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날 난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네가 스스로 미쳐 날뛴 거라고.”“오빠가 널 말리다가 네 칼에 여러 번이나 찔렸잖아.”“너랑 우리 오빠는 벌써 결혼한 사이야. 4년 전에 결혼했다니까.”“휴, 내가 이렇게 설명해줘도 너는 또 다 잊어버리겠지.”강시아가 한숨을 쉬었다.강시아가 나를 꽤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강시아는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에게 오해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나는 병실 문을 열었다.강시우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나는 강시우의 옆에 앉아 그의 눈썹과 눈을 자세히 살폈고, 코부터 얇은 입술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깊은 밤은 늘 고요했고, 나는 며칠째 강시우의 병상 곁을 지켰다.마치 마법에 걸린 듯, 나는 몸을 숙여 강시우의 입술에 입맞췄다.키스를 하다 보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데, 그때 문득 강시우의 입술에서 반응이 느껴졌다.나는 눈을 번쩍 떴다.어둠 속에서 강시우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깊고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또 울었어?”“울보.”강시우의 쉰 목소리가 부드럽고 장난스럽게 울렸다.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시험을 못 봐서 엉엉 울던 나의 볼을 꼬집으며 강시우는 울보라고 불렀었다.이런 기억이 떠올라 나는 강시우의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응, 들었어.”강시우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났고, 내 손가락을 살며시 구부렸다.“오빠, 난 이미 지옥에 서 있어.”“난, 오빠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줄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그 끔찍한 기억들은 진실이었고, 내 몸은 이미 망가졌으며, 나는 이미 어둠 속에 깊이 잠겼다.하지만 강시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당시 널 괴롭혔던 그 자식들은 이미 응징받았어.”“그 자식들이 감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원한을 품은 자들의 표적이 됐지.”“감옥에 들어간 지 몇 달도 안 돼 죽었어.”“그 자식들이 죽을 때... 시체는 알아볼 수도 없었어.”“그러니까 서은아, 괜찮아. 넌 좋은 여자야. 누구보다도 순수해.”“더러운
[서은이를 안았을 때, 서은이에게 몇 번 칼에 찔렸다.그때 서은이는 계속 고개를 흔들며 눈을 뒤집고 있었다.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뺨을 한 대 때렸는데, 서은이가 그걸 기억할 줄은 몰랐다.다음에는 서은이가 오빠 뺨을 때려도 좋아.][6월 4일 맑음병원에서 깨어나 며칠간 일기를 쓰지 못했다.그래, 나도 심하게 출혈했다.서은아, 네가 찔렀던 자리들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기나 해?][6월 5일 맑음서은이가 내게 말도 걸지 않는다.더는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6월 8일 비밤중에 네가 잠든 뒤에야 몰래 네 침대 곁에서 널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네가 날 싫어하니까.][6월 9일 비괜찮아.오빠가 가장 두렵지 않은 건, 바로 네가 오빠를 싫어하는 거란다.][6월 13일 맑음서은이가 혼자 도망갔다.나는 엄청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화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결국 서은이를 찾았다.서은이는 계속 문가온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네가 진짜로 날 상상해낸 거구나.] [6월 20일 비서은이는 약을 먹어야 한다.솔직히 말하면, 난 서은이에게 절대 화를 낼 수가 없다.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화가 나지 않는다.나중에 조용히 서은이에게 집을 하나 사줬다. 서은이는 이제 매일 그곳에서 지낸다.약을 잘 먹는지 지켜보고 있다.][6월 25일 비하, 문가온이란 녀석 정말 귀찮군.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질투하다니, 내가 왜 이러나?][7월 1일 비한 달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서은이가 약을 먹기 시작했고, 마침내 문가온이 서은이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서은아, 슬퍼하지 마.나를 한번 봐줘.] [7월 6일 맑음서은이가 순해졌다.정말 순해진 걸까?잘 모르겠다.서은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는 신호 같다.] [7월 16일 맑음어떻게 하면 네가 나를 볼 수 있을까?괜찮아.난 끝없이 낙관적이니까.] [7월 29일 눈L국에 도착했다.보아하니 이 아이가 여행하는 걸 꽤나 즐기는
강시아를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상상하며 멀리했다.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나는 강시우가 나를 버리길 기다렸다.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기억과 망각을 반복했다.‘나는 오빠를 그렇게도 나쁜 사람으로 상상했는데...’‘오빠는 정말 억울하지 않았어?’‘강시우, 왜 나를 떠나지 않은 거야?’눈물이 휴대폰 화면에 떨어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문득 누군가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문가온이었다.사실 문가온은 내가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다.지금 소년이 나타난 것은 아마도 강시우가 없고 내가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일에는 징후가 있었다.약은 줄곧 우유안에 섞여 있었다.예를 들어, 신루아가 나타난 것은 내가 약 먹기를 거부하고 약을 끊으면서 시작된 환각 때문이었다.내가 임신했다고 상상했던 그날, 강시우는 약이 든 우유를 더 이상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문가온이 나를 데리고 간 그날 밤, 나는 며칠 동안 몰래 약을 버렸다.그러자 강시우는 내게 억지로 약을 먹였고, 문가온의 모습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내가 환각에서 깨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문가온이 불현듯 다시 나타났다.소년은 늘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미소는 예전의 강시우와 똑같았다.소년이 내게 뭔가를 전하려는 듯했다.나는 소년의 뒤를 따라 강시우의 짐 더미 앞으로 갔다.전에는 강시우가 무엇을 가져왔는지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는 미친 듯이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마침내 가죽 표지의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서은의 치료 일기][5월 11일 맑음오늘도 서은이는 기억을 잃었다.이번에는 나를 가해자로 착각했다.내가 맡게 되는 역할은 늘 이렇게 좋지 않은 역할들이었다.서은아, 차라리 나를 네 구원자로 생각해 줄 순 없니?오빠는 너무 서운해.][5월 12일 맑음손목에 담뱃불을 지지니 정말 아프더라.하지만 이것이 네가 그때 겪었던 고통이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욱 아프구나.서은아.난 너를 속이지 않았어.네
[진짜... 구급차도 왔던 거 같은데 수업중에 창문으로 봤음.][뭔데? 자세히 좀 말해봐... 개웃기네.][여학생 피범벅으로 실려나갔다니까.][몇 반임?? 몇 반??][그건 말 못 해줌... 그냥 장면 진짜 씹극혐 수준이었음.][설마 살인사건?][그거보다 더 센 거 들려줄까?][아 답답해 죽겠네 빨리 말해라.][말했다가 뒤끝 오지게 걸리면 어쩌려고... 걍 접음.]사실, 굳이 숨길 일도 아니었다.나는 고개를 숙여 내 배를 바라보았다.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날 나는 임신했다고 확신했었다.평소에도 생리불순이 있었고, 구토도 한여름 더위 먹었을 때 흔한 증상이었을 뿐이다.가장 황당한 건, 임신 테스트기도 하지 않은 채 임신이라고 단정 지었다는 점이다.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나는 그토록 내 임신을 확신했었다.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나는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다.인간은 가혹한 현실을 직면하기를 꺼리는 존재이다.돌이켜보면, 나는 수없이 많은 순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속여왔다.그래서 진실과 마주칠 때마다 머릿속이 폭발할 듯한 혼란을 느꼈던 것이다.왜 내 기억은 늘 조각조각 나있을까?왜 그날 강시우가 담뱃불로 나를 지진 기억은 선명한데,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을까?왜 강시우는 그토록 집요하게 나를 지켜보며 우유를 마시라고 했을까?왜 신루아와 문가온은 마치 안갯속에서처럼 희미하게 등장했을까?왜 강시우의 친구들은 나를... 정신병자라 불렀을까....고등학교 2학년 그해 여름, 매미 소리가 가득한 방학 중에 나는 평생에서 가장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가장 폭력적인 일을 겪었다.처음에는 그저 학교에 에어컨을 설치하러 온 몇몇 인부들이 길을 물었을 뿐이었다.정말 그것뿐이었다.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단순히 올바른 길을 알려주었을 뿐이다.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남자 화장실로 끌고 갔다.석양의 마지막 잔혹한 붉은빛부터 밤하늘의 별들이 도시를 덮을 때까지,
강시우가 없으니 한결 자유로웠다. 적어도 강시우가 끈질기게 붙어있지 않아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숙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꽤 많았고, 나는 그곳에서 한 어린 여고생을 만났다.열여섯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고생은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온 듯했다.아침에는 하늘이 맑고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오후가 되자 먹구름이 온 설산을 뒤덮었다.저녁 무렵에는 갑작스러운 폭설이 쏟아졌고, 음침한 날씨에 하늘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마침 강시우의 등산 일행이 꽤 많았기에 모두가 순식간에 불안해했다.여러 가족들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통신 두절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숙소 로비에는 사람들로 붐볐다.직원들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일행 중 몇몇은 경험이 풍부한 등산객이라 갑작스러운 눈보라도 일반인보다 훨씬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구조대를 기다리려면 어쨌든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식당의 분위기는 점점 더 침울해져 갔다.열여섯, 열일곱 살쯤 돼 보이는 여고생이 내 옆에서 말없이 한 숟갈씩 밥을 뜨고 있었다.여고생의 부모님도 그 등산대에 있는 것 같았다.“연아, 어디 갔었어? 이모가 한참 찾았잖아.”갑자기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우리나라 말로 말하는 소리에 나도 고개를 들었다.나는 그 여성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그 여성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어머... 혹시 한서은?”나는 그 여자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참, 나 기억 안 나? XX고등학교 2학년 3반! 임효설! 우리 옛날 동창이잖아!”처음에 누군가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자 나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괴리감이 들었다.나는 필사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그 얼굴들을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모든 것이 흐릿하게 뒤섞여, 누구의 얼굴도 구분할 수 없었다.“에이, 우리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잖아. 내가 네 앞자리였
“안 추워?”강시우는 이미 나를 옷으로 칭칭 감아놓고도 부족했는지 목도리까지 둘러주려 했고, 나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뒤에서 강시우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마치 작은 곰 같네.”내뱉은 숨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우리는 쿡산 기슭에 자리 잡은 숙소에 묵고 있었다.한눈에 보기에도 고급 손님들을 위해 지어진 숙소였다.최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고, 비수기임에도 숙소에서 우리나라 관광객 한두 명을 마주칠 수 있었다.“내일은 어디 가고 싶어?”강시우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정교하게 빵에 버터를 발랐다.내가 하면 엉망진창이 되는데, 강시우는 마치 예술가처럼 완벽하게 발랐다.결국 강시우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내 빵을 자기 접시로 바꿔주었다.숙소 주인이 사냥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처음에는 무서워 보였는데, 며칠 지내다 보니 먹을 것만 주면 꼬리를 흔드는 순진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강시우가 방금 발라서 내 접시에 놓아준 빵을 개에게 던져주었다.맞은편의 남자는 내가 이럴 줄 몰랐던 듯했다.강시우는 테이블 아래로 다리로 나를 살짝 건드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서은아, 혹시 내가 뭘 잘못했어?”나는 강시우의 말에 대답하기 귀찮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밤새 거세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한결 잦아든 듯했다.마당의 눈은 무릎까지 올라올 만큼 두껍게 쌓여있었고, 수많은 여행객들이 밖에서 하얀 눈을 즐기고 있었다.숙소의 안내 책자에는 이 산맥의 오랜 전설이 실려 있었다.마오리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이 있어서 나는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았다.책자에 따르면, 눈 덮인 산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정상 근처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요정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뻔한 홍보용 이야기였기에 대충 훑어보고 옆으로 밀어두었다.하지만 강시우가 내 귀에 계속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짜증이 났다.“한가하다면 이걸 찾아와 보시지.”사실 이건 그저 짜증이 나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하지만 강시우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