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외투를 걸치고 커피와 우유를 들고 걸어갔다. 그리고 여자아이에게 줄 디저트까지 챙기고 여자에게 다가갔다.여자는 나를 스윽 쳐다보더니 나의 얼굴을 보고 약간 놀란 것인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저는 윤지원이라고 해요.”나는 바로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당신은 나를 몰라요.”여자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회복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먹었지만 나는 살이 찌지 않았다. 진정우가 내게 준비해 주는 것은 다 영양이 고루 들어간 다이어트 식단이다. 게다가 나는 운동까지 하고 있기에 몸이 망가지지 않았다.유일한 변화라면 피부가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진정우는 내 얼굴이 딸의 얼굴처럼 부드럽다고 했다.“그럼 이런 요구를 한 이유가 뭔가요?”나는 여자의 주문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바람이 불어와 낙엽이 떨어지더니 그대로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행복해 보이네요.”여자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비웃음 가득 섞인 말을 내뱉었다.“네. 행복해요.”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여자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면서 얘기했다.“다른 사람을 짓밟고 그들의 불행을 양분 삼아 행복해서 참 좋겠네요.”차가운 태도를 숨길 필요조차 없다는 듯, 그 여자가 하는 말도 차갑기만 했다.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원한을 샀는지 잘 알았다.아마 강씨 가문과의 원한이겠지.강유형이 떠난 후 내 인생에는 강씨 가문과 관련한 일들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래서 이렇게 강씨 가문의 일을 언급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하지만 나는 눈앞의 이 여자를 강씨 가문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죠?”나는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채 이유를 물었다.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홀로 놀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얘기했다.“저 아이는 강 씨예요.”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그 아이가 강유형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내 기억 속의 강유형에게는 조나연말고 다른 여자는 없었던 것 같다. 설마 내가 모르는 사이에?의문이 들
진정우는 안리영의 말을 들은 후부터 아이보다 나를 먼저 챙겨주었다.그런 모습에 나는 약간 불안하고 마음 아팠다.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저녁에 아이가 잠에 들었을 때, 내가 진정우의 품에서 물었다.“정우 씨, 많이 힘들지?”“아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건데, 힘들게 뭐가 있겠어.”진정우는 내 손가락을 주물러주면서 얘기했다.“정말이야.”“거짓말. 나도 정우 씨가 힘들다는 건 보아낼 수 있어. 그렇게까지 나를 챙겨주지 않아도 돼. 나는 그저...”진정우가 너무 일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진정우가 내 말을 끊었다.“그거 알아? 나는 요리할 때 항상 네가 좋아하는 요리나 맛을 생각하면서 해. 그리고 맛있게 먹는 너의 모습을 볼 때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난 정말 힘들지 않아. 10개월 동안 임신한 너와 비교하면, 게다가 출산의 고통과 비교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진정우가 진지하게 얘기했다. 나를 달래려고 대충하는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다.“하지만 정우 씨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 아파.”나도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았다.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다. 진정우가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이 했으니 나도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었다. 진정우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그럼 앞으로 한평생 계속 마음 아파해야겠네.”진정우가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나를 데리고 다른 곳에 간다고 하더니, 진정우는 매일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아주 길게 통화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캐묻지 않았다. 가끔은 서프라이즈가 더 극적이니까 말이다.나는 우울한 생각을 하지 않고 심심할 때는 책이나 보고 그림이나 그렸다. 요즘 들어 내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카페 곳곳에 걸어두니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까지 생겼다.돈이 모자란 건 아니었기에 나는 럭키 드로우를 통해 고객에게 추첨 기회를 주었다. 점심, 아이에게 젖은 먹이고 나와서 햇빛을 쐬는데 손님들이 연이어 들어왔다. 그중 키가 크고
“아니야. 우리가 연애를 한다고 하지만 할 일은 해야지 않겠어? 게다가 4, 5개월도 아니고 네댓새 정도는...”안리영은 거기까지 말하고 흠칫했다.“설마 그것도 못 견디는 건 아니지?”“그럼 너는? 견딜 수 있어?”조시언은 평소에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마음 졸이는 남자였다.안리영은 아무렇지 않다고 얘기하려 했지만 조시언이 그 말을 듣고 기분 상할 거라는 것을 알고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아쉽지. 하지만 월급쟁이들은 어쩔 수 없잖아.”“얼른 돌아올게.”조시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결 가벼워진 표정을 지었다.‘남자란 역시 잘 구슬려야 하네!’“우리 남자 친구 참 착하네.”안리영은 그에 맞는 칭찬을 해주었다.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시언이 입술을 부딪쳐왔다. 깊은 밤, 어렴풋한 달빛 아래서 조시언은 안리영을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키스를 퍼부었다. 안리영은 조시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우리, 집에 돌아가자.”집으로 가서 뭘 해야 할지는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었다.금방 사귄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피어오르는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밤이 깊어지고 카페는 적막에 잠겼다. 불빛도 더욱 어두워져 보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올 것 같았다.샤워를 마친 진정우는 잠에 든 나의 모습을 보면서 침대맡에 앉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깨어난 나는 진정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을 약간 뜬 채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물 마실래?”진정우가 먼저 물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진정우가 또 물었다.“배는 안 고파?”임신 기간에는 저녁에도 배가 고프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안 고파.”오늘의 진정우는 평소와 약간 달랐다.“안 자고 여기 앉아서 뭐 해? 설날이가 깼어?”나는 옆에 있는 설날이의 침대를 쳐다보았다. 설날이는 깊은 잠에 빠진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진정우가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나를 품에 안은 채 이마에 키스했다.“미안해...”그 말에 나는 멍
질투왕의 등장이었다.안리영은 그런 조시언의 몸에 기댄 채 조시언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여긴 왜 왔어?”안리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조시언은 오늘 조금 먼 곳에 차를 세웠다. 안리영과 더 오래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너 보러 왔지.”안리영은 그제야 안리영에게 친구란 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 조시언이 바로 나의 카페로 온 것이었다.안리영은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사교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 친구와 오래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전화도 안 했으면서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안리영이 일부러 물었다.조시언은 긴 다리로 천천히 걸으며 장난스레 얘기했다.“내가 몇 년 동안 키웠는데, 이 정도는 눈에 훤하지.”그 말에 안리영이 멈춰서서 웃었다.“날 키웠다고?”“당연하지.”달빛이 조시언의 얼굴 굴곡을 따라 흘러내리며 빛났다.‘왜 전에는 이렇게 잘생겼다는 걸 몰랐지?’“네가 어릴 때 내가 너를 안고 달랬었지. 잠에 들 때까지 재워준 것도 나고, 유치원에서 괴롭힘당할 때 나선 사람도 나고, 네 머리를 말려준 사람도 나야. 새로 산 옷은 내가 예쁘다고 인정해 줘야 입고, 등교도 같이 해줘야 하고, 시험을 망치면 성적을 숨기기 급급하고... 그러다가 첫 생리 때는 나를 찾아와서 울면서 곧 죽을 것 같다고 했잖아.”조시언은 담담하게 안리영이 어릴 때 한 일들을 얘기했다. 안리영은 거의 다 잊어버린 이야기지만 조시언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꽤 행복했다.“그렇게 천천히 내 매력에 빠진 거야?”안리영이 웃으면서 물었다.“몰라. 어느새 너는 이미 내 일부분이 되었어.”조시언이 멈춰서서 품속의 안리영을 쳐다보았다.“어쩌면 내가 조씨 가문에 온 것도 하늘이 안배해 준 일이었던 걸지도.”안리영은 조시언의 신분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지.”안리영이 뒤꿈치를 들어 조시언의 볼에 뽀뽀했다.조시언은 그런 안리영이 좋아서 허리를 약
“그럼 어떡해?”나는 약간 겁이 났다.산후우울증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내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어서 힘든 것이었다.안리영은 다리를 꼬고 내 앞에 앉아서 얘기했다.“그럼 왜 우는지 알려줘. 슬픈 것도 이유가 있는 거잖아.”나는 안리영 앞에서 감추지 않고 진정우의 일을 얘기했다. 말을 마치고 나니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나도 참...”안리영은 나를 비평할 때도 솔직했다.“너무 했지! 너를 얼마나 잘 챙겨주는 사람인데. 도우미가 있는데도 마음이 안 놓여서 직접 너를 챙겨주는 사람이잖아. 그거 하나 깜빡했다고 그렇게 우는 거야? 너도 정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모르는 거야.”“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산후우울증이니까...”나는 나를 위한 면죄부를 찾고 있었다.안리영은 손으로 내 머리를 튕기더니 말했다.“하지만 이렇게 얘기하고 우는 게 더 나아.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안리영의 말 덕분에 나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너 삼촌이랑 사귀기로 한 거야?”“그건 그만 물어.”“궁금하니까... 두 사람 할 때...”안리영이 나의 입을 막는 바람에 뒤의 말은 꺼내지 못했다.나는 부끄러워하는 안리영을 보며 놀리지 않기로 했다. 안리영은 조수민이 찾아온 얘기를 했고 나는 웃음을 참으며 얘기했다.“네 어머니가 널 여우 같은 계집애라고 했다고? 하하하...”“그러게 말이야. 나중에 진실을 밝힐 때가 되면 내가 그 계집애라고 알려줘야겠어. 어떤 반응인지 지켜보게.”안리영도 물러서지 않았다.나는 안리영의 말을 들으면서 신나게 웃었다. 진정우도 저녁을 준비하고 우리를 불렀다.나는 웃고 있었지만 진정우는 이상함을 눈치챈 것인지 밥을 먹고 난 후 안리영을 불렀다.“지원이 울었어요?”안리영은 피식 웃었다.“그것도 보아내다니. 지원이한테 정말 진심이네요.”“눈가가 붉길래요.”진정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래요?”“다른 일은 아니에요. 마늘 새우가
나와 안리영은 저녁 쯤에 만나게 되었다. 노을이 물들인 하늘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을 받아 내 카페도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하지만 나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울고 싶었다. 이런 감정이 내 몸을 지배한 지 거의 하루가 지났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어제저녁, 마늘 새우를 먹고 싶다고 진정우에게 얘기했는데 진정우가 오늘 그 일을 까먹었으니까 말이다.진정우가 일부러 사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나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울적했다. 그 우울감은 마음속에서 눈덩이처럼 커져서 나의 감정을 갖고 놀았다.안리영을 본 나는 더욱 억울해졌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가족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안리영은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아이도 있지만 아이는 너무 어렸다.안리영이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얘기했다.“부럽네. 창가에 앉아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나도 얼른 아이를 낳고 너처럼 살아야겠어.”안리영이 들어올 때 진정우는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안리영은 오전에 출근한 다음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조시언이 가져다준 밥도 못 먹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안리영은 배고프고 피곤했다. 그래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고 한 것이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안리영은 아이를 보러 갔다.솔직히 진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방에 들어올 때마다 먼저 아이를 보고 난 뒤 나한테 뭘 먹을지 물어봤다.자기 아이를 질투하는 것이 어이없게 느껴지지만, 나는 아이의 부속품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안리영이 앉아서 물었다.“뭘 그렇게 열심히 봐?”나는 입술을 잘근 씹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리영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붉어진 눈시울과 눈물 자국을 본 안리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그 질문에 나는 또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고 얘기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