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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화령
본능적으로 반아영에게 전화해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분명했다.

반아영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나는 떠나야 했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다.

그만두자.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떠나기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컴퓨터를 끄고 짐을 챙겨 떠나려던 찰나 뜻밖에도 임우혁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 동영상이었다.

동영상 썸네일에는 그와 반아영이 함께 강단에 선 채 화면 밖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방금 찍은 건가?’

심장이 철렁했지만 그래도 동영상을 클릭했다.

강단에는 선생님이 서 계셨는데 동호의 부모님을 불러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반아영이 임우혁의 손을 잡고 올라왔다.

감정에 무딘 그녀가 지금 이 순간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고 있었다.

반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혁이는 나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이에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이었고 대학에 가서야 얘가 고백했죠... 졸업 후 우리는 행복하게 결혼의 길로 들어섰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고 완벽한 남자를 만난 거예요.”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임우혁이 반아영의 첫사랑이라고?’

분명 나와 연애할 땐 내가 첫사랑이라고 했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다정하게 대해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하며 연애할 때부터 그녀의 말에 다 따랐고 결혼 후에는 하늘의 별까지 따다 줄 기세로 그녀를 존중해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결말이 이런 것이라니.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다 못해 바닥에 내던져져 무참히 짓밟혔다.

숨이 막힐 듯한 고통에 나는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했다.

‘반아영, 너는 처음부터 나를 속여왔구나.’

그녀의 거짓말은 나와 연애할 때부터 시작된 거였다.

결혼 생활이 거짓으로 가득 찼던 게 아니라 애초에 반아영은 단 한 마디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상은 계속되고 화면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한 부모가 반아영에게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부추기며 어떤 로맨틱한 일들이 있었냐고 물었다.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반아영과 막 사귀었을 때 나도 그녀를 위해 정성껏 로맨틱한 깜짝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점점 더 냉담해지기만 했다.

반아영은 로맨틱한 게 제일 싫다고 말했다.

종교 수행자의 눈에 로맨스는 쓸모없는 속임수에 불과하고 진심과는 비교도 안 된다면서.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억누른 채 반아영과 함께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 진심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반아영은 진작 그 마음을 즈려밟고 있었다.

화면에서 반아영의 수줍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와 우혁이 사이에는 많은 로맨틱한 일들이 있었어요. 정말 다정한 남자라 수없이 다양한 깜짝선물을 준비해 줬죠. 처음 사귀었을 때 사흘 밤을 새워 몰래 손수 가방을 뜨개질했어요. 그런데 당당히 주지 못하고 당첨된 상품이라고 속였죠. 그때 하품을 연발하며 두 눈이 퉁퉁 부은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반아영과 임우혁은 손을 꼭 맞잡고 다정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가방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제가 회사 점심 메뉴가 입맛에 안 맞다고 투덜대니까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우혁이가 직접 만든 음식을 가득 차려놨더라고요. 전부 제가 좋아하는 요리였는데 이 사람이 최고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반나절 동안 온 도시를 뛰어다녔고 요리하다 손에 화상까지 입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반아영은 감정에 취해 임우혁의 두 손을 들어 올린 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입을 맞췄다.

“그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때 안타까운 마음에 멍청하다고 나무랐는데 정작 본인은 후회가 없다며 내가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어요. 또 한 번은 제가 열이 심하게 나서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우혁이가 잠도 자지 않고 사흘 밤낮 내내 곁을 지켰어요. 제 목숨이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다면서...”

반아영이 하나씩 이야기할 때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내 심장을 찌르는 칼날이 되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영상은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나는 바로 전원을 껐다.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반아영의 모든 로맨틱한 이야기는 마치 수백 명이 나를 천천히 난도질해 죽이는 형벌 같았다.

“이건 다 내가 해준 거잖아!”

목이 터지라 소리치면서 내 가슴은 서서히 차갑게 식어갔다.

차갑고 고고하며 무정한 아내의 모습은 가면이었다.

반아영의 냉담함은 오직 나에게만 해당됐다.

내가 해줬던 걸 전부 기억하면서 그걸 다른 남자의 공으로 돌렸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사흘 밤을 새워 만든 가방을 반아영에게 선물했을 때 그녀는 형식적으로 고맙다는 말만 한 뒤 다시는 메지 않았다.

매번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녀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만 했다.

나는 한동안 그 일로 속상해하며 주문하기 전에 반아영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반아영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그 만찬도 그녀는 사실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종교 수행자는 사치와 낭비를 금기하는데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마음속으로 그녀를 전혀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창백한 얼굴로 변명했다. 단지 그녀가 기쁘게 웃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반아영은 내 말을 무시한 채 사원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그때 내 손에 가득한 화상 자국을 그녀가 모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다 알면서도 걱정하는 게 귀찮았던 거다.

반아영이 고열에 시달렸을 때 나는 팀에 휴가를 내고 밤낮없이 그녀를 돌봤다.

나한테 가라고 하니 반아영이 나를 걱정하는 줄 알고 그녀 목숨이 내 것보다 소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깊은 마음은 오직 그녀의 혐오만 불러왔다.

고열은 부처님이 자신에게 내린 시험이자 복이라며 내게 방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내가 더럽고 무지하다고 싫어했다.

그 일로 나는 자책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종교의 각종 지식을 배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것처럼 병이 복이라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내 학식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반아영이 나를 밀어내기 위해 둘러댄 핑계였을 뿐이었다.

반아영은 내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다른 이에게 향해 있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반아영, 내가 잘못했네. 너와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슬픔에 무뎌지면 감정이 사라진다고 했던가.

눈물은 진작 말라버렸다.

이쯤 되니 오히려 해방감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우연한 기회에 반나절 동안 모든 진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젠 정말 끝내야겠다.

이 우스운 결혼을.

무정한 아내 앞에서 천한 내 마음은 고이 접어둬야겠다.

호텔 프런트에서 종이와 펜을 받아 이별 편지를 썼다.

[반아영, 네가 동의하든 말든, 계율 기간 중이든 아니든 우리 관계는 공식적으로 끝이야. 나는 너와 네 첫사랑, 임우혁을 위해 이만 물러날게. 동호는 너희 둘의 아들이겠지? 이해가 안 돼. 그렇게까지 힘들게 숨기고 나와 지내는 게 괴로웠으면서 왜 나와 결혼했어? 5년이야. 그 5년 동안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네가 깨닫게 해줬어. 솔직히 너무 울어서 이젠 흘릴 눈물도 없어. 하지만 너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불쌍해서 그런 거야. 네 남편으로서 너를 뼈저리게 미워하지만 소방관으로서 호텔에서 너희 가족을 구한 건 후회하지 않아. 지금 나는 또 작전에 나가. 그냥 내가 이번 작전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 편지로 작별 인사를 대신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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