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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가면을 벗기면
신사의 가면을 벗기면
Author: 제로두유

제1화

Author: 제로두유
안예서가 박도준의 약혼 소식을 접했을 때 방 안이 눅눅하고 농밀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기사를 다시 확인하려던 찰나 박도준 역시 그녀의 집중이 흐트러진 것을 눈치챈 듯했다.

박도준이 워낙 까다로운 남자였기에 안예서는 매번 몸과 마음을 다해 그를 받아내야만 했다.

잡념을 털어내고 휴대폰을 베개 밑으로 넣은 뒤 두 팔로 박도준의 목을 감싸 안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 자세는 힘들어요.”

안예서의 고운 눈동자에 촉촉한 물안개가 어려있었는데 그야말로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간드러진 목소리는 꼭 애교를 부리는 듯했다.

박도준이 검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눈빛 너머로 어두운 욕망이 넘실거렸다.

그렇게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방 안의 은밀한 소란이 비로소 가라앉았다.

안예서가 침대에 엎드린 채 베개 밑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보니 각종 포털 사이트 메인이 세진 그룹의 실권자와 정양 그룹 딸의 약혼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세상 사람 다 아는 소식을 안예서가 제일 늦게 알게 되었다.

몇 분 뒤 욕실의 물소리가 멈추고 박도준이 걸어 나왔다. 안예서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박도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매끈하게 좁아지는 허리, 선명한 복근과 치골선, 거기에 완벽한 이목구비까지 박도준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박도준이 옆에 놓인 새 셔츠를 입고 밑단부터 단추를 하나씩 채웠다. 조금 전까지 드러냈던 몸을 다 숨겨버렸다.

안예서는 박도준이 완벽한 신사의 가면을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혀를 내둘렀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진짜 모습을 몰랐다면 남들처럼 박도준을 그저 금욕적이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냉혈한이라 여겼을 것이다.

옷을 다 입은 박도준이 그제야 안예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낮게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어느새 차가워져 있었다.

“다음 주에는 못 와.”

안예서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귀국하거든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지나간 후 방 안이 숨 막힐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박도준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다시 말해 봐.”

안예서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돌아오니까 이제 우리 관계도 끝낼 때가 됐다고요.”

박도준이 안예서의 턱을 덥석 잡았다. 짙은 눈동자에 위험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안예서,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

그가 화가 난 걸 알아차린 안예서가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당연히 든든한 돈줄이죠. 우리 처음부터 약속했잖아요. 마음은 빼고 몸만 나누자고. 그리고 누구든 먼저 이 거래를 끝내자고 할 권리가 있다고 말이에요. 지난 3년 동안 호흡이 꽤 잘 맞았고 도준 씨도 헛돈을 쓰진 않았잖아요. 안 그래요?”

박도준이 아무 말 없이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하자 안예서가 시계를 가리키며 귀띔했다.

“퇴근할... 아, 아니지. 이제 갈 시간이에요.”

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내리더니 손으로 안예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비록 박도준이라는 인간 자체는 별로였지만 두 사람의 속궁합은 아주 잘 맞았다. 그가 그녀를 찾아오는 이유는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 있어서만큼은 서로의 호흡이 매우 중요했다.

한쪽이 불쾌하면 다른 한쪽도 만족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안예서는 그에게서 돈을 받는 이상 군소리 없이 다 받아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발언권 따위 없었기에 아파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꾹 참기만 했다.

박도준이 입은 고급 셔츠가 안예서의 매끈한 등에 쓸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점잖은 겉모습과 달리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가 안예서의 귓가에 대고 연인에게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도 알아? 우리 3년이나 잔 거?”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말이었다.

박도준이 모욕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았지만 안예서는 실제로 모욕을 느꼈다.

안예서의 호흡이 눈에 띄게 달라지자 그가 피식 웃었다.

“이런 말을 듣기 좋아하는구나.”

안예서가 머리를 이불 속에 파묻은 채 거친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하려 했다.

잠시 후 박도준이 안예서를 툭 밀어내더니 침대 머리맡에 놓인 물티슈를 몇 장 뽑아 차분하게 닦아냈다.

이어 안예서의 귓가에 박도준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는 60억 더 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겠어.”

말을 마치고는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안예서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녀는 노력한 만큼 받아야 한다는 주의였다. 60억 원을 덥석 받았다가 벌이라도 받을까 봐 두려웠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박도준에게 받은 돈도 적지 않았다.

피로를 씻어내고 밖으로 나온 안예서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안예서와 박도준이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당시 그녀가 고급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질 나쁜 손님 하나가 그녀를 끈덕지게 괴롭혔다.

그러다가 일을 그만두려던 차에 그 손님이 안예서에게 약을 먹였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안예서가 누워 있던 곳은 다름 아닌 박도준의 침대였다.

박도준이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덤덤하게 물었다. 차가우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귀티가 흘렀다.

“4억 받고 잊을 거야, 아니면 내 옆에 있을 거야?”

그 순간 안예서는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감정을 쏟아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녀의 자존심 따위가 4억 원의 가치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안예서는 돈이 절실했다. 게다가 이런 로또 같은 기회를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안예서가 물었다.

“그쪽 옆에 있으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데요?”

박도준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한 달에 4억.”

안예서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안예서는 박도준의 애인으로 3년을 살았다.

박도준이 일주일에 딱 한 번 그녀를 찾았기에 그저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 외에는 서로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안예서는 자신이 참 괜찮은 잠자리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침대 밖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최고의 가성비가 아니겠는가?

매달 4억 원씩 주긴 했지만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안예서가 생각을 멈추고 짐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살았던 게 아니라 박도준이 오기 전에 미리 와서 기다렸다.

겉옷을 입고 현관문 앞으로 다가간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친구의 흥분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예서야, 임현섭이 귀국한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안예서가 들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휴대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재잘재잘 이어졌지만 안예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불과 30분 전 박도준과 헤어지려고 대충 둘러댔던 거짓말이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현섭은 안예서가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왔던 사람이자 소녀 시절의 그녀를 설레게 했던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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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예서는 외출하기 전 옷장을 열어 새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공들여 화장을 하자 핏기 없던 얼굴이 금세 생기 있고 화사하게 변했다.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적어도 박도준이 만족하면 안예서도 조금은 편히 지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안예서가 로운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실내 조명을 조금 어둡게 했다.그리고 창문을 열고 캔들을 하나씩 켜기 시작했다.그런데 캔들을 켜는 와중에 갑자기 등 뒤에서 무심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뭐 하는 거야?”박도준도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안예서는 라이터를 끄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예전에도 항상 이런 식으로 준비했었잖아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다르게 준비해 볼게요.”박도준은 별말 없이 한 손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소파에 앉았다.안예서는 그 모습을 보더니 캔들을 마저 켜는 것을 포기하고 박도준의 앞으로 걸어가 허벅지 위에 앉은 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살짝 풀어진 넥타이를 조금씩 잡아당기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샤워할래요?”박도준은 입술을 달싹이며 덤덤히 말했다.“아니.”“그래요.”안예서는 그렇게 대꾸한 뒤 박도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박도준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시선을 살짝 내리깔며 안예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단추를 거의 절반 이상 푼 뒤에는 자연스럽게 더 아래로 팔을 뻗어 박도준의 버클에 손을 댔다.다음 행위를 이어가려는 순간 박도준이 안예서의 손목을 움켜쥐었다.“보아하니 푹 쉬었나 보네.”안예서는 멈칫했지만 이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싱긋 웃으며 박도준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그럼요. 도준 씨 아니면 제가 무슨 수로 5성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자보겠어요?”오늘 정신을 차렸을 때 보니 이전에 있던 방과는 달랐다.비록 그날 밤 끝날 때쯤에는 의식이 매우 흐릿했지만, 그럼에도 어렴풋이 박도준이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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