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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09:49:52

"너는 단순히 재료를 채취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비밀을 파헤친 자의 눈빛이었지. 말해라. 무엇을 발견했나?"

칼릭스가 엘레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강렬한 존재감과 차가운 체온이 엘레나의 피부에 와닿았다.

전생이었다면 그 압도적인 위엄에 숨이 막혔겠지만, 지금의 엘레나는 칼릭스의 푸른 눈동자를 정면으로 직시했다.

"전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는 진실이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감당?"

칼릭스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감히 왕자인 자신에게 진실의 무게를 운운하는 여인은 제국 전체를 통틀어 그녀가 유일했다.

"좋다. 어디 한번 들어보지. 네가 숨기고 있는 그 잘난 진실이라는 것을."

엘레나는 품속에서 흑사초 포자가 묻어난 스노우 드롭 뿌리를 꺼내 칼릭스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 괴질은 전염병이 아닙니다. 누군가 전하의 왕궁에 풀어놓은 독입니다."

칼릭스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 거친 파도가 휘몰아쳤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이 얼음처럼 가파르게 팽팽해졌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전생의 궤도를 벗어나, 더 깊고 위험한 왕궁의 음모 속으로 사정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 흑사초의 그림자

달빛이 어원의 유리 온실 돔 천장을 지나 은백색 광채로 부서져 내렸다. 고요한 온실 내부는 습기 찬 흙냄새와 약초의 청량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만큼은 살얼음판처럼 가파르게 얼어붙어 있었다.

칼릭스 왕자의 시선이 엘레나가 내밀은 스노우 드롭의 뿌리로 향했다. 검붉은 핏빛 포자가 스노우 드롭의 하얀 뿌리를 뱀처럼 조여 매고 있는 기괴하고 기분 나쁜 형상이었다.

칼릭스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뿌리를 앗아가듯 받아 들었다.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눈빛 뒤편에서는 이성적인 통치자의 뇌리가 무섭게 회전하고 있었다.

"흑사초라."

칼릭스의 나직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본래 제국 남부의 극독으로 분류되어 황실 비밀 금서에만 기록된 희귀 독초다. 일반적인 약초상이나 시장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지."

"맞습니다, 전하."

엘레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응수했다.

"흑사초의 포자는 물에 녹으면 색과 향이 완전히 사라지지만, 공기 중에 미세하게 번지면 사람의 폐를 서서히 마비시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나 고열처럼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를 토하며 호흡이 막혀 죽음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다면 수석 의관 제럴드를 비롯한 의학관 전체가 이 독의 존재를 몰랐단 말인가?"

"흑사초는 스노우 드롭의 청량한 향에 덮이면 약초학의 대가라 할지라도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궁정 어원의 토양에 인위적으로 독액을 주입해 환자들의 증상을 자연발생적인 괴질로 위장한 것입니다."

칼릭스는 엘레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초라하고 낡은 의녀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토해내는 언어 하나하나에는 왕궁의 의관들과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훌쩍 뛰어넘는 깊은 식견과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 정도의 식견이라니. 도저히 다락방에 갇혀 학대받던 영애의 지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군.'

칼릭스의 눈빛이 더욱 깊고 날카로워졌다.

"너는 어째서 이 사실을 내게 직접 폭로하지?"

"예?"

"네가 이 독의 비밀을 혼자 쥐고 있었다면, 수석 의관이나 다른 귀족들에게 거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나의 정적들에게 넘겨 거액의 금화를 챙길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직접 이 위험한 진실을 내미는 것이냐?"

칼릭스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 뼘 남짓으로 좁혀졌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엘레나의 보랏빛 눈동자를 꿰뚫어 보듯 집요하게 노려보았다.

엘레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칼릭스를 맞받아쳤다.

'전생의 당신은 눈앞의 화려함과 가식에 속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했던 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칼릭스는 완벽한 통치자로서의 예리함을 가다듬고 있었다. 엘레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담담히 답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정당한 삶과 안전입니다, 전하. 괴질이 왕궁 전체로 번져 궁정 내부가 마비된다면, 새로 입성한 저 같은 하급 의녀는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거나 누명을 쓰게 될 테니까요.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전하라는 가장 확실한 방패를 선택한 것뿐입니다."

"나를 방패로 삼겠다라."

칼릭스의 입꼬리가 작게 실룩였다. 분노가 아니었다. 기이할 정도의 흥미와 요동치는 호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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