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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한마음
손기욱이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연경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고 숨결이 얽혔다.

그의 시선이 연경의 입술에 닿았다.

그녀의 입술은 매우 도톰하고 탐스러웠다. 웃지 않고 있을 때도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고 입술색도 이슬을 머금은 해당화처럼 탐스럽고 고왔다.

손기욱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연경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부주의로 그만 이마를 손기욱의 어깨에 찧고 말았다.

연경은 재빨리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소인, 바로 가서 차를 새로 내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재빨리 차주전자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손기욱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후, 연경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주전자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으리, 날씨도 차고 나으리께서는 어깨도 안 좋으시니 따뜻한 성질의 홍차를 마시는 게 더 낫습니다. 녹차는 찬 성질이라 많이 마시면 숙면에도 방해가 되고 불편하신 어깨에도 좋지 않습니다.”

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홍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연경은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소인이 그것도 모르고 그만 결례를 범했네요.”

손기욱은 불안에 떠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너를 꾸중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안마나 계속하거라.”

말을 마친 그는 진한 향기가 풍기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처럼 그리 떫지는 않았다.

찻잔을 내려놓은 손기욱은 차가 식도록 주전자 뚜껑을 열어두었다. 그는 뜨거운 차보다는 차가운 차가 더 입맛에 맞았다.

방안에는 다시금 침묵이 감돌았다. 연경은 조용히 그의 어깨를 주물렀고 손기욱은 무심한듯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여인의 하얗고 가녀린 목덜미가 시야에 들어왔다.

갑자기 그녀의 얕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지쳐 보였다.

손기욱은 눈을 감고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되었으니 이만 물러가 보거라.”

어떻게 하면 그와 가까워질까 고민하던 연경은 그 말을 듣고 당황했지만 명을 거역할 수는 없기에 조용히 예를 행하고 방을 나섰다.

그녀가 방을 나간 후, 안으로 들어온 조태복은 탁자 위에 놓인 홍차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 멍청한 놈이 감히 나으리께 홍차를 올렸나요? 소인이 바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손기욱은 그를 힐끗 보고는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틀간 손기욱은 송학당에 걸음하지 않았다. 손유민은 효심을 보인다고 매일 직접 연경을 매화당에 데리고 와서 그의 어깨를 안마하게 했다. 손기욱도 구태여 거절하지 않았다.

세 번째 날이 되자 손유민은 귀찮았는지 연경 혼자 매화당으로 보냈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아직 오십 일 정도 남았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연경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손기욱의 처소에 도착하니 저택 재봉방의 관리인이 조태복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치수 하나 제대로 못 재나요?”

조태복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시켜준 대로 쟀는데요.”

“어깨 치수가 딱 봐도 틀렸잖아요. 그리고 가슴 두께도… 나으리께서 저택으로 돌아오신 후에 치수가 틀려서 결국 기성 옷 점포에서 구매했던 게 생각 안 나요? 이번에도 틀리면 노부인 얼굴을 어떻게 보라고요?”

한바탕 불만을 토로하던 재봉방 관리인은 연경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나으리의 시중을 들러 왔니?”

연경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인은 웃으며 재봉자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왜 직접 가시지 않고요?”

연경이 물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었으면 이러지도 않았지. 나으리께서 여인의 접근을 싫어하시는 건 이 저택의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잖아.”

재봉방 관리인이 난감한 얼굴로 답했다.

조태복도 옆에서 거들었다.

“연경아, 좀 도와줘. 내가 손이 둔해서 두 번이나 치수를 쟀는데도 틀렸다잖아. 이번에 또 틀리면 나으리께서 나를 꾸중하실 게야.”

연경은 거절하는 척하다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축 늘어진 채로 자를 들고 들어가자 그 모습을 본 손기욱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복은? 치수 하나 제대로 못 재서 너한테 시킨 게냐?”

뒤따라 들어온 조태복이 울상을 지으며 답했다.

“소인의 우둔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조태복도 잘하고 싶었지만 사내이자 주인인 몸을 더듬고 치수를 재는 건 난감한 일이 었다. 게다가 손기욱이 인상이라도 찌푸리면 긴장해서 몸을 사리다 보니 제대로 치수를 잴 수가 없었다.

조태복은 오래전에 손기욱의 발에 걷어 차인 적이 있었는데 그건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손기욱은 곱지 않게 그를 흘기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연경은 재빨리 다가가 그의 어깨 넓이를 재고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팔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재봉자를 그의 뒤쪽에서 감았다.

연경의 손길이 아래로 내려가 그의 허리에 닿았다. 여인의 탐스러운 가슴이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닿게 되었다.

손기욱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불쾌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안 끝났어?”

차가운 목소리에 연경은 움찔하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다 된 것 같습니다.”

재봉방 관리인은 그녀가 재준 치수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았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연경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마에 난 식은땀을 훔쳤다.

조태복은 미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사탕 두 알을 건넸다.

“이번에 네가 큰 도움을 줬어. 정말 고마워. 이건 나으리께서 변방에서 가져오신 건데 맛이나 봐.”

연경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고맙기는요.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창가에 있던 손기욱은 고개를 맞대고 얘기하는 둘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태복은 뭐가 좋다고 저리 웃고 있는 거지? 쟤는 웃음이 헤픈가?’

그는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쾅 소리 나게 창문을 닫았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태복과 연경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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