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전생의 카시안은 아리아가 제발 바라봐 달라고 애원할 때조차 단 한 번도 그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그를 버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반응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역겨운 본능이군.'
아리아는 입가를 서늘하게 말아 올렸다. 알파 킹 특유의 지배욕과 독점욕이었다.
한편, 공작가를 떠나 실버문 팩의 중앙 성채로 돌아가는 거대한 검은 마차 안.
상석에 앉은 카시안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억센 손가락 사이에는 반으로 접힌 아리아의 파혼서가 쥐어져 있었다.
"전하."
맞은편에 앉아있던 카시안의 근위대장 녹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공작가에서의 일이 매끄럽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카시안은 손에 쥐어진 파혼서를 무심하게 문지를 뿐이었다.
"아리아 영애가 파혼을 선언했다."
"예? 아리아 영애가요?"
녹스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리아 영애가 알파 킹 카시안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영애가 전하를 향해 파혼을 선언할 리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 속에서 위험천만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본 아리아 영애는 내가 알던 인물이 아니었다."
카시안은 아리아의 차가운 눈빛과, 자신을 향해 내밀던 파혼서, 그리고 자신의 손길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뒤돌아서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 속에 담겨있던 것은 카시안이라는 존재를 향한 지독한 경멸과 완벽한 단념이었다.
"녹스."
"예, 전하!"
"아리아 영애의 주변을 조사해라. 최근 공작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 하나도 놓치지 말고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전하. ...그런데 그 파혼서는 공식적으로 수락 기안을 올릴까요?"
녹스의 질문에 카시안은 손에 쥐고 있던 파혼서를 품 안 깊숙한 곳으로 넣었다.
"수락?"
카시안의 목소리에 거친 오만이 서려 있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내 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겠다고 선언했다면, 자신은 그녀를 집어삼켜서라도 제 곁에 묶어둘 것이었다. 파혼서 한 장으로 관계를 끝내려던 아리아의 계산은, 오히려 알파 킹의 잠자고 있던 흉포한 독점욕을 완전히 깨워버린 꼴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공작가의 가주 집무실.
로제 공작은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보고서를 든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류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아리아가 밤새 작성한 실버문 팩 남부 영지의 무역로 개척안과, 카시안과의 정혼을 해제함으로써 공작가가 얻게 될 독립적인 광산 채굴권 확보 방안이 오차 없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 이 완벽한 서류를 정말 네가 혼자 작성했단 말이냐?"
공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리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공작님. 카시안 전하와의 정혼에 묶여있던 탓에 우리 공작가는 그동안 남부 광산의 채굴권을 알파 킹 직속가에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파혼을 통해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한다면, 연간 세입이 최소 세 배 이상 증가할 것입니다."
공작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리아가 제출한 보고서는 가문의 수석 재정관조차 생각지 못했던 완벽하고 혁신적인 사업안이었다.
"또한, 세라피나가 공작가의 자산을 은밀하게 빼돌려 개인 사치품을 구입하던 정황도 함께 정리해 두었습니다. 관리자인 집사와 공모한 영수증 내역입니다."
아리아가 추가 서류를 올려놓자, 옆에 서 있던 세라피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언제 자산을 빼돌렸다고 그래?"
"증거가 여기 있다, 세라피나."
공작의 분노가 친딸인 세라피나를 향했다. 정통성이 없는 친딸을 어떻게든 세워보려 했건만, 아리아의 완벽한 일처리와 세라피나의 비리가 대조되자 공작으로서도 편을 들어줄 명분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리아는 무너져 내리는 세라피나를 뒤로한 채, 우아하게 집무실을 걸어 나왔다. 첫 번째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저택 회랑을 지나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을 때, 방 안에는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키스는, 전생의 오해와 슬픔을 완벽하게 씻어내는 구원의 서약이었다.한참 뒤, 아리아의 입술을 살포시 떨어뜨린 카시안은 그녀의 손을 가져가 제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붕대 틈새로 피어오르던 '대속의 낙인'은 이제 사악한 독기가 완벽히 정화되어, 아리아의 은빛 마력과 결합한 영원한 수호의 은빛 인장으로 변해 있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었다."아리아."카시안의 음성에 진실된 은애가 서려 있었다."나는 이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왜 너를 위해 영혼을 바쳤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 일만 번의 삶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망설임 없이 너를 선택하고,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던질 것이다."카시안의 오만하면서도 절박한 고백에,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에 맑은 눈물 한 방울이 고였다가 밤바람에 날려갔다.아리아는 손을 올려 카시안의 단단한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알고 있습니다, 카시안."아리아의 완벽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카시안의 영혼을 감싸 안았다."당신은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단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오직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구원자였습니다."아리아는 카시안의 목을 살포시 감싸 안으며 그에게 바짝 밀착했다."그러니 이제는 후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내게 보여준 그 미칠 듯한 사랑과 안달은... 이제 내 완벽한 왕국에서 영원히 보상받을 테니까요.""아리아..."카시안은 아리아를 제 품 안에 가득 감싸 안으며, 밤하늘의 은빛 달을 향해 낮고 사나운,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알파의 포효를 내뱉었다.전생의 비극적 굴레와 오해를 완벽하게 태워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제국의 정점에 선 여왕 아리아. 그리고 그녀의 발치 아래 무릎을 꿇고 제 목숨과 영혼을 바쳐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알파 킹 카시안.알파 킹의 후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그들의 눈앞에는 오직 완벽한 구원과 영원한 사랑만이 찬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완결]
두 사람의 대치는 더 이상 유혈이 낭자한 오만과 거절의 충돌이 아니었다. 이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과, 가장 성스러운 신성이 하나로 결합한 완벽한 군주들의 행진이었다."하아... 저 신성한 아우라를 보아라!""어쩜 저리 고결하실 수가!""전 대 루나 님께서 돌아오신 것이 틀림없다!"귀족들과 영주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아리아를 멸시하고 세라피나의 가식에 놀아나던 귀족들이, 이제는 아리아의 발치 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영원한 복종을 맹세하고 있었다.아리아는 중앙 단상 아래를 지나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단상 상석에는 전 대 루나의 권능이 봉인되어 있던 고대 알타(祭壇)가 놓여 있었다.아리아가 알타 앞에 서자, 카시안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붉은 실크 위에서 고대 루나 여왕의 두 번째 왕관을 들었다.카시안은 왕관을 아리아의 찬란한 은발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파아아앗—!왕관이 아리아의 이마에 닿는 순간, 그녀의 목에 걸린 '월광의 성석' 펜던트와 반응하며 폭발하듯 피어난 찬란한 은빛 마력이 신전 전체를 환하게 적셨다. 전 대 루나의 구원 마력이 제국 전체로 퍼져나가며, 수십 년간 제국 상층부를 좀먹었던 모든 흑마법 사술의 잔재를 완벽하게 정화했다.아리아는 돌아서서 신전 아래 수만 명의 귀족들과 민중들을 내려다보았다.그녀의 머리 위에 올려진 두 번째 왕관이 은빛 달빛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카시안은 천천히 걸어와 아리아의 뒤에 섰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아리아의 우아한 어깨를 감싸 안듯 가까워졌다."참으로 눈부시군, 내 여왕이시여."카시안의 낮고 굵은 음성이 아리아의 귓가를 스쳤다.카시안은 붉은 실크 받침 위에 놓여 있던 고대 루나 여왕의 두 번째 왕관과, 제국 전체를 지배하는 정식 사제 봉을 들었다.그는 아리아의 발치 아래 오른쪽 무릎을 깊이 꿇었다. 제국 최고의 알파 킹이, 단 한 여인의 구두 굽 앞 바닥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카시안은 왕관을 두 손으로 받쳐 올리며, 붉은 열기가 서린 황금빛 눈동자로 아리아를 올려다보았다."당신이 제국 전체를 정화하고 진정한 군주로 서는 날입니다."카시안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과 깊은 전율이 서려 있었다."내 황위도, 내 알파의 사나운 무력도, 내 목숨까지도 모조리 당신의 발치 아래 바쳤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그 완벽한 왕국에서... 나를 영원히 당신의 검이자 신하로 거두어 주시겠습니까?"그것은 알파 킹 카시안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오만한 복종의 맹세였다.아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카시안의 깊고 맑은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전생을 모르는 남자. 그러나 전생에서도, 그리고 회귀한 지금에서도 오직 목숨을 바쳐 아리아라는 여인을 구원하려 했던 사내.아리아의 입가에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보물고 안에 다시금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아리아는 천천히 단상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는 핏투성이가 된 잔당들의 시체를 차갑게 훑어내렸다. 전생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가문을 침식하며, 카시안을 피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모든 비극의 원흉들이 마침내 이 제국에서 완벽하게 사멸한 것이었다.카시안은 손에 든 검의 피를 털어내고 아리아를 향해 돌아섰다.그 그 황금빛 눈동자에는 전장을 지배했던 사나움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아리아만을 향한 영원한 집착과 은애가 채워져 있었다.카시안은 무릎을 꿇었다.핏투성이가 된 보물고 바닥 위에서, 제국 최고의 지배자인 알파 킹이 단 한 여인, 아리아의 발치 아래 깊이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올려 제 이마에 대었다."마침내... 당신을 위협하던 모든 더러운 사슬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내 여왕이시여."카시안의 낮고 진실된 음성이 보물고를 울렸다."이제 당신의 완벽한 왕국에서... 그 누구도 당신의 빛을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인 카시안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고맙습니다, 카시안 전하."아리아의 완벽하고 따스한 음성이 카시안의 가슴을 적셨다."이제는... 우리 두 사람만의 진짜 맹세를 시작할 차례군요."아리아는 손을 뻗어 카시안의 손가락을 감싸
카시안의 가슴팍에는 여전히 흰 붕대가 감겨 있었으나, 그 황금빛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붉고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황제라는 오만한 위엄 대신, 오직 아리아라는 여왕을 수호하는 수호 기사로서의 단단함이 온몸에 서려 있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녀의 우아한 손을 감싸 안았다.파혼서가 태워져 없어진 이후, 카시안의 안달 어린 불안은 아리아를 향한 깊은 은애와 확신으로 뒤바뀌어 있었다."가류 백작과 검은 뱀 잔당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나, 아리아?"카시안의 낮고 굵은 음성이 아리아의 귓가를 스쳤다.아리아는 카시안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차분하게 웃었다."예, 카시안 전하. 오늘 밤 황성 지하 보물고에서 구시대의 마지막 쥐새끼들을 완벽하게 청소할 생각입니다."카시안의 입가에 흉포하면서도 완벽한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내 황실 근위대와 내 알파의 참살 검이 네 손에 쥐어진 제일 사나운 무기가 되어주지. 오늘 밤... 네 완벽한 여왕 대관식 전에 모든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치워주마."두 사람의 매서운 시선이 집무실 안에서 은밀하게 교차했다. 전생의 오해와 비극을 완벽하게 극복한 두 사람에게, 이제 그 어떤 사악한 적도 위협이 될 수 없었다.---깊은 밤, 황성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고대 마력 보물고'.수백 년간 황실의 성스러운 보물들과 마석들이 봉인되어
아리아가 품고 다녔던 그 파혼서가, 성스러운 은빛 불꽃 속에서 한 줌의 은빛 재가 되어 밤바람에 날려 흩어져 갔다.전생의 비극적 굴레와 오해,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마지막 사슬이 완벽하게 태워져 소멸하는 순간이었다.카시안은 날려 올라가는 은빛 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를 깊게 쏘아보았다."아리아... 방금 무슨 짓을..."아리아는 한 걸음 다가가 카시안의 단단한 가슴팍에 제 손을 살포시 얹었다. 그의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이 아리아의 손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파혼서를 태워 없앴습니다, 카시안 전하."아리아의 서늘하면서도 완벽하게 따스한 음성이 카시안의 귓가를 스쳤다."이제 전하와 나 사이에는 파혼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전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제국의 여왕으로서 전하와 함께할 완벽한 맹세뿐입니다."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마침내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아리아... 내 사랑하는 루나여..."카시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리아의 우아한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으며 그녀를 제 품 안 깊숙이 끌어당겼다. 전생의 참혹한 희생과, 이번 생의 지독한 안달이 완벽하게 구원받는 순간이었다.두 사람의 입술이 달빛 아래에서 성스럽고 뜨겁게 겹쳐졌다.두 번째 왕관을 쓴 완벽한 루나 여왕과, 그녀의 발치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