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1 - Chapter 10

100 Chapters

제1화

강시아는 다시 태어났다.방금 전 까지만 해도 물에 빠져 숨이 막힐 것 같은 질식감이 온몸을 덮쳤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보드라운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는 밤 과자가 먹고 싶어요.”작디작은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쥐고 흔들었다. 강시아는 눈물이 뿌옇게 번져 생기 가득한 딸아이를 단번에 끌어안았다.다행이다... 하늘이 다시 기회를 주었다. 아이는 아직 멀쩡히 살아 있다.강시아는 초주 사람이며, 어린 나이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고 열 네 살 되던 해 아버지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큰오라버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조차 못했기에 홀로 막막한 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단 열 냥에 자신을 국공부에 노비로 팔아 버렸다.그러다 열 여덟 살이 되던 해, 세자 주종현이 술김에 저지른 실수로 인해, 그녀는 딸아이 연아를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강시아는 세자의 유일한 첩실이 되었고, 세자는 직접 그녀에게 처소를 내어주며 하인까지 붙여 주었다.강시아는 스스로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하윤이 국공부 정실부인으로 들어올 때, 자신이 그녀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첫 대면 때, 송하윤은 일부러 연아를 위해 과자를 챙겨 오며, 자신의 본가로 불러들여 놀게 했다. 그리고 아이를 돌려보낼 때마다 새 옷과 작은 장난감을 손에 쥐여주며 정성을 다해 돌봐 주었다.그러다 하루는 큰 마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녀는 정실의 손에 맡겨야 앞길이 트인다고 말이다. 그 말에 강시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자신에게는 딸의 앞날을 열어 줄 힘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끝내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그런데 겨우 1년이 지났을 무렵, 딸의 몸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이상한 낌새에 그녀는 연아에게 몰래 물어보았는데, 송하윤이 잘 대해 준다 말하면서 눈동자 속에는 감춰지지 않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딸을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세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의 처소에 들이닥친 것은 정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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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주종현은 연아 곁에 앉아 긴 다리로 좁디좁은 마차 통로를 가로막았다.“두어 마디만 나누었더니, 다행히 마차가 멀리 가지 않았더군. 그래서 곧장 따라잡았다.”강시아는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말이란 단어가 들리자마자 연아가 금세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큰 말! 연아는 말을 타고 싶습니다! 하준 오라버니는 안 태워줬으니까 아버지께서 사주세요!”목하준은 이미 출가한 주다언의 아들이었기에, 주종현은 딸아이의 작은 코끝을 가볍게 긁었다.“아직은 너무 어리다. 두어 해만 더 크면 이 아버지가 친히 가르쳐 주마.”그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 던졌다. 강시아의 품에 툭 떨어진 것은 묵녹색 주머니. 그것은 묵직하게 부풀어 있었고 안에는 은전이 가득 담겨 있었다.“서방님, 이건…?”그녀는 모른 체하며 되물었다.“세상 사람들한테 내가 첩 하나 건사 못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강시아는 주머니를 움켜쥐고 싱긋 웃었다.“어찌 그리 말씀하시나요? 저는 입고 먹는 데 모자람이 없습니다.”부족한 것이라면 도망칠 여비였다.덕흥루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 모두 손에 과자 한 봉을 들고나오는 듯했다. 연아는 작은 고양이처럼 창틀을 잡고 발돋움해 목을 길게 빼며 내다보았다. 그런 딸아이의 모습에 언제나 차갑던 주종현의 눈빛마저 얕은 웃음으로 물들었다.그때, 시종이 두 개의 음식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주종현은 그중 하나를 받아 들며 말했다.“나머지는 온청에게 돌려주거라.”그 말에 강시아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그녀는 국공부에 들어온 지 오래 되었지만 온청이 과자를 즐긴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덕흥루의 단골은 송하윤이었으니 말이다. 이 상자는 그녀를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어머니, 드시지요.”딸아이는 방금 베어 문 흔적이 남아 있는 과자 조각을 내밀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반달처럼 휘어진 눈매. 그녀의 즐거움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강시아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한 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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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연아는 두 손으로 입을 꽉 막고 고개를 연신 흔들며 다시 외쳤다.“아버지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강시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서방님, 오늘 연아가 이렇게 즐거워하는데… 조금만 더 놀게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주종현은 단호하게 잘랐다.“안 된다.”그렇게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다시 망성각으로 돌아왔다. 불꽃놀이가 이미 끝나 인파도 한결 줄어든 뒤였다. 마부는 마차 곁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마차에는 이미 누군가 타고 있었다.안에서는 주온청은 송하윤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오라버니 뒤에 선 여인을 보자마자 날카롭게 꾸짖었다.“감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함부로 돌아다니다니! 연아라도 잃어버렸으면 당신 같은 천한 목숨이 열이라도 갚을 수 있었겠습니까!”강시아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연아가 이만큼 자랄 때까지 그녀에게서 아이의 안부를 걱정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었던가?송하윤은 창백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걸고 나직이 말했다.“나는 괜찮다. 무엇보다 연아의 안전이 중요하지.”주온청은 목소리를 높였다.“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부터 몸이 약한데! 방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적 때문에 놀라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라버니께서는 굳이 저자들을 찾으러 나가시지 않으셨습니까.”송하윤은 고개를 숙이며 그 손등을 살짝 다독였다.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고,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웠다.“그리 말하지 말거라. 종현 오라버니 역시 강 마님과 아이의 안전이 걱정되어 그러신 것이니.”주종현은 마차 안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을 향해 물었다.“그대의 마차는 어디 있는 겐가?”주온청이 먼저 마차에서 나오며 대답했다.“오라버니, 하윤 언니께서 놀라셨습니다. 송부는 또 저 남쪽에 있으니 이 늦은 시각에 가기 힘들지요.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직접 모셔다 드리세요.”말을 마치며 그녀는 주종현의 품에 안겨있는 연아를 덥석 받아 간 후 강시아의 품에 돌려주었다.“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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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태후 마마의 생신이 머지않았는데, 온 경성이 다 아는 일을 제가 어찌 몰랐겠습니까? 며칠을 애써 궁리하다가 그럴듯한 계책을 하나 떠올리긴 했으나…”고 유모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마님, 부디 거리낌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큰 마님께서도 이번 생신은 지극히 중대한 날이라 하셨습니다!”“다만, 제법 많은 은전이 들어야 하니… 감히 입을 열었다가 괜한 불쾌만 사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을 뿐입니다.”고 유모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숨김없이 말씀드리자면, 큰 마님께서 이미 분명하게 이르셨습니다. 돈 쓰는 건 두렵지 않으니 남들과 똑같아서는 안 된다고요. 그리고 만약 국공부에서 내지 못한다면 큰 마님께서 사비라도 내시겠답니다. 마님은 그저 큰 마님께 아뢰기만 하시면 됩니다.”강시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럼 도안을 챙겨 들고 곧장 유모와 함께 가 보겠습니다.”그리고 안쪽 방에 있는 명옥을 돌아보며 일렀다.“명옥아, 내가 고 유모와 함께 다녀올 테니, 부디 연아를 잘 살펴주거라.”강시아는 서둘러 완성된 화고를 품에 안고 고 유모를 따라 뜰을 나섰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설 때 즈음, 뒤편 자기 뜰 쪽으로 시선을 흘렸는데, 강시아의 입가에는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번져 있었다.큰 마님의 처소는 집안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어 작년에도 새로 단장한 곳이었다. 그곳은 강시아의 손바닥만 한 뜰과는 감히 견줄 바가 못 되었다.작은 정자 옆에서는 배나무 한 그루가 한창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강시아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바라보자 고 유모가 설명을 덧붙였다.“저것은 작년에 세자께서 옮겨오게 하신 나무랍니다. 두어 해는 지나야 뿌리를 붙잡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금세 꽃을 피웠지요.”강시아가 담담히 웃으며 응했다.“제 작은 뜰에도 심어 두었으나 아쉽게도 뿌리내리진 못했습니다.”그 나무 또한 주종현이 손수 사람을 시켜 심게 한 것이었다. 큰 마님은 마침 작은 불당에서 경을 읊고 있었고, 강시아는 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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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주종현이 뒤를 돌아보며 담담히 말했다.“신경 쓰지 말게.”송하윤은 가볍게 웃으며,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쨌든 강 마님은 오라버니를 몇 해나 모셔왔는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닙니까?”그러자 주종현의 머릿속에 순간 상사절 그날 밤, 달빛 아래 겸손했던 그녀의 자태가 스쳐 지나갔다.“그 아이는 그런 몰지각한 여인이 아니네.”송하윤은 그가 다른 여인을 두둔하는 말을 내뱉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스산하게 저렸다. 그러나 그 불쾌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정실은 자신이 될 터, 게다가 그녀는 송 가의 적녀가 아닌가? 돈 주고 사들인 하녀는 기껏해야 잠시 기분을 달래는 존재일 뿐, 굳이 마음을 쓸 필요도 없었다.주종현은 송하윤을 송부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송이당이 문을 나서려다 마침 눈앞에 누이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에서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대낮에 길바닥에서 부둥켜안고, 체통이란 게 있느냐!”송하윤은 턱을 치켜들고 거만히 말했다.“주 가와 송 가는 이미 혼담을 나눈 사이입니다. 누가 감히 입방아를 찧겠습니까?”송이당은 누이가 버릇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을 주종현에게 돌렸다.“제 누이가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주 세자마저 이 도리를 모르실 리는 없을 텐데요?”주종현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사정이 급박했습니다.”“오라버니, 공무가 있지 않으십니까? 어서 가 보셔야지요!”그가 또다시 입을 열기 전에 송하윤은 억지로 그를 마차에 밀어 넣었다.주종현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내 너와 함께 가서 마님을 뵙겠네.”“필요 없습니다!”송하윤은 손수건을 움켜쥐고 이미 멀리 사라져 가는 마차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오라버니께서 이미 궁에 들어가신 걸 보니 아마 어머니께서도 무사하실 겁니다. 오늘 집까지 바려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오라버니께서 온청을 데리고 오십시오. 함께 차를 마시며 꽃을 감상합시다.”송하윤이 황급히 집 안으로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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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시아는 시큰거리는 눈가를 비비며 정성껏 수놓은 짐승의 머리에 마지막 바늘을 꿰맸다. 그 모습에 설강은 감탄을 내뱉었다.“정말 아름답사옵니다!”창밖에서 비추는 햇살이 자수 위로 쏟아지자 자수의 결 사이로 은은히 금빛이 번져 나왔다.“어머, 금빛이 드러나옵니다!”그 말에 강시아는 금실 한 올을 들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수놓을 때 금실을 조금 섞어 넣었다. 혹여 어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보니 의외로 참 근사하구나.”설강은 진심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마님의 솜씨는 궁궐의 수녀들마저 감히 따르지 못할 것 같사옵니다.”강시아는 소리 없이 웃으며 답했다.“내 바느질은 본디 궁중에서 배운 상궁께서 일러 준 것이니. 네가 원한다면 이번 생신 예물이 끝난 뒤에 네게도 작은 배저고리를 하나 수놓아 주마.”설강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마님, 참으로 부끄러운 말씀을…”강시아는 더는 놀리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금실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저께 다녀온 그 자수방에 다시 가서 사 오너라.”“예.”설강은 문가에 이르렀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고 유모에게 들러 이 사실을 전하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장소를 바꾸자. 내가 직접 같이 가마.”설강이 작게 중얼거렸다.“강 마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고 유모가 눈을 부릅떴다.“겨우 며칠 지냈다고 벌써 믿음이 생긴 것이냐?”설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며칠을 함께 지내며 그녀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강시아는 새벽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하루 종일 곁방에 틀어박혀 수를 놓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딸아이의 글공부까지 봐주었다. 심지어는 말 한마디도 곱게 하였고, 아이 또한 어찌나 예의 바른지. 집안의 가장 어린 일곱 째 아가씨도 연아보다 겨우 두 살 많을 뿐인데 제멋대로 굴어 정 씨 댁의 뜰에서는 하녀들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고 유모는 설강을 데리고 자수방 두어 곳을 더 들렀다. 하나 놀랍게도 금실 값은 강시아가 다니는 그곳보다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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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강시아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녀도 한때 세자의 침소에 오르고 아이를 품음으로써 겨우 첩이 된 게 아니었나?주온청이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주은혜가 억지로 팔을 끌며 나섰다.“언니, 어서 갑시다! 언니가 끼어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그들 자매는 모두 서녀였다. 셋째가 송하윤을 두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실부인의 눈 밖에 났는데 이제 또 명옥의 일까지 거든다면...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들의 혼사도 정실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주종현 또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인파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강시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손을 높이 들어 명옥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나는 너를 자매로 여겼다. 항상 너를 생각했었는데 감히 이런 짓이나 저지르다니! 나는 속여도 좋다. 헌데 너를 좋아하는 연아에게는 부끄럽지도 않으냐!”명옥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게 정말 예전의 겁 많고 소심하던 강시아란 말인가.강시아는 곧장 무릎을 꿇어 주종현에게 애절히 호소했다.“명옥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그녀가 첩실을 섬긴 지난 삼사년의 정을 생각하시어 한 번만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그러나 주종현의 눈에는 오히려 더 큰 분노가 치솟았다.“네가 나더러 그녀를 살려 달라고?”“그렇습니다.”강시아는 곧장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눈가가 젖으며 눈물을 흘렸다. “명옥은 본디 작은 마님께서 직접 뽑아 제 곁에 붙인 아이입니다. 저를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억울했을 터인데…”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명옥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시아를 밀쳐 넘어뜨렸다.“네가 뭔데! 그런 가식적인 말은 필요 없다!”강시아는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 그녀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명옥은 이를 악물고 독기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네가 뭐라고! 고작 세탁방에서 일했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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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송하윤은 강시아의 손에 들린 자수를 바라보았다. 정교하게 수놓인 서수의 머리는 마치 금방이라도 숨을 내쉴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어찌 이런 일이...강시아는 자수를 큰 마님께 받쳐 들며 공손히 말했다.“큰 마님, 이는 태후 마마의 수연에 올릴 예물입니다.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어 이와 같은 서수를 수놓았습니다.”이어 그녀가 조심스레 설명을 덧붙였다.“어제, 제 곁에서 시중을 들던 명옥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첩은 차마 그 아이가 목숨을 잃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대신 청을 올렸는데 도리어 그녀에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서방님께서는 제 상처가 연아를 놀라게 할까 염려하시어 잠시 뜰에 머물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그녀는 말을 이으며 얼굴을 붉혔다.“첩이 달거리 중이라 서방님께서는 결코… 그런 짓을 한 적은 없습니다.”큰 마님의 안색이 순간 굳어졌다. 그러자 고 유모가 급히 말을 받았다.“다 뜰 안의 계집아이들이 입을 함부로 놀린 것이옵니다. 큰 마님께서 하도 인자하셔서 제지하지 않아 그런 것이지요.”그러고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아마 송 아가씨와 강 마님, 두 분 모두 백마사에서 같은 서수를 보셨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나란히 서수헌도를 그리신 것이지요.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태후 마마께서도 반드시 이 수를 총애하실 겁니다!”큰 마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섬세히 놓인 서수의 바늘땀을 매만졌다.“저 입방정들을 모조리 쫓아내거라. 이 집안이 어쩌다 체처럼 구멍이 숭숭 난 것이냐? 내가 늙어 몸소 다스리진 못해도 이 뜰 하나는 내 손아귀에 있음을 잊지 말거라.”“예.”고 유모는 눈길을 송하윤에게 흘리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송하윤도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녀는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걸고 자수를 큰 마님께 내밀며 말했다.“강 마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다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바느질 솜씨 또한 범상치 않으니 다 수놓고 나면 얼마나 빛날지 기대가 되는군요. 저 또한 하루빨리 보고 싶습니다.”강시아는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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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지난번 강시아와 실타래를 사러 갔을 적에 설강은 틈을 타 그이를 잠깐 마주친 적이 있었다. 벌써 며칠이 지나 수틀 위의 실은 부쩍 줄었는데도 강시아는 새로 사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뜰 밖으로 나갈 기회도 드문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날 괜히 많이 사 두지 말걸이라는 후회가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연아가 책상 뒤에서 불쑥 뛰어나오자 설강은 깜짝 놀라 편지를 소매 속에 밀어 넣었다.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정작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아가씨, 저를 놀래 죽일 셈이었습니까!”설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문가까지 달려갔던 연아가 뒤돌아보며 말했다.“어머니는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설강은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제가 말한 건 마님이 아니옵니다.”그러자 연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연아도 안 무섭지요.”“아가씨를 말한 것도 아니옵니다…”설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시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무슨 일이냐?”연아는 금세 설강의 말을 잊어버리고 어머니 쪽으로 내달렸다.“정말 어머니다! 연아가 잘못 듣지 않았네!”강시아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어째서 이리 기뻐하는 것이냐?”연아는 어머니의 두 볼에 연달아 입을 맞추며 소리쳤다.“연아는 어머니가 너무 좋습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생각했어요!”강시아는 눈가가 휘어지도록 환히 웃었다.“아이고, 이 작은 입술에 꿀을 바른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혹시 설강이 너에게 꿀절임을 먹인 것이냐?”연아의 시선은 또 금세 옮겨갔다. 그녀는 작은 머리를 병아리 모이 쪼듯 연신 끄덕였다.“연아도 꿀절임이 먹고 싶습니다!”설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가씨, 저에게는 꿀절임이 없사옵니다.”강시아가 아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설강, 꿀절임을 사 오는 길에 실타래도 좀 더 사 오거라. 내가 명세를 적어 주마.”뜻밖의 말에 설강은 흠칫하며 몸을 일으켰다가 뒤늦게 자신이 지나치게 들뜬 것을 깨닫고는 다시 조심스레 앉으며 말을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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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하 유모는 겁에 질려 목소리가 다 떨리기 시작했다.“그, 그럼 어쩝니까? 전부 다시 묻어 두어야 하는 것이옵니까?”지금의 강시아가 어쩌다 이렇게 대담해진 것인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은 그저 조금만 꺼내 남편의 도박 빚을 막으려 했을 뿐인데 강시아는 아예 묻혀 있던 은전을 모조리 파내려 하고 있었다!“은표는 모조리 되돌려 두고, 은전은 전부 곡식을 사는 데 쓰거라.”“곡식을요...?”하 유모는 놀라움에 잠시 공포도 잊었다.“모두 곡식으로 바꾸거라. 두 달 뒤, 세 곱절로 불려서 돌아올 것이니.”“마님... 그걸 어찌 아시는 겁니까?”“그런 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다만 네 남편을 시켜 그대로 행하게 하거라. 때가 되면 절반은 내 몫, 절반은 너희 몫이 될 것이다. 다시는 도박에 손대지 않는다면 그 돈으로 너희 둘은 삼대에 걸쳐 쓰고도 남을 것이다.”삼대에 걸쳐…하 유모의 입은 절로 벌어졌다. 마치 눈앞에 장차 자신이 부유한 가문의 안주인으로 호의호식하는 날들이 아른거리는 듯했다.“좋, 좋사옵니다…! 제가 당장 가 보겠사옵니다.”화공 하대우는 허리춤에 찔러 넣은 은전을 한번 두드리곤 휘적휘적 측문을 나섰다.수천 냥의 은전을 모조리 곡식으로 바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그러나 발걸음이 익숙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도박장의 문 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고는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어찌 또 여길 온 게냐?”“어이, 대우 형제! 이리 와 놓고는 들어가지도 않겠나?”그가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도박장 관리가 그의 목덜미를 툭 걸어 잡았다.“안 해, 안 해! 다시 했다간 마누라가 집에서 쫓아낼 걸세.”관리자는 하하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대우 형제야말로 마누라한테 눌려 사는구먼!”“뭘 그리 겁내나, 두 판만 해 보라지. 혹여 판이 뒤집혀서 마누라가 오히려 모셔 줄지, 누가 알겠나?”하대우는 도박장 안쪽을 못 이기는 듯 힐끔거렸다.지난번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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