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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진정
임윤지가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8년 동안 살아온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문을 열자마자 백나희가 강도혁의 품에 나른하게 안겨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울었는지 백나희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강도혁이 다정한 목소리로 백나희를 달랬다.

“그만 울어, 울보야. 더 울면 눈이 퉁퉁 부어서 개구리 왕눈이 되겠어.”

백나희가 강도혁의 가슴을 치며 어리광을 부렸다.

“미워. 내가 왜 개구리 왕눈이야? 개구리 왕눈이는 오빠지.”

임윤지가 한때 죽도록 사랑했던 남편과 내연녀가 꽁냥거리는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봤다. 마음이 식어버려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강도혁이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윤지 왔어? 장인어른은 좀 어떠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다 나오지 않았다. 부하들을 시켜 임경수의 연명 장치를 떼어버린 인간이 지금 위선적으로 안부를 묻고 있다.

임윤지가 백나희를 힐끗 쳐다봤다.

“네 덕분에 아직은 돌아가지 않으셨어.”

강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임윤지, 지금 누구한테 그따위로 말하는 거야?”

‘누구한테 말하냐고? 당연히 내 아빠를 죽이려 한 원수지.’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백나희가 강도혁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늑대 오빠, 토끼가 윤지 언니를 화나게 한 거야?”

임윤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늑대? 토끼?”

이건 한때 임윤지와 강도혁이 쓰던 애칭이었다. 늑대는 여전히 그였지만 토끼는 백나희로 바뀌어 있었다.

이보다 더 기가 찬 일이 있을까?

임윤지의 표정이 달라진 걸 강도혁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지도.

그가 백나희를 돌아보며 다정하게 볼을 꼬집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백나희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 입원해 있는 동안 옆에 있어 줄 거지? 간호사가 케어해 주는 건 싫단 말이야. 하나도 다정하지 않아.”

‘입원?’

임윤지가 고개를 숙였다. 강도혁이 장기 기증 양도 동의서를 받아내자마자 백나희의 수술을 서두른 게 분명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갑자기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 임윤지를 불러세웠다.

“윤지야.”

그러고는 임윤지에게 다가갔다.

“부탁할 게 있어.”

임윤지가 한쪽 발을 계단에 올린 채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말해. 이번엔 또 무슨 서류에 서명하라고? 이혼 합의서? 아니면 내 장기라도 떼어서 네 그 가련한 토끼한테 주라고?”

강도혁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고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임윤지, 꼭 그렇게 날을 세워야겠어?”

임윤지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씁쓸함을 삼켰다.

“아빠가 방금 겨우 살아난 상황에 너한테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줄 줄 알았어? 강도혁, 나 꼬박 하루 동안 눈 한 번 못 붙였어. 그냥 올라가서 잠이나 좀 자고 싶다고.”

강도혁이 임윤지의 손목을 잡았다.

“여긴 너의 집이야. 잠은 언제든지 자면 돼. 다만...”

그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나희를 가리켰다.

“나희가 입원해서 몸조리 좀 해야 하거든. 네가 심장병 환자를 간호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당분간 나희 좀 돌봐줘.”

임윤지가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실소를 터뜨렸다.

“너 진짜 미쳤구나. 우리 아빠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셔. 내가 저 여자를 돌보면 우리 아빠는 누가 돌봐?”

강도혁이 손에 힘을 가하자 고통이 밀려온 임윤지가 숨을 들이켰다.

“윤지야, 내 말을 거역한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어?”

그의 차디찬 눈빛을 보던 임윤지가 시선을 늘어뜨렸다.

“알았어. 내가 돌볼게.”

강도혁이 그제야 손을 놓고 드물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고생 좀 해줘.”

조강지처더러 내연녀의 수발을 들라고 하다니, 아마 무운시의 또 다른 특종 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임윤지는 예전처럼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유언비어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백나희가 입원한 첫날, 임윤지는 왜 백나희를 간호하겠다는 간병인이 없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병실이 너무 밋밋하다며 인테리어 업체를 불러 병실 전체를 핑크빛으로 도배하질 않나, 침대가 좁다며 3m짜리 대형 침대를 들여오게 했다.

“이딴 물을 어떻게 마셔? 난 에비앙 아니면 안 마셔.”

“이게 사람 먹으라고 가져온 밥이야? 난 일식 먹고 싶단 말이야.”

의료진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치료를 받으러 온 건지, 휴양을 온 건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이 뭐라 하든 백나희는 이 병원에 건물 한 동을 기증한 강도혁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간호사가 수액을 교체할 때 조금 아팠다는 이유로 뺨을 후려치기까지 했다.

임윤지가 거들며 말리자 곧바로 엉엉 울며 강도혁에게 고자질했다.

“내 지위가 윤지 언니보다 낮지 않다며?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

강도혁이 백나희를 달래자마자 임윤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희는 환자야. 네가 좀 참아주면 안 돼?”

‘환자?’

어이가 없었던 임윤지는 강도혁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병원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기운이 넘쳐나는 사람이 어떻게 위독한 환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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