요?""한 번 시작하면 길 셋을 갈 동안 하더군."선우현이 마른기침을 했다."혼례 이야기도 그렇게 길게 했소?"하란주의 입가가 비스듬히 올라갔다."그건 입을 다물었지."그들은 길가 버드나무 아래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 하란주는 붉은 비단 하나를 풀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41화 — 축하하러 가는 길

    선우현은 축하 선물부터 골랐다.붉은 비단도 은잔도 아니었다. 약방 외상패를 깎고 남은 눈잣나무 조각이었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만 하게 다듬어 한쪽에는 혼인, 다른 쪽에는 두 푼이라 새겼다."그걸 줄 거예요?""빚진 자가 혼인하면 채권자는 새댁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소.""누가 채권자인데요.""우리 약방."대답은 태연했으나 칼끝이 나무를 너무 깊이 팠다. 혼 자의 왼쪽 획이 갈라졌다.운설은 그것을 보지 않은 척 약재 봉지를 쌌다. 보름 치 감초와 당귀를 미리 나누고, 건너 골목 노의원에게 열이 심한 환자만 부탁했다. 사흘 안에 돌아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북쪽 일은 늘 약속보다 길었다.다음 날 새벽 두 사람은 백로진을 나섰다.말 한 필과 작은 수레 하나였다. 선우현은 오래 달리면 왼쪽 무릎이 굳었고, 운설은 그가 괜찮다는 말을 할 때마다 쉬게 했다. 첫날에만 벌금이 여섯 푼 쌓였다."돌아오면 약방을 내게 넘길 셈이오?""당신 몫에서 깎을 거예요.""우리 약방이라더니.""아플 때만 제 약방입니다."선우현이 웃었다. 웃음은 금세 바람에 식었다.해가 기울 무렵 북관으로 가는 옛 봉수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오른쪽은 말이 다니는 넓은 길, 왼쪽은 눈 녹은 물이 패 놓은 지름길이었다.길가 복숭아꽃은 백로진보다 늦게 피어 꽃잎 끝이 아직 단단했다. 북쪽으로 갈수록 봄이 거꾸로 물러나는 듯했다. 운설은 소매 안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기다리던 사람에게 가까워지는지, 떠난 사람에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선우현은 넓은 길로 고삐를 돌렸다."급하지 않아요?""그대가 말해 보시오.""뭘요.""혼례 전에 닿아야 하는지, 뒤에 닿아도 되는지."운설은 말갈기 사이에 엉긴 진흙을 보았다. 묻지 않으면 길이 대신 답할 것 같았다. 빨리 가면 막으러 가는 사람이 되고, 천천히 가면 축하하러 가는 사람이 된다."직접 듣고 싶어요.""무엇을.""그 사람이 정말 고른 건지. 왜 편지 한 장 없이 그런 걸 골랐는지."선우현의 손이 고삐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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