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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3 07:17:16

전생의 카시안은 아리아가 제발 바라봐 달라고 애원할 때조차 단 한 번도 그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그를 버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반응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역겨운 본능이군.'

아리아는 입가를 서늘하게 말아 올렸다. 알파 킹 특유의 지배욕과 독점욕이었다.

한편, 공작가를 떠나 실버문 팩의 중앙 성채로 돌아가는 거대한 검은 마차 안.

상석에 앉은 카시안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억센 손가락 사이에는 반으로 접힌 아리아의 파혼서가 쥐어져 있었다.

"전하."

맞은편에 앉아있던 카시안의 근위대장 녹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공작가에서의 일이 매끄럽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카시안은 손에 쥐어진 파혼서를 무심하게 문지를 뿐이었다.

"아리아 영애가 파혼을 선언했다."

"예? 아리아 영애가요?"

녹스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리아 영애가 알파 킹 카시안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영애가 전하를 향해 파혼을 선언할 리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 속에서 위험천만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본 아리아 영애는 내가 알던 인물이 아니었다."

카시안은 아리아의 차가운 눈빛과, 자신을 향해 내밀던 파혼서, 그리고 자신의 손길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뒤돌아서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 속에 담겨있던 것은 카시안이라는 존재를 향한 지독한 경멸과 완벽한 단념이었다.

"녹스."

"예, 전하!"

"아리아 영애의 주변을 조사해라. 최근 공작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 하나도 놓치지 말고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데 그 파혼서는 공식적으로 수락 기안을 올릴까요?"

녹스의 질문에 카시안은 손에 쥐고 있던 파혼서를 품 안 깊숙한 곳으로 넣었다.

"수락?"

카시안의 목소리에 거친 오만이 서려 있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내 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겠다고 선언했다면, 자신은 그녀를 집어삼켜서라도 제 곁에 묶어둘 것이었다. 파혼서 한 장으로 관계를 끝내려던 아리아의 계산은, 오히려 알파 킹의 잠자고 있던 흉포한 독점욕을 완전히 깨워버린 꼴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공작가의 가주 집무실.

로제 공작은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보고서를 든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류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아리아가 밤새 작성한 실버문 팩 남부 영지의 무역로 개척안과, 카시안과의 정혼을 해제함으로써 공작가가 얻게 될 독립적인 광산 채굴권 확보 방안이 오차 없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 이 완벽한 서류를 정말 네가 혼자 작성했단 말이냐?"

공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리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공작님. 카시안 전하와의 정혼에 묶여있던 탓에 우리 공작가는 그동안 남부 광산의 채굴권을 알파 킹 직속가에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파혼을 통해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한다면, 연간 세입이 최소 세 배 이상 증가할 것입니다."

공작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리아가 제출한 보고서는 가문의 수석 재정관조차 생각지 못했던 완벽하고 혁신적인 사업안이었다.

"또한, 세라피나가 공작가의 자산을 은밀하게 빼돌려 개인 사치품을 구입하던 정황도 함께 정리해 두었습니다. 관리자인 집사와 공모한 영수증 내역입니다."

아리아가 추가 서류를 올려놓자, 옆에 서 있던 세라피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언제 자산을 빼돌렸다고 그래?"

"증거가 여기 있다, 세라피나."

공작의 분노가 친딸인 세라피나를 향했다. 정통성이 없는 친딸을 어떻게든 세워보려 했건만, 아리아의 완벽한 일처리와 세라피나의 비리가 대조되자 공작으로서도 편을 들어줄 명분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리아는 무너져 내리는 세라피나를 뒤로한 채, 우아하게 집무실을 걸어 나왔다. 첫 번째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저택 회랑을 지나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을 때, 방 안에는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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