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칠흑 같은 제복을 입고, 차가운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아 있는 남자.
카시안이었다.
아리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알파의 기운. 카시안은 손에 아리아가 썼던 파혼서를 든 채,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남의 사적 공간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것이 알파 킹 전하의 취미이신가요?"
아리아의 서늘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카시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거대한 체구가 차츰 다가오자 그림자가 아리아의 몸을 길게 덮었다.
"방문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던 점은 사과하지, 영애. 하지만 영애가 던져두고 간 이 종이 쪼가리 때문에 내 집무실이 소란스러워져서 말이야. 직접 확인하러 올 수밖에 없었어."
카시안은 아리아가 쓴 파혼서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이게 무슨 뜻이지? 감히 실버문 팩의 지배자를 향해 이런 식의 파혼 통보라니."
"문장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전하. 전하와 저 사이의 정혼은 전 대 루나이셨던 제 어머니와 알파 킹 가문의 정치적 약조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서거하시고, 제가 전하의 정혼자로서 어떠한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명백해진 지금, 이 약조를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리아는 다가오는 카시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저는 더 이상 전하의 무관심 속에서 가문의 기생충 취급을 당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통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붓아버지와 이부동생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사양하겠습니다."
아리아의 서늘한 정론은 카시안의 정곡을 정확히 찔렀다.
하지만 카시안은 아리아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괴리감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는... 정말로 나를 향한 애정이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다.'
카시안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오기와 지배욕이 들끓었다.
"영애의 사정은 잘 알겠다. 하지만 파혼은 영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버문 팩의 법에 따르면, 루나의 정통 혈통을 지닌 여식과의 정혼은 알파 킹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해제될 수 없다."
카시안이 아리아에게 한 걸음 더 밀착했다. 그의 야생적인 향기와 알파의 중압감이 방 안을 조여왔다.
"영애가 나를 향해 마음을 닫았든 상관없어. 영애는 이 실버문 팩의 유일한 순혈 루나의 딸이다. 그 고결한 혈통을 가진 채 다른 사내에게 가는 꼴은 볼 수 없거든."
그것은 오만한 알파 킹의 독점욕이었다.
"참으로 추악한 오만이군요, 카시안 전하."
아리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카시안의 단단한 가슴을 팍 밀쳐냈다.
순간, 아리아의 손끝에서 눈부신 은빛의 영적 기운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파앗—!
"윽...!"
카시안은 예상치 못한 강력한 영능력의 충격파에 밀려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알파 킹의 강인한 육체를 물리적으로 밀어낼 수 있는 힘. 그것은 오직 완벽하게 각성한 순혈 루나만이 펼칠 수 있는 고대의 성스러운 권능이었다.
"이... 이 힘은...?"
카시안은 제 가슴팍을 더듬었다. 아리아의 손길이 닿았던 자리에 은은한 라벤더 향과 함께 강렬한 고대 마력이 남아 요동치고 있었다.
아리아는 빛나는 자신의 손을 차분하게 내리며 오만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파혼서는 알파 킹 전하의 동의 따위 없이도 원로원과 여사제회의 직권으로 성립시킬 수 있습니다. 순혈 루나의 권능은 알파 킹의 권력 위에 존재하니까요."
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팩 전체를 호령할 수 있는 진정한 여왕, 루나 그 자체였다.
그때, 방 밖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거칠게 열렸다. 로제 공작과 세라피나가 달려 들어왔다.
세라피나는 아리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성스러운 은빛 기운을 목격하고 숨이 턱 막혔다.
'저... 저 빛은 뭐야? 언니가 어떻게 저런 힘을...?'
세라피나는 급히 카시안의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전하! 언니가 또 전하께 무례를 범한 것인가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언니가 갑자기 몸이 이상해진 모양이에요!"
세라피나는 아리아를 정신이 이상해진 여자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카시안은 세라피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치워라."
카시안의 낮고 서늘한 한마디가 방 안을 갈랐다.
"감히 순혈 루나의 영 능력을 '이상한 병' 취급하는 것은, 실버문 팩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다. 한 번만 더 그 미천한 입으로 아리아 영애의 혈통을 폄하했다간 영지 방출형에 처할 것이다."
달빛 아래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키스는, 전생의 오해와 슬픔을 완벽하게 씻어내는 구원의 서약이었다.한참 뒤, 아리아의 입술을 살포시 떨어뜨린 카시안은 그녀의 손을 가져가 제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붕대 틈새로 피어오르던 '대속의 낙인'은 이제 사악한 독기가 완벽히 정화되어, 아리아의 은빛 마력과 결합한 영원한 수호의 은빛 인장으로 변해 있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었다."아리아."카시안의 음성에 진실된 은애가 서려 있었다."나는 이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왜 너를 위해 영혼을 바쳤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 일만 번의 삶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망설임 없이 너를 선택하고,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던질 것이다."카시안의 오만하면서도 절박한 고백에,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에 맑은 눈물 한 방울이 고였다가 밤바람에 날려갔다.아리아는 손을 올려 카시안의 단단한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알고 있습니다, 카시안."아리아의 완벽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카시안의 영혼을 감싸 안았다."당신은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단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오직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구원자였습니다."아리아는 카시안의 목을 살포시 감싸 안으며 그에게 바짝 밀착했다."그러니 이제는 후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내게 보여준 그 미칠 듯한 사랑과 안달은... 이제 내 완벽한 왕국에서 영원히 보상받을 테니까요.""아리아..."카시안은 아리아를 제 품 안에 가득 감싸 안으며, 밤하늘의 은빛 달을 향해 낮고 사나운,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알파의 포효를 내뱉었다.전생의 비극적 굴레와 오해를 완벽하게 태워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제국의 정점에 선 여왕 아리아. 그리고 그녀의 발치 아래 무릎을 꿇고 제 목숨과 영혼을 바쳐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알파 킹 카시안.알파 킹의 후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그들의 눈앞에는 오직 완벽한 구원과 영원한 사랑만이 찬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완결]
두 사람의 대치는 더 이상 유혈이 낭자한 오만과 거절의 충돌이 아니었다. 이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과, 가장 성스러운 신성이 하나로 결합한 완벽한 군주들의 행진이었다."하아... 저 신성한 아우라를 보아라!""어쩜 저리 고결하실 수가!""전 대 루나 님께서 돌아오신 것이 틀림없다!"귀족들과 영주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아리아를 멸시하고 세라피나의 가식에 놀아나던 귀족들이, 이제는 아리아의 발치 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영원한 복종을 맹세하고 있었다.아리아는 중앙 단상 아래를 지나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단상 상석에는 전 대 루나의 권능이 봉인되어 있던 고대 알타(祭壇)가 놓여 있었다.아리아가 알타 앞에 서자, 카시안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붉은 실크 위에서 고대 루나 여왕의 두 번째 왕관을 들었다.카시안은 왕관을 아리아의 찬란한 은발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파아아앗—!왕관이 아리아의 이마에 닿는 순간, 그녀의 목에 걸린 '월광의 성석' 펜던트와 반응하며 폭발하듯 피어난 찬란한 은빛 마력이 신전 전체를 환하게 적셨다. 전 대 루나의 구원 마력이 제국 전체로 퍼져나가며, 수십 년간 제국 상층부를 좀먹었던 모든 흑마법 사술의 잔재를 완벽하게 정화했다.아리아는 돌아서서 신전 아래 수만 명의 귀족들과 민중들을 내려다보았다.그녀의 머리 위에 올려진 두 번째 왕관이 은빛 달빛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카시안은 천천히 걸어와 아리아의 뒤에 섰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아리아의 우아한 어깨를 감싸 안듯 가까워졌다."참으로 눈부시군, 내 여왕이시여."카시안의 낮고 굵은 음성이 아리아의 귓가를 스쳤다.카시안은 붉은 실크 받침 위에 놓여 있던 고대 루나 여왕의 두 번째 왕관과, 제국 전체를 지배하는 정식 사제 봉을 들었다.그는 아리아의 발치 아래 오른쪽 무릎을 깊이 꿇었다. 제국 최고의 알파 킹이, 단 한 여인의 구두 굽 앞 바닥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카시안은 왕관을 두 손으로 받쳐 올리며, 붉은 열기가 서린 황금빛 눈동자로 아리아를 올려다보았다."당신이 제국 전체를 정화하고 진정한 군주로 서는 날입니다."카시안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과 깊은 전율이 서려 있었다."내 황위도, 내 알파의 사나운 무력도, 내 목숨까지도 모조리 당신의 발치 아래 바쳤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그 완벽한 왕국에서... 나를 영원히 당신의 검이자 신하로 거두어 주시겠습니까?"그것은 알파 킹 카시안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오만한 복종의 맹세였다.아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카시안의 깊고 맑은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전생을 모르는 남자. 그러나 전생에서도, 그리고 회귀한 지금에서도 오직 목숨을 바쳐 아리아라는 여인을 구원하려 했던 사내.아리아의 입가에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보물고 안에 다시금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아리아는 천천히 단상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는 핏투성이가 된 잔당들의 시체를 차갑게 훑어내렸다. 전생에서 자신을 괴롭히고, 가문을 침식하며, 카시안을 피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모든 비극의 원흉들이 마침내 이 제국에서 완벽하게 사멸한 것이었다.카시안은 손에 든 검의 피를 털어내고 아리아를 향해 돌아섰다.그 그 황금빛 눈동자에는 전장을 지배했던 사나움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아리아만을 향한 영원한 집착과 은애가 채워져 있었다.카시안은 무릎을 꿇었다.핏투성이가 된 보물고 바닥 위에서, 제국 최고의 지배자인 알파 킹이 단 한 여인, 아리아의 발치 아래 깊이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올려 제 이마에 대었다."마침내... 당신을 위협하던 모든 더러운 사슬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내 여왕이시여."카시안의 낮고 진실된 음성이 보물고를 울렸다."이제 당신의 완벽한 왕국에서... 그 누구도 당신의 빛을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인 카시안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고맙습니다, 카시안 전하."아리아의 완벽하고 따스한 음성이 카시안의 가슴을 적셨다."이제는... 우리 두 사람만의 진짜 맹세를 시작할 차례군요."아리아는 손을 뻗어 카시안의 손가락을 감싸
카시안의 가슴팍에는 여전히 흰 붕대가 감겨 있었으나, 그 황금빛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붉고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황제라는 오만한 위엄 대신, 오직 아리아라는 여왕을 수호하는 수호 기사로서의 단단함이 온몸에 서려 있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녀의 우아한 손을 감싸 안았다.파혼서가 태워져 없어진 이후, 카시안의 안달 어린 불안은 아리아를 향한 깊은 은애와 확신으로 뒤바뀌어 있었다."가류 백작과 검은 뱀 잔당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나, 아리아?"카시안의 낮고 굵은 음성이 아리아의 귓가를 스쳤다.아리아는 카시안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차분하게 웃었다."예, 카시안 전하. 오늘 밤 황성 지하 보물고에서 구시대의 마지막 쥐새끼들을 완벽하게 청소할 생각입니다."카시안의 입가에 흉포하면서도 완벽한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내 황실 근위대와 내 알파의 참살 검이 네 손에 쥐어진 제일 사나운 무기가 되어주지. 오늘 밤... 네 완벽한 여왕 대관식 전에 모든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치워주마."두 사람의 매서운 시선이 집무실 안에서 은밀하게 교차했다. 전생의 오해와 비극을 완벽하게 극복한 두 사람에게, 이제 그 어떤 사악한 적도 위협이 될 수 없었다.---깊은 밤, 황성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고대 마력 보물고'.수백 년간 황실의 성스러운 보물들과 마석들이 봉인되어
아리아가 품고 다녔던 그 파혼서가, 성스러운 은빛 불꽃 속에서 한 줌의 은빛 재가 되어 밤바람에 날려 흩어져 갔다.전생의 비극적 굴레와 오해,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마지막 사슬이 완벽하게 태워져 소멸하는 순간이었다.카시안은 날려 올라가는 은빛 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를 깊게 쏘아보았다."아리아... 방금 무슨 짓을..."아리아는 한 걸음 다가가 카시안의 단단한 가슴팍에 제 손을 살포시 얹었다. 그의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이 아리아의 손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파혼서를 태워 없앴습니다, 카시안 전하."아리아의 서늘하면서도 완벽하게 따스한 음성이 카시안의 귓가를 스쳤다."이제 전하와 나 사이에는 파혼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전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제국의 여왕으로서 전하와 함께할 완벽한 맹세뿐입니다."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마침내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아리아... 내 사랑하는 루나여..."카시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리아의 우아한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으며 그녀를 제 품 안 깊숙이 끌어당겼다. 전생의 참혹한 희생과, 이번 생의 지독한 안달이 완벽하게 구원받는 순간이었다.두 사람의 입술이 달빛 아래에서 성스럽고 뜨겁게 겹쳐졌다.두 번째 왕관을 쓴 완벽한 루나 여왕과, 그녀의 발치 아래