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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하늘이 맑은 오후였다.
행복한 주말이란 걸 증명하듯 잠에서 깨어난 시간도 오전 11시.
하아, 늘어지는 여행지에서 즐기기 좋은, 딱 이상적인 시간이잖아?
미주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여름은 끔찍하다며 투덜거렸다.
10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 취객들이 개진상을 부리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최악의 최악이 더해진 나날이 그저 일상이었다.
스물다섯치고는 나름 평범한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에어컨을 틀다 멈칫. 전기세가 두려워 차라리 취객들을 상대하는 시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는 스스로가 좀 처연하게 느껴졌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세상? 참 살만하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번졌다.
그동안 가족이라곤 필요 없다고 치부하며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희소식인지.
키워주진 않더니, 죽을 때가 돼서야 핏줄을 향한 미안함이 들끓었었나?
그 마음이야 헤아릴 순 없겠지만 딱히 슬프진 않았다. 그냥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그런 마음뿐이었다.
일단은 무작정 제주도 티켓부터 끊었다.
2억이라는 금액이 통장에 꽂히자, 현실에서 도망치듯 떠나고 싶어 돌아갈 티켓은 예매하지 않았다. 이 꿈만 같은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비록 혼자였지만 음식도, 사람도, 풍경도 모든 게 좋았다. 아마도 그건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거겠지.
텅텅 비어있던 통장이 채워지는 건, 생각보다 더 행복하고 짜릿한 기쁨이었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렌탈한 전기 자전거를 몰아 해변가를 쌩쌩 달렸다.
에어컨이 빵빵한 편의점보다 훨씬 더 더웠지만,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조차 축하 인사로 느껴질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살면서 부단한 노력을 한 적도,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는 꿈같은 것도 딱히 없었는데. 왠지 이곳에서라면 생길 것 같은 기분. 남은 인생에 최선의 길이 열릴 것만 같은 설레는 기분.
한껏 신이 난 미주는 자전거 핸들을 꼭 쥐고, 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가사까지 바꿔가며 흥얼거렸다.
“행복이 뭐 별거인가요. 뜻밖의 행운에 인생이 바뀌는걸요~♪”
그때였다.
콰아앙─!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둔탁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얼마 후, 희미하게 귓가에 스친 건 다급한 의료진들의 목소리와 감은 눈 사이로 스며드는 새하얀 형광등의 잔광이었다.
“TA(교통사고) 환자입니다.”
“어레스트 왔었고, ROSC(자발 순환 회복)후에도 의식이 없습니다.”TA? ROSC? 뭔지는 모르겠지만, 뭐라고 떠드는지 다 들리는데?
그나저나 딱 봐도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건 그만큼 부상이 심각하단 뜻인가.
역시나 재수 없던 인생은 생에 첫 여행지에 와서도 마찬가지네.
그 행복이라는 이질적인 건, 치사하리만큼 짧게 스쳐 지나갔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불쑥 덮쳐 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솔직히 지나온 인생을 되짚어보면 로또 번호를 알려줘도 봐줄까 말까인데.
갑자기 교통사고? 이게 정말 최선이야?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신세 한탄과 함께 환자 이송용 스트레처에 실려 어디론가 향하던 중, 승려복을 입은 스님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옆을 스치는 찰나, 손등에 느껴지는 둥글둥글한 염불의 감각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언젠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열네 살 때였나? 친구를 따라 성당 교리 교육을 받던 중 잠이 쏟아져 졸고 있는데, 따스한 손이 손목을 붙잡아 흔들던 느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땐 책상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자한 목소리로 교리 내용을 읊조리던 신부님과 잠시 눈이 마주쳤을 뿐.
그때랑 감각이 비슷했다. 뭐랄까, 꼭 인간이 주는 감각이 아닌 것 같았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어떤 신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종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늘 습관처럼 내뱉던, 지옥 같은 현실에서 꺼내달란 기도와는 사뭇 달랐다.
부디 이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는 것.
2억이라는 돈은 다 쓰고 죽어야 될 거 아니야!
‘살려만 주세요.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죽겠으니까. 누가 영원히 산다고 했어요? 씨발.. 지금이라도 좀 즐기겠다고. 나 따위 인간은 그냥 살려만 두고, 제발 좀 잊고 지내시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된 기도였다.
살려만 달라는 것도, 잊고 지내란 것도. 그렇게 포괄적인 기도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손을 뻗어 골짜기를 쓸어내리자, 타나가 온몸을 튕겨대며 목소리를 높였다.“잠, 잠시, 읏, 아앙, 잠시만..!”왜 또? 이번엔 또 뭔데. 진주알을 뭉근하게 문지르며 눈을 맞췄다. “뭐.”“못, 못 씻었어요. 지금 땀, 땀 범벅.. 하.. 으응..”웃기는 여자다. 오히려 샤워를 하면 이 달큰한 향이 사라질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씻겠다는 말이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됐어.”“더러... 워요..! 아흐응..!”어디가? 무엇이? 왜?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손놀림을 이어가는 칼데론. 타나는 그런 칼테론의 가슴을 마구 때리며 목을 뒤로 꺾었다.온종일 무화과를 따느라 씻지도 못했는데. 이러다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씻, 씻고, 씻.. 하아응.. 하..!”“그 입 좀 다물지.”분명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은 좋아 죽겠다는데, 지금 와서 멈추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적당히 젖어야지 이 여자야.지금 네 아랫도리는 물기가 흘러넘쳐 이미 내 손가락을 오물오물 씹어 먹고 있잖아. “앗, 아응, 아아앙, 구운... 주..... 하앙...”손가락이 만들어낸 질척이는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귓가를 때렸다.어느새 질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은 말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움직였다.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이물감이었다. 아프면서도 불편하고, 또 동시에 간지럽고. 조금 더 깊숙이 찔러댈 때면, 타나의 입에서는 더욱더 아찔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아흐응..! 하, 하읏....”너무도 귀여운 인간이다.고작 손가락 하나에 단물을 줄줄 흘리며 허리를 자꾸만 들어 올리고. 딱 봐도 처음인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은 어떻게 버티려고.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은 건, 곧 삽입될 성기의 크기를 알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 으응! 군주님, 군주님...!”흐릿해진 시야 너머, 그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온몸을 간지럽히는 광경을 마주했다.손가락 두 개가 휘젓는 감각도 미치겠는데, 또다시 젖꼭지를 혀로
칼데론은 타나를 다정하게 침대까지 이끌면서도, 잠시도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허리를 팔 전체로 휘감았다. 검은 실크로 뒤덮인 침대가 출렁거렸다. 꼭 그 안에 투명한 물이 가득 들어찬 것처럼. “저, 저.. 잠, 잠깐만요..”“보필을 통 하질 않아서.”그는 이미 마음을 먹어버렸다. 어젯밤에도 정화실에서 모습을 숨긴 채 목욕을 하는 타나의 모습을 훔쳐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매일 밤 이러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자존심이 상해 미치겠다고. 어차피 나의 표식이 새겨진 나의 것. 물론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미 내 것이라면? 굳이 훔쳐볼 이유도 없지 않은가? 검은 셔츠와 바지, 다리 갑옷이 차례로 몸을 벗어났다.팬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나신이 타나의 숨을 멎게 만들었다. 장신이란 건 진작에 알았지만, 벗은 몸은 처음 보는데. 꼭 잘 빚어놓은 조각상을 보는 것 같아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남자의 몸이 원래 이렇게 매혹적인가? 넓은 어깨, 두터운 팔 근육과 선명한 복근까지.게다가.... 저... 저... 말도 안 되는 크기로 바짝 서오른 성기는 또 뭐고..? 알 수 없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절반씩 몰려왔다. 부끄러움이라곤 없이 떡하니 서있는 모습은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아름다운데, 문제는 성기였다.마족이라 그런 건지, 커다란 등치엔 오히려 저게 맞는 건지. 아니야, 지금은 몸매 따위를 감상할 때가 아니잖아. 옷은 왜 홀딱 벗는 건데.으아악..!성기가 눈 앞에서 꺼떡거렸다. 마치 들어갈 곳을 찾는다는 듯 투명한 쿠퍼액을 질질 흘리며. “군주님.. 옷... 옷은 왜...”“말이 많네. 짜증이 날 정도야.”그대로 입이 다물렸다. 분명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그의 붉은 눈동자에 담긴 욕망은, 욕정은, 갈증은... 더 이상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어 보였다.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타나의 얼굴 옆을 팔로 짚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지그시 바라보다 입술을 포갰다.타나는 벌써부터 숨이 막혀와 허리를 비틀었다. 벗어나야 하는데,
타나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긴커녕 잠이 오질 않았다. 갑자기 사라져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칼데론. 씻고 나오니 이미 핏자국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된 침구들. 그리고, ‘몰틴을... 죽였어.’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몰틴이 눈앞에서 죽어버렸다. 평소의 타나였다면 이미 혼절하고도 남았을 일. 하지만 혼절은커녕 칼데론의 앞에서 아이처럼 울어대던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인 건가, 아니면... 나 때문에 정말 이곳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걸까..? 마음속은 복잡했지만, 몰틴은 용서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도 강간범은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물론.. 사형까진 아니지만 죽어도 마땅하지. 암. 죗값을 묻는 건 둠바스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근데 만약, 그 죗값을 물은 이의 사적인 감정이 더해진 거라면? 이상하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처럼 느껴져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들었다.오늘 같은 날은 그의 품에 안겨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무화과를 따는 타나의 표정이 밝았다.고된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몰틴의 일은 하루 이틀 앓고 나니 금세 잊혀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칼데론은 타나를 유난히 살갑게 챙겨주었다. 화를 내긴커녕, 요즘은 그가 피워준 불에 빵을 굽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갓 구운 빵이 그토록 맛있다는 걸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마지막 무화과 열매를 따서 담고는 나뭇잎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신기해. 모양도 맛도 똑같은데 나뭇잎은 밤색이잖아.”바구니 한가득 채워진 싱싱한 열매를 보자 자꾸만 웃음이 났다.오늘도 잼을 만들 요량으로 주방으로 향하는 길.무언가 허리를 감싸는 기운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바구니에선 수십 개의 무화과 열매가 굴러다녔다. ..?순식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칼데론의 침실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뀐 게 아니라 끌려온 것이다.“군주님..
몰틴은 잡아먹을 듯이 타나의 입술을 삼켰다. 두꺼운 혀가 거칠게 입안을 유린하고 입천장을 훑었다. 역겨웠다. 역겹고 무서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칼데론과 입을 맞출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이 와중에도 머릿속엔 온통 칼데론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우웁, 웁.. 우웅..!”무릎이 중심부를 짓누르며 자극하고,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삼켜지는 타액들은 끈적했다.완벽하게 제압당한 타나는 이내 무력감이 몰려와 발버둥을 멈췄다. 몰틴은 제 타액에 흠뻑 젖은 입술을 내려다보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숨을 삼켰다.두려움에 떠는 인간이 이토록 아름답던가. 코끝을 찌르는 향은 왜 자꾸만 짙어지는가.“평범한 인간일 리 없어, 넌... 요물이 분명해.”“아닙니다. 하아... 정말 아닙니다...”쫘아아악─!드레스 천이 무참하게 찢어지며 숨겨져 있던 새하얀 가슴이 쏟아지듯 넘실거렸다. 새삼 크게 벌어진 몰틴의 입술이 왼쪽 젖꼭지를 거칠게 머금었다.“꺄아아악..! 하, 하지마아아..! 흐아아아아...!”가슴을 빨리는 건 태어나 처음인데, 사내의 혀가 이토록 집요하게 돌기를 굴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무릎이 비벼대는 아랫도리는 수치스러울 만큼 젖어들어, 허리를 비틀며 안간힘썼다. “제발요, 제발요 몰틴님.. 하...”몰틴의 고개가 스르륵 아래로 향하려던 그때, 푹-!“윽.. 으윽....”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표정과 함께 타나의 얼굴에 검은 피가 튀었다.동시에 몰틴의 등 뒤로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가 서늘하게 일렁였다. 칼데론이 표정 없이 서서는, 그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무언가를 찔러버린 것.“전리품이 유난히 날카롭더니.”툭. 목덜미에 흑룡의 송곳니가 깊게 박혀버린 몰틴은 힘없이 기울어져 침대 아래로 쓰러졌고, 타나는 두려움에 울먹거리며 이불로 몸을 감쌌다. “군, 군주님.. 흑..”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구하러 왔다는 안도감,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는 두려움, 그리고... 칼데론이 아닌, 하필 몰틴에게 이런 일을
시간이 흐를수록 타나는 둠바스라는 세상에 스며들었다. 칼데론이 유일하게 아끼는 인간, 이제는 심연의 기사단장인 로일드의 호위까지 받는다는 소문에 성 안의 모두가 타나를 귀히 여겼다. 시녀들은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넸고, 기사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섰다.대부분의 뜻은 하나였다.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타나 또한 불편할리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눈치 보며 숨죽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단 한 명, 칼데론의 사도인 몰틴은 달랐다. 그는 빼어난 외모와는 달리 감정 따윈 없다는 듯 굴었다. 자꾸만 변해가는 성안의 분위기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종알거리며 군주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타나는 늘 눈엣가시이자 불필요한 변수일 뿐. 삼백 년 만에 귀환한 군주는 아르켈을 칠 궁리는커녕, 고작 게이트에 대한 보고나 받으며 타나의 곁을 맴돌고.그걸로도 모자라 가끔은 형체를 숨긴 채 정화실을 기웃거리고. 도대체 별 볼일 없는 인간의 몸을 왜 그렇게 숨어서 보는 거냐고.오늘은 평소와 다른 목적으로 타나의 방을 찾았다.일 년에 한번, 칼데론이 홀바인 산맥으로 흑룡 사냥을 떠나는 날이니까. 이건 기회다. 오늘처럼 성의 중심이 완전히 비는 시간이라면, 이 건방진 인간에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타나 아가씨.”의자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던 타나가 눈웃음을 지었다.오늘따라 하늘을 뒤덮은 매캐한 연기가 조금은 걷힌 것 같아 상쾌한 기분에 자연스레 밝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몰틴 님!”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 인간은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왜 이 성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쉬는가. “군주님께서는 사냥을 나가셨습니다.”“아, 알아요. 흑룡의 송곳니는 최고의 전리품이라지요.”무방비한 얼굴, 이미 알고 있다는 뉘앙스. 그게 더 불쾌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얼마나 쉽게 통제 가능한 존재인지 제대로 깨닫게 해줄 시간.방문이 쾅!
절박한 외침에 로일드는 잠시 침묵했고, 칼데론은 두통이 몰려온다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인간은 생각보다 더 멍청하고 겁이 많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죄송합니다. 제가 그 전갈입니다.”로일드의 고백에 타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네에에...?”“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그러니까 방금 전 그 전갈 괴물이 로일드 님이었다는 말이지?그동안 이곳에서 놀랄만한 일은 이미 겪을 만큼 겪었다. 순간 이동, 벼락을 휘어잡는 손, 말하는 개구리 등등.그래도 전갈은 너무너무 무섭단 말이야. 잠깐만, 그럼 혹시 칼데론도 막 다른 걸로 변신하고 그러나?“그...”“말씀하십시오.”“두 분 다... 변신술이 가능한 거예요?”칼데론과 로일드가 눈을 맞췄다. 그러더니 형태가 무너지듯 일그러지며 존재 자체가 재배열되듯 뒤바뀌었다. ?거대한 표범 두 마리가 침대 위에 앞발을 턱! 올렸다.매서운 눈동자, 침대를 뚫어버릴 듯한 기다란 발톱까지. “아...”픽.또다시 정신을 잃은 타나의 모습에 표범 두 마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귀엽지 않은가 보군.”“취향이 까다로운 인간이네요.”침실 안에는 기절한 인간 하나와 반성 없는 표범 두 마리만 남아 있었다. 칼데론은 오랜만에 변신한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방안을 느릿하게 거닐었고, 로일드는 풍성한 꼬리를 치켜세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타나가 몸을 뒤척였다.둘의 귀가 쫑긋 서올랐고 이내 같은 곳을 응시하며 숨을 숙였다.흐릿하게 떠오르는 눈꺼풀, 거대한 털 뭉치 두 개가 다시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번엔 다행히 기절하지 않았다.대신, 현실적인 결론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진짜.. 여기서 못 살겠어요...!”생각지도 못한 말에 로일드가 한숨을 내쉬었다.칼데론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표범뿐인가? 훨씬 더 위험하고 흉흉한 형태도 가능하지만, 나름 귀여운 동물로 배려했거늘. “이 또한 익숙해져.”말하는 표범은 여전히 놀라웠지만, 빤히 보고 있자니 좀 맹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