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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장 보러 가는 날

Author: popon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5 20:05:24

민우와 카페 나들이를 다녀온 다음 날. 하숙집의 아침은 평소보다 다소 한산했다.

주말을 맞아 하숙집 찬장을 점검하던 임순정은 냉장고 문을 큼직하게 열어보고는 털썩 한숨을 쉬었다.

“언제 이렇게 또 고기랑 계란이 싹 비었네. 남은 게 하나도 없어.”

순정은 식탁에 앉아 메모지에 큼직하게 '장보기 목록'을 써 내려갔다.

대파, 마늘, 돼지고기, 계란, 두부, 참기름 …… 목록이 끝도 없이 길어졌다.

혼자 들고 오기엔 무조건 팔이 빠질 분량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나처럼 “누님! 하숙집에서 내가 힘 제일 센 거 아시죠? 누님 담당 짐꾼은 나니까 비키세요!” 하면서 태성이가 신나서 운동화 끈을 매고 따라나섰을 터였다.

하지만 하필 오늘 태성이는 아침 일찍부터 운동부 주말 특별 훈련이 있어 집을 비운 상태였다.

순정은 장바구니를 챙겨 들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마침 소파에서 머리를 털며 막 방에서 나온 한도경과 눈이 마주쳤다.

늘 늘어지게 자던 놈이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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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101화. 장 보러 가는 날

    민우와 카페 나들이를 다녀온 다음 날. 하숙집의 아침은 평소보다 다소 한산했다.주말을 맞아 하숙집 찬장을 점검하던 임순정은 냉장고 문을 큼직하게 열어보고는 털썩 한숨을 쉬었다.“언제 이렇게 또 고기랑 계란이 싹 비었네. 남은 게 하나도 없어.”순정은 식탁에 앉아 메모지에 큼직하게 '장보기 목록'을 써 내려갔다.대파, 마늘, 돼지고기, 계란, 두부, 참기름 …… 목록이 끝도 없이 길어졌다.혼자 들고 오기엔 무조건 팔이 빠질 분량이었다.평소 같았으면 언제나처럼 “누님! 하숙집에서 내가 힘 제일 센 거 아시죠? 누님 담당 짐꾼은 나니까 비키세요!” 하면서 태성이가 신나서 운동화 끈을 매고 따라나섰을 터였다.하지만 하필 오늘 태성이는 아침 일찍부터 운동부 주말 특별 훈련이 있어 집을 비운 상태였다.순정은 장바구니를 챙겨 들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마침 소파에서 머리를 털며 막 방에서 나온 한도경과 눈이 마주쳤다.늘 늘어지게 자던 놈이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어, 도경아. 너 마침 잘 나왔다.”“왜? 아침부터 어디가?”도경이 특유의 낮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으며 정수기로 걸어갔다.순정이 장보기 목록 메모지를 팔랑이며 눈웃음을 지었다.“주말이라 하숙집 식재료 좀 사 오려고. 오늘 태성이 훈련 갔잖아. 시장까지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리니까 같이 가자.”“내가 왜? 싫은데.”도경이 단칼에 거절하며 컵에 물을 따랐다.하지만 퉁명스럽게 답하는 표정과 달리, 도경의 시선은 은근슬쩍 순정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어제 서민우와 단둘이 카페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속이 꼬여 있었으면서, 정작 순정이가 같이 가자고 하니 내심 거절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순정은 전생의 짬밥이 느껴지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경의 팔을 툭 건드렸다.“야 한도경. 우리 사이에 치사하게 이럴래? 오늘 살 거 많단 말이야. 나 팔 빠져. 고기 사 오면 오늘 저녁에 제육볶음 해줄 테니까 같이 가자, 응?”도경은 물을 한 모금 삼키더니, 괜히 헛기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100화. 잠 못 자겠는데

    잠시 후, 민우가 노릇하게 구워진 소금빵과 타르트, 그리고 커피를 쟁반에 담아 들고 왔다. 순정은 따뜻한 소금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버터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와! 진짜 맛있다! 민우야, 이거 대박이다! 겉바속촉 그 자체야!" 순정이 눈을 크게 뜨고 감탄하며 빵을 복스럽게 오물거리자, 민우는 제 커피잔을 들 생각도 못 한 채 순정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다물어진 민우의 입가에 부드럽고 다정한 호선이 그려졌다. "그렇게 맛있어?" "응! 진짜 최고야. 아 맞다, 근데 너 커피 색깔이 왜 그렇게 검냐?" 순정의 시선이 민우 앞에 놓인 사약처럼 시커먼 커피에 닿았다. 민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샷 두 번 추가해서 쿼드 샷으로 주문했어. 평소에 이렇게 마셔서." "뭐? 샷 추가를 두 번이나 했다고?" 순정은 빵을 손에 든 채 갑자기 진지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너 의대생이라 맨날 밤새고 공부하느라 피곤한 건 아는데, 그렇다고 그런 걸 자꾸 마시면 어떡해, 응? 나중에 진짜 잠 못 자서 고생하면 그땐 어쩌려고 그래. 불면증이라는 게 한 번 생기면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 줄 알아? 밤에 잠은 안 오지, 낮에는 피곤해서 정신을 못 차리지, 몸은 몸대로 축나지. 사람이 잠을 푹 자야 면역력도 좋아지고 몸도 회복하고 그러는 거야. 너 의대생이잖아. 이런 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냐. 젊다고 무조건 괜찮은 줄 알지 말고, 있을 때 건강 챙겨. 내가 괜히 이런 소리 하는 줄 알아?" 정작 순정의 볼과 입가에는 고소한 빵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전생에 겪어본 삶이 있어 진지한 표정으로 조언을 늘어놓았지만, 민우가 보기엔 그저 애늙은이처럼 구는 동갑내기일 뿐이었다. 본인은 제법 어른스럽다고 착각하는 모양인지, 그 천연덕스럽고 엉뚱한 모습이 민우의 눈에는 더욱 귀여웠다. 민우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99화. 일단 하나만 골라 봐

    오후 3시 정각. 하숙집 대문 앞으로 나가자, 약속 시간에 단 1분도 늦지 않고 도착한 민우가 서 있었다.평소의 편안한 맨투맨 차림 대신, 깃이 깔끔하게 정돈된 셔츠 위에 가벼운 니트를 레이어드한 차림이었다."순정아, 왔어?"민우는 순정을 보자마자 코끝에 걸린 안경테를 고쳐 쓰며 인사를 건냈다.매일 보는 식구인데도 밖에서 만나니 왠지 어색한 기분에 순정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며 피식 웃었다."응. 민우야, 어디로 가는데? 학교 앞 맛집이라도 가는 거야?""아니, 여기서 버스 타고 세 정거장만 가면 나오는 데야. 가자."민우는 자연스럽게 길 차도 쪽으로 자리를 바꾸어 서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약 10분 뒤,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주택가 골목 안쪽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베이커리 카페였다.유리창 너머로 감성적인 노란 조명이 흐르고, 문을 열자마자 고소하고 달콤한 버터 향과 갓 볶아낸 원두의 쌉싸름한 향기가 코끝을 가득 채웠다.쇼케이스 안에는 갖가지 형태의 노릇노릇한 빵들과 아기자기한 디저트들이 보석처럼 진열되어 있었다."와... 여기 진짜 예쁘다. 이런 골목에 이런 데가 있었어?"순정이 감탄을 터뜨리며 눈을 반짝이자, 옆에 서 있던 민우의 입꼬리가 뿌듯함으로 슬며시 올라갔다.민우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메모장을 꺼내 들더니, 안경 너머의 또렷한 눈동자로 쇼케이스와 메모장을 번갈아 비교하며 읊조렸다."여기가 원래 원두 배전 방식으로 유명한 데인데, 빵도 당일 생산해서 유기농 밀가루만 쓴대. 블로그 후기랑 커뮤니티 평점이 제일 높더라고. 특히 이 집은 소금빵이랑 크림 브륄레 타르트가 시그니처인데……."민우가 조곤조곤 읊어 내려가는 정보의 양과 깊이에 순정은 입을 턱 벌렸다.단순한 맛집 검색 수준이 아니었다. 시그니처 메뉴의 재료 성분부터 후기 비교 분석까지 마치 논문 요약본처럼 정돈되어 있었다."야...너 이거 찾아보느라 공부 못 한 거 아니지?"순정이 황당하면서도 기가 차서 묻자, 민우는 헛기침을 살짝 '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98화. 어제의 여운

    중간고사 뒷풀이를 하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창문 너머로 서늘한 가을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지만, 순정의 머릿속은 온통 지난밤의 잔상들로 어지러웠다. 어두운 노래방 안에서 들려오던 도경의 묵직한 노랫소리, 순정의 귓가에 낮게 파고들며 밖으로 나가자던 이현의 나른한 목소리, 그리고 좁은 소파 위에서 나란히 앉았을 때 어깨에 고스란히 전해지던 두 사람의 단단한 체온까지. 어젯밤 일어났던 사소한 순간들이 잔상처럼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소라면 그냥 흔한 동생들의 장난이나 무뚝뚝한 남사친의 행동으로 넘겼을 일들이었다. 하지만 가디건 소매가 잡혔던 감촉이나, 조명 아래서 제 얼굴을 한참이나 담아두던 두 남자의 깊은 눈빛은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릿속에서 쉽게 휘발되지 않았다. '아휴, 임순정. 미쳤냐? 애들이랑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래, 술을…….' 순정은 괜히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나와 손바닥으로 화끈거리는 볼을 찰싹 때렸다. 지난 3개월 동안 하숙집에서 함께 지내며 모두를 그저 편한 친구나 식구처럼만 여겨왔는데, 어제 이후로 이상하게 그들의 시선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특별한 감정이 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예전처럼 그들을 무조건 편한 동생이나 친구로만 대하기가 한결 어색해진 것만은 분명했다.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도, 행동 하나를 할 때도 이상하게 시선이 신경 쓰였다. 무심하게 그어 두었던 선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순정 스스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순정이 거실 테이블 위를 닦으며 혼자 한숨을 푹 쉬고 있을 때였다. 2층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차분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에서 나온 민우가 순정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편안한 맨투맨 차림의 민우는 평소처럼 단정하고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순정과 눈이 마주치자 눈빛에 살짝 수줍은 기색이 스쳤다. 그는 코끝까지 내려온 안경테를 긴 손가락으로 슬쩍 치켜올리며, 순정의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97화. 플레이리스트

    노래방 7호실의 시끌북적했던 열기를 뒤로하고 나오자, 알싸하고 차가운 밤공기가 단숨에 볼 끝을 스쳤다. 술기운에 서늘한 밤바람이 더해지니, 거리를 걷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몽글몽글해졌다. “아우, 밖으로 나오니까 갑자기 왜 이렇게 춥냐……” 외투없이 셔츠 한장만 입은 민우가 으슬으슬한지 몸을 움츠리며 긴 팔을 싹싹 비벼대자, 옆에서 걸어가던 체대생 태성이가 기다렸다는 듯 훤칠한 덤치로 민우의 어깨를 거의 감싸 안다시피 덥석 끌어안았다. “아 형! 체대생의 뜨거운 체온을 느끼면서 가시죠! 춥긴 뭐가 춥습니까!” “야, 윤태성! 이거 안 치워? 숨 막혀, 이 무거운 놈아!” “에이, 형은 몸 약해서 감기 걸리면 안됩니다! 가자, 헛둘 헛둘!” 민우가 질색하며 태성이의 굵은 팔통을 쳐냈지만, 태성이는 껄껄 웃으며 민우를 반쯤 들다시피 감싸 안고는 골목 앞쪽으로 신나게 먼저 걸어 나가 버렸다. 두 사람의 훈훈하고 시끄러운 티격태격이 밤거리의 어색함을 단숨에 유쾌하게 풀어주었다. 자연스럽게 조금 뒤처지게 된 순정은 도경과 이현 사이에 끼어 걸었다. 아까 좁은 소파 안에서 느껴졌던 답답한 밀착감은 시원한 밤바람에 날아갔지만, 대신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은근하고 따뜻한 체온이 걷는 내내 양쪽 어깨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던 그때, 뒤에서 붕 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순정이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왼쪽에 서 있던 도경의 탄탄한 팔통이 순정의 어깨를 말없이 툭 끌어당겨 도로 안쪽으로 넣어주었다. 도경은 무심한 얼굴로 차도 쪽으로 자리를 옮겨 서며 덤덤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차 온다. 안쪽으로 걸어.” “어…… 고마워.” “멍 때리지 말고. 술 들어갔으면 앞이나 잘 봐.” 말은 투박하지만 자연스럽게 몸에 밴 도경 특유의 챙김에 순정의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그 순간, 순정의 오른쪽에서 걷던 이현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피식 웃었다. 이현은 도경을 슬쩍 눈여겨보더니, 순정의 어깨 너머로 도

  •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96화. 여기서는 신곡

    반주의 마지막 선율이 은은하게 스러지자마자, 소파 한구석에서 기회를 노리던 태성이가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빼앗아 들며 소리쳤다. “아! 맞다! 오늘 순정이 누나만 한 곡도 안 불렀잖아요!” 태성이의 호탕한 고함에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은밀한 정적이 단숨에 깨졌다. 순정의 오른쪽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현 역시, 잡고 있던 순정이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놓아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게, 누나 노래도 듣고싶다.” 이현의 능청스러운 부추김과 태성이의 집요한 성화가 교차하자, 순정은 손에 쥐인 차가운 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현의 귓속말과 손끝이 남긴 잔여 진동 때문에 볼이 유난히 화끈거렸다. “아, 진짜 왜 그래…… 나 노래 진짜 못 부른단 말이야! 진짜라니까!” “에이, 순정 누나 빼기 없기! 체대생의 자존심을 걸고 누나 노래 듣기 전엔 절대 이 방 문 못 나갑니다!” 태성이가 리모컨을 순정이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태성이의 집요한 성화와 옆에서 나른한 눈빛으로 자신을 압박해 오는 이현의 시선에 못 이겨, 순정은 결국 볼이 빨개진 채 리모컨의 숫자 버튼을 꾹꾹 눌렀다. 수줍게 번호를 입력하고 예약 버튼을 누르자, 어두운 방 안에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발라드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아련한 가사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어…… 나 진짜 못 부르니까 놀리지 마라. 웃으면 진짜 때릴 거야.” 순정이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살짝 했다. 첫 구절을 떼자 시끌벅적하던 방 안이 또다시 거짓말처럼 정적에 휩싸였다. 순정이의 목소리는 화려한 기교나 테크닉은 없었지만, 특유의 맑고 정직한 미성이 담백하게 얹혀 나왔다. '전생에서 정말 오랫동안 좋아하던 애창곡이었는데…… 여기선 아직도 신곡이네.' 마이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차분하게 노랫말을 이어가는 동안, 순정의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몽글몽글해졌다. 지나온 시간과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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