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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Author: 서은월
“언니, 이런 하찮은 일로 어찌 원판 대인까지 번거롭게 하겠어요? 더구나 영국공부까지 소란스럽게 할 순 없지요.”

그러나 맹시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송하윤의 손을 잡고 눈 가득 진심 어린 빛을 담았다.

“무슨 말을 그리 하는 것이냐? 종현과 나는 곧 혼례를 올릴 사이다. 두 집안은 곧 한 식구가 되어 앞으로 한 지붕 아래 살게 될 텐데, 네 일은 곧 내 일이 아니겠느냐?”

그녀는 ‘종현’과 ‘혼례’라는 말을 또렷이, 의도적으로 힘주어 말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늘처럼 송하윤의 가슴을 찔렀다.

“게다가 태의를 모셔 사실을 분명히 가리지 않는다면 우리 집 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겠니? 그 누명을 나는 감당할 수 없다. 너 역시 내가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걸 바라진 않겠지.”

말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이치도 갖추었고 정 또한 잃지 않았다.

막는다면 곧 찔리는 것이고 허락한다면 태의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송하윤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하며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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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747화

    “온돌방 밖 뜰에 숯불을 피워 두었단다. 미리 재워 둔 양고기도 준비해 두었고. 우리 나가서 고기 구워 먹을까?”“좋아요!”먹을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은 금세 방금 전의 일은 잊은 채 환성을 지르며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숯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양고기를 화로 위에 올리자 곧 지글지글 기름튀는 소리가 났다. 짙은 고기 향에 향신료 냄새가 섞여 서늘한 공기 속으로 천천히 퍼져나갔다. 아이들의 웃음과 장난 소리가 맑고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들을 바라보는 맹시은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살기가 미친 듯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는 하녀들과 몇몇 유모들에게 아이들을 잘 돌보라고 일러 두고 몸을 돌려 조용히 그 소란스러운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사람 하나 없는 회랑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걸려 있던 온화한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직 차갑게 굳은 긴장만이 남아있었다. 소휘의 것이 분명한 그 옥패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꽉 쥐어져 있었다. 단단한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어 아프게 눌렀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심장은 북을 두드리듯 거칠게 뛰었다. 맹시은은 걸음을 재촉해 인적 드문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 이르자마자 곽범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아가씨.”맹시은은 손을 펼쳐 그 옥패를 곽범 앞에 내밀었다.“이 물건을 알아보겠느냐?”곽범은 한 번 보자마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이건… 성왕 전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옥패입니다. 몇 번 직접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절대 틀릴 리 없습니다.”역시. 맹시은의 마음이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손을 다시 꽉 움켜쥐었다. 옥패는 손바닥 안에서 뜨겁게 달군 낙인처럼 느껴졌다. 심장 끝까지 타들어 가는 듯했다.“곽범.”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아주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지금 당장 경사아문에 가. 위심에게 전할 말이 있다.”곽범은 몸을 숙여 조용히 기다렸다. 맹시은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번왕이 경성에 들어왔다. 경성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746화

    “어떤 귀한 분이 길에서 저를 붙잡고 금 한 닢을 주면서 상점 점원인 척하고서라도 반드시 물건을 전하고 그 말을 그대로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망토로 머리를 깊이 가리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문밖 쪽을 향해 아주 빠르게 스쳐 갔다. 거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지극히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맹시은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녀의 마음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곁에 서 있던 소림이 문득 “어?”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그는 상자 가득한 보석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옥패 하나를 집어 들었다. 기룡 무늬가 새겨진 양지백옥 패였다. 옥빛은 온화하고 윤기가 흐르며 조각 또한 정교해 단번에 범상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연아와 다른 두 소녀도 곧장 그쪽으로 몰려들었다.“일곱 째 전하, 그 옥패가 특별한 건가요?”왕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소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옥패를 앞뒤로 돌려 보며 살피고 있었다. 이마는 살짝 찌푸려졌고 눈빛에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생각과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이상하네…”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이 옥패, 왜 이렇게 셋째 형님의 것과 닮았지?”그는 고개를 들어 맹시은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에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 기색이 담겨있었다. 그러자 맹시은의 심장이 순간 움찔했다.“일곱 째 전하, 성왕 전하께서도 같은 옥패를 갖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응.”소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점점 더 확신에 가까워졌다.“셋째 형님은 어릴 때부터 이 옥패를 늘 몸에 지니고 다녔으니까. 절대 틀릴 리 없어. 이 무늬랑 매듭 묶는 방식까지 똑같거든… 설마 셋째 형님께서 경성에 돌아오신 건가?”그 순간, 맹시은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딸의 생일인데, 아비 된 사람이 어찌 빠질 수 있겠느냐.”그 말이 소휘의 음침하고 오만한 얼굴과 순식간에 겹쳐졌다. 정말로 그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역겨움과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745화

    맹시은이 딸의 머리를 빗어 주던 손이 잠시 멈췄다. 연아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연아.”맹시은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엄해졌다.“잊었느냐? 지난번에도 그 아이 때문에 너희 둘이…”연아는 곧장 의자에서 몸을 돌리더니 맹시은의 팔을 끌어안고 작은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어머니,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 그래도 일곱 째 전하는 제가 경성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예요. 국자감에서 어떤 애들이 저보고 아버지가 없다고 놀렸을 때도 전하께서 나서서 제편을 들어 줬어요. 지난번에는 사고도 치고 많이 놀랐지만 그래도 제 친구잖아요. 제 생일인데 친구를 초대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아이의 눈빛은 맑았고 또 완고했다. 그 작은 세상 속에서는 모든 일이 단순했다. 친구라면 당연히 초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딸의 맑은 눈을 마주한 순간 맹시은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권모술수니, 이해득실이니 하는 계산은 한순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겠다.”생일 잔칫날이 되자 진국공부는 위아래로 새롭게 정돈되었다. 며칠간 드리워져 있던 음울한 기운도 함께 씻겨 내려간 듯했다. 조 아가씨와 왕 아가씨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요즘 경성에서 가장 유행하는 비단 꽃과 향낭을 연아에게 선물로 가져왔다. 세 소녀가 한데 모이자 금세 재잘거리는 소리와 맑은 웃음이 꽃처럼 터졌다. 잔칫상이 차려질 즈음이 되어서야 일곱 째 전하 소림이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시간을 딱 맞춰 온 듯했다. 맹시은은 그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지난번 화약 사건 이후로 한 달은 넘게 그 아이를 보지 못했지만 고작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이 아이는 꽤나 많이 달라진 듯했다. 키도 한 뼘은 자란 듯 훌쩍해졌고 눈매에서는 장난기와 철없음이 조금 걷혀 차분한 기색이 더해져 있었다. 그는 보람빛 비단 도포를 입고 있었다.“맹 이모.”맑은 그 목소리에는 자만도, 위축도 없었다. 친왕인 그에게는 본래 예를 갖출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744화

    내우외환이었다. 그야말로 나라의 기둥마저 흔들리는 듯한 위태로운 때였다. 하연은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곁에 놓인 작은 탁자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저 썩은 쥐새끼들! 나라의 좀벌레 같은 것들! 변방의 장수들은 얼음 같은 눈밭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며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저 자들은 경성에 틀어박혀서 자기 권세와 부귀만 챙기려고 온갖 잔꾀로 물을 흐리고 판을 뒤흔들고 있어! 저런 자들은 전부 묶어다 변방으로 보내 버려야 해! 전마 발굽에 짓밟히고 휘어진 칼날이 목에 들이대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직접 겪어 보게 해야지! 저들이 입만 열면 쉽게 얻을 수 있다 말하는 이 강산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뼈 위에 세워졌는지 똑똑히 보게 해야 해!”말을 할수록 그녀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고 눈가까지 붉어졌다. 맹시은은 가만히 눈썹을 모았다.“하연 아가씨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저도 압니다. 헌데 소휘는 일곱 째 전하 소림과 마찬가지로 폐하의 친동생입니다. 그가 봉지에서 몰래 병력을 모았을 때 폐하께서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하연은 순간 말을 잃었다. 얼굴에 가득했던 분노가 서서히 힘 빠진 기색으로 변해 갔다. 그랬다. 황제는 그저 칙서를 내려 꾸짖었을 뿐이었다. 크게 문제 삼는 듯 보였지만, 결국 가볍게 넘겨 버렸다. 심지어 그의 번왕 작위조차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맹시은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절제되어 있었다.“황실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은 전부 추측일 뿐이에요. 아무 근거 없이 왕야를 모함하면 어떤 죄인지 알고 있습니까?”하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구족이 멸문되는 대죄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에 숨조차 막힐 것 같았다. 분명 눈앞의 상대가 늑대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온돌방 안은 다시 깊은 침묵에 잠겼다.한참 뒤. 맹시은은 몸을 돌려 책상 앞으로 걸어가 직접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743화

    맹시은의 손끝은 손바닥의 여린 살을 거의 파고들 지경이었다. 따끔한 통증이 스쳤지만 가슴속으로 번지는 싸늘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흔들리면 안 됐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뼛속까지 스며들던 냉기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 그리고 마차 발을 살짝 들어 올려 눈보라 속에서 말을 타고 따르던 곽범에게 눈짓을 보냈다. 맹시은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곽범, 따라가. 너무 가까이 붙진 말고 멀찍이서만 쫓아.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만 보면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몸을 먼저 챙겨.”“예.”눈보라 사이로 들려온 곽범의 대답은 낮고도 단단했다. 이내 그는 새하얀 설경 속에 사라졌다. 마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하연은 맹시은의 침착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급하게 뛰던 제 심장도 이상하리만치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시은, 너는… 소휘가 뭘 하려는 것 같아? 번왕이면서도 조서도 없이 멋대로 경성으로 돌아오다니, 이건 목이 달아나도 할 말 없는 대죄잖아.”맹시은의 시선은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송이 위에 머물렀다. 고요히 가라앉은 눈빛은 오래된 우물처럼 깊었다.“돌아올 엄두를 냈다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무얼 하려는지는…”맹시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입가에는 서늘한 기색이 스쳤다.“속셈이야 뻔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이에요."백마사의 향불은 과연 성했다. 이토록 눈이 퍼붓는 날인데도 오가는 참배객들의 발길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맹시은과 하연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움직였다. 두 사람은 정성스레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멀리 변경에 있는 이들을 위해 장명등을 밝혔다. 주황빛 불꽃은 낡은 청동 등잔 안에서 말없이 잔잔히 흔들렸다. 가늘게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리움과 기도를 실어 올리는 듯했다. 부디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부디 그들이 승리하여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다. 백마사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곽범은 아직 돌아오지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742화

    그녀의 목소리에 알아차리기 힘든 떨림이 묻어 있자 맹시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자수틀을 아설에게 건넸다.“설아, 연아랑 복동이 데리고 뒤에 가서 과자 좀 먹여.”“예, 아가씨.”아설은 눈치를 채고는 재빨리 복동이를 안아 들고 연아의 손을 잡아 밖으로 물러났다. 따뜻한 온돌방 안에는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 맹시은은 직접 하연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차가운 손에 쥐여 주었다.“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무슨 일로 뛰어왔습니까?”하연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지만 손끝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입을 열려는 순간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나… 아버지한테서 편지를 받았어.”맹시은의 심장이 단숨에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하연의 아버지 하훈은 이번 원군의 총사령이었다.“편지에 뭐라고 하셨습니까?”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차분했다. 하연은 온 힘을 다해 말을 꺼내려는 듯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옥문에서… 큰 승리를 거뒀대. 우륵 연합군은 완전히 무너졌고, 새로 뽑힌 맹주 불찰친왕도 중상을 입고 도망쳤다고 했어.”시은의 팽팽하던 신경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승전이라면 언제나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하연의 표정을 보자마자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다음은요?”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하연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헌데 우륵의 근본 전력은 아직 남아 있어. 게다가 그동안 눈치만 보던 여러 동맹 세력들이 이번 패배에 분노해서 오히려 병력을 더 보냈대. 지금 서북대영은 거의 우륵 전역의 병력에게 삼면에서 포위된 상황이야. 앞뒤가 다 적이란 말이야. 아버지 편지에… 큰오라버니가 경기대영의 병력을 이끌고 밤낮없이 서북으로 달려갔다고 적혀 있었어.”그 말을 듣는 순간 맹시은의 얼굴도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하 씨 가문의 장자 하주까지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전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편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58화

    산속은 늘 시원했고 매일 신선한 과일을 먹을 수 있었으며 야생에서 잡은 고기가 거의 매 끼니 식탁에 올라왔다. 연아도 마음껏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람은 이곳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설 역시 도성만큼 편리하진 않아도 훨씬 편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더 머물면 산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 뻔했다. 매일 귀하게 내어주는 것들은 원래 장날에 팔아 생계를 보탤 것들이다. 아람이 하산하겠다고 말하자 아설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이렇게 빨리요…?”아람은 그녀 눈에 스친 아쉬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짐 상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70화

    오 관사는 돈을 받고 나서야 마음속에 얹혀 있던 큰 돌이 굴러떨어지는 듯 안도했다.“저희는 인원이 부족해서 모든 곡식을 실어 오려면 사흘은 걸릴 겁니다. 제가 직접 마차에 붙어서 곡식 출고에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상대편 관사는 별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관사는 이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돌아섰다.“문희 아가씨,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돌아가면 형제들에게 한잔 사겠습니다.”문희는 뒤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넘겨준 곡식을 확인하자 오 관사는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곧장 돌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68화

    아설은 여기까지 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는 밖에 나가 장사하는 건 전부 남자 몫이고, 여자는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아이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남녀가 따로 있나요? 이런 일은 저도 할 수 있는데 괜히 주눅 들 필요 없더라고요!”아람은 반짝이는 아설을 보며 말했다.“아설아, 너 위심에게 시집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그냥 호위만 시키고 언니가 더 좋은 신랑감을 찾아줄게.”아설의 뺨이 단숨에 붉어졌다.“언니 또 그런 말…! 저, 전 연아 학당 알아보러 다녀올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나가 있었다.다섯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61화

    아설이 떠난 지 여드렛째였다. 아람은 적막함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연아 또한 매일같이 물었다.“아설 언니는 왜 아직도 안 와요?”수차례 이모라 부르라고 고쳐줬으나 설강 언니에서 아설 언니로 굳어진 탓에 바꾸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아람도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두던 참이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게 두었다. 그때, 문희가 갓 지은 옷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아람 아가씨, 들으셨어요? 성문 앞에 방(榜:고려ㆍ조선 시대의 과거 합격자 명부)이 내걸렸다 합니다. 오늘 과거 급제자 명단이 나왔어요.”문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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