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바람난 약혼자, 재산을 노린 구혼자, 도박 빚을 숨긴 기사. 남자 복이라곤 없는 후작영애 샤를레아는 공작의 유능한 비서로 살아간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연애 잔소리를 듣고 나온 날, 점쟁이가 황당한 예언을 건넨다. “이 년 뒤, 죽고 못 살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날부터 까칠한 상사와 소꿉친구 마탑주가 묘하게 달라지고, 디저트 취향이 통하는 낯선 남자까지 나타난다. 가까워지는 시선과 손길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이, 수상한 흑요석은 자신의 혼담에 누군가 개입했다는 비밀을 드러내는데. 예언도 청혼서도 잠깐! 제 남자 복은 제가 고르겠습니다.
View More모두가 축복하는 기쁜 날이었다. 적어도 신부가 내 연애사를 꺼내기 전까지는.
아르타샤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어깨를 드러낸 새하얀 새틴 드레스가 허리 아래로 매끄럽게 흘러내렸고,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치맛자락 위에 얇은 금빛을 얹었다. 화려한 보석도, 겹겹이 부풀린 레이스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잠깐 말을 잊었다. 부케를 고쳐 쥐며 웃는 친구가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축하해, 아샤. 정말 예쁘다.” 나는 친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꽃과 향유 냄새가 가까워졌다. 아르타샤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서로 떨어지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고마워. 그래서 너는 언제 결혼할 건데?” 감동이 사라지는 데에는 한 문장으로 충분했다. 나는 흐트러진 부케의 리본을 펴주던 손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넘어갈 줄 알았는데. 신부의 자비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야. 다음에는 네 결혼식에서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내 주변에 남자가 없어.” “말은 바로 해야지. 남자는 많은데 네가 좋아하는 남자가 없는 거잖아.” “청혼서는 매달 오지, 연회 초대장도 쌓여 있지. 그런데 너는 일하느라 바쁘다고 전부 거절하잖아.” “청혼서에 내 이름을 틀리게 적은 사람도 있었어.” “그 사람은 제외하고.” “두 번째 장부터 지참금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도 제외하고.”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은 분도…….” “샤를.”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손은 얌전히 과자 쪽으로 뻗었다가 들켰다. 아르타샤가 내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 오늘의 신부는 친구가 굶는 일보다 혼자 늙는 일을 더 걱정하는 듯했다. “결혼까지는 안 바랄게. 연애라도 해.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그런 사람이 생기면 나도 할 거야.” “그럼 서류 밖에서도 좀 찾아봐.” 마침 문이 열리고 로나가 들어왔다. 다른 하객들과 인사를 하고 온 모양인지 손에는 축하 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신부와 과자 접시 앞에서 멈춰 있는 나를 번갈아 보더니 상황을 빠르게 이해했다. “아샤, 오늘은 네 남편만 신경 써. 샤를의 남편은 나중에 찾아주고.” “남편 이전에 애인부터 찾아야 해.” “응. 그건 내가 이어서 할게.” 중재가 아니라 인계였다. 나는 두 사람을 원망스럽게 바라봤지만 로나는 웃으며 내 팔을 잡았다. 밖에서 예식 준비가 끝났다는 전갈이 왔다. 아르타샤는 그제야 팔짱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들이 치맛자락을 정돈하는 동안 나는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행복하게 살아.” “그럴게.” 대답이 너무 망설임 없어 코끝이 조금 시큰해졌다. 아르타샤는 내 손을 한 번 더 쥐었다 놓았다. 복도 끝에서 기다리던 노아가 그녀를 발견하고 웃었다. 다른 사람을 볼 때와는 분명히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서야 친구가 이제 정말 결혼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예식장은 정원에 마련되어 있었다. 흰 꽃으로 장식한 아치 아래로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갔고, 하객들이 앉은 의자에는 연한 금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로나와 나란히 자리에 앉자 아직 주인을 기다리는 빈 의자가 내 반대편에 보였다. 분명 지정된 하객의 자리일 텐데, 이상하게도 내 곁에 비어 있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음악이 시작되었다. 노아가 아르타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는 그 손을 잡기 전에 아주 잠깐 숨을 골랐다. 노아가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무언가 말하자, 긴장으로 굳었던 입가에 웃음이 돌아왔다. 둘이 손을 맞잡고 꽃길을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무릎 위의 손을 포갰다. 누군가를 저렇게 믿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긴장될 때 제일 먼저 바라보고, 별것 아닌 말에도 안심하고, 오래 함께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나는 사랑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추운 날 차가워진 손을 잡아주고, 늦게 귀가한 날 왜 늦었느냐보다 저녁은 먹었느냐고 먼저 물어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입맞춤할 때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관계까지 원하는 건 아니었다. 가까워지는 순간 숨을 조금 참게 되고, 떨어진 뒤에도 상대의 체온이 기억나는 일. 나도 그런 설렘을 알고 싶었다. 다만 지난번에는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그의 아내가 찾아왔다. 그 남자는 분명 미혼이라고 했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그 인간 생각으로 친구의 결혼식을 망치지 말자. 앞에서는 노아가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끼우고 있었다. 아르타샤가 그 모습을 보고 웃다가 자기 차례에는 더 심하게 손을 떨었다. 하객들 사이에 다정한 웃음이 퍼졌다. 맹세가 끝나고 노아가 면사포를 걷었다. 이마를 잠깐 맞댄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 박수 소리가 정원을 채웠고, 나는 남들보다 조금 오래 손뼉을 쳤다. 친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까지 부러워하며 축하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많이. 예식 뒤에는 저택과 정원을 오가는 피로연이 이어졌다. 신부는 움직이기 편한 연한 분홍빛 드레스로 갈아입었고, 신랑은 그녀의 치맛자락이 의자에 걸리지 않도록 거듭 살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다시 인사를 건넨 뒤 디저트가 놓인 테이블로 향했다. 오전부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다. 사실 오늘도 출근했었다. 휴일 전날에 도착했어야 할 영지 보고서가 아침에 오는 바람에 결혼식에 늦을 뻔했다. 대신 오전에 처리한 시간은 휴일 근무로 기록해두었다. 프레드릭 헤레이스 공작의 비서가 된 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책임감과 무료 노동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바지를 입고 왔네.” 로나가 옆에 서서 내 차림을 살폈다. 나는 아이보리 블라우스의 소매를 한 번 정돈했다. 짙은 초록색 조끼와 같은 색의 바지는 아르타샤가 직접 골라준 것이었다. 친구는 내가 치마를 입고 불편해하는 것보다 편하게 앉아 크게 웃어주는 편이 좋다고 했다. 연애 이야기만 빼면 참 좋은 친구였다. “신부가 허락했어.” “잘 어울려. 그래서 더 아깝다고.” “또 그 이야기야?” “샤를, 네가 일만 하니까 걱정되지. 아무리 돈 버는 게 좋아도…….” “나는 돈도 좋아하고 휴가도 좋아해. 두 가지를 동시에 누릴 수 있으면 더 좋고.” 로나가 웃음을 참는 사이 나는 딸기가 올라간 작은 타르트를 접시에 담았다. 바삭한 가장자리부터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는 내가 포크를 들기도 전에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그런데 남자에게 시간을 쓸 생각은 없다는 거지?” “있어. 나도 만나봤잖아.” “그래. 문제가 있는 남자들만.” 포크 끝이 타르트 위에서 멈췄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첫 약혼자는 내 친구에게도 보내지 않은 열렬한 연애편지를 다른 여자에게 보냈다. 파혼 이야기를 꺼내자 그 여자와 나를 동시에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가 가진 사랑의 총량보다 양심의 부족을 걱정하며 반지를 돌려주었다. 그다음 남자는 매일 꽃을 보냈다. 결혼해달라고도 했다. 알고 보니 자작가의 영애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고 있었고, 그쪽에서는 아이까지 생겼다. 나는 그들의 혼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꽃값을 나눠 내자는 청구서라도 보낼까 생각했지만 참았다. 우연히 나를 도와줬던 기사는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다. 친절하고, 말이 많지 않았고, 내 일을 존중했다. 그런데 세 번째 만남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네 번째 만남은 없었다. 그가 도박장에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그다음 날이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만 고르는 건가?” 장난스럽게 물었는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로나가 잔을 내려놓고 나를 봤다. 나는 포크로 타르트의 가장자리를 조금 떼어냈다. 사랑에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실패해도 덜 아플 줄 알았다. 하지만 속았다는 사실은 기대의 크기와 별개로 기분이 나빴다.“백작님과 연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으로 찾아오시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앞으로 서신이 오면 뜯지 않고 돌려보내겠습니다.” 백작은 알겠다고 중얼거리며 마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아주 얌전한 속도로 떠났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손목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픈지 물었어.” 나는 대답 대신 손목을 내려다봤다. 잡혔던 자리가 붉어져 있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펜을 오래 잡으면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공작이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뜻인지 보여달라는 뜻인지 몰라 잠깐 머뭇거리자 그가 덧붙였다. “봐도 되겠나?” “네.” 그가 내 손바닥 아래를 받쳤다. 장갑을 낀 손이었는데도 압력이 조심스러웠다. 바로 전까지 아플 만큼 잡혀 있었던 탓인지, 아무 힘도 주지 않고 받쳐주는 감각이 유난히 선명했다. 그는 손목을 돌리지 않고 붉어진 부분만 살폈다. “주치의에게 보이는 게 좋겠군.” “집에 가서 찜질하겠습니다.” “우리 주치의는 오늘 저택에 있어. 가깝기도 하고.” “치료만 받으면 됩니까?” “내가 치료 뒤에 광산 보고서를 먹일 사람처럼 보이나?” “읽히실 사람처럼 보입니다.” “마침 자네에게 확인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기는 해.” “제 휴일은 공작님의 것이 아닙니다.” “알아.” “아침에도 일했습니다.” “그것도 알아.” “지금은 초콜릿을 먹고 집에 가는 일정입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야. 부탁해도 되겠나?” “어떤 일입니까?” “광산의 추가 보고서에 수량이 맞지 않는 곳이 있어. 자네가 정리한 원본과 비교하고 싶어.” “제가 오전에 말씀드린 운송 손실과는 다른 겁니까?” “달라. 채굴량은 그대로인데 반출된 수량이 늘었어.” “삼십 분만 확인하겠습니다. 정식 검토는 내일 하고요.” “좋아.” “휴일 근무 수당은 따로 기록하겠습니다.” “기록하게.” “치료 시간은 삼십 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초콜릿은 예언보다 믿을 만했다. 적어도 돈을 내면 그 자리에서 행복해질 수 있었다. 나는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 과자점을 나왔다. 조금 전까지 점쟁이가 앉아 있던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나무 상자도, 낡은 돗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 다 치우고 간 거지. 오 실버를 받고 나서의 움직임만큼은 제법 신속한 모양이었다. 마차가 서 있던 곳에는 짐수레 두 대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 마부는 과자점의 하인이 나를 향해 손을 들기도 전에 길 건너에서 신호를 보냈다. 뒤쪽 분수대 옆에 세워두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보행로를 따라 걸었다. 상자 속에서 달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면 데인과 나눠 먹고, 남은 것은 책을 읽으면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때 말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 “비켜요!” 검은 마차 한 대가 모퉁이를 크게 돌아 들어왔다. 바퀴가 보행로의 낮은 경계석을 타고 넘어왔다가 튕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굽 낮은 구두가 돌바닥을 미끄러졌고, 분수대의 가장자리를 짚고서야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손에 들고 있던 상자가 기울었다. 마차는 고삐를 당기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서 멈췄다. “거기 서 있으면 어떡합니까!” 마부가 먼저 고함을 질렀다. 나는 아직 분수대를 짚고 있던 손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마부석에서 내려오자마자 말의 상태부터 살폈다. 그러고는 내가 다쳤는지 묻는 대신, 마차가 긁힌 자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지금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세요?” “갑자기 튀어나오면 나더러 어쩌라고…….” “저는 보행로에 있었고, 마차가 올라왔는데요.” 내가 경계석을 가리키자 그의 시선이 잠깐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인정하는 대신 내 차림을 훑었다. 손목을 덮는 블라우스와 조끼, 먼지 묻은 바지. 드레스와 보석으로 신분을 알리는 영애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턱이 조금 올라갔다. “마차 안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는 압니까?” “운전 속도를 결정할 때는 그분의 성함보다 도로 표지판을
“아니. 속이는 사람이 잘못이지.” 로나의 대답이 빨랐다. 그녀는 내 팔을 살짝 쓸어주었다. “내가 연애하라는 건 네가 혼자라서 불행하다는 뜻이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걸 자꾸 포기하는 것 같아서 그래. 너 예전에는 사랑 이야기 좋아했잖아.” 나는 친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좋아했다. 소설 속에서 서로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길에서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도. 단지 내 이야기가 될 때마다 조금 우스워져서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좋아해.” “알아.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미리 겁먹지는 말라는 거야.” 로나가 다시 잔을 들었다. 나는 타르트를 한입 먹었다. 딸기는 달았고 크림은 부드러웠다.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잠시 뒤 신랑에게 붙잡혀 있던 아르타샤가 우리 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로나는 그 손짓에 응답하면서 내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 만날 때는 연애 이야기 하나쯤 들려줘.” “남의 이야기여도 돼?” “샤를.” “노력해볼게.” 나는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었다. 마차에 오르자 마부가 집으로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열린 창문 너머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아직 높았고 바람에는 봄이 끝나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곧장 집으로 가기에는 조금 아까웠다. 오전에는 보고서를 읽고, 오후에는 잔소리를 들었으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이 필요했다. “번화가로 가주세요. 과자점 앞에서 내려주시면 돼요.”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마차를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과자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골목 입구에 펼쳐진 낡은 돗자리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그 위에 앉은 노인이 나를 보고 혀를 찼다. 작은 나무 상자와 빛바랜 부채뿐인 자리였다. 점을 본다는 간판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쯧. 아까운 얼굴이네.” 나는 그대로 걸었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평가하는 분과 친분을 맺고 싶지는 않았다. 노인은 내가 지나가는 동안 고개를
모두가 축복하는 기쁜 날이었다. 적어도 신부가 내 연애사를 꺼내기 전까지는. 아르타샤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어깨를 드러낸 새하얀 새틴 드레스가 허리 아래로 매끄럽게 흘러내렸고,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치맛자락 위에 얇은 금빛을 얹었다. 화려한 보석도, 겹겹이 부풀린 레이스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잠깐 말을 잊었다. 부케를 고쳐 쥐며 웃는 친구가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축하해, 아샤. 정말 예쁘다.” 나는 친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꽃과 향유 냄새가 가까워졌다. 아르타샤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서로 떨어지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고마워. 그래서 너는 언제 결혼할 건데?” 감동이 사라지는 데에는 한 문장으로 충분했다. 나는 흐트러진 부케의 리본을 펴주던 손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넘어갈 줄 알았는데. 신부의 자비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잖아.”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야. 다음에는 네 결혼식에서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내 주변에 남자가 없어.” “말은 바로 해야지. 남자는 많은데 네가 좋아하는 남자가 없는 거잖아.” “청혼서는 매달 오지, 연회 초대장도 쌓여 있지. 그런데 너는 일하느라 바쁘다고 전부 거절하잖아.” “청혼서에 내 이름을 틀리게 적은 사람도 있었어.” “그 사람은 제외하고.” “두 번째 장부터 지참금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도 제외하고.”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은 분도…….” “샤를.”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손은 얌전히 과자 쪽으로 뻗었다가 들켰다. 아르타샤가 내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 오늘의 신부는 친구가 굶는 일보다 혼자 늙는 일을 더 걱정하는 듯했다. “결혼까지는 안 바랄게. 연애라도 해.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그런 사람이 생기면 나도 할 거야.” “그럼 서류 밖에서도 좀 찾아봐.” 마침 문이 열리고 로나가 들어왔다. 다른 하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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