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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목소리를 들은 온회장도 흠칫 놀라며 온은수의 방을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린 차수현은 온은수가 떡하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심지어 직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이 온은수였다는 말인가?

차수현은 그 자리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온은수가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온은수는 그녀를 힐긋 바라보다가 어안이 벙벙해진 아버지께 시선을 돌리며 자상하게 말했다.

“저 깨어났어요, 아빠. 그 동안 많이 걱정하셨죠?”

온회장은 그제야 꿈에서 깬 듯 휘청이며 달려와 온은수의 몸을 어루만졌다. 아들이 무탈하게 깨어난 걸 확인한 그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드디어 깼네! 드디어 깼어!”

온은수는 얼른 온회장을 부축했다.

“아빠, 너무 흥분하시면 안 돼요.”

말을 마친 그는 옆에서 어쩔 바를 모르는 차수현을 힐긋 쳐다봤다.

“이 여잔 누구예요? 왜 내 방에 들어온 거죠?”

그는 낯선 사람을 절대 방에 들이지 않는다. 여자는 더욱 금기 대상이다.

온은수는 좀 전에 일이 썩 기분이 내키지 않은 듯싶었다. 하여 그의 말투도 유난히 냉정했다.

온회장은 차수현을 보면서 조금 전 그녀의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

“말하자면 길어. 서재로 가서 이야기 해주마. 수현이는 먼저 방에 가 있어.”

온회장이 차수현에게 친절하게 말하자 온은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의 따가운 시선에 차수현은 왠지 싸늘함을 느꼈다. 온은수는 그녀를 향한 적의가 매우 커 보였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된 이상 그녀도 더는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차수현은 결국 온은수의 차가운 눈빛을 감당하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온은수는 그녀의 가녀린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온회장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온회장은 요 며칠 일어났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하며 맨 마지막에 차수현을 언급했다.

“은수야, 수현이는 내가 널 위해 맞이한 네 아내란다.”

온은수의 담담했던 표정이 이 한마디로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짜증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아내요? 쓰러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여자를 불러들여요? 전 이 결혼 동의 못 해요.”

온회장은 온은수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아들은 심성이 곱고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예외는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어서야. 내가 이미 너희 둘 혼인신고를 마쳤으니 이제부턴 합법적인 부부 사이야.”

온은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그럼 지금 바로 가서 이혼 절차를 밟을게요.”

말을 마친 온은수는 당장 차수현을 찾아가 빌어먹을 결혼을 취소하려고 했다. 온회장은 단호한 그의 모습에 재빨리 가로막았다.

“너 곧 있으면 서른이야. 내 생각도 좀 해주면 안 되겠니? 수현이는 네 상황을 다 알면서도 이 결혼을 동의했고 널 보살피겠다고 했어. 이런 여자를 어디 가서 찾아?”

온은수는 서재를 나서려 했지만 고개 돌려 흰머리가 힛긋힛긋 나온 온회장을 본 순간,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아빠도 어느덧 늙었다는 걸 알아챘다.

결국 그는 수긍하고 말았다.

“당분간은 그럼 이혼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만약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그땐 더이상 이혼하는 걸 말리지 마세요.”

온은수의 머릿속에 그날 밤 자신에게 당했던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온은수 인생의 첫 여자였는데 소중한 첫 경험도 그에게 빼앗겼으니 그녀에게 꼭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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